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 리그의 사무라이" 오타니의 혼신을 다하는 打法
武士가 칼질을 하듯이 방망이를 휘두른다. 영혼과 정성을 다해서!
趙甲濟 | 2024-05-06
오늘 메이저 리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애틀란타 브레이브즈 시합에서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지명타자로 나와 4타석, 4안타(홈런 2개), 타점 3을 기록하는 걸 보면서 사무라이를 연상했다. 그는 사무라이가 칼을 휘두르듯 방망이를 휘두른다. 엄청난 속도로 절도 있게 공을 맞추는데 미학이 느껴진다. 그는 오직 야구만 생각하니 잡념도 없다고 한다. 영어를 배울 만도 한데 아직도 통역을 쓴다. 영어 배우는 시간에 스윙을 더하겠다는 자세이다. 자신의 직무에 몰입하여 하나의 道를 발견하려는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오늘 현재 그는 타율, OPS(출루율과 장타율 합산), 홈런, 2루타. 장타율에서 메이저 전체 1위이다. 5관왕. 타점은 11위, 득점은 4위. 나이 29세에 키 193cm, 몸무게 103kg인데, 발이 빨라 盜壘도 7개로 17위다. 물론 10년 간 계약액수가 7억 달러로 全세계 모든 스포츠 스타 중 1위이다.
기마민족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들이 양궁과 사격에 능하듯이 사무라이의 피가 흐르는 일본인들은 칼질을 닮은 방망이질이 유전적으로 잘 먹히는지 모르겠다. 이치로, 마쓰이 등 메이저 리그를 주름 잡던 일본인 타자의 전통을 오타니가 잇고 있다. 그는 어깨 부상으로 올해는 투수역을 포기했다. 홀가분하게 타격에만 집중하니 경이적인 기록이 나올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벌써 두 차례 만장일치의 MVP를 수상했다.
°70세를 넘긴 한 在日同胞에게 물었다. “일본에서 오래 사셨는데 보통의 일본인들 사이에서 아직도 사무라이 정신이 남아 있습니까?”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남아 있습니다”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일본인들은 보통사람부터 公을 私보다 앞세웁니다.”
“公이라면···” “나라, 회사, 이웃, 사회, 뭐 이런 것들이죠. 한국에 와 보니 公的인 일에 私를 끼워 넣는 등 私益을 公益보다 앞세우는 이들이 많더군요. 특히 출세한 사람들이 더해요. 公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높은 분들이 일본의 낮은 이들보다 못한 것 같아요.” 내가 예를 들어달라고 하니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규슈에 사는데 4층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햇빛을 가린다고 항의하러 왔습니다. 이른바 日照權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웃 대표 되시는 분이 저를 불러 주민회의에 갔습니다. 한국 같으면 高聲부터 오고 갈 터인데 주민들이 저에게 조용조용 이야기하더군요. ‘김 선생, 어떻게 좀 안 될까요?’라는 식으로 말하니 저도 성의껏 설명하였습니다. 결국 건물 방향을 가로에서 세로로 바꾸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대표 되시는 분이 “김 선생이 이렇게 해주니 우리도 양보합시다”면서 주민들을 설득하니 다 듣더군요. 요사이는 친한 이웃이 되어 잘 지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가로 활약하는 한 조선족 출신 학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직업정신으로 살아 있다고 봅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엄격하고 철저합니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도 일단 일을 시작하면 완전히 달라져요. 무섭게 보입니다. 자신의 실수부터 용서하지 않습니다.”
몇년 전 시코쿠로 여행을 갔다. 일본인이 모는 관광버스를 대절하였다. 늘 느끼지만 여행의 成敗엔 운전기사의 자질이 한 몫을 하는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보니 정확성과 성실성에서 일본인 운전기사가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운전기사는 40대로 보였는데 아침에 출발할 때는 잠시 묵상을 하더니 “요시!"라고 기합을 넣곤 하였다. 검도 선수가 시합 시작 전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자세였다. 저런 대결 자세로 임하니 실수가 없구나!
