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附錄) 고려(高麗)의 강역(疆域)에 대한 일
예종(睿宗) 2년(1107)에 윤관(尹瓘)을 원수(元帥)로 삼고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副元帥)로 삼아서, 군사 17만 명을 거느리고 길을 나누어 동북계(東北界)에 들어가서 크게 여진(女眞)을 격파하여 모조리 쫓아버리고, 구성(九城)을 구축(構築)하고 남계(南界)의 백성을 옮겨 채우게 하였다.
여진(女眞)은 이미 소굴을 잃었기 때문에 맹세코 보복(報復)을 하고자 하여 도둑질하고 약탈하는 것이 끊이지 않았으며, 또한 구성은 서로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서 수비(守備)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간의대부(諫議大夫) 김연(金緣)이 말하기를, "그 땅을 돌려주어 군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때마침〉 여진(女眞)의 공형(公兄) 요불(褭弗)·사현(史顯) 등이 태사(太師) 우야소[烏雅束 금(金)나라 태조 아골타(阿骨打)의 형(兄)]의 명(命)으로 입조(入朝)하여 말하기를, "옛날 우리의 태사(太師) 영가(盈哥)가 일찌기 말하기를, '우리 조종(祖宗)은 대방(大邦 고려)으로부터 나왔으니 자손(子孫)에 이르기까지 의리상 귀부(歸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으며, 지금 태사(太師) 우야소(烏雅束)도 또한 대방(大邦)을 부모(父母)의 나라로 삼고 조공(朝貢)하기를 끊지 아니하는데, 지난해에 크게 군사를 일으키어 들어와서 우리의 늙은이와 어린이를 죽이고, 구성(九城)을 설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유망(流亡)하게 하여서 돌아가 의지할 곳을 잃게 할 것은 생각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태사(太師)가 우리들로 하여금 옛 땅을 되돌려 주도록 청하게 한 것입니다. 이제 만일 구성(九城)을 되돌려 주시기를 허락하시어 생업(生業)에 안정하도록 하여 주시면 저희들은 하늘에 고(告)하여 맹세하고 자손(子孫)에 이르기까지 공손하게 세공(世貢)을 바치고, 또한 감히 기와 조각이나 돌조각도 지경(地境) 위에 던지지 않겠읍니다." 하였다.
임금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 구성을 돌려줄 것을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옳습니다." 하였으므로, 왕이 이에 원수(元帥) 등을 불러서 구성을 여진(女眞)에게 돌려주도록 유시하였다. 〈이에〉 여진(女眞)의 여러 추장(酋長)들은 함주(咸州)의 문 밖에 다 단(壇)을 설치하고 하늘에 고(告)하여 맹세하여 이르기를, "지금 이 후로 후세(後世)에 이르기까지 악심(惡心)을 두지 않을 것이며, 해마다 계속하여 조공(朝貢)을 바칠 것이니, 만일 이 맹세를 어기면 번토(蕃土)는 멸망할 것입니다." 하고, 맹세를 마친 뒤에 물러갔다.
4년(1109)에 구성(九城)을 철폐하고, 차례로 전구(戰具)와 자량(資糧)을 내지(內地)로 거두어 들이었다.
증보문헌비고 권15, 여지고3, 군혁연혁1 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