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호수다. 옛날에는 향어가 살았고, 지금은 누치·모래무지·쏘가리·붕어가 살고 있는 호수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호수다. 어쩌면 그가 카메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필름 속에서나 존재하는 호수다. 바람이 불고 그때마다 잘랑잘랑 물결이 일렁인다. 만산 홍엽 중 호수에 진 단풍잎들이 물결을 타고 있다. 물새떼가 수면을 차고 솟아오르고 있다. 초저녁부터 얼굴을 내민 초승달이 호수에 빠진 채 단풍잎들 사이에서 일렁인다. 지금, 윗산 아랫산은 늦단풍이 들고 있겠다. 호수 밑바닥의 흙과 자갈 사이를 물고기떼들이 헤엄치고 있겠다. 이 호수에 사는 물고기들은 유난히 눈이 좋은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난히 눈이 좋아 수미터 전방의 사람도 감지하는 물고기들이 허다하다. 특히 송어는 호수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까지 알아보고 경계했다. 그는 지난 봄 피라미를 생미끼로 해서 향어를 낚아올린 적이 있다. 힘이 상당한 중형 스피닝 릴을 썼는데도 릴대가 휘어지다 못해 꺾일 정도로 향어는 강렬하게 저항했다. 이 호수로 낚시를 다니면서 수많은 어종들을 낚아봤지만 그토록 강렬한 저항과 맞부딪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향어를 끌어올리는 동안 호수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는 맥없이 호수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문득 이대로 물 속에 잠기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보니 사력을 다해 릴대를 쳐든 채 물 속에 무릎을 담그고 서 있었다. 수심이 얕았기에 망정이었지 깊었으면 그는 호수에 잠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60센티는 될 듯한 대형어였다. 왜 그랬을까. 그는 향어의 입으로부터 찌를 빼는 것과 동시에 혀에 깊은 상처를 입은 향어를 호수에 놓아준 적이 있다.
“아침엔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더니……”
하늘은 올려다보지도 않고 텐트 속에서 얼굴만 밖으로 내민 채 낚싯대가 드리워져 있는 저녁 호수를 들여다보던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뒤이어 하려던 말은 별이 참 많이 떴다!일 것이다. 그가 능곡 어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간간이 비가 뿌려서 어머니는 오늘밤 낚시를 망설였다. 한데 그새에 하늘은 말끔히 개고 별이 저렇게 많이 떴다.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잔별이 수두룩하다. 잔물결 속에 초저녁부터 떠오른 초승달도 비친다.
“달 좀 봐라…… 꼭 누가 앉아 있는 것 같다.”
그는 호수에 비친 초승달에게서 눈을 떼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옅게 반짝이는 잔별들 속에 초승달이 빼꼼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괜히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딸애의 얼굴이 지나가서다. 자고 있겠지. 아내의 면셔츠를 친친 몸에 감고. 얼굴을 벅벅 문질러도 집을 떠날 때 왼손은 아내의 치마를, 오른손은 그의 배낭을 붙잡고는 함께 가자, 엄마 함께 가자, 보채던 모습이 시야에서 물러서질 않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 있던 딸애의 조그만 눈. 그러나 딸애의 최종 선택은 언제나 그보다는 아내이다. 아내가 가면 가고 아내가 안 가면 저도 안 간다. 섭섭해 울기는 해도 결정은 그렇게 한다. 자면서도 딸애는 간혹 엄마, 하고 불렀다. 아내가 곁에 있어서 응, 하고 대답을 하면 내처 자지만 아내의 대답 소리가 안 들리면 딸애는 슬몃 눈을 떴다. 시야에 제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그애의 얼굴엔 더럭 겁이 실렸다. 그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다. 엄마 가져와…… 엄마 가져와…… 딸애는 그가 섭섭할 정도로 아내를 찾아대며 운다.
“저 위쪽 산간 지방엔 오늘 첫눈이 내렸대요 어머니.”
“벌써?”
“예.”
“아직 시월인데?”
“그러게요…… 그냥 흩날리는 눈이 아니었던가 봐요. 대설 주의보까지 내린 걸 보면.”
“그래? 오늘밤 안 추우려나?”
“추워도 끄떡없어요 어머니. 침낭이 있는데요. 작년에 좀 추운 것 같아서 침낭에다 오리털을 좀 넣었어요.”
“잘했구나…… 그런데 오늘은 밤낚시 나온 사람들이 없나보다. 사방이 캄캄해.”
겨울이 오기 전에 밤낚시를 할 수 있는 때로는 지금이 최적기인 셈인데, 다른 때 같으면 밤낚시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쳐놓은 텐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여기저기에서 깜박일 것인데, 오늘은 호수 주변이 캄캄할 뿐이다. 얼핏 저편의 호수 끝이 어디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어둡고 조용했다. 잔바람에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까지 귓전에 남았다.
탁탁탁…… 주위의 고요를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가 깨뜨렸다. 무를 써는 것인가. 무어라도 한 마리 잡혀야 매운탕을 끓여 저녁을 먹을 것인데. 벌써 8시가 지났는데.
예전에 이 호수에서 가장 많이 낚을 수 있는 어종은 향어였다. 그런데 저물녘에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수원에서 왔다는 낚시꾼은 그의 오뚝이 찌를 보더니 이제 이 호수에서 향어는 사라졌다고 했다. 이 호수의 주인은 이제 붕어·누치·모래무지가 되었다고. 호수의 곳곳에 심심찮게 서 있던 향어 가두리가 거의 없어진 탓이라고 했다. 그에 따라 야생 향어도 이 호수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고. 여름 지나고 가을이 되면서부터는 흔적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낚시찌가 움직이는 기척은 전혀 없다.
수원에서 왔다는 낚시꾼은 지난 일 년 내내 이 호수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낚시를 하며 살았다고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요양 삼아 낚시만 하였노라고. 그에게 뭘 하느냐고 물어 회사 이름을 댔더니 낚시꾼은 용하구료, 했다.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다니 말이오. 더구나 자동차 회사라니. 그는 결혼 전에는 홍보실 업무가 자신하고는 맞지 않은 것 같아서 부서를 옮기거나 직장을 옮겨볼까도 생각했다. 결혼 후 그는 떠도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새 자동차가 출시될 때마다 그는 최선을 다해 홍보 전략을 세웠고 사보에 실릴 사장의 권두언의 초고를 썼으며 자사의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유명인들을 취재해서 글을 쓰고 사진도 찍었다. 틈만 나면 회사 쪽의 의도나 기대와는 다른 기사가 나가는 언론과 시시비비를 가리며 밤을 새웠다. 결혼 후 무엇이 그런 일들을 다 견디게 했는지.
향어는 원산지가 독일이지만 이스라엘에서 개량되어 지금 형태가 된 말하자면 유럽 잉어였다. 우습게도 향어는 우리 잉어보다 이 호수의 수온이나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났다. 성장 속도 또한 우리 것보다 훨씬 빨라서 금세 성어가 되었다. 호수 근처엔 향어 가두리 양식장이 여러 곳이다. 양식장 근처에서 배회하는 야생 향어는 동작이 느리고 입질도 급하지 않았다. 먹이를 물어도 어찌나 찌의 움직임이 미미한지 찌 맞춤을 정확히 해도 야생 향어의 입질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야생 향어는 무엇이든 잘 먹는 잡식성인데다 소음에 대한 반응도 적고 수심층의 가장자리에 떼로 몰려다녀서 이 호수를 찾는 밤낚시꾼들을 기쁘게 했었다.
낚시꾼은 그의 오뚝이 찌를 바라보며 마치 옛 연인을 그리워하듯 말했다. 직장에서 떨려나고 향어를 낚아 팔아서 애들 엄마에게 돈을 부쳐주곤 했다고. 예전에는 취미로 한 낚시가 지난 일 년 동안은 돈벌이가 되어주었다고. 별 바쁠 것도 없다는 듯이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낚시꾼의 살림망 속에는 향어 대신에 잔챙이 붕어와 누치, 빙어 몇 마리가 담겨져 있었다. 그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어제 낚시 전문점에 들러 향어를 낚기에 안성 맞춤인 오뚝이 찌를 새로 구해 달았다. 꾼은 아니었지만 조황이 좋을 때면 그도 향어를 여러 마리 낚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이곳에서 버너에 불을 붙이고 매운탕을 끓일 놈만 빼고는 낚시가 끝난 후면 살림망에 갇혀 있는 물고기들을 도로 호수로 보내주었다. 집으로 가지고 가는 동안 죽는다는 게 어머니가 물고기를 도로 호수에 풀어주는 이유였다. 어머니는 절대 죽은 생선은 먹지 않았다. 거기에 다른 이유를 달 수 없었던 그도 낚시가 끝난 후에는 도로 놓아주고 돌아오는 게 일이었다. 어쩌면 그가 놓아준 향어를 다시 그 낚시꾼이 낚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호수에 들락거린 지 벌써 이십여 년이 되어서 이 호수에 대해서는 빤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낚시꾼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 호수에서 이제 향어가 소멸 상태라는 걸 전혀 몰랐다.
“누군지 몰라도 말을 안 섞어도 저편에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 안심이 됐는데…… 동무 같기도 하고 말이야.”
어머니는 아무래도 주변에 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저는 지금도 좋은데요 어머니…… 어머니와 저 둘이만 이 세상에 있는 것 같고…… 춥지 않으세요? 추우면 배낭 안에 담요 있어요. 꺼내다 두르세요.”
“아직은 괜찮다 딱 알맞아…… 커피라도 한잔 끓여주련?”
“예.”
그는 어머니가 텐트 속에서 일어나 물통 뚜껑을 열어 주전자에 물을 받는 소리를 들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지난 봄 여름 가을…… 그는 울적해져서 허리를 펴고 호수 저편을 바라보았다. 그 동안 이 호수를 잊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음이 쓰라렸고 괴로웠다. 검은 심연 같은 호수도 그를 나직이 바라보았다. 수면에 초승 달빛이 어룽지고 그 위를 가랑잎들이 가랑가랑 떠내려가고 있다. 그가 이 호수를 잊고 있었던 동안에도 호수는 조용히 쉬지 않고 움직였을 것이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어머니 쪽을 돌아다보았다. 커피를 끓이느라고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건너왔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그는 잠시 담배 끝에 붙은 주황색 불 끝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럴 수도 있구나, 생각한다. 이렇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수도 있구나. 그는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았다. 주황색 불꽃이 더 짙게 타오르는 걸 그는 먹먹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밤이 되고서는 첫 담배다. 낮에 휴게소에서 차를 세워놓고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피운 후로는 두번째다. 그가 무엇을 해도 그러냐, 하는 어머니지만 그가 담배를 피우는 일은 사력을 다해서 말리는 어머니였다. 니 아버지가 폐암이었다. 너도 니 아버지 자식이다. 차라리 술을 마셔라. 담배는 절대 안 된다. 어머니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걸 보면 언제든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그대로 놓아버리고는 그를 따라다니며 지청구를 했다. 그 통에 어머니 손에 들려 있던 화분이며 과일 그릇이며가 얼마나 깨졌는지. 그는 어머니가 보지 않는 데서도 담배를 피울 때면 불량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사십이 다 되는 나이에 느껴볼래야 느낄 수 없는 야릇함이 섞여 약간은 위로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처음 다락방에 올라가 빠끔 담배를 피우다가 어머니에게 들켰을 때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
어머니가 커피를 타 담은 작은 알루미늄 보온통을 들고 나와 더듬더듬 그 곁으로 걸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그는 얼른 손가락 사이의 담배를 호수에 내던졌다. 버려진 담배도 물결을 타고 가랑잎처럼 떠내려갔다. 그는 호수의 물을 손주먹으로 퍼서 입 안을 헹궈냈다. 행여 냄새가 날세라 하하, 숨을 뱉어냈다.
