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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학년도 수시전형이 시작되면서 대입전형료에 대한 불만이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전형요소와 방법을 둘러싸고 개선을 거듭해 왔지만, 지원자가 지불하는 대입전형료나 지원절차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았다. 선발에 대한 관심이 워낙 커서 전형료 문제까지 갈 여력이 없었던 것인지,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 가겠다고 여러 대학에 지원하는 것은 당사자 책임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대학 소관이라 상관할 일이 못 된다고 보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냥 이대로 두기에는 학생·학부모의 심적·물적 부담이 너무 크다.
최근 한 지방의 고교 진학담당 교사는 자신이 재직 중인 학교의 고3 학생 400명 전원이 수시원서를 냈다고 했다. 학생당 적게는 2개 대학에서 많게는 13개 대학에 원서를 냈으며, 평균 3.5개 대학이라고 하니 수시전형료를 6만원으로만 잡아도, 이 시골학교 학생들이 낸 전형료는 놀랍게도 8400만원이나 된다. 면접, 논술고사, 실기고사를 보는 경우에는 전형료가 추가되고 교통비, 때로는 숙박비까지 드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액수는 훨씬 더 커진다. 주로 정시지원을 한다고 하는 다른 고교의 경우에도 과반수가 수시원서를 냈다고 했다. 심지어 한 학생이 20개 대학을 넘게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대학 가는 데 전형료만 1인당 보통 30만~40만원, 많게는 100만원 이상 든다는 소문이 헛말은 아니다. 실제로 올해 수시모집 지원자 67만7829명이 지불한 전형료를 전국적으로 계산하고 여기에 앞으로 추가될 정시전형료까지 모두 합하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온다.
특히 수시전형은 결과 예측이 어려운 데다가 혹시나 하는 요행성 지원까지 더해져 지원대학 수가 많아진다.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에 두 대학에 면접 보겠다고 택배 오토바이를 대학 정문 앞에서 대기시키는 진풍경이 이래서 벌어진다. 덕분에 대학들의 전형료 수입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입 전형료와 절차가 얼마나 비싸고 비합리적인지는 영국의 사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대학입학 지원은 대학을 멤버로 하는 비영리조직체인 UCAS(University and College Admission Service)를 통해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온라인상에서 1개의 원서를 작성하여, 최대 5개 대학까지 지원 가능하다. 별도의 교사 추천과 합격 통보 등이 이루어지면 프로세스는 끝나게 된다. 이러한 전 과정을 도와주는 UCAS 이용료는 1개 대학 지원시 9파운드(1만8000원), 2개 대학 이상은 18파운드(3만8000원)이다. 그 밖에 대학에서의 전형은 대학 부담으로 이루어지므로 학생이 별도로 지불하는 추가비용은 없다. 최대 3만8000원이면 앉아서 대학지원 전 과정이 끝난다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UCAS 재정은 학생 부담과 대학 부담 각각 40%, 기업지원금 20%, 약간의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같은 영국 사례는 대입전형료와 절차는 관점과 접근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전형의 절차, 전형료의 적정수준 등을 포함하여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데 드는 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 그리고 대학입학의 지원과정을 누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우선적인 대안으로 미국과 같은 공동원서 양식 사용과 같이 절차 단순화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고, 좀더 적극적으로는 영국식의 한국형 UCAS 운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학들이 전국적인 중앙관리시스템으로 가기 어렵다면 연합대학끼리의 대응방식도 가능할 수 있다.
매년 입시철마다 일어나는 이 같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과 고통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이제 대학들은 스스로 나서서 연합적으로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조선일보 2009.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