일본인 社會人 검도 시합을 구경한 적이 있다. 같은 체급이면 여자 남자 구분이 없다. 여자와 남자가 대결하는데 여자가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인들은 체구가 우리보다 작지만 당차다. 러일전쟁 때 백병전에서 키가 평균 10cm나 작은 일본군이 러시아군에 이겼다. 그들은 평소에 무술을 많이 배운다. 유도, 검도, 당수 등. 태평양 전쟁 후 일본을 점령 통치한 맥아더 사령부는 한동안 학교에서 검도를 금지시킨 적도 있다. 군사문화를 없애려는 뜻에서.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1%가 안 된다. 약 100만 명. 일본인들은 거의 전부가 神道(신도)를 믿는데 이를 종교로 볼 수 있을지는 쟁점이다. 샤머니즘과 불교가 혼합된 인상을 수는 神道는 수많은 神社(신사)를 통해서 일본인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武士道(무사도)는 종교는 아니나 종교적 心性(심성)을 깔고 있다. 일본인이 물건을 만들거나 직장에 다닐 때 보여주는 집중력과 성실함, 여기서 나오는 완벽함의 추구엔 종교적 心性이 보인다. 종교적이라는 것은 궁극적인 것, 초인적인 것, 절대적인 것, 완벽한 것을 갈구하면서 거기에 도달하기 위하여 求道(구도)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이 경제에 투입되면 名品(명품)을 만든다. 일본엔 求道者的 자세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수년 전 히스토리 채널에서 일본의 사무라이(武士)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일본의 유명한 칼을 만드는 匠人(장인)이 소개되었다. 마사무네(正宗) 집안이 7백년째 代를 이어 名劍(명검)을 만들고 있었다. 그 匠人은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칼을 만들고 나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 칼에 내 이름이 새겨지고 내 정성이 들어갑니다. 1천년 뒤에도 저는 이 칼을 통해서 살아 있을 것입니다."
칼에 영혼을 불어넣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기능공이 철학자처럼 말했다. 匠人이기에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일본인들은 상품을 만들 때도 영혼을 쏟아붓듯이 정성을 다한다고 한다. 그러니 불량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은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한 주제를 붙들고 거기에 魂(혼)을 쏟아붓는 정신,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의 본질이다. 이것이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무식한 싸움꾼이 아니라 글을 아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武士道를 "죽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뒤집어보면 "사는 것"이다. 항상 명예로운 죽음을 생각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의 모든 분야에 파고들어 있다. 미국의 건국정신, 서양의 기독교 정신(또는 신사도나 기사도), 조선조의 선비정신, 신라의 화랑도 정신 같은 것들이 살아 있어야 그런 사회는 타락하지 않는다.
일본 北海道의 노보리베츠 온천마을 근방엔 에토 시대의 취락을 再現한 민속촌이 있다. 登別伊達時代村(노보리베츠다데지다이무라) 라고 한다. 그 안에 사무라이館이 있고 유키 료이치라는 사람이 썼다는 "武士道"(Spirit of Samurai)라는 글이 걸려 있다.
<인간의 투쟁본능은 보편적인 것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본은 이 거친 투쟁본능에 제어장치를 붙여, 통제하려고 했다. 이를 武士道라고 한다. 이는 사회를 통제하고 또한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투쟁본능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어떤 神聖(신성)한 것의 존재를 일본인에게 깨우쳤다. 봉건제도는 무너져도 그것을 지탱해준 武士道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를 體現(체현)한 이를 사무라이라고 한다.
武士道를 일본인의 독특한 관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독특한 출생의 비밀에 있다. 무사도 아버지는 禪(선)이고 어머니는 유교이다. 禪은 불교에 있어서 명상이며, 深思默考(심사묵고)에 의해 知의 영역을 넘어서서 절대의 영역을 지향하는 것이며, 유교는 祖先(조선) 숭배신앙을 기초로 민족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규범이다.
따라서 상호모순 된 개념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생긴 武士道를 體現한 인간, 즉 사무라이는 이 둘의 조합의 비율에 따라, 또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람의 人生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며, 서두르지 말고 참는 것이 無事長久(무사장구)의 기본이다"라고 말한 도쿠가와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이고, 강함을 추구하면서 결투에 생애를 걸고 상대를 죽여간 미야모토 무사시도 사무라이이다.
이 두 사람 간에는 공통된 삶의 방식이 없어 對局(대국)에 위치하는 듯하다. 단 하나 있다고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