“영 입질이 시원찮구나.”
그의 곁에 앉은 어머니가 보온통 뚜껑에 커피를 따라 그에게 건넸다. 그는 커피가 담긴 보온통 뚜껑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밤에 이 호수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아내는 벚꽃 피는 봄밤의 커피를 제일로 쳤다. 어머니는 이런 늦가을 밤이었고 그는 겨울이었다. 어느 해 봄밤에…… 텐트 속에서 먼저 잠든 어머니를 두고 아내와 그는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만수 때라 연안의 산 그림자가 호수에 드리워져 호수 면은 어느 때보다도 깊어 보였다. 근처에 벚나무가 있었을까. 벚꽃의 애린 냄새가 봄바람을 타고 그들 곁을 살랑거렸다. 새로 돋은 나뭇잎 냄새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겨울을 보낸 뒤 폭삭폭삭해진 산길의 흙 냄새였는지도. 그는 뭐든 익숙한 게 좋았다. 오래 입은 셔츠가 좋았고, 오래 들고 다닌 가방이 좋았다. 책상의 위치나 식탁의 위치가 갑작스럽게 바뀌는 걸 그는 원하지 않았다. 손이 안 간 새것은 일단 거북했다. 그런 성격 탓이었을까. 아내와의 잠자리도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체위로 하는 게 좋았다. 그랬는데, 그 봄밤엔 물 냄새 벚꽃 냄새 흙 냄새에 이끌렸다. 아내의 입술은 부드러웠고, 목덜미는 따뜻했다. 생각해보니 아내가 그에게 먼저 몸을 열어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 봄밤의 호수 속에 아내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무엇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피부가 좀 차가운 편이었던 아내가 그날 호수에서는 아주 따뜻한 피부를 가진 여자로 변해 있었다. 그 봄밤에 호수에서의 아내와의 관계가 그에게는 그의 침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가진 첫 관계이며 마지막 관계였다. 승희가 그 봄밤에 생긴 것 같다고 아내는 수줍게 말했었다. 그 봄밤에, 이 호수에서.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영화 보았냐? 아아 참 함께 본 영화였지야.”
“……”
삼 년 전에 어머니가 팔당 지나 능곡의 빈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을 무렵에 함께 보았던 영화다. 어떻게 어머니와 영화를 볼 생각을 했던 것인지. 능곡이란 지명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 때 어머니는 그곳에 빈집을 구해두었다. 언젠가는 그곳으로 들어가 여생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재봉질도 그만두고 마당이나 가꾸면서 살란다, 하였다. 이상도 하지야. 저번 때는 해순 아줌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로 이러이러한 집에서 살고프다고 말을 허는데 헛간이 있고야, 마루가 있고, 마루 밑에 개가 있고, 우물이 있고 마루가 들여다보이는 흙담이 있고…… 마당에 닭이 있고 돼지막이 있고…… 한참 하다보니까는 어디서 많이 본 집 아니냐. 이 집을 어디서 봤드라…… 생각해보니 부새가 우는 밤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와버렸던 그 집이드라. 아버지의 말허리를 잘라가며 허구헌날 잘랑잘랑대며 싸웠던 그 집이어야. 징글징글허다고 도망쳐온 집인디…… 그리도 내가 가장 살고 자픈 집은 그 집이었던가 벼야. 어머니는 오래 비워둔 능곡의 집을 오래오래 손보았다. 어머니가 버리고 온 집처럼 우물도 없고 돼지막도 없었지만 어머니는 수굿하게 오늘은 풀을 뽑고 내일은 문종이를 바르고 또 오늘은 부엌에 가스 레인지를 달고 또 내일은 툇마룻장을 달아냈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집을 손본 후 어머니는 지금 삼 년째 마당을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뭔 일을 시작허믄 삼 년은 해야 빛이 난다, 하더니 삼 년째가 되는 올 봄 능곡의 마당에는 홍매화며 목련이며가 속속들이 피었다가 지고 채송화, 분꽃, 봉숭아 따위도 뒤이어 지나간 이 가을에는 울타리용으로 심어놓은 꽃사과나무에 구슬만한 꽃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어머니는 그때 그 영화관에서 구한 「흐르는 강물처럼」 패널을 능곡의 마루벽에 젊은 아이들처럼 걸어놓았다. 언제든지 어머니 집에 가면 몬타나였던가, 수려하고 활달하게 흘러가는 푸른 계곡 속에 멋진 호를 그리며 되풀이 떨어지던 흰 낚싯줄을 볼 수 있었다.
“참말 햇빛이 찬란했지야. 화면인데도 눈이 부셨어야. 그 송어 낚시가.”
“플라이 낚시.”
“으응, 그래 플라이 낚시…… 참 멋있었어. 콸콸거리며 끝없이 흘러가는 그 여울물이라니…… 그 위에 쏟아지는 햇빛이라니…… 이제사 말이지만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장로교 그 목사 아버지 말이다.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말이다. 나도 그런 아버지로 한번 살고 o드라. 다 늙은 나이에 주책이냐? 어린 아들들에게 물결 읽는 법이며 침묵 읽는 법을 가르치는 그 목사가 참 부러웠어야. 너그럽고 단아하고 때로는 엄숙한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보면 좋겠구나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더란다.”
“저는 어머니가 그랬는데요.”
“어머니?”
“영화 속의 어머니요.”
“그렇지? 두 양주가 있었지? 근데 어머니는 잘 떠오르질 않는구나. 그래 어떤 장면이 좋았냐?”
“둘째아들이 누구였죠…… 다혈질적인 그 청년…… 왜 형과는 달리 제 근거를 못 찾고 일탈하다가 끝내는 길에 쓰러지고 마는 친구…… 아…… 브래드 피트였어요. 그 반항적 기질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매우 섬세하고 다정하지요. 그 아들이 마을 축제에서 어머니랑 춤을 추는 장면 생각 나세요? 아들이 어머니에게 춤을 청하니까 그 어머니가 어찌나 수줍어하던지요. 수줍어하면서도 아들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이 화면을 꽉 채웠는데…… 어머니를 본 듯했어요. 언제 한번 어머니랑 춤을 춰봐야지 했는데……”
“블루스 말이냐?”
“무슨 춤이든지 말이에요.”
“그것 참 즐겁겠구나…… 지금 한번 춰보련?”
“춤 신청은 남자가 하는 거예요, 어머니.”
“너도 나에게 남자인 게냐?”
누가 보지도 않는데 어머니는 입을 가리고 나직하게 웃었다. 그는 어머니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하늘의 초승달을 다시 한번 올려다봤다. 달은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듯 잔별들 속에 여직 가만히 있다. 저것 봐라, 어머니가 그의 팔목을 툭 쳤다. 깜박깜박 찌가 움직이고 있다. 어머니가 랜턴을 물에 비추려는 걸 그가 만류했다. 혹시 향어일지도. 야행성인 향어는 불빛을 아주 싫어했다. 깜. 박. 깜박. 미미하게 시작되었던 찌 놀림이 까…닥…까…닥으로 바뀌는 꼴이 향어의 입질이다, 싶다. 물고기의 입이 찌를 물고 스르르 들어갔다. 그는 챔질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얼른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순간이다. 낚싯대에 걸려 올라오던 물고기가 무슨 까닭인지 다시 물 속으로 첨벙 빠져버렸다. 어둠 속에 긴장하고 있던 튼튼한 뜰채가 무색하다. 어머니가 대가 긴 뜰채를 내려놓으며 큰놈이었는데, 아쉬워했다. 향어였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옆구리가 누르스름하고 배가 붉은 야생 향어였을 거라고. 향어는 그랬다. 중량이 많이 나가 물 속에서 끌어내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 사이에 장애물에 걸리면 영락없이 놓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같이 다 건져올린 것을 공중에서 놓친 적은 없었는데. 그는 다시 찌 맞춤을 하며 찌 움직임이 좀더 예민해지도록 조개봉돌을 세 개나 나누어서 달았다. 떡밥에 번데기 가루를 조금 첨가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세하게 신경을 쓰다가 그는 오뚝이 찌를 바라다보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제 이 호수에서 향어는 거의 소멸했다는데.
“매운탕 끓여 저녁 먹긴 틀린 것 같은데요, 어머니.”
“안 잡히면 라면이라두 끓여먹자꾸나.”
“낚시 오면서 라면을 가져왔어요 어머니?”
“지난참에 옆 텐트에서 끓여먹는 거 얻어먹을 때 얼마나 맛있었냐? 그리서 내가 예비로 두 개 넣어왔다.”
“배고프세요?”
“아니 지금은 괜찮아”
뿌리째 뽑힌 국화꽃이 물 위로 떠내려가기라도 하는가. 물 냄새 속에 국화 냄새가 섞이었다. 서리 맞은 국화에서나 맡아지는 향이다. 꽃 냄새네,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마당에도 국화가 다 피었는데…… 오래 가는 꽃이다…… 서리 맞고 눈 맞을 때까지도 피어 있지야. 어머니가 중얼거리다가 추운지 오소소 몸을 움츠렸다. 그는 곁의 방한복을 집어 어머니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어머니는 아직은 괜찮다, 하면서도 그가 걸쳐준 방한복을 꼭꼭 여미었다. 지금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다. 문득 그는 어머니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그 두 마디라는 걸 깨닫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변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오면 아직은 괜찮아요, 그랬고, 어깨가 시린 일로 인해 잠을 못 이루며 찬물과 더운물로 번갈아가며 찜질을 하면서도 병원에 가보자고 하면 지금은 괜찮아, 그랬다. 그는 아까 딸애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처럼 두 손바닥으로 다시 얼굴을 감싸고 벅벅 문질렀다. 손바닥에서 어분 냄새가 맡아졌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다……라는 어머니의 말은 지난 일 년 동안 그가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기도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어디서나 혼자 남게 되면 혼자가 된 그 틈으로 어김없이 아내 생각이 밀려들었다. 서류를 정리하다가도 택시를 잡다가도 그는 불쑥불쑥 혼잣말을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운전하고 가다가 격한 마음에 휩쓸려 가로수 밑에 차를 세우고서 그는 중얼거렸다. 지금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다.
“야야, 저기 좀 봐라.”
호수 맞은편에 좀 전에는 없던 불빛 서너 개가 깜박였다.
“동무가 생겼구나.”
“그렇네요.”
여러 사람인 모양이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물결을 타고 건너왔다.
“이놈들아, 오늘밤이 너희 제삿날이다.”
“3칸, 3칸 반짜리로 해.”
“이쪽이 좋겠는데…… 이쪽이 더 경사가 져.”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말고 좀 편한 자리로 하라구. 밤이잖아. 게다가 야생 향어는 없어요. 기껏 붕어나 잡을 텐데.”
“이 사람이 붕어 맛을 제대로 모르는군.”
향어. 이곳은 야행성인 향어가 활개를 치는 곳이다. 어장에서 먹이를 뿌려주는 시간이면 야생 향어들도 그 근처를 배회하다가 밤낚시꾼들한테 붙잡히곤 했다. 아침에 횟집으로 팔려가기도 했다. 향어 조황이 좋을 때라면 지금 저들이 있는 자리가 터가 좋다. 향어들은 흙과 모래가 적절히 섞여 있는 바닥과 적절한 은폐물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경사도가 좀 있는 곳이 향어를 낚기에는 이롭다. 이곳에 도착해 그도 저곳에 텐트를 칠까 궁리해보았다. 하지만 경사도가 너무 심해서 텐트를 치기에도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기에도 불편해 보였다. 좀 나은 곳은 이미 텐트가 쳐져 있더니 아마도 그 속에서 저들이 밤낚시를 위해 잠을 자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끄러미 건너편 불빛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얼굴을 돌려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초승달이 여전히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야야.”
