寧越面議會議長 潘南朴公泳國之墓(영월면의회의장 반남박공영국지묘)
公(공)의 本貫(본관)은 潘南(반남),
號(호)는 靜岩(정암)으로 諱(휘)는 泳國(영국)이니
始祖(시조)이신 高麗戶長應琇公(고려 호장 응수 공)의 二十四世孫(24세 손)이며,
朝鮮朝 領議政府使 兼 領經筵藝文館 春秋館書 錦城府院君 諡 文正公 諱 尙哀
(조선조 영의정부사 겸 영경연예문관 춘추관서 금성부원군 시 문정공 휘 상애)의 十八代孫(18대 손)이고,
號 治川 司諫院 司諫知製 兼 春秋館 編修官 承文院 參校 贈 領議政 諡 文康公 諱 紹
(호 치천 사간원 사간지제 겸 춘추관 편수관 승문원 참교 증 영의정 시 문강공 휘 소)의 十六代孫(16대 손)이며,
號 黎湖 議政府左贊成 兼 成均館 祭酒 世子貳師 贈 領議政 諡 文敬公 諱 弼周
(호 여호 의정부좌찬성 겸 성균관 제주 세자이사 증 영의정 시 문경공 휘 필주)는 公(공)의 七代祖(7대조)이고,
通訓大夫 成均館 司藝 諱 慶壽公(통훈대부 성균관 사예 휘 경수공)이 曾祖(증조)이시다.
哲宗(철종)의 附馬 錦陵尉 諱 泳孝(부마 금능위 휘 영효)는
金玉均 等(김옥균 등)과 國政(국정)의 革新(혁신)을 爲(위)한
甲申政變(갑신정변)(高宗二十一年 一八八四年 고종21년 1884년)을 劃策(획책)하다 失敗(실패)하사
祖父 齊三(조부 제삼)은 逆門(역문)으로 連累(연누)되어 寧越(영월)로 落鄕(낙향)하게 되었다.
公(공)은
一九一七年九月十三日 酒泉面 龍石里(1917년 9월13일 주천면 용석리)에서
父 政陽公(부 정양 공)과 母 光山金氏(모 광산 김씨)의 二男 中 次男(2남 중 차남)으로 出生(출생)하여
安東 權氏(안동 권씨)와 結婚(결혼), 二十三世 敏陽 公(23세 민양 공)에 繼代(계대)하였다.
公(공)은
寧越公立普通學校卒業 後 寧越郵遞局, 寧越火力發電所, 寧越面議會議長, 寧越郡農業協同組合長, 寧越郡繁榮會長, 江原道政諮問委員, 江原道體育會理事, 寧越郡觀光協會長, 寧越鄕土史硏究會長
(영월공립보통학교졸업 후 영월우체국, 영월화력발전소, 영월면의회의장, 영월군농업협동조합장, 영월군번영회장, 강원도정자문위원, 강원도체육회이사, 영월군관광협회장, 영월향토사연구회장)을 歷任(역임)하며
端宗祭(단종제)를 發議(발의)하여 鄕土文化行事(향토문화 행사)로 定着(정착)시켰고,
詩仙金笠(시선 김립)의 墓(묘)를 찾아내어 聖域化(성역화)하는 等(등)
地域發展(지역발전)을 爲(위)한 獻身奉仕(헌신봉사)의 生涯(생애)였으며,
遺稿(유고)로 奈城의 脈(내성의 맥), 寧越(영월)을 찾아서, 金삿갓의 有産等(김삿갓의 유산 등)의 鄕土誌(향토지)를 남기었다.
公(공)은
胃癌(위암)으로 鬪病(투병)하는 渦中(와중)에서도
各地(각지)에 散在(산재)한 先塋(선영)을 集結緬奉(집결면봉)하여 潘南苑(반남원)을 造成(조성)하였으니
後孫(후손)에게 崇祖愛鄕精神(숭조애향정신)의 삶을 通(통)해 行動(행동)으로 敎訓(교훈)하고,
一九九四年 四月二日 陰曆 臨終(1994년 4월2일 음력 임종)하시었다.
一九九五年四月日 孝子 東緖 立(1995년 4월 일 효자 동서 세움)
妻(처) 권병순
子(자) 동서. 子婦(자부) 이경숙
孫(손) 찬준. 孫女(손녀) 찬진, 찬선, 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