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교회의 특징은 미지근하고 성령님이 없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라오디게아가 마지막 때의 교회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의 특징은 성령을 구하지 않으며 심령은 미지근하고 진리의 말씀과 기름은 말라 버렸습니다
종교행위는 많지만 교회가 침체되는 원인도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 가운데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종교행위가 가득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의로운 삶을 찾기 어렵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구적이고 견고하지만 사람들의 사랑은 아침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며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습니다
고등 시절 시골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방언과 통역과 입신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부흥목사님은 설교 중에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분은 어떻게 많은 은사를 받았을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러다 그분의 메시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도원을 운영하시는 목사님은 산에서 기도를 자주 하신다고 합니다
한겨울에도 산에 올라가서 밤새도록 기도하신다는데 키는 작지만 깡마른 체구에 강인한 의지가 엿보이는 분이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엘리야나 사무엘, 야고보에게서도 발견됩니다
필자는 학생 시절 부흥회에서 참석했다가 일주일간 간절하게 구한 끝에 방언 은사를 겨우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에 네 번 드리는 예배를 5일 정도 하는데 한창 나이에도 온 몸의 힘이 다 빠져 나갔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이 정말 어렵네"였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고넬료 가족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도중에 방언의 은사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에게 성령의 9가지 은사를 기록한 바울은 아마도 이런 은사들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많은 은사들을 받았을까요?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한 가지 힌트는 기록했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1)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전 14:39)
세 개의 구절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사모(earnestly desire)는 강렬한 소원으로 간절하고 끈기 있게 구하라는 뜻이겠죠
인간의 전인격을 구성하는 세 개의 요소가 있습니다
지정의(知情義)로 표시하는 지성, 김정, 의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에서
지성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감정은 사랑과 긍휼, 온유함, 겸손을 표시하며
의지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의식적인 마음의 역량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견지하는 요소 중에 강인한 의지도 필요합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리더들이 최근 걱정하는 기류 중 하나는 젊은 세대의 인내심이나 성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근태는 바닥이고 무기력하며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해서 내성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게임세대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령의 은사, 기도, 말씀의 신앙적 핵심 요소들은 상당 부분 끈질긴 의지에 산물입니다
한 시간이나 몇 시간씩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것은 고통을 참고 견디는 의지가 없으면 쉽게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며칠 전에 지인들을 만나 대화 중에 5년마다 담임목사님의 신임을 묻는 투표를 하는 교회가 화두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을 연임을 받대한 사람들 중에 장로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새로 오신 목사님은 전도를 매우 강조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전의 목사님은 전도를 거의 하지 않았던 분이시고 장로들이 그분의 사역에 익숙해져 전도를 귀찮게 여겼다는 이유입니다
전도뿐 아니라 선교를 반대하는 장로들도 많은데 교회 일보다 선교에 더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안일한 신앙에 익숙해진 신자들이 열심히 하는 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니 이런 일도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40년 동안 예루살렘의 멸망을 외쳤으니 얼마나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과 고관들이 싫어했을까요?
이에 평안과 평화의 메시지로 인기를 얻었던 바스훌 제사장이 일어나 예레미야를 대적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평화와 안전하는 주장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을 씌우는 나무 고랑을 채웠다" (렘 20:1~2)
바스훌은 거짓 선지자의 유형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 거기서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누가 심판과 지옥과 회개와 재림과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전할까요?
설교자도 그것을 싫어하고 듣는 자도 싫어합니다
노아의 시대의 특징은 인구가 증가하고 성적 변태가 일어나며 거짓과 속임수, 만연한 부패와 부도덕, 폭력이 증가하는 때로 우리의 세대의 특징과 비교됩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거룩하지 않으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것을 위하여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악한 영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선한 것을 위해 노력하고 힘써야 함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그렇게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무익하고 게으른 종으로 보여서는 주님께 인정을 받기 힘들지 않을까요!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카이로스
첫댓글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