어머니가 그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어둠 속에서 수줍게 웃었다.
“내가 시를 한 편 썼는디야 한번 볼라냐?”
“시를 쓰셨어요?”
“그래.”
“언제요?”
“아까…… 매운탕에 넣을 무 썰다가 말이다. 저 달이 하도 이뻐서 말이다.”
“한번 읽어보셔요.”
어머니가 주머니에서 부시럭부시럭 종이 쪽지를 꺼내더니 랜턴을 그 종이 쪽지에 갖다대었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낭송해볼 양을 하다가 어머니는 아무래도 멋쩍은지 아니다, 됐다며 도로 종이 쪽지를 도르르 말아버렸다. 그는 하하, 웃었다. 오늘 처음으로 흔쾌하게 웃는 웃음이다. 저럴 때의 어머니의 모습은 꼭 소녀 같다. 어둡지만 않다면 귀밑이 붉어진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읽어보셔요, 어머니…… 어머니가 썼다고 생각 마시고요. 다른 사람이 쓴 시를 낭송한다고 생각하세요. 나랑 호수나 듣지 누가 듣는다고 그러세요.”
“그럴까?”
“예.”
어머니는 이 호수에 사는 물고기와는 달리 눈이 밝다. 어깨는 닳아졌어도 눈은 밝다. 눈 밝게 허는디는 당근이 최고란다. 어머니는 어디에 거처하나 한켠에 당근을 심어놓고 늘상 뽑아서 먹곤 했다. 재봉질을 하다가, 물을 길으러 가다가, 바깥에서 돌아오다가, 낮잠에서 깨어나서, 닭모이를 주다가 어머니는 주홍색 당근을 쑥 뽑아 흙을 털고 아삭아삭 베어 먹었다. 능곡 마당에 맨 먼저 심은 것도 당근이었다. 종이에 적힌 글씨가 그에겐 흐릿한데 어머니는 눈도 안 찡그리고 낭송했다.
초저녁, 그 하늘의 밤 안개 더미들, 속을 찬찬히 헤치고 내 걸음을 따라나오는 너의 옥 같은 이마. 네가 나에게 준 마음들이 호수에 잠긴 오늘, 너를 빠져나온 너의 둥근 발걸음이 돌아서서 다시 간 곳, 서편 하늘 중간쯤 곡선으로 구부러진 처음 바로 그 길.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자위에 손을 가져갔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눈물이다. 그는 멋쩍어져서 괜히 물에 잠겨 있는 뜰채를 조금 옮기었다. 어머니가 시를 썼던가? 가끔 아무데나 뭔가를 적고 있던 어머니를 종종 보아왔지만 시장 볼 거리를 메모하거나 누군가의 생일이나 혹은 셈할 돈을 체크하거나 기록하는 줄 알았지 어머니가 시를 쓰기도 한다는 것을 그는 전혀 몰랐다. 하긴 아내가 말해주기 전에는 자신이 그렇게도 상처받기 싫어하는 인간이라는 것도 그는 몰랐다. 노골적으로 적대 감정을 드러내는 맞은편의 정과장과 필요할 때면 점심 식사며 저녁 술을 함께하는 그를 아내는 의아해했다. 한 사무실에 앉아서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아내는 당신은 상처받기 싫은 거예요, 쏘아붙였다. 상처. 상처받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만 아내의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맺혔는지. 당신은 상처받기 싫어서 누구하고도 깊은 관계를 안 맺어요. 심지어 아내인 나하고도. 깊은 관계를 안 맺으니 화낼 일도 없고 싸울 일도 없죠. 사람들은 그런 당신을 부드럽고 대인 관계가 원만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막상 당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누가 적극적으로 당신을 변호해줄까요?
그는 어머니의 어깨를 감쌌다. 누가? 아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어머니 외에는. 정형외과 의사는 어머니의 어깨가 다 닳아졌다고 했다. 어깨를 너무 썼어요. 뼈가 다 닿아졌어요.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 다르겠지만 뼈가 다 닿아졌다는 말이 주는 참담함이라니. 대체 노동을 얼마나 해야 뼈가 닿아진다는 말인지. 뼈가 닿아진 어깨를 하고선 저 텐트 속에서 무를 썰다가 말고 저 달에 반해서 시를 쓴 어머니가 생소한데도 눈꺼풀이 뜨거워지는 건 또 어인 일인지.
“시 같냐?”
“좋은데요, 어머니.”
“니가 시를 아냐?”
아니오, 그는 웃었다.
“처녀 적엔 시인이 되고 싶었지야.”
처녀 시절? 그랬겠지. 어머니에게도 처녀 시절이 있었겠다. 소녀 시절도 신생아 시절도. 그런데 왜 처음부터 어머니는 저 모습이었던 것만 같은가. 처음부터 어머니로 태어났을 것만 같은가. 어머니에게도 좌절된 꿈과 희망, 바스라진 욕망이 있었을 텐데.
“내가 시인의 꿈을 품은 적이 있다는 걸 아는 분은 니 아버지뿐이다.”
아버지.
그는 또 한번 괜히 뜰채를 매만졌다.
“너는 어려서 기억이 안 나겠지만 병원에서 처음 네 아버지는 삼 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단다. 그런 네 아버지가 아홉 달을 버티었다. 너와 나 때문 아니었냐. 늦게 본 자식이라고…… 너를 얻느라고……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원. 병원에선 기적이라고 했어. 이십 년을 채워야 연금이 나오는데 이십 년을 채우기에 아홉 달이 모자랐단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네 아버지는 오로지 너와 나에게 연금 혜택을 주고 가겠다는 그 일념으로 삼 개월을 지나 아홉 달을 버티었어. 사람이 그럴 수도 있더구나. 이십 년에서 모자란 아홉 달을 채우시고선 돌아가셨다. 편안히 가셨어. 그날은 마침 새 달이 시작되는 날이었단다. 달력을 넘겨놓고 잠자듯이 가셨어.”
“……”
“얘야.”
“예, 어머니.”
“얘야. 이런 얘기를 들었다. 어디라더라. 티베트인가…… 그 나라의 어느 오지를 여행한 사람이 전하는 말이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말이다. 자신이 죽을 때를 미리 안다는구나. 그곳 노인들은 대부분 한평생을 일하고 절약하고 소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인데 누구나 수술칼 한번 몸에 대지 않고들 그렇게 건강하게 산단다. 아흔 살 백 살 되는 사람이 흔하디흔하다고 해. 그곳을 여행했던 어떤 사람이 그 마을에서 어떤 노인이 죽은 날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말이다. 신새벽에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 귀퉁이를 고치고 내려와서는 아침을 잘 먹고 상을 물린 후에 며늘애가 바깥에 나가려고 대문을 나서니까 불러놓고 그러드란다. 야야, 나는 이제 갈란다. 잘 놀다 오려무나.”
“……”
“나갔다 와 보니 고요히 갔다는구나.”
“……”
“하긴 내가 자란 마을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지. 사작나무 옆집에서 있었던 일이야. 그 집 아들이 네 외삼촌과 동갑내기였다. 새우가 잡힐 때면 말이다. 바다에 나가서는 건성건성 새우를 한 소쿠리 건져다가 우리 집 마당에 놓고 가곤 했어야. 아이구, 그 새우. 따로 뭐 양념 헐 것도 없어야. 얼망이에다 붓고서 맑은 물에 잘잘 씻어서는 탁탁탁 치면 술렁술렁 껍질이 벗겨져야. 수염 달린 것을 들고 초고추장 찍어 먹으면 반짝 하는 새에 한 얼망이는 다 없어지곤 했어야. 아이구 그 새우 생살이 말이다 입 안에서 잘잘 녹았단다…… 내 입성이 그랬으니……”
어머니는 그만 말을 멈추었다. 그는 멋쩍게 웃었다. 생새우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는 아내 생각이 난 모양이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별 요구 사항도 없던 어머니였지만 이따금 아내와 불화를 일으켰는데 매번 죽은 생선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었다. 나는 생전 보지도 못한 낙지죽을 끓여내시라고 하니……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아내는 노량진 수산 시장에까지 나가서 아내 생각으로는 물이 좋은 낙지를 사가지고 와 어머니가 이르는 대로 낙지죽을 끓여내보지만 어머니는 한술도 뜨지 않았다. 왜 안 드시냐고 하면 죽은 낙지여서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너무도 생선을 좋아했으나 숨이 죽은 생선은 절대 먹지 않았다.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해삼, 살아 있는 멍게, 살아 있는 전복. 다른 때는 괜찮다가도 몸이 아플 때면 어머니는 숫제 음식을 먹지 못했다. 아픈 몸이 살아 있는 생선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어렸을 적 그 바닷가에서 먹었던 살아 있는 것들을. 한번 아내는 낙지를 사러 수산 시장에 갈 때 주전자를 챙겨갔다. 주전자 꼭지로 공기가 드나들어 낙지가 숨죽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아내는 살아 있는 게를 사와서 물에 담가 어머니 앞으로 가져가서 어머니 보세요 살아 있죠? 확인시키고는 그를 불러 칼과 도마를 내밀었다. 펄떡펄떡 뛰는 게의 다리를 잘라달라고. 나는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그때만 아니면 아내와 어머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니라 어머니와 딸같이 잘 지냈다.
“마저 얘기 하셔요 어머니. 사작나무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으응, 그래……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지. 그 집 할머니가 가실 때 말이다. 손자를 등에 업고 있었단다. 한나절 내내 손자를 잘 봐주고 있던 양반이 마당에서 멍게 손질을 하고 있던 며늘애를 야야, 하고 부르시더니 등에 업고 있던 손자를 풀러 건넴서는 나는 인자 가봐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낮은 베개를 찾아 베고 평소대로 이마에 팔을 얹고 낮잠에 들 듯이 그렇게 가셨다는구나.”
“……”
“처음에는 어린 너를 데리고 이 호수에 올 적에는 마음이 슬프고 서럽고 그런 때만였단다. 다 지난 얘기다만은 고만 죽고 싶을 때면 너를 데리고 여기에 왔구나. 세상이 어디 만만한 게 한 대목이나 있더냐?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는 게 인생사지마는 유독 나한테만 그래 보이더라. 한 가지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어야. 에누리가 없었어야. 그때마다…… 여기에 와서 마음을 달래보고 달래보고 그랬구나. 내 마음을 달래기에는 여기가 가장 알맞은 장소였어. 너를 데리고 이 세상을 사는 일이 쉽지 않았더니라. 온통 마음을 달래며 보낸 평생이었지 싶어야. 달래고 또 달래고…… 또 달래고 그랬구나. 근데 얘야. 요즘은 이상허다이. 내 마음을 달래보고 달래볼 적엔 그저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던 이 호수가 요즘엔 자꾸 말을 걸어온다. 잘잘거리는 물소리가 꼭 너그 아버지 목소리만 같어야.”
“……”
“나도 다 살어서 그러꺼나?”
“그런 말씀 마세요.”
“얘야…… 언젠가 내가 했던 말 잊지 않았겄지야?”
“무슨 말 말씀인가요?”
“승희 에미 처음 내게 인사시키려고 데려왔던 날 내가 한 말 말이다.”
