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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9. 5. 18.(토)
5월 봄의 계절인데 벌써 초여름 더위가 며칠째 기성을 부리고 있다
다행히 오늘은 내일 비 예보로 가끔 흐린 날씨로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당초 축령산, 서리산을 연계해서 철쭉 축제기간에 산행할 생각도 있었지만
이런 날씨엔 교통이 번잡하고 힘든 코스인 축령산 서리산 철쭉축제
산행보다는 강화도 트레킹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라는 수식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은 역시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
이에 걸맞게 강화의 ‘가볼 만 한 곳’은 대부분 고려 왕조나 역사의 유적지들이다.
강화도 하면 고인돌, 전등사, 동막해변, 석모도 보문사, 초지진,
덕지진, 광성보 등이 떠오르고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산행으로는 마니산, 고려산으로 서해바다의 멋진 풍광을 볼수도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바다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동막해변과 광성보를
포스팅 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 소개할 강화의 동막해변이라는 곳은, 역사의 흔적 없이
강화의 아름다운 자연만을 볼 수 있는 여행지임에도 드물게
‘가볼 만 한 곳’들에 빈번히 그 이름을 올린다.
무엇이 동막해변을 사랑받도록 한 것인지 동막해변 산책을 즐겨 본다.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인 강화에는 말 그대로 수많은 해변이 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모든 부분을 강화의 해변이라 해야 하겠으나,
강화 본섬에서 해수욕장을 겸하고 있는 해변은 하나뿐. 바로 동막해변이다.
동막해변은 화도면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해안에서는
모래사장과 갯벌이 공존한다. 여름에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동막해변은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여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밀물시에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썰물시에는 갯벌에 사는 여러가지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인근에는 분오리돈대, 함허동천 시범 야영장 및 정수사 등의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다.
동막해변에 도착하여 먼저 분오리돈대, 동막해수욕장을 거닐고
역사의 섬 답게 유적지의 하나인 광성보를 트레킹하였다.
강화도 광성보 한 바퀴 산책하니..하늘도 구름도 특이 한날이다.
봄날의 광성보 산책길은 푸름이 우거진 맑은 공기 속에는 진푸른
초록 나무잎은 더욱 찬란함의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무슨 날이지 많은 산책객들이 줄지어 광성보에 오른다.
둥근 철쭉꽃동산은 곱게 피어 아름다움을 과시 하듯 자랑하는 것 같다.
바람에 광성포대 위 국기가 유달리 팔랑거리다.
하얀 꽃이 곱게 웃으며 나를 손짓한다. 담장 밑 언덕에 야생화 곱게 나풀거린다.
강화나들길..
강화도 어디에 있던 세상과 외따로 떨어진 기븐을 느끼고 싶다면 돈대를 찾아가면 된다.
일단 바다가 있는 해변을 따라서 쭉 가다보면 길가, 혹은 언덕위에서 공터를 빙 두르고 있는 야트막한 성곽을 만나게 된디.
사각형, 원형 등 형태는 다르지만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비슷하다.
성곽 한쪽에 뚫어 놓은 문으로 들어가면 한복판의 공터에 수풀이 우거졌고 성곽 너머로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돈대가 강화도 해안에 53곳이나 존재한다
유형문화재 제 36호 분오리 돈대이다
동막해변의 전경과 주위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 분오리돈대로 간다
이곳엔 일몰과 일출시에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분오리 돈대
이곳은 강화도 동막해변의 일출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분오리 돈대는 조선 숙종5년(1676)에 강화 유수 윤이제가 설치한 여러 돈대 중 하나로
대포 4문을 올려 놓은 포좌와 톱니바뀌 모양으로 돌출시킨 치첩이 37개 소가 있는 초지진의 외각 포대이다.
분오리 돈대의 내부모습..
분오리 돈대는 직사각형,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돈대들과는 달리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돈대는 동. 서남벽은 바다에 면한 천애 절벽의 요새로서
서쪽의 승곶돈대까지 거리는 3,100m
영문에서 돈장을 따로 지키게 할 만큼 중요한 돈대이다
현재 돈대는 1994년에 복원된 것이다.
예전에 이곳에서 산악팀들의 시산제를 지냈던 생각이 난다
분오리 돈대를 한바뀌 돌면서 주위의 풍경을 감상한다
분오리 돈대는 일몰이 멋진 곳으로 유명한데
낮시간이라 그런지 엄청 한가하였다
햇살이 쌀짝 뜨거웠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 좋았다
분오리돈대에서 바라본 동막해변의 모습..
동막해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좀 더 여유를 즐겼다.
동막해변으로 향한다
썰물때라 물이 많이 빠져 있다
예전에 없었던 선착장도 보인다
주로 바다낚시를 하는 배인것 같다
동막해수욕장..
동막해변은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강화도에서 유일하게 백사장이 펼쳐진 이곳은 폭 10m, 길이 200m로 강화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하며,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갯벌체험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민머루 해변보다는 좀 더 큰 느낌이다
동막해수욕장은 세계5대 갯벌 중 하나라고 한다
동막해변은 썰물때면 갯벌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작은 게부터 조개 등등 다양한 갯벙 생물들을 만나수 있다
강화도 본섬에 위치한 해수욕장이다.
