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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두
공복의 관모로서 으레히 복두를 썼다. 복두는 중국에서 생긴 관모로서 신라 진덕여왕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용되다가 통일신라시대에는 책(瓔), 절풍(折風), 소골(蘇骨), 조우관(鳥羽冠) 등 우리나라 고유의 관모가 사라지고 복두일색이 되었다.
(2) 복(服)
사색공복제도의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복색(服色)에 사색의 서열을 둠으로써 관직 관계(官階)의 관료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광종대에는 자·단·비·록(紫·丹·緋·綠) 의종대에는 자, 비, 록, 조등 시대에 따라 그 색(色)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색(四色)으로써 공복을 구별하여 상하에 색복계급을 이루어 놓은 것은 같다고 할 것이다. |
 <도판 109의 부분 진상> |
(3) 대(帶)
가죽으로 만들어진 대에 여러 가지 종류의 장식을 함으로써 장식에 따라 등차를 두었다. 대에는 통서대(通犀帶), 금옥반서대(金玉班犀帶),방단구로대(方團毬路帶), 금반서대(金班犀帶),반서금도은대(班犀金塗銀帶), 금도은서대(金塗銀犀帶), 서대(犀帶) ,홍정 등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구철의 장식으로써 구별한 것이라고 하겠다. |
(4) 어대(魚袋)
어대는 당의 부계(符契)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부(魚符)에 관성명(官姓名)을 새기고 좌(左), 우(右)2조각으로 나누어 왼쪽은 관내에 두고 오른쪽은 지니고 있어 관내 출입시에 합쳐 보게 되었다. 이것을 주머니에 넣어 사용한데서 어대라는 명칭이 생겼는데 송에서는 금·은으로 장식한 어형을 공복의 대(帶)에 매어 뒤에 늘어뜨렸다. 고려에서는 원 침략기 이전까지 어대를 사용하였는데 금어대, 은어대의 구별이 있었다.
(5) 홀(笏)
홀의 형태는 위가 꺽이고 아래는 모진 것으로 송제에 의하면 길이 일척(一尺) 이촌(二寸)의 것이었을 것이다. 홀의 재료로는 상(象), 목(木)이 쓰였는데,이에서도 계급적인 구별이 있었음을 알 수있다.
원 복속기에도 여전히 사색공복제도가 습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대에는 흑의(黑衣), 청립(靑笠)을 착용토록 하였으며, 입자(笠子)정수리의 장식물에 백옥,청옥,수정,자수정 등으로 차이를 두어 등위를 가렸다. 우왕(禑王) 때에는 명제에 의한 관복제도를 단행하여 1품에서 9품까지 모두 사모(紗帽),단령(團領)을 착용하고 품대(品帶)에 차이를 두었다.
1품은 삽화금대, 2품은 긴금대, 3품은 삽화은대, 4품은 소은대, 5~8품은 각대를 하였고, 이외에도 작품에 따라 사대, 세조전대, 전대 등이 있었다 |
 <지장 십왕도의 하단부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