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월드에서 야외수련을 가는 날이다. 아침 8시에 떠나 다섯시에 돌아오기로 계획된 여행인지라 바깥 식사를 못하는 상황에서 참여하지 않으려 했으나 도우님 한 분이 적극 권하시며 모두가 도시락을 싸간다고 하길래 못이기는듯이 따라나섰다. 차가 출발하고 나는 고요하게 좌선 상태에 들어간다. 차를 타면 언제나 하는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단화신선 신수의 주문이 다시 저절로 발동된다. 그러자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상단전이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 찾아온다. 그와 동시에 내 몸 전체는 무중력 상태가 된듯 허공을 붕붕 나는 것처럼 무한한 가벼움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불과 며칠 전에는 중단전을 두번이나 열어제치더니 오늘은 비록 단 한 번이지만 상단전을 열었고, 지난 번 중단전을 열 때에는 물리적 효과가 동반되지 않았는데 오늘은 사뭇 다르다. 아픈 곳 한 군데 없이 지극히 건강한 사람이 되어 유유자적하게 거닐어 논다.
밀양 케이블카를 타고 두번째 목적지인 청도 운문사에 도착하자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너무 아름답다고 감탄을 쏟아낸다. 병이 재발한 후로 뭔가에 아름다움을 거의 느끼지 못하였는데 역시 건강한 상태에서는 감동도 빨리 느끼는 법이다. 그리고 또 조금 더 걸어가다 맑은 물을 보며 한 번 더 감탄한다. 점심 식사를 하고 운문사를 돌아보는데 다시금 뼈 마디가 굳어왔으니 몇번의 기공으로 금새 지나가버려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경내에 들어가니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절 기운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리저리 끌어다닌다. 그러나 나는 그 기운에 응하지 아니하고 무심하게 그냥 나의 갈 길을 간다. 그러자 갑자기 몸에 더 큰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다시는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한시간의 자유시간 후에 모두가 절 마루에 둘러앉아 좌선을 하는데 수련을 하려고 하니 다시금 기운들이 나를 건드려 부처님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다른 도우님들은 모두가 한 방향을 보고 수련하는데 나만 부처님을 보고 앉아 있다. 그러나 수련하는 도중에 갑자기 이 공간에는 아무도 없고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찾아오며 나에게 영향을 미치던 기운들이 모두 사라져감을 느낀다.
예정대로 다섯시에 부산에 도착하여 공사를 하는 어머니 댁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몸이 거의 아프지 않다. 가끔씩 통증이 찾아오지만 평소 내가 느끼던 아픔에 비하면 이것은 아픈 것이 아니다. 집에 와서도 별로 피곤하지가 않아 쉬지도 않고 더러운 집안 청소를 한다. 이런 일은 가히 5, 6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한시간만 뭔가를 해도 한참을 쉬어야 다른 일을 할 체력이 돌아오던 나였다. 저녁을 먹고도 멀쩡한 몸의 상태에 감격하면서 지금 컴퓨터에 앉아 이 글을 써내려간다. 주문의 위력임이 분명한데 이런 상태가 계속 된다면 당연히 명예퇴직을 반려하고 복직하여야 한다. 부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며칠 안되는 짧은 시간안에 다시 몸이 악화되었다는 글을 올리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가장 오래 정상인처럼 살았던 기간은 고작해야 하루나 이틀이었으니 일주일정도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완치라고 볼 수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면 도대체 왜 억지로 주문을 외울 때에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저절로 나올 때에는 이렇게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자신의 내면 혹은 본신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억지로 쥐어짜면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것이고 순리대로 내면이 작동되면 가장 적은 에너지 소모로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인간의 근본 원리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믿고 최소한의 간섭으로 대화와 설득을 통하여 아이 스스로 성취해나갈 역량을 키우고 그 후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한 모든 것을 스스로 해 나갈 때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위대한 성과가 나오는 것처럼... 부모가 자식을 억지로 쥐어짜면 결국 무능한 아이밖에 더 양산하겠는가? 우리들의 수련도 이와 같아서 서로 에너지가 좋은 시절에 합당한 수련으로 능력을 키우고 장기적으로 에너지가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 나이가 되면 내면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겨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완치의 기적이 찾아와 누군가가 어떻게 그 끔찍한 고엽제 후유증에서 완치될 수 있었느냐고 물으면 20년동안 나의 의식과 무의식이 힘을 합치고 다른 도인들의 편견을 제외한 정견의 도움만을 받으려 노력했기에 가능했던 위대한 업적이었다고 답하여야 하리라. 부디 그런 대답을 하게될 영광이 나에게 주어지기를...
다음날 오전에도 나의 몸은 하늘을 나른다. 어제의 그 기분이 그대로 유지되며 신체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간이 계속된다. 그런데 오후에 병으로 고생한 사람의 글을 읽는데 갑자기 몸에 나쁜 기운이 들어찬다. 최인호와 문재인의 글에 이어 최근에만 벌써 세번째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이번이 훨씬 더 막강한 탁기이다. 좌선으로 몸을 풀려고 하니 관절의 마디마디에서 차가운 기운이 밀려나간다. 지난 번 무덤에서 달라붙은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무릎의 탁기는 끈적거리며 떠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이십여분 좌선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자유의 몸이 된다. 산보를 할 때에는 여전히 활기에 찬 것 같더니 마치고 나니 무릎이 아파 올라온다. 하늘을 날듯이 가볍던 증세도 사라져버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눈이 충혈되면서 피로감이 몰려오며 상체의 뼈마디가 두둑거린다. 평소보다 한시간 정도 일찍 자리에 누우니 모가지를 좌우로 비틀며 난리가 난다. 잠시 후에는 신음 소리를 끙끙 내며 힘들어한다. 딸 아이가 걱정이 되어 괜찮냐고 물어온다. 아빠가 하루 이틀 그런 것이 아니고 이번에도 금방 지나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하지만 허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다음 날 아침에는 무릎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앉았다 일어나기가 힘들어진다. 도장에 갈 때에는 다시 얼굴 근육이 저절로 비틀어지며 뇌성마비 환자처럼 변하기도 한다. 주문이 가져다준 상단전 열림의 에너지가 단 한번의 탁기 침탈로 원위치되어버린 것이다.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작가가 아프거나 건강하더라도 남들을 세뇌할 목적으로 쓴 종교나 정치, 경제관련 글들은 절대 읽지 아니할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고작 하루 반의 역사로 끝나버린 완치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께 저녁 3일째 자꾸 체하며 고생하던 아내를 단 한 번의 치료로 완치시켰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