아, 그날. 아내는 그가 어머니에게 인사시킨 첫 여자였다. 처음 사랑한 여자라는 뜻이 아니라 그는 결혼할 여자, 한 사람만을 어머니에게 인사시키리라 생각하고 있어서 아내와 결혼할 생각이 굳어진 뒤에야 어머니에게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내내 마음이 밝아 보였다. 손수 만두를 빚어서 만두국을 끓여주었고, 손수 재봉질해서 만든 색색의 손수건을 아내에게 선물로 주었다. 아내는 지금까지도 그 손수건을 가지고 있다. 곶감을 띄운 수정과까지 잘 먹은 뒤였다. 문득 어머니가 열어놓은 방문으로 성큼 들어온 봄볕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그들 둘을 무릎 아래 앉혔다. 서약을 하나 받아놔야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너무나 차분해서 그와 아내는 긴장을 했다. 어머니가 내미는 종이에는 훗날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게 되면 꼭 요양소에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어머니 얼굴에 어른거리는 봄볕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종이를 내밀며 거기에 손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느닷없는 어머니의 제의에 그보다 더 당황한 건 그때는 처녀였던 아내였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하면서 눈물을 비쳤다. 어머니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치매에 걸려서 하는 행동은 아무 의식도 없이 하는 것 아니냐? 그것 때문에 너희들이 상처받을까봐…… 자식이 되어서 어찌 요양소에 보내냐면서 집에 두고 그 고통을 겪는 사람을 내가 많이 봤어. 그 생각을 하면 끔찍해서 그런다. 요양소에 보내는 건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해야 마땅한 것인데 너희는 못 그럴 게 틀림없으니 내가 정신 말짱헐 때 서약을 받아놓으려고 하는 게야. 그날 어머니는 기어이 그와 아내에게 손도장을 찍게 했다. 주인집 마당의 매화가 피어 꽃 그늘을 이루고, 뒤꼍의 감나무에서는 감꽃이 지고 있던 평화로운 봄날이었다.
“내가 다시는 이런 말 안 할 것이다마는 그날의 서약은 꼭 지켜야 한다. 해순 아줌마를 보렴. 해순 아줌마가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었겄니. 말 한마디 울리게 안 하던 깔끔했던 사람이 아조 자식들을 닦달을 허는 가비드라. 며느리는 다니는 직장도 그만 쉬고 있다더구나. 해순 아줌마가 맑은 정신이 들어서 자신이 자식들한테 어찌 했다는 걸 알게 된다고 생각히봐라…… 그 사람 혀를 깨물 것이네. 남의 일 같지가 않어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희들 앞길을 가로막고 너희들 일상 생활을 못하게 훼방놓겠거니 생각하면……”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
“아니다…… 이런 얘기는 정신 말짱헐 때 해둬야 써…… 그때는 내가 나랄 수 없는 것이다. 누가 뭐라든 요양소로 보내다오…… 꺼림칙하게 여길 필요 전혀 없어야. 그때는 내가 나라고 헐 수 없으니까…… 옆에다 두고 부끄럽고 몹쓸 에미 만들지 마라.”
“그만 하세요, 어머니.”
“약속을 해라.”
“……”
“약속을 해.”
“……”
“응?”
“예……”
그의 대답 소리가 호수에 떨어지는 것 같다. 이 호수는 3개 군 7개의 읍, 면에 걸쳐 있다. 만수시에는 물이 인제읍까지 차오른다니 물길만 300리다. 젊은 날 어머니는 이 호수에 아버지의 뼛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면 어머니는 어린 그를 데리고 이곳에 왔다. 기차를 타고 흔들거리며 온 적도 있었고 먼지가 뿌옇게 이는 버스를 타고 온 적도 있었다. 무엇을 타고 왔건간에 어머니는 중간쯤에서 삶은 계란을 꺼내 껍질을 까서 그에게 먹였다. 껍질이 벗겨진 삶은 달걀의 매끈한 감촉이 혀끝에 닿는 게 그는 좋았다. 없어지는 게 아까워서 삶은 달걀을 한입에 털어넣은 적이 없었다. 좋아서 아껴 먹었다. 노른자위가 나올 때까지 조금씩…… 더 조금씩. 그의 마음도 모르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사내애가 먹성이…… 혀를 차며 부스러기가 묻은 입 주위를 닦아주었다. 그가 달걀을 다 먹으면 사이다도 마시게 해주었다. 어린 날 유일하게 사이다를 마실 수 있었던 때는 어머니와 함께 이 호수를 찾아오는 날이었다.
그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낚시 가게에 가서 낚시 도구를 샀다. 낚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괜히 어머니와 함께 기차나 버스를 타고 삶은 달걀이나 사이다를 마시며 이 호수를 찾기는 어쩐지 좀 멋쩍었던 것이다. 수상 관광을 즐기러 가는 것도 아닌 마당에야 낚시가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이십 년이다. 물고기가 많이 낚이는 것이 나쁠 것도 없었지만 조황이 좋고 나쁜 것이 그에겐 상관이 없었다. 그냥 호수에 낚싯대를 담그고 앉아 있는 시간을 그가 즐기게 된 것이었다. 때때로 이런 가을날, 만산 홍엽이 호수에 비칠 때면 그는 먹먹한 기분으로 낚시찌가 흔들리는 것도 모르고 물 속에 비치는 정경을 들여다보곤 했다. 어디선가 나뭇잎이 물결을 타고 떠내려오는 것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그는 좋았다. 어느 때는 삼, 사 일씩 어머니와 함께 이 호수에서 야영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길게는 일주일이 넘어가는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호수 어디에나 어머니와 함께 하지 않은 장소가 없을 정도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던 어머니는 이 호수에 오면 도란도란 많은 얘기를 했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서 그는 어머니가 사작나무가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것, 외할아버지가 아주 무서운 사람이었다는 것, 그런데도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한사코 싸웠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뭣을 그렇게 싸웠는지야. 외조부에 대해서 말할 때면 어머니의 목소리는 확 가라앉았다. 높낮이가 없이 잔바람에 일렁일렁이는 물 소리를 듣는 듯했다. 날이면 날마다 싸웠구나.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가 무서워서 뭐라고 대꾸도 안 하는디야. 나는 잘랑잘랑 대들어가지고 기필코 아버지를 성나게 하구는 죽어라 내빼곤 했어야. 오직하면 식구들이 나를 보고 혁명가라고 했겄냐. 무서운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는 곳이 바다였는디 야야, 언젠가는 해가 질 때의 바다에 한번 나가 봐라. 미칠 것만 같어야. 해의 각도에 따라서 시시각각 은색으로 청회색으로 바다색이 달라지고 갈라지는디 마음을 환장하게 혀야. 나는 훗날에도 거그 가면 아버지 산소에는 안 가도 그 바다에는 꼭 갔다 오곤 했다. 아버지한테 혼나가지고 눈물 질질 짬서 바다 쳐다보고 있으면 어머니가 데리러 안 오냐. 바다 위로 황무지가 있었는디 거개에 먼산바라기로 서서 바다를 쳐다보믄 왜 그르케 서럽고야 환장하겠는지. 뒤늦게 날 찾으러 온 어머니한테 등짝 얻어맞어가면서도 엄마, 째큼만 더 있어봐, 째큼만…… 하고선 집에 안 갈라고 버티었지야. 바다를 등지고 황무지가 있고 보리밭이 있었는디 보리 팰 때면 그물에 수도 없이 보리숭어가 잡히는디 숭어살 싹싹 베서 먹으면 혓바닥에 그냥 찰싹 달라붙는디 아삭아삭 얼매나 고소한지. 보리숭어 때가 아니라도야 바다는 얼매나 푸진지 암때나 바께스 들고 나가서는 낙지 해삼 멍게를 수두룩히 쓸어담어가지고 안 왔냐. 오독오독 씹어먹는 맛을 어따 비하겄냐. 난 그런 바다를 두고 집을 버리고 와버X다. 견딜 수가 없었어야. 한번은 그가 물었다. 무엇을요, 어머니? 무엇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쯤 되면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는 그랬어 견딜 수가 없었어. 한번 말끝을 흐리고 나면 어머니는 더 이상 그 바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호수의 물살에 눈길을 주고는 내내 잠잠히 있다가는 그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거나 어깨를 쓸어주며 그냥 그렇단다. 괜히 그렇게 견딜 수 없는 때가 있는 법이란다, 하였다. 어머니는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그의 곁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며 어깨가 닳아지고 무릎이 나가고 천식을 앓는 중이었다. 그런 세월이 쌓이다 보니 그에게 어느덧 이 호수는 태생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유유하게 흐르고 있는 호수의 물결이 그에게 그 동안 잘 있었나? 묻는 것도 같고, 저런 얼굴이 까칠하군, 연민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같았다.
“야야, 이제 얘기해보거라.”
“……”
“무슨 얘기냐? 무슨 얘기길래 그리 내내 망설이는 게야?”
그는 들고 있던 랜턴을 바닥에 놓쳐버렸다. 귀신을 본 것같이 갑자기 어머니가 두려워졌다. 지난 봄이었다. 봄비가 내리고 능곡 집 마당의 아직 키가 작은 목련꽃이 필 때였다. 방 안에 있던 어머니가 문 좀 열어봐라, 목련이 핀다, 하였다. 방문을 열어제치니 목련나무에서 꽃망울이 툭툭 터지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가. 고요하던 물결이 한번 뒤척이고 낚시 도구를 덮어놓은 비닐이 펄럭였다.
“나는 괜찮다, 무슨 얘기든……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어머니.”
“그래.”
“배고파요…… 아무래도 여기는 고기가 다니는 길목이 아닌가 봐요. 저편 좀 보세요. 금세금세 고기가 낚이는지 저리 소란스러운데…… 저녁을 먹어야겠어요. 더 늦기 전에.”
이쪽의 찌 놀림은 감감무소식인데 저편은 시시때때로 고기가 낚이는 모양이다. 고기가 한 마리 낚일 때마다 저편에선 웅성웅성 환호성이었다. 누군가 방금 낚아올린 살아 있는 생선을 회치거나 매운탕을 끓이는가 보았다. 탁탁탁…… 도마질 소리로 보아 아주 익숙한 솜씨였다. 소주 한잔 안 할 수 없네,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물결을 타고 건너왔다. 죽여주네. 이 맛에 낚시 하는 거지. 그럼그럼. 잠깐 묵묵히 그편을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방한복을 그의 어깨에 덮어주고 일어섰다.
“그럼 라면을 끓일거나?”
“예.”
“……달 좀 봐라…… 어째 저리 떴으끄나……”
텐트 쪽으로 걸어가는 어머니의 실루엣을 그는 먹먹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은 꼭 얘기를 하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먼저 무슨 얘기든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해오니 덜컥 겁이 났다. 여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내를 불러보았다. 우리가 어떡허다 이렇게 되었지. 그의 아내는 결혼 전에 자동차 디자이너였다. 홍보실의 그는 업무차 아내와 자주 부딪쳤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그닥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이 같은 회사에서 2년을 지냈다. 국내외 자동차 업체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 차의 디자인이 판매와 연결되고 있었다. 소비자들의 욕구가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얘기였다. 새 차 모델을 취재하는 일로 디자인 팀과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지던 날이었다. 늦은 밤 보도 블럭 아래까지 내려가 택시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은행나무 아래로 뛰어들어갔다. 누군가 동시에 핸드백으로 머리를 가리며 은행나무 아래로 뛰어들었는데 아내였다. 서로 어색하게 비를 피하고 있던 어느 순간에 아내가 중얼거렸다.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은 웅덩이로 이루어진 곳이었는데…… 이렇게 비가 내린 뒤에 뒷산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면은요. 여기저기에 파여 있는 물웅덩이에 햇빛이 쏟아져내리는데 눈을 못 떴어요. 얼마나 눈이 부신지 여러 개의 호수를 한번에 보는 것 같았어요. 호수……라는 말에 그는 아내를 찬찬히 쳐다봤다. 이미 그는 호수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이마가 반듯하고 목선이 고운 여자였다. 방금 함께 여럿이서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어떤 느낌도 없었던 아내의 얼굴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맑았고, 입 매무새는 단정했다. 좁은 어깨가 약간 추워 보였고, 흐트러진 머리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는 은행나무 아래서 귓불이 붉어진 여자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음날 저녁 데이트를 청했다. 아내는 그와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동안 너무 힘이 들었다고 했다. 항상 미래를 예측해야 하고 항상 새로워야 하고 항상 참신해야 한다는 것에 진력이 났다고도 했다. 자동차 디자인 작업이 컴퓨터화되는 과정도 아내에겐 많은 스트레스였던 모양이었다.