해변에 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러나는데 조개나 칠게, 고동 등 다양한 바다생물을 잡을 수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학습장이 된다.
둥막해변의 거리 풍경..
동막해변 앞에 팬션, 캠핑장, 식당들이 굉장히 많았다.
윗쪽에 소나무가 쭉 자리를 잡고 있어 덕분에 그늘이 생겨
그 밑에 텐트나 캠핑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동막해변을 맘껏 즐기고 이제 광성보로 향한다
광성보 안내문..
주차장이 넓은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화장실도 있다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신미양요 순국무명 용사비와 쌍충비,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광성포대를 둘러 볼 수 있다
광성보는 국방유적으로 효종9년(1658) 설치한 강화도 해안 수비 진지 중 하나이다
광성보 매표소;
성인; 1.100원
강화나들길 2코스;
강화나들길 2코스의 다른 이름은 '호국돈대길' 이다.
이 코스는 강화 갑곶돈대에서 시작하여 화도돈대, 강화 광성보,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덕진돈대, 초지진 등을 걷게 되는 코스이다
거리는 무려 15km 구간으로 일부 구간을 선택해서 걷는것을 추천한다
광성돈대..
해안루 좌측에 있는 광성 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 3문이 복원 설치되었다
광성돈대 내에는 1977년에 포좌 4개소와 포 3문이 설치되었다.
* 좌 홍이포 - 포구장전식 화포로서 사정거리 700m이며 조선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 중간 소포 - 장전후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 300m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우 불랑기 - 불랑기는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서
포1문에 다섯개에서 아홉개의 자포를 결합하여 연속 사격 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이다.
광성보의 수문장격인 안해루..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광성보(사적 제227호)
광성보(廣城堡)는 1658년(효종 9)에 설치한 강화도 해안수비 진지의 하나이다.
1679년(숙종 5)에 강화도의 국방시설을 확장할 때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를 함께 축조하여 이에 소속시켰다.
신미양요 때(1871년) 미국 군대와 사투를 벌인 격전의 현장으로서
이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을 기리는 전적비와
350여 명의 순국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신미순의총이 있다.
광성보 안해루 안쪽으로 들어간다
김포가 건너다 보이는 강화해협..
안해루 안쪽에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바로 앞에 의자가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안해루 안쪽으로 들어와서 오른쪽으로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으며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주변의 조경이 잘 조성된 등로를 따라서 이동을 하였다.
쌍충비와 용두돈대로 가는길..
해협을 따라 거닐수있는 트래킹코스가 조성되어있다
계단을 올라가니..
신미양요 순국무명 용사비와 쌍문비각이 나온다
신미양요 순국무명 용사비
쌍용비각..
1871년 신미양요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장군 어재연 외 59명의 순절비이다
1기는 광성파수 순절비로 비의 규모는 폭 62cm, 높이 168cm, 두께 25cm의 양면비로 1873년 건립한 것이다.
다른 1기는 어재연과 어재순 순절비인데 폭 58cm,높이 177cm,두께 26.5cm의 양면비로 역시 1873년에 건립되었다
공종때부터 제사를 지내왔으나 1970년 부터는 어재연의 후손들이 제사를 올려 충절의 유업을 추모하고 있다.
쌍충비 비문해설..
광성보 내에 묘역 '신미순의총'
쌍충비각은 어재연 장군과 그 동생 어재순의 순국을 기리기 위한 비각이다.
그 바로 아래에는 무명용사들 59인의 합장 묘도 볼 수 있다.
갈림길에서 손돌목돈대로 먼저 간다
선선한 날씨에는 그냥 산책을 해도 좋을 거 같은 이곳이
당시에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절로 숙연해 지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손돌목 돈대 - 이 돈대는 조선 숙종(1674-1729,재위)때 축조된 돈대이다.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처가 있었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가 108m이고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순돌목 돈대 입구..
순돌목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돈대 중앙부에 3칸의 무기고 있었고 포좌 3기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손돌목 돈대에 들어서면 휑한 느낌이다
손돌목 돈대는 숙종 5년에 축조된 곳으로
신미양요 때 미군과 격적을 벌인 장소이다.
미국 군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곳은 손돌목 돈대이다.
개인적으로 광성보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고 생각되는 곳이다
손돌목 돈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강화도 일대가 훤히 보인다
강화 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기 때문에 적의 침입을 잘 볼 수 있다
손돌목 돈대에서 본 강화해협..
여느 섬과는 달리 육지와의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빠르고
또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해서 물살이 정말 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돌목돈대는 성곽의 길이가 108m로
멀리서 봐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광성보 안으로 들어와서 강화나들길 2코스 지나는 길에 있으며,
해안가에 인접한 가장 낮은 곳에 "광성포대"가 위치하고 있다.
광성포대 위에 있는 팔각정..
근처에 화장실도 있어서 쉬어 가기에 좋다
" 손돌의 한숨, 손돌의 추위 "
용두돈대 앞 바다는 손돌목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런 전설이 있다.
