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야콥스 지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2019.3.29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무릇 음악은 지중해를 닮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영웅주의와 결별한 직후-
베토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불쾌해집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냅니다. 거의 “알몸”이지요. 그보다는 모차르트를 더더욱 모차르트를 듣고 싶어요. 나에게 죽음은 모차르트 음악의 부재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를 읽으면 씁쓸해진다. 베토벤은 한없이 숭배 받는데 모차르트식의 유희는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음악은 본디 숭고성과 유흥성 둘 다를 지향하므로 모차르트의 작품은 베토벤의 음악만큼 존중받아야 마땅하리라.
음악학자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이론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사촌)의 돈 조반니 사랑은 각별했다 한다. 아마도 전설적인 난봉꾼의 기이하고 비참한 최후라는 단순한 스토리 이면에 자리 잡은 복잡다단하고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감정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희극과 비극이 뒤섞이고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음악은 그 순수한 민낯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음악은 더없이 아름답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 하며 관객에게 순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쯤해서 다소 고집스러운? “음악의 유희”에 대한 설파는 관두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사실 난 르네 야콥스의 야심찬 프로젝트 <모차르트-다 폰테 3부작>을 모두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진 못했다. 2017년 코지 판 투 테 때는 참석했으나 2018년 피가로의 결혼은 아무 이유 없이 불참했다가 엄청 후회했다. 그렇게 1년을 쉬고는, 올해 3부작의 피날레를 장식할 돈 조반니 공연에 다시 합류 한 거지.
나무로 만든 목관악기, 레치타티보를 서포트 해 주는 쳄발로, 시대악기에 대한 나의 애정은 질 좋은 와인 마실 때의 정서적 즐거움에 비견될 만큼 각별하다. 그러나 고풍스런 악기에도 그 태생적 결함이 내제되어 있었으니.......시대악기의 원전연주는 아무래도 가벼운 인상을 주는지라 자칫하다가는 한없이 천박해 질 수도 있는데, 마에스트로는 로코코의 우아함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원전악기의 비상을 허용했다.
르네 야콥스의 지휘는 그의 오랜 동료 필립 헤레베헤 만큼이나 매우 어눌하다. 하지만 천재작가에게 악필이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대가의 불분명한 손 지시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언제나 최상이다.
1층 C구역 02열 15번
보통 음악회 티켓을 구입할 때, 특히 나름 거금을 들여 예매할 경우에, 좌석 선정에 있어 소리 외 가시거리를 고려하여 구입한다. 그런데 1월 초 표를 사려고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로열석의 노른자 자리는 이미 오래 전에 마감되었고, 남아 있는 좌석이라곤 좌·우로 치우쳐져 있거나 무대 맨 앞이 다였다. 이마저도 겨우 5~6개 정도 있을 뿐이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탐탁지 않지만 그 중에서라도 골라 예매하든지 아니면 이번에도 스킵하든지.......작년에도 못 봤는데 연이어 안보면 평생 두고두고 후회할 거 같았다. 더구나 르네 야콥스가 차후에 내한 올지 안 올지 불분명하기도 하고. 결국은 두 번째 줄에 앉기로 했고 이렇게 된 이상 오페라의 드라마에 주목하기로 했다. 돈 조반니 음악이야 지금껏 살아오면서 골백번도 더 들어왔잖아?! 애써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면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확실히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무대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앉아야 하겠더라. 소리 면에서 볼 때 어제 내 자리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성악가들이 못 불러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성량이 음악 공간 안에서 듣기 근사하게 숙성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벌어줄 절대적 거리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내 자리에서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아마도 진정한 소리는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간 다음부터 서서히 만들어졌을 것이다.
세상사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설익은 소리로 만족해야 하는 자리였지만 농익은 연출을 감상하기에는 최고의 자리였다. 등장인물의 생동감 있는 표정-특히 썸 타는 이중창에서 그 미묘한 시선 교환-, 천연덕스러운 연기, 부파와 지오코소(해학극)에서 빠질 수 없는 현란한 애드리브, 극의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배우의 땀방울....... 이 모든 것이 또렷이 보였다. 팔만 뻗으면 당장에라도 돈 조반니의 옷자락을 만질 수 있고 레포렐로의 숱 많은 턱수염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 돈나 엘비라의 일편단심을 향한 흐느낌과 돈나 안나의 애증 섞인 탄식, 체를리나의 툴툴대는 소리와 마제토의 씩씩대는 소리는 극음악에 호소력을 부여하는 매혹적인 음향장치였다. 생생한 현장감의 절정은 2막 후반부 기사장 석상이 3번 게이트에서 느닷없이 등장했을 때 찾아왔다. 기사장 석상은 엄숙하고 중량감 있는 음악에 맞춰 장중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최후의 발악을 내지르는 호색한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타나토스의 싸늘하고 노기어린 음성은 점차 가까워지더니 마침내는 내 옆에 서서 무대 위 나쁜 남자에게 마지막 경고를 날린다. 죽음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돈 조반니는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 신조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시종 레포렐로의 비굴함과는 사뭇 다른 돈 조반니의 당당함에 매료된다. 샴페인의 노래와 세레나데에서 경박함이라는 죄명으로 매긴 감점 포인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저는 시처럼 쓰지는 못합니다.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죠. 글귀들을 멋지게 배치해서, 그늘과 빛이 피어나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화가가 아니니까요. 손짓과 몸짓으로 기분과 생각을 나타낼 수조차 없습니다.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소리로 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음악가이니까요.”
-만하임, 1777년 11월 8일. 모차르트의 편지 중에서-
일전에 어떤 이가 이렇게 말했다. 오페라 없는 모차르트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고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모차르트는 오페라를 위해 태어났으며 절묘한 중창이야말로 그의 시그니처라고. 모차르트의 말마따나 그는 시인도 화가도 그리고 무용가도 될 수 없었지만 오페라를 매개로 라면 이 모두가 가능했다.
이로써 장장 3년간의 모차르트-다 폰테-르네 야콥스 3부작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제는 뭘 기다리며 살아야 하나........’ 굉장한 공연 뒤에는
언제나 허무함이 뒤따른다.
첫댓글 글쓰기는 항상 두렵다...어쩔 땐 매우 쉽게 써지다가도 어쩔 땐 12시간 붙잡고 있어도 매우매우 안 써진다..ㅠㅠ망한 거 같지만 주말에 삽질한 게 아까워서 걍 올리기로 함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