그는 낚싯대를 그대로 두고 텐트를 향해 걸었다. 저벅저벅. 자신의 발소리가 천둥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물가에 피어 있던 초롱꽃들이 그의 신발 밑에 밟혔다. 어머니는 버너 위에서 끓고 있는 물에 라면을 집어넣으려다가 낚싯대는 어쩌구? 하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고기가 다니는 길목이 아닌가 봐요…… 어머니……”
“낚시도 마음을 모으는 일인데…… 그래 냅둬라…… 어차피 이걸로 저녁 먹으면 우리사 잡아도 다 놓아줘버리지 않았니.”
“불터를 만들어 불을 피울까요?”
“향어가 달아난다면서.”
“이제 이 호수에는 향어는 없대요, 어머니.”
“……그래 그럼 불을 피워라…… 나무 짐은 내가 많이 해놨다.”
호수에 도착해 그가 텐트를 치고 물가로 내려가 낚싯대를 손볼 때 어머니는 화목을 찾으러 야산을 뒤지고 다녔다. 밤에 불을 피우는 걸 어머니는 좋아했다. 처녀 시절로 돌아간 것같이 마음이 들뜬다고. 노래도 부르고 싶어지고야 춤도 추고 싶어지고야. 여름 뒤끝에 몰아닥친 태풍에 부러진 나무들이 많았나보았다. 쌓여 있는 나뭇가지는 이 밤, 화목으로 쓰고도 남을 만큼 수북했다. 산국화 뿌리며 마른 통나무까지 섞여 있다. 그는 야전삽으로 오목한 곳을 찾아내 흙을 파냈다. 야전삽에 퍼올려진 흙 속에서 늦가을 냄새가 싸아 하니 밀려왔다. 너비가 십오 센티 정도 파일 때까지 그는 계속 흙을 퍼냈다. 야전삽을 잡고 있는 손바닥과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이만하면 됐겠지. 그는 야전삽을 내려놓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숨 속으로도 흙 냄새가 스며들었다. 불이 잘 붙게 생긴 마른 나뭇가지를 불쏘시개로 골라 라이터로 불을 붙여 불터 밑바닥에 놓고서 다른 나뭇가지들을 불 위에 쌓았다. 불은 생각대로 잘 붙지를 않았다. 불 냄새만 확 풍기고는 꺼져버렸다. 그는 다시 불쏘시개 거리에 불을 붙여 밑바닥에 놓았다. 마른 나뭇가지들을 위에 놓고 쑤석쑤석거려 공기 구멍을 내주어봐도 불은 또 꺼져버렸다. 거듭 세 차례나 불은 냄새만 풍기고는 꺼져버렸다. 네번째 그가 다시 불을 붙였을 때에야 불쏘시개의 불은 간신히 다른 나뭇가지로 번졌다. 더디게 붙은 불에 흙 냄새가 뒤로 밀려나고 불 냄새가 확확 번졌다. 그는 불 냄새를 맡으며 화목을 세모꼴로 정성스럽게 쌓았다.
“시장했을 텐데…… 라면으로 되겠니?”
“맛있어요, 어머니.”
차가운 밤공기 탓일까. 혀에 감기는 면발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후룩, 삼켜보는 국물도. 라면. 이상한 음식이다. 내내 잊고 있다가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솟증처럼 그 맛이 돋아난다. 혀끝에 그 맛이 느껴지면 끓여먹어야 가라앉는다. 향수 때문일까. 오래 전 어머니는 장독대의 빈 항아리 속에 라면을 담아놓았다. 많이도 아니고 한 세 개쯤. 라면이 특식이던 때였다. 시험 때가 되어서 그가 신새벽까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어머니는 그 중의 반개를 끓인 후에 밥 한술과 김치를 야참으로 내오곤 했다. 냄새…… 부엌에서 어머니가 뭘 하는지는 그 냄새 때문에 금세 알아차렸다. 라면 냄새는 삽시간에 온 집에 퍼졌으니까. 요즘 라면에서 그 냄새가 안 난다. 달걀도 파도 김치도 뭣도 넣지 않았어도 냄새가 기가 막혔는데.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그는 아내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다. 끓여주긴 하면서도 아내는 늘 불만이었다. 라면공장 사장은 자기 자식들에게 절대 라면을 먹이지 않는다는데, 한번 몸 속으로 들어가면 그 노폐물이 몸에서 다 빠져나가는 데 십오 년이 걸린다고 하든데.
“얘야…… 저 모습을 한번 찍어보렴.”
그는 후룩후룩 소리를 내어 먹던 라면 그릇을 불 앞에 내려놓고 어머니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불 건너에 호수가 이윽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물새들이 몇 마리 수면 위에 떠 있는 쪽을 향해 어머니는 렌즈를 맞추는 시늉을 한다.
“왜? 구도가 안 맞냐?”
그는 하하, 웃었다. 구도가 안 맞냐? 묻는 어머니의 질문이 생소해서.
“너는 참 호수를 잘 찍는다, 다른 건 몰라도 호수는 잘 찍는다.”
“제가 잘 찍어요?”
“그래…… 아주 잘해.”
“어머니가 제 사진을 보는 줄 몰랐어요. 한번도 보여드린 적이 없는데.”
“그래…… 그 점 얼마나 서운했는 줄 아냐? 근디 너는 왜 내게 니가 찍은 사진은 일절 안 보여주냐?”
“부끄러워서요.”
“부끄러워?”
“예.”
“무엇이 말이냐?”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요…… 어머니가 제 사진을 보고 이게 뭐냐? 하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서요……”
“순전히 겁쟁이로구나.”
“……”
“아니란다. 네가 찍은 호수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렸어…… 네 사진을 보면 호수가 울고 있는 것 같아서…… 내 가슴도 미어졌다. 눈물이 나려던 적도 있었지야. 네가 찍은 다른 사진을 보면 안 그런데 호수는 그래…… 호수를 찍을 때면 무슨 특별한 생각이라도 하며 찍는 게냐?”
“……비밀인데.”
“도저히 말해줄 수 없는 비밀이냐?”
그는 웃었다..
“뭔데 그러냐?…… 나는 시도 읽어줬잖어.”
시.
초승달.
그는 어머니가 쓴 시 제목을 초승달이라고 붙이면 알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저녁 안개 더미 속을 찬찬히 헤치고 나온 너의 옥 같은 이마.
“어머니 생각을 해요. 이 호수 생각을요. 이 호수에는 우리들의 추억이 너무 많잖아요. 아버지의 유해를 들고 온 그때부터 여기는 어머니와 저만의 공간 같아요. 어디에나요. 저 나무 밑이나 호수 저 건너나 저 다리 밑이나 어디에나 우리는 텐트를 쳤고 거기서 잤고 물고기를 잡았고…… 이 호수 어디에나. 어머니와의 숨결이 안 밴 곳이 없잖아요. 추억이라고 말해버리면 어쩐지 허전할 만큼요. 이 호수는 어머니와 제 생이 배어 있는 곳 같아요. 호수를 찍을 때면 어머니가 떠난 후의 제 모습이 생각나요.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 저 혼자 이 호숫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오. 아마 그 생각이 사진에 스미는가 봐요.”
“왜 혼자겠니. 승희도 있고 승희 에미도 있고.”
승희…… 승희 에미.
그는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산 쪽에서 바람이 휘익, 일렁였다. 바람이 부는 쪽의 붉은 불이 안쪽으로 쓰윽, 밀렸다. 라면 냄새, 흙 냄새, 불 냄새들이 섞여서 호수 쪽으로 밀려갔다. 어머니가 다 먹은 라면 그릇과 김치 그릇을 착착 포개 뒤로 내놓고는 보온병을 열고 뚜껑에 커피를 따라 그에게 내밀었다.
“승희 동생을 봐야지야.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들 하지만 아니다, 둘은 되어야지. 언니가 있으면 동생이 있는 게 좋고, 형이 있으면 아우가 있는 게 좋아야. 승희 밑에 동생 하나 맨들어주라. 여동생이믄 더 좋을 것 같다마는 그거야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지야…… 어차피 부모는 자식 곁에 영원히 못 있어야. 먼저 가야 되여. 요즘 내 맘이 별시럽다. 세상에 달랑 너 하나. 형이든 누님이든 동생이든간에 더 있으믄 내 장례도 함께 치르고 내가 가도 달랑 너 혼자는 아닐 텐데 싶은게…… 승희를 봐서 동생을 봐야지. 너희 내외 외엔 승희도 달랑 혼자 아니냐. 재산을 남겨줄 것도 뭐 다른 것을 남겨줄 것도 없다아. 혈육을 하나 남겨주어라. 밉든 곱든지간에 너희 내외 세상 뜬 후에 승희가 천지간에 저 혼자라는 생각 안 들게 말이다.”
“……”
“물이랑 불은 참 이상한 것이다…… 냄새 좀 봐라. 빛깔 좀 봐. 이 빛깔 이 냄새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겄니…… 거울 같어야…… 출렁출렁 타닥타닥거림서는 옛날에 알던 사람, 지금은 잊어버린 사람, 나를 두고 간 사람, 내가 버린 사람들을 다 보여준다.”
“어머니.”
“응.”
“한 가지 물어볼게요.”
“뭐 말이냐?”
“견딜 수가 없었다고……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하셨지요. 어머니 태생지를 도망쳐나온 게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고 하셨지요.”
“……”
“무엇이오? 무엇이 그렇게 견딜 수가 없으셨어요?”
“무엇이랄 게 있느냐…… 다아 그랬다…… 다아…… 젊었으니까…… 젊어서 안 그랬냐……”
“……”
“외할아버지 돌아가신지도 모르고 너그 아버지 만나 함께 살겄다고 찾아갔더니 어머니가 그러더라. 너만 곁에 있었어두 니 아베는 3년은 더 살었을 것이다. 싸운 것밖에는 없는데…… 싸운 것밖에는. 아버지를 괴롭힌 것뿐이 없는데…… 내가 그 마을을 떠나구선 곧 돌아가셨다고 하드라. 뭣을 그렇게 싸웠으끄나…… 징허게도 싸웠니라. 징그랍게 싸웠어야. 나는 그때 세상하고 싸울 일을 그때 아버지하고 다 싸워버린 것 같어야. 그뒤론 뭣하고도 싸울 의욕을 상실해버린 것 같어야…… 뭐라 말하겠냐…… 젊어서, 젊어서 그랬다…… 그랬달밖에.”
“어머니.”
“응.”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듣고만 계셔요…… 그럴 수 있겠어요?”
“무슨 이야긴데?”
“무슨 이야기든지요.”
“……”
“예?”
“……그러마.”