고려 고종이 몽고의 침입을 맞아 배를 타고 강화도로 피신하는데
손돌이라는 뱃사공이 길을 안내했다고 한다.
배가 광성보 앞에 이르자 앞으로 나가지 않고 빙빙 돌았다.
왕이 손돌을 적의 첩자로 의심하여 처형을 명령하자,
손돌은 이곳 물길이 원래 이러므로바가지를 바다에 띄워주며 이것만 따라가라고 유언하고 죽는다.
이후 왕은 손돌의 유언대로 바가지를 따라가서 무사히 강화도에 닿을 수 있었다.
왕은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고, 손돌을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고 한다.
용두돈대는 조선 고종 3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에
강화도가 초토화 된후 고종 8년 축조된 돈대이다
강화전적지 정화보수 사업을 하면서 용두돈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용두돈대는 바닷가 언덕의 요새로 축조되어 있다.
강화해안가에 설치된 수많은 돈대중에서 가장 절경이 뛰어난 곳에 위치한 용두돈대이다
강화의 돈대 중에서 가장 멋스럽고 아름다운 돈대가 아닐지..
용두돈대의 모습..
용두돈대 전적지정화기념비 양쪽으로 소포 2개가 설치 되어있는데
자세히 보면 한쪽은 구멍이 막혀 있다는 거..왜인지 이유는 알수 없다
좁은 원형의 돈대로 가운대에 소나무가 외로히 서 있고 중앙에는
신미양요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용두돈대에 전시중인 당시에 사용하던 소포(小砲)의 모습이다.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용두돈대는 광성보에서 염화(강화해협)해안의 숲길을 따라서 한참을 가면 나온다.
용두돈대는 김포와 강화사이에서 수심이 가장 빠르고 폭이 좁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용두돈대 반대편 김포쪽에는 덕포진이 있어 양쪽으로 이 염하를 지나 다니는 배를 공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좁은 해협은 그냥 통과한 후 다시 밀물이 들어 올때까지는 퇴각하기도 상당히 어려운 곳으로서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라 할 수 있다.
이 해협은 손돌목이라 하고 인조의 무능함을 느낄 수 있는 손돌목의 전설이 담겨있다
용두돈대(龍頭墩臺)
용두돈대는 강화해엽을 따라 용머리 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교두보로,
1679년 세워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돈대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를 세웠는데, 앞면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와
뒷면에는 이은상 선생이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용두돈대를 지키고 있는 늘~~ 푸른 소나무
용두돈대는 곶과 같이 튀어 나온 지형에 외로히 서 있는 이 돈대는
염화(강화해협)을 지키는 가장 요지에 속한다
염하 건너편 손돌의 묘가 있는 김포 덕포진
돈대 앞에 염하에서 가장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른 곳으로 밀물때 물살이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남해 진도의 명량해협과 함께 가장 빠른 물살이 흐르는 곳이다.
용두돈대 근처 해협의 물살이 어찌나 거센지 휘감아 도는 급한 물살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쉼터..
손돌목돈대에서 용두돈대로 내려오다 보면 우측에 광성포대가 위치하고 있고 강화나들길 2코스로 이어진다
현재의 위치상 광성돈대로 표기된 곳이 강화나들길 2코스가 지나는 "광성포대"가 위치한 곳이다
강화도 해양관방유적 5진 7보 53돈대 탐방.. 광성보 내에 있는 "광성포대"이다
광성포대
광성포대는 조선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국방 강화책으로 숙종(1675~1725)은 강화도내에 내성, 외성, 12진보, 54돈대 등을 축조하여 요새화를 이루었으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화력을 증가시키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함에 따라
고종11년(1874) 용진진, 광성진, 덕진진, 초지진에 포대를 설치하였다.
광성포대는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으며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좌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중앙포대는 길이 80m, 포좌의 크기 약 6m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1875년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외세에 문호를 개항함에 따라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 유적이 확인되어 복원정비를 하였다.
이곳에 포를 설치하고 처들어 오는 적군에 맞서 싸웠을 이름모름 용사들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광성포대 9개의 포좌가 있는 곳으로
광성포대..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외세 침략에 맞서 싸운 격전의 현장인 곳이다
광성포대의 원경..
시원한 바닷바람이 솔솔 불고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마른 갈대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을씨년스럽다
이렇게 광성포대를 돌아나와 포대 위를 쭉 걸어나가 보았다
나들이 하면서 산책도 하고 역사 공부도 할 수있는 강화도 갈 볼 만한 곳이다
이제 되돌아간다
멋진 풍경..
2코스는 해안길을 따라 걷는 길..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걷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걷는 중에 푸른 숲길 2곳이 있고
광성보는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광성보는 손돌목돈대를 거쳐 용두돈대까지 걸으면
가벼운 산책코스로 손색이 없어보인다.
이렇게 강화 나들길을 걷다보니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는것 같다.
바다와 돈대, 숲 등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다면 강화나들길을 걷는것도 좋을것 같다
강화도를 찾을 때면 되도록이면 이 광성보를 꼭 들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이번 강화도여행 & 답사를 통해
광성보를 구석구석 본 적은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은 답사였다.
당시 서양의 열강들과 싸우던 진지들을 보니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