“이 호수에서 40센티가 넘는 잉어도 잡은 적이 있었지요…… 기억나세요? 25센티짜리 떡붕어도 잡은 적이 있었는데…… 25센티짜리 떡붕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아무리 떡붕어라고 해보았자 붕어인데 어떻게 25센티짜리가 있느냐고. 하지만 어머닌 보셨잖아요. 금빛이 찬란했었죠. 잡혀서도 지느러미가 얼마나 세차던지 그놈 몸통에 묻은 물방울이 이마에 톡톡 튀었어요. 누런 쏘가리도 대개 큰 놈을 잡은 적 있었는데…… 그때가 언제였죠…… 언제였드라. 승희랑 승희 에미랑 같이 왔었던 때인데…… 그렇죠? 승희가 쏘가리 보고 너무 크다고 무섭다고 울음을 터뜨려서…… 어머니 이제 이곳에서 향어는 잡히지 않는다는군요. 향어 가두리가 다 없어진 탓이래요. 어느 물 속엔가 남아 있긴 하겠지만 아까 놓친 놈이 향어 같긴 했는데…… 좌우지간 이 호수의 주인은 이제 향어가 아니라고…… 아까 그놈처럼 어디 물 속 어디엔가 있기야 하겠지만 자연 번식을 왕성히 못한다면…… 어머니……”
“……”
“어머니에게 이런 말은 안 드리려고…… 여기까지는 안 와보려고 지난 일 년 동안 별짓을 다했어요…… 그런데도 결국 이렇게…… 그냥 듣고만 계세요…… 처음엔 어머니에게 말 안 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지금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건 안 되는 일 같고…… 말해야 되는 일이니 이 일을 어머니에게 달리 말하거나 어느 대목은 숨겨놓거나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 제 얘기가 끝날 때까지요…… 그냥 듣고만 계셔요…… 이미 결정된 일이고…… 어머니가 말릴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어요…… 그냥 얘기를 해드리려고요. 얘기나 해드리려고요…… 얘기나요…… 결혼을 하고 지금껏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살았어요.”
그는 손깍지를 낀 채 잠시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을 바라보았다.
6시에 일어나 신문을 뒤적이고 국에 밥을 말아 먹고 7시에 집을 나서 8시가 되기 전에 정확히 회사에 도착해서 사무실 문을 열고 있는 자신이 불 속으로 보인다. 언제나 그와 함께 일어나 조촐한 아침 식사를 차려주었던 아내. 이른 시간이라 밥 생각이 없다면서도 그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식탁에 마주앉아 있었던 아내. 그는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아내의 맨발이나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잠옷 따위를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잠이 덜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그가 신고 나갈 구두를 손질하는 모습도. 통통한 엉덩이를 내민 채로 요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와이셔츠를 입고 아내가 골라준 넥타이를 매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빼꼼히 열린 장롱의 한쪽 문, 물병에 반쯤 남아 있는 물, 엎어진 컵, 몸만 쏙 빠져나온 구겨진 요…… 이부자리를 개기 전의 흐트러진 방 안 분위기 속엔 그들의 냄새가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 아내의 보디 로션 냄새, 아직 덜 자란 아이의 목덜미 냄새, 그리고 자신의 발 냄새 따위들이. 아이는 언제나 제 엄마의 셔츠를 몸에 친친 감고 잤다. 능곡의 어머니 집에서 자고 올 양을 하고 길을 떠났다가도 깜박 그 셔츠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그들은 그냥 돌아와야 했다. 셔츠가 없으면 아이는 잠이 들지 못했다. 밤새 칭얼거리고 보채었다. 그는 쓸쓸하게 웃었다. 이제는 제 엄마의 면 셔츠를 친친 감고 자고 있는 아이의 뺨에 입을 맞추는 일도 일찍 들어올게, 아내를 향해 출근 인사를 하는 일도 그의 일이 아닌 것인가.
“……벌써 일 년 전의 일이에요. 그 사람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남자가 생겼으리라곤…… 워낙 그런 쪽으로는 선이 닿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어요. 좀처럼 그런 일이 없었는데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빈번히 묻는 거예요. 회사가 구조 조정에 들어간 데다 새 모델 출차까지 앞두고 있어서 본사의 회장이 자동차 공장에서 숙식을 함께하고 있었던 때였어요.그 사람을 위해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아니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뿐 아니라 늘 그랬던 것 같아요. 늘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줄곧 그랬어요. 솔직히 결혼 전에는 회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결혼 후에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안 했지요. 안 했을 뿐 아니라 나는 내가 승진하고 회사와의 관계를 원활히 갖는 일이 내 일만이 아니라 아내의 일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고. 그래서 야근도 빠지지 않았고 집에 못 들어가게 생긴 날은 철야를 했고…… 그런 일들의 반복이었지요. 어머니와 함께 결혼을 한 후에는 아내와, 승희가 태어난 후에는 승희까지 데리고 이 호수를 찾아오는 일 정도가 제겐 여가였으니까.”
이 호수에 올 수 있어서 그는 열심히 일할 수도 있었다. 하루종일 스물네 시간 내내 일에 묻혀 지내기도 했다. 언젠가 새 차 출시에 맞춰 책자를 만드는 작업중이었다.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자정 근처에 집에 들어와 막 잠이 들었는데 꿈에 페이지도 정확히 19페이지에 실릴 사진이 거꾸로 되어 있는 거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인쇄소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도록 했다. 정말이었다. 다행히 인쇄 전이어서 직전에 고칠 수가 있었다. 자다 말고 일어나 인쇄소에 전화를 거는 그를 아내가 염려스럽게 바라보았다. 당신 머릿속은 온통 회사일 뿐인가 봐요, 하면서.
“나는 아내도 그렇게 별 무리 없이 지내고 있는 줄 알았지요. 사랑하느냐고…… 물어서 웃었지요. 사랑하니까 함께 살지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나. 그 무렵은 불쑥불쑥 회사 앞에 와서 점심을 하자 저녁을 하자 그랬어요.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안 맞을 때만 오는지…… 늘 그냥 돌려보냈어요. 한번은 전화로 돌려보내기가 미안해서 아래로 내려갔더니 아내가 회사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새 차의 모델 앞에서 멍한 모습으로 서 있더군요. 내부 인테리어가 참 좋게 나왔다면서…… 나는 그때야 아내가 나와 결혼하기 전에 자동차 디자이너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날도 시간을 못 내고 돌려보내는데 아내가 그러더군요. 결혼이 이런 것이었다면, 남편과 점심 한 끼 저녁 한 끼 먹을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면 결혼하고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 거라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 무렵 아내는 떠돌이 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하루는 출근하는데 따라나오면서 아파트 뒤 터에 떠돌이 개가 한 마리 생겼는데 주인을 잃은 개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버림받은 개가 아니고 어쩌다가 주인을 잃은 개가 틀림없다고 강조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떠돌이 개가 그렇게 경계심이 없고 귀티 나고 순할 수가 없을 거라고요. 처음에는 그런 개가 있나보다 했는데 아내의 개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었어요. 아파트 사람들도 다 그 개를 좋아해서 뒤 터에 개집을 지어주었고 밥도 번갈아가며 챙겨주고 있다고요. 하도 개 이야기를 열심히 해서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더펄이라고 하더군요. 더펄이? 내가 웃었더니 떠돌아다니느라고 털을 못 깎아 더펄더펄 거리고 다니니까 아이들이 더펄아 더펄아, 자연스럽게 불렀던 것이 더펄이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떠돌이 개가 되어서 목욕을 못하고 털을 안 깎아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아주 수려하고 잘 생긴 족보가 있는 개라고 그러더군요. 아내의 떠돌이 개에 대한 이야기는 장황했어요. 어느 때는 참 끈질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피곤한 때에도 출근을 위해 허둥지둥거리는 때에도 아내는 그 떠돌이 개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는 거예요. 승희 얘기보다 그 떠돌이 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드디어 더펄이를 집에 데려와서 기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때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나서 식탁에서 대체 더펄이가 누구냐고 물었죠. 솔직히 그때까지 그 사람 얘기를 흘려듣고 있어서 그 떠돌이 개 이름이 더펄이라는 것도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아내가 나를 빤히 쳐다봤어요. 당신, 여지껏 내가 한 이야기를 못 들었어요? 더펄이. 그때서야 그 떠돌이 개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해보았죠. 버림받은 게 아니고 주인을 잃어버린 개. 털이 더펄거려서 더펄이라는 이름이 붙은 개. 골목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던 개의 눈에서 하도 눈물이 흘러서 하루는 아내가 개를 안고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는 개. 눈병이 나으면 동물병원 의사가 더펄이에게 주인을 찾아주겠다고 했다던 생각까지 나더군요. 그런데 쉽게 주인이 나타나질 않았나봐요. 아내는 가끔 더펄이를 보러 갔었던 모양이에요. 한번은 눈물이 글썽해져가지고 개 미용사 아가씨 욕을 막 퍼부어대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더군요. 주인이 없는 개라고 털을 함부로 깎아서 코도 다치고 머리도 다쳐서 그 순한 것이 너무 불쌍하게 되었다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절 없이 심지어 한눈팔면서 털을 깍지 않은 이상 그렇게 쥐어뜯어놓을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런 아가씨는 개 미용사를 할 자격이 없다고 하더군요. 병원 문을 나서는데 더펄이가 막 따라나오려고 하는 걸 그냥 두고 왔더니 눈에 밟힌다고 했어요. 더펄이…… 그 더펄이를 집으로 데려와 우리 집에서 기르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는 담담한 기분이 들었다. 의외였다. 꼭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싫다고 했어요. 왜 싫으냐길래 우선 아파트에서 개를 기를 수는 없는 일이고 집 안에 우리 식구 냄새말고 동물 냄새가 섞이는 게 싫다고 했죠. 특히 개는 어려서부터 싫어했다고요. 아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군요. 그러면서 더펄이를 한번 보면 당신도 생각이 바뀔 거예요, 애원했어요. 좌우지간 나는 개는, 더구나 떠돌이 개는 집 안에 들일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어요. 이상했어요. 그 정도 말하면 알아들었을 아내인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더펄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며칠만 데리고 있어보자, 영 아니면 어머니한테 보내자…… 아내가 계속 그러니까 한번도 보지 않은 개가 더더욱 싫어지더군요. 어느 날 아내가 그러더군요. 더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세요? 저 뒤 터에서는 그렇게 자유롭고 명랑하고 거칠 것 없던 개가 0.1평도 안 되는 우리에 갇혀 있다구요. 천진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던 눈이 이제는 축 처지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슬픈 눈이 되어버렸다구요. 나는 말했죠. 그럼 도로 뒤 터에 데려다놓으면 되지 않느냐…… 아내가 소리치더군요.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요? 바람이 저렇게 부는데요? 뒤 터에 풀어놓았다간 더펄인 얼어 죽을 거예요!”
아내와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후에 그는 퇴근길에 그 떠돌이 개가 있는 동물병원에 가보았다. 병원은 아파트 건너편 육교 밑에 있었다. 떠돌이 개는 아내 말대로 0.1평도 안 되는 개집에 갇힌 채 우울하게 앉아 있었다. 아내의 말대로 털이 다 쥐어뜯긴 채, 코가 긁힌 채. 혹시 더펄이를 집으로 데려오면 그들 사이가 좀 회복될까 싶어 두번째 갔을 때는 떠돌이 개는 없었다. 주인을 만나 병원을 떠났다고 했다.
“한번도 보지도 못한 떠돌이 개 때문에 아내와 더 이상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대꾸를 아예 안 하면서부터 우린 아주 서먹서먹해졌죠. 나는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인 줄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서먹함을 푸는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처지라서 회사에 가도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나는 결혼 이후 지금까지 십여 년 동안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열심히 했어요. 별 탈 없이 밥 먹고 사는 게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제 위기가 오니까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더군요. 동료들이 회사에서 내쫓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제 이 자리에서 떨려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제 존재 가치조차 흔들렸어요. 무얼 위해 일했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거기다 아내조차 떠돌이 개 한 마리 때문에 저런다 싶은 게 화가 나고 속이 상했습니다. 아마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더더욱 그 떠돌이 개에 대해서는 아내와는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다는 식으로 나갔던 것 같아요…… 안방에서 셋이서 함께 잤는데 하루는 돌아와 보니 승희와 아내는 승희 방에서 자고 있더군요. 그렇게 각자 따로 자기 시작했을 때도 일이 이렇게 번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퇴근해 들어와 보면 아내가 없는 날이 종종 생겼어요. 승희를 잠재우고 밤늦게 외출하는 기척도 느껴졌지만 못 본 척했어요. 기껏 그 떠돌이 개나 보고 오는 거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퇴근길에 집에서 막 나오는 아내와 부딪쳤어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차를 세우고 있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스쳐지나가더군요.”
그날 아내는 참 아름다웠다. 처음에 그는 그 아름다운 여자가 아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눈에 익었지만 아내인 줄은 몰랐다. 그러다가 눈에 익은 여자가 아니라 아내의 처녀 시절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녀 시절.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은행나무 밑으로 뛰어들어왔던 아내. 둘 사이에 끼여든 침묵을 멋쩍어하다가 물 웅덩이에 비친 찬란한 햇빛에 대해서 말해주었던 그 아내였다. 결혼하고는 보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내는 지척에서 차를 세우고 나오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손을 들었지만 아내는 그냥 지나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따라갔어요. 평소의 아내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올려 묶었던 머리도 풀고 언제 저런 옷이 있었나 싶게 무릎이 나오는 원피스를 입고선 아주 발그레해진 뺨을 하고서 또각또각 걸어가는 거예요. 내가 방금 들어온 아파트 입구에 서 있던 푸른색 자가용에 그 사람이 올라타더군요. 나도 곧 택시를 잡아타고 그 자가용을 따라갔어요…… 따라가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랬을까요? 어머니?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는 그 사람이 웬 남자와 함께 사직동 산비탈에 있는 여관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말았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혼란이 생각나 그는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집에 아내가 있기를 내가 환영을 본 것이기를. 식탁에 차려져 있던 저녁 식사. 아내의 셔츠를 친친 감은 채 자고 있던 승희.
“기억나실 거예요. 어머니 제가 승희를 데리고 밤중에 어머니 댁에 찾아갔던 날요. 그날이에요. 모르겠어요. 왜 승희를 어머니 댁에 데려다주고 와야 된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는지요…… 그날부터예요. 어머니…… 그날부터 지금까지 저는 그 일과 싸워왔어요…… 그날…… 신새벽에 아내는 돌아왔어요. 그냥 잠든 척했습니다. 아내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다시 말아올리고 세면장으로 들어가 이를 닦는 소리를 잠든 척하며 다 들었습니다. 아내는 오래 샤워를 하더군요. 감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는 소리도 들었어요. 세면장에서 나온 아내가 승희 방으로 가더군요. 승희가 없었을 텐데 잠잠했어요. 한 시간쯤이나 지났을까. 승희 방에서 나온 아내가 방문을 열었어요. 날이 밝아오고 있었죠. 그리고는 나를 흔들어 깨웠어요. 나는 자지 않고 있었지만 끝끝내 눈을 뜨지 않으려고 했어요. 현실이 두려웠어요. 눈을 안 뜨려고 하는 나를 아내가 끝끝내 눈뜨게 하더군요. 더는 견딜 수가 없다고 했어요. 견딜 수가 없다고 내 말을 들으라고. 하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요, 어머니. 설령 제가 아내에게 제가 목격한 것을 따지더라도 아내가 아니라고 부정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아내는 스스로 고백하는 거였어요. 눈뜨지 않으려고 하는 나를 끝내 일어나 앉게 하더니 너무나 침착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예요……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나는 아내의 입을 틀어막았어요. 승희는 없는데 승희가 들을까봐 무서웠거든요.”
“……”
“그날부터 일 년이 지났어요 어머니…… 아내가 만나는 사람은 그 떠돌이 개를 보살펴준 동물병원 수의사였지요. 지난 일 년 동안 어머니 몰래 아내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간통죄로 집어넣겠다고 협박도 해보고 승희를 다시는 못 보게 하겠다고 엄포도 놔보고…… 나와 함께 한 일상 생활이 그렇게 무의미한 것이었냐고 따져도 보고…… 지금은 사랑해서라고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살게 되면 다시 마찬가지라고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아무 소용 없었어요, 어머니. 다 안다고 했어요…… 다 알지만 모든 걸 새로 시작하겠다고 해요, 어머니. 그 동안 죽어 있는 것 같았다고 해요. 물론 나와 함께 있으면 그런 채로 인생이 무난하게 흘러가겠지만 자신은 살아 있는 것처럼 살고 싶다고 했어요. 수의사와 함께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든다는군요. 모든 걸 같이 느낄 수가 있다고 해요. 슬픔도 고통도…… 이미 그 사람의 마음은 내 곁에서 떠났어요.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 동안 나는 그 사람 마음을 돌려놓은 게 아니라 제가 설득당했어요, 어머니. 얼마 전에 어머니 댁에 승희를 열흘쯤 맡겨놓은 적 있지요? 승희 에미는 장모가 아파서 친정에 가야 되고 저는 해외 출장을 가야 한다면서요. 사실은 그때 승희 에미를 방에 감금했더랬습니다. 저도 회사에 나가지 않았어요. 수의사를 만나러 나가려고 준비하는 그 사람을 안에다 두고 밖에서 문에다 대못을 질렀어요. 저도 회사에 나가지 않은 채 그 문 밖에서 지냈습니다. 사흘 동안 서로 문을 사이에 두고 말 한마디 없이 지냈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안쪽 문에 바짝 붙어 서서 그 사람이 여보 여보 나를 부르더군요. 울면서 말했어요. 자신을 놓아달라고. 우리는 서로 너무 상처를 입혀서 이제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다고…… 이혼을 해달라고. 이혼. 그때껏 아내가 이혼이라는 말을 꺼낸 적은 없었습니다. 나는 소리를 질렀어요.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그때마다 이혼을 한다면 이 세상에 부부로 남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요. 당신은 지금 그 수의사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믿느냐고 소릴 질렀어요. 우리도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지금은 그 수의사를 따라나서는 게 최선일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마찬가지가 될 거라고 했지요. 아내는 안다고 했어요. 나는 소릴 질렀지만 아내는 차분히 말했어요. 나도 알아요, 여보. 당신과 함께 있으면 아무 일 없이 무난하게 살 수 있으리란 거요. 당신은 성실하고 검소하고 선량해요. 일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요. 때에 따라 승진을 할 거구 월급도 오를 거구 어쩌면 아이도 하나 더 낳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난 거기에 맞춰 살기 싫어요. 어렵겠지만 나도 다시 디자인 일을 시작할 테고…… 어렵겠지만 나도 내 사랑을 지킬 거예요…… 당신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당신은 나와 이혼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이혼한 상태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두려운 거예요. 이혼한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눈길도 두렵고 이혼이라는 딱지가 당신의 사회 생활에 끼칠 영향도 두렵고 어머니에게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그것도 두렵고…… 하지만 여보. 우리는 돌이킬 수 없어요. 돌이키기에는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어요. 설령 내가 그 사람과 헤어지고 당신에게 남는다고 해도 당신의 괴로움은 마찬가지예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요. 우리는 달라졌어요. 그것을 인정하세요. 당신은 내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날마다 괴로울 거예요. 우리는 서로 지옥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에게 있어 지난 일 년이란 그 떠돌이 개를 찾으러 다닌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아내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그가 필사적으로 노력 할수록 아내와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졌다. 마침내는 식탁 의자를 집어 아내를 향해 집어던졌다. 의자는 아내를 피해 거실과 부엌 사이에 놓여 있는 유리문을 박살냈다. 아내는 그 유리를 발로 밟으며 쓰러졌다. 차마 아내의 발바닥에 박힌 유리 조각을 뽑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아내는 소리쳤다. 눈을 꾹 감고 뽑아버려요, 눈을 꾹 감고. 피가 철철 흐르는 발바닥에 붕대를 감아주면서 그는 아내 앞에서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우리 제발 이러지 말자. 아내는 고개를 떨구었다. 용서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고. 아내의 뺨을 때리게 된 날, 승희는 울며불며 아빠 가, 라고 했다. 아빠 가, 아빠 가. 아내와의 사이가 벌어질수록 그는 더펄이라는 이름의 그 떠돌이 개가 마음에 걸렸다. 버림받은 게 아니고 주인을 잃은 게 틀림없다는 그 떠돌이 개. 그 개를 찾아 얼마나 헤맸는지. 동물병원의 과묵한 간호원은 어쩌면 이 집에 있을지도 몰라요, 하면서 번번이 다른 집을 일러주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 음식을 싸들고 집을 나서는 아내를 뒤따랐을 때 엘리베이터가 멎고 복도로 난 문이 열리고 그리고 안에서 사람이 아니라 개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걸 그는 보았다. 하얀 털이 보기 좋게 자라 있고 머리에 리본까지 묶고 있었으나 분명 그 떠돌이 개였다. 오피스텔의 복도에서 아내의 허리까지 펄쩍 뛰어들던 떠돌이 개가 살고 있는 그 오피스텔은 수의사의 오피스텔이었다. 짐작으로 아내에게 물어봤을 뿐인데 아내는 선선히 그렇다고 했다. 수의사는 아내를 만난 뒤에 전처에게 집과 콘도와 파주에 사놓은 전원 주택지까지 다 주고 이혼을 했으며 그에게 남아 있는 건 그 오피스텔과 동물병원뿐이라는 말까지 했다.
“어머니…… 나는 승희 에미 그리고 승희와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마음이 편안했어요. 어쩌다 승희와 승희 에미와 함께 백화점이나 시장 같은 델 가면 제가 이렇게 가족을 이루었다는 것이 제 스스로 대견해서 괜히 코가 맹맹해지기도 했지요. 승희가 태어나고는 더 그랬어요. 어린 애의 냄새를 맡게 될 때면 이상하게 가슴이 저릿저릿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밤낮없이 일도 열심히 했지요. 우리가 함께 나눈 일상 생활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지리멸렬하고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이었지만 그 일이 그 일이었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그럼 나는 무얼 한 것일까…… 승희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예전으로 돌아가자고하면…… 아내는 울었습니다. 언제나 승희 얘기만 나오면 아내는 숨이 넘어갈 듯이 울었어요…… 아흐레째 되는 날 아내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나와 잠자리를 함께할 수 없는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했어요…… 자신의 꿈은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일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상처도 함께하고 슬픔도 함께하는 것이라고. 사랑이 늦게 온 것이 죄라고 하더군요. 나를 만나기 전에 승희를 낳기 전에 만났으면 좋을 사람을 이제서야 만난 거라구요. 그 사람하고는 무슨 일이든 함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장소는 그 사람이라고…… 어머니 아내는 분명히 말했어요. 이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와 잠자리를 함께할 수 없는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구요. 그 동안에도 나와 잠자리를 할 때면 그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고…… 남편인 내게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죄짓는 것 같았다고.”
“……”
“문에 박았던 대못을 다 뽑아주었어요…… 헤어지겠어요…… 어머니.”
불이 타닥타닥 타들어갔다. 그는 목석이 되어버린 어머니 앞의 불 속으로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던졌다. 얼굴에 화기가 쓰윽 번졌다. 그는 뜨거워진 얼굴을 들어 어둠 속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연안에서 무당개구리가 울고 있다. 풀씨와 곤충들이 수도 없이 떨어져 있는 호수. 무당개구리들은 밤낮없이 수면 위에 떨어져 있는 풀씨와 곤충들을 입질하려고 펄쩍거렸다. 호수의 연안 곳곳엔 초롱꽃, 달맞이꽃, 쑥부쟁이, 강아지풀들이 어지럽게 자라나 있었다. 개구리가 호수의 연안으로 많이 올라오는 까닭은 물가에 먹이감인 곤충들이 떠다니고 있어서다. 폭우가 한번 지나가면 곤충과 풀씨들은 폭우와 함께 수몰되었다가 곧 물 위에 다시 떠서 살랑거렸다. 밤이 깊어지면 물 속의 물고기들도 수면에 떨어진 풀씨와 곤충 사냥에 나설 것이다.
“승희는?”
“……”
“승희는?”
“그 사람에게 보내겠어요.”
“승희를 달라든?”
“아니오……”
“그런데 왜?”
“……”
“승희 없이 어떻게 견뎌?”
“그건 승희 에미도 마찬가지예요.”
“에미라는 사람이…… 에미랄 수나…… 무얼 믿고 애를 맡겨.”
“어머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은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좋은 여자예요…… 함께 사는 동안 저는 편안하고 행복했어요. 그 사람도 그러리라 믿었던 것이 잘못이지요. 물어보지도 않고 제가 그러니 그 사람도 그럴 거라고. 솔직히 그 사람의 인생이나 그 사람의 욕망에 저는 무관심했어요. 제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우리 가정은 순탄 대로라고 여겼지요. 저라고 다른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을까요…… 하지만 그런 것으로 아내와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지요. 얼마나 빗나간 우월감이었는지. 그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거지 죄를 지은 건 아니에요…… 마음이 아프지만 그건 사실이에요.”
“안 된다, 승희는.”
“……”
“승희는 안 돼.”
“아이는 생모 밑에서 자라는 것이 좋다는 게 ……그렇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섰다. 어깨 위에 걸치고 있던 방한복이 불 속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얼른 방한복을 집어내었다. 방한복에 덮였던 불이 다시 일어났다. 서 있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타닥타닥거리는 불 위에 어리었다.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어머니는 불을 등지고 천천히 호수 쪽으로 내려갔다. 감정이 동요하는 듯 어머니의 걸음이 비틀거렸다. 지난 일 년 동안 아내가 그에게 곤욕을 치르며 그 곁을 떠나지 못한 건 승희 때문이었을 것이다. 입술이 터지고 뺨이 부어오른 상태에서도 그를 떠나지 못한 것은. 죄 받을 소리지만 승희를 기르게 해줘요. 엄마와 떨어지기에는 아직 너무 어려요. 그가 다가서서 어머니를 부축하려 하자 어머니가 그의 손을 뿌리쳤다.
낚싯대와 뜰채를 피해 어머니는 옹색하게 쪼그리고 앉아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도 어머니처럼 옹색하게 쪼그리고 앉아 호수를 바라보았다. 저편의 낚싯꾼들은 술판을 벌인 것 같다. 노랫소리가 물결을 타고 건너왔다.
“내가 너에게 잘못했냐?”
“아니오……”
“그런데 어떻게 내 앞에서……”
“어머니…… 제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제게 더할 나위 없이 하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는 아버지 계실 때와 다름없이 아니 더 잘해주셨지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저를요. 저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못 들었을까요. 어머니가 저를 그렇게 보살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를 일이라고 했지요. 이제사 이야기지만 저는 어머니가 저를 버릴까봐 늘 불안했어요. 학교에 갔다 온 사이 어머니가 사라졌으면 어떡하나…… 동무들하고 어울리다가도 어머니가 떠나버렸으면 어떡하나 싶어 숨이 차도록 집으로 뛰어가곤 했죠. 그런데 언제나 거기에 어머니는 계셨어요. 버리기는커녕 너무나 잘해주셨어요…… 어머니…… 제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제게 생모가 있었다고 해도 제게 그리 잘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진심입니다…… 다만 어머니…… 한번은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 형이 맞고 들어왔어요. 그랬는데 친구 어머니가 친구 형의 등짝을 마구 때리는 거였어요. 맞고 들어오려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면서…… 마구 야단을 쳤어요. 그리고는 곧 씻겨주고 입맞춰주고 약 발라주고…… 그러는 거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동물적인 풍경이었어요. 쩝,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춰주고 어루만져주더군요. 소가 새끼를 낳아놓고 일일이 다 핥아주듯이 말이에요. 그 순간 어머니가 그렇게 잘해주시는데도 내 마음에 옹송거리고 있던 결핍이 무엇이었는지가 느껴졌어요. 무엇이 그렇게 불안했는지도요. 어머니는 제게 야단도 안 치고 손바닥으로 등짝을 때리는 일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일부러 안 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가 없으셨던 거예요…… 승희를 저와 같은 결핍감 속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어머니. 그뿐이에요.”
“……”
“그뿐입니다, 어머니.”
“젊은 날에 무엇이 그리 견딜 수 없었느냐고 물었냐?”
“……”
“이런 말을 하는 날도 오는구나. 니 외할아버지 외엔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이 없는 얘기야. 네 아버지에게도 말이다…… 내 위로 다섯 살 터울의 언니가 있었지야…… 시집을 갔는데…… 난쟁이를 낳았어…… 언니는 금방 낳은 난쟁이 아기를 데리고 쫓겨왔구나. 언니가 낳은 아기를 보는 순간 내가 그 바닷가 마을에서 느꼈던 모든 충만감이 확확 뒤로 밀려났어야. 불길한 운명이 내 등짝에다 시퍼런 멍을 찍어놓는 것 같았어야. 언니가 난쟁이를 낳을 때까지만 우리 집에 난쟁이 내력이 있다는 걸 나는 몰랐구나…… 이만큼 살어놓고 보니 그것이 뭔 대수냐…… 인생이라는 것이 태어날 때 나는 울고 넘는 웃고 죽을때 나는 침묵허고 넘은 울고…… 어쩌면 그것뿐인지도 모르는디 그적에는 고만 죽고만 싶고야…… 구물구물거리는 생게를 한 바께스씩 잡아다 주는 사람이 있었지야. 배도 두 척이나 있었고야. 그 마을에서는 젤 잘나서 내 또래 처녀들이 먼디서 그림자만 보고도 숨이 넘어가곤 했었지야. 언니가 난쟁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 사람과 혼인해서 그 바닷가 마을에서 오손도손 살 꿈을 꾸었구나…… 고만 모든 것이 견딜 수가 없드라…… 그래 아버지를 물어뜯고 분풀이하고 허구헌날 아버지 탓허고…… 왜 나를 낳았소, 소리지르고 그랬구나…… 그럼서 마음먹었구나. 난 혼인도 안 허고 새끼도 안 낳을 거라고 허구헌 날 아버지를 괴롭히었고나. 부새가 울던 날이다. 언니가 마루 끝에 난쟁이 아기를 품에 안고 앉어서는 부새가 운다, 부새가 울어, 해쌌더니 뭐에 홀린 듯이 바다로 걸어나가 빠져버렸단다…… 두 사람 다 죽어나왔지야.”
“……”
“더는 견딜 수가 없었어야…… 견딜 수가 없었어.”
그의 두 손이 저절로 얼굴을 향했다. 말없이 그는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너를 거둬줘서 고맙다고 했냐…… 네가 있어서 내가 살았는데? 나는 네가 없었으면 네 아버지하고 살도 안 했다아…… 네 아버지가 살어 계실 적엔 네 아버질 사랑도 안 했다아. 네 아버지가 남아 있는 너와 나를 위해 실낱 같은 아홉 달이나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것을 봄서야 그때야 사랑을 느꼈지야. 이미 늦은 마음이었어야…… 해도 내내 그 힘으로 살은 것도 사실이네…… 너를 키우면서 마음 아펐던 것은 네게 동생도 하나 못 만들어주는 내 처지였어야……”
“……”
“얘야…… 너는 내 호수였어야. 내 호수였어.”
그는 수많은 물고기의 혓바닥들이 그의 얼굴을 핥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수초들이 그의 귓속을 파고드는 것을. 힘겹게 눈을 떠보려고 하지만 눈은 쉽게 떠지지가 않는다. 이마며 윗눈썹 위에 새우들이 앉아 있다. 눈은 떠지지가 않고 눈꺼풀의 예민한 살갗만 당겨지며 아프다. 그는 손을 뻗어 새우들을 밀어내며 눈을 비비려다가 팔 뒤꿈치가 으깨지는 듯한 통증 때문에 그대로 손을 내린다. 여기가 어디일까. 그는 눈을 떠보려는 동작도 팔을 올려보려는 동작도 멈추었다. 코끝에 물 냄새가 맡아진다. 흙과 자갈과 물고기의 냄새도. 너는 내 호수였어야, 내 호수였어. 어머니는 울었다. 오래오래 울었다. 그는 어린애를 달래듯이 우는 어머니를 업고 호숫가를 서성였다. 술판을 벌였던 건너편 낚시꾼들이 잠들고 난 뒤의 호수는 적막했다. 물새들이 포르르 다른 물결 위에 내려앉는 소리, 나뭇잎이 사락사락 스치는 소리, 산국화 위에 서리가 내려 앉는 소리. 어머니가 등에서 잠이 든 후에도 그는 어머니를 업은 채 호숫가를 서성였다. 어머니는 가벼웠다. 텐트까지 업고 가는 데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침낭 속에 어머니를 눕히고 지퍼를 채워주었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그의 얘기를 듣다가 탈진한 것 같았다. 어머니 눈가엔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어머니가 잠든 후 타닥거리는 불 옆에 오래 앉아 있다가 화목을 치우고 야전삽으로 흙을 떠다가 불터를 덮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늦가을 밤바람이 휘익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호수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우는 호수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찬서리가 그의 머리 위에 내렸고 뜰채가 그의 발에 걸렸다. 그리곤 어찌 된 것일까. 그는 지금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움직이려고 하면 통증이 확확 몰려든다. 불에 데인 것처럼 극심한 통증이다. 수초를 헤치고 흙과 모래 사이를 헤치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그를 향해 헤엄쳐온다. 그가 지난 여름 피라미를 생미끼로 해서 낚아올렸던 향어도 끼여 있다. 중형 스피닝 릴을 꺾어버릴 만큼 강렬하게 저항했던 향어가 낚싯바늘에 찢긴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 한번은 들어와보고 싶었던 호수. 여기저기서 낚시찌들이 흔들거린다. 피라미, 누치, 메기, 떡붕어 들이 낚시찌 사이를 피해 지나간다. 흙과 자갈 사이에서 모래무지가 아가미를 껌벅이고 있다. 물 속의 흙이 자갈이 둥둥거리는 수초가 편안하고 부드럽다. 그는 여기에 오래도록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가 머물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 같다고. 하지만 혀에 상처를 입은 향어가 그를 콱, 물었다. 향어는 강렬하게 그를 낚아채어 물 밖으로 밀어낸다. 그는 눈꺼풀 위에 앉아 있는 새우들을 털어내며 눈을 번쩍 떴다. 새벽인가. 초저녁부터 하늘의 잔별들 속에 승희처럼 앉아 있던 초승달이 까닥까닥 이울고 있다. 아름다운 호수다. 옛날에는 향어가 살았고 이제는 누치·붕어·모래무지가 살고 있는 호수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호수다. 어쩌면 그의 카메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필름 속에서나 존재하는 호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