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시리즈.
마지막 때와 심판에 대한 경고
성경본문 : 유 1:7
13) 영원한 불의 형벌 - 소돔과 고모라가 보여주는 죄악의 결말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차 계기판에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며칠을 그냥 몰고 다닌 적이 있으실 겁니다. "설마 당장 무슨 일이야 나겠어" 하면서요. 건강검진 결과지에 빨간 글씨가 하나 떠 있는데도, 서랍에 넣어두고 몇 달을 잊고 지낸 적도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신기하게도, 경고를 무시하는 데 아주 익숙한 존재입니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요.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경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경고를 들을 때 우리 마음 어딘가에서 똑같은 반응이 올라옵니다. "그건 옛날 얘기지." "그건 저기 저 사람들 얘기지, 내 얘기는 아니지." 오늘 본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 반응 자체가 이 본문이 겨냥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유다가 나란히 세워놓은 세 가지 증거
유다서는 짧은 편지지만 목적이 아주 분명합니다. 1장 3-4절을 보면,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할 핑계로 바꾸고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던 겁니다. 유다는 이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세 가지 역사적 증거로 보여줍니다.
첫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중 믿지 않은 자들(5절) — 구원의 경험 자체가 불신앙을 계속해도 된다는 면허증이 되지 못했습니다. 둘째,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6절) — 아무리 높은 영적 지위라도 반역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셋째가 오늘 본문,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이와 같은 색욕으로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다서 1:7 (개역개정)
세 가지 이야기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신앙의 경험이 있어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돔, 그 도시의 진짜 얼굴
창세기 19장을 보면 소돔 사람들은 롯의 집에 온 손님(천사들)에게 몰려가 성적 폭력을 요구합니다. 이 사건 때문에 우리는 소돔 하면 곧바로 '성적 타락'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소돔의 죄는 그보다 훨씬 넓습니다. 에스겔 16장은 소돔의 죄를 이렇게 짚습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에스겔 16:49-50 (개역개정)
교만, 풍족함, 태평함, 무관심. 사실 이게 훨씬 더 무서운 목록입니다. 왜냐하면 이건 우리 대부분의 삶과 아주 가까이 있는 단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나는 소돔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죄를 짓지는 않아"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소돔의 뿌리는, 풍족한 삶 속에서 마음이 무뎌지고, 옆 사람의 아픔에 눈을 감고, 나 하나쯤은 괜찮다고 여기는 태평함이었습니다. 이거,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헬라어 원문을 조금 들여다보면, 유다가 단어 하나하나를 얼마나 정교하게 골랐는지 알 수 있습니다.
7절의 "색욕으로... 따라가다가"는 헬라어로 ἐκπορνεύσασαι(에크포르뉴사사이, 음행하여)와 ἀπελθοῦσαι ὀπίσω(아펠두사이 오피소, 뒤를 따라가서)가 이어진 표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한 번의 실수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뒤를 따라간다'는 표현은 방향성을 가진 말입니다. 한 번 넘어진 게 아니라, 그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는 뜻입니다. 죄는 대부분 그렇게 옵니다. 한 번의 큰 사건이 아니라, 조금씩 방향을 틀어가는 걸음으로요.
그리고 "다른 육체"(σαρκὸς ἑτέρας, 사르코스 헤테라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부분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정확한 의미를 두고 이견이 있습니다. 창세기 19장의 천사들, 즉 사람과는 다른 존재를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고, 하나님이 정하신 정상적인 질서를 벗어난 성적 행위 전체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공통된 결론은 하나입니다 —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 것, 그것이 소돔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나오는 단어가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δεῖγμα(데이그마), "본보기" 또는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소돔은 그저 옛날에 벌 받고 사라진 도시가 아닙니다. 유다에게 있어 소돔은 지금도 서 있는 하나의 표지판입니다. 그리고 그 표지판이 가리키는 것은 πυρὸς αἰωνίου(퓌로스 아이오니우), "영원한 불"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소돔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물리적으로 계속 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때 있었던 불의 심판 자체가, 앞으로 있을 최종적이고 영원한 심판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모형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어, δίκην ὑπέχουσαι(디켄 휘페쿠사이), "형벌을 받고 있다"는 표현은 법정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소돔의 멸망은 우연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이었다는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유다서 1:7은 소돔의 죄를 자세히 나열하려는 본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역사 속에서 이미 실제로 나타났고, 그 사건이 앞으로 있을 최후의 영원한 심판을 가리키는 거울이라는 것 — 이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우리 안의 소돔
자, 그러면 이 무서운 본문이 지금 우리에게 하는 말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게 있습니다. 유다가 이 경고를 던진 대상은 저 멀리 있는 이방 도시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장 4절을 다시 보면,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이제 좀 편하게 살아도 되겠구나"의 근거로 삼아버렸습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은혜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무뎌집니다. 죄책감 없이 같은 죄를 반복하면서도, "괜찮아, 어차피 용서받았잖아" 하고 넘어갑니다. 소돔 사람들이 풍족함 속에서 태평해졌던 것처럼, 우리도 은혜 안에서 태평해질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세련된 신앙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방향이 조금씩 틀어져 있는 것 — 그게 유다가 말한 "따라간다"는 표현이 가리키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심판의 자리에 서신 분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이 설교는 그냥 무서운 이야기로 끝나버립니다. 유다서를 끝까지 읽어보면, 유다도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편지의 결론부인 21절과 24-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다서 1:21 (개역개정)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다서 1:24-25 (개역개정)
소돔이 받은 영원한 불의 형벌 — 그것은 죄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였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놀라운 사실은, 그 진노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서셨다는 것입니다. 소돔은 심판을 보여주는 본보기로 남았지만, 예수님은 본보기가 아니라 그 심판을 직접 짊어지신 분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이 당하신 것은, 원래 우리가 서야 할 그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을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이고 피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 그 심판을 우리 대신 짊어지신 분이 계시다는 것. 이 두 문장 중 하나만 붙잡으면 신앙이 흔들립니다. 심판만 붙잡으면 두려움에 짓눌리고, 은혜만 붙잡으면 소돔처럼 태평해집니다. 유다서는 이 둘을 함께 붙잡으라고 말합니다.
작지만 분명한 발걸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넘어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오늘 그것에 이름을 붙여 보십시오. 막연한 죄책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그 한 가지를 이야기해 보십시오. 소돔의 문제는 아무도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자랐습니다. 침묵을 깨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마주할 때, "나는 왜 이 모양일까"로 끝내지 말고, 그 자리에 대신 서신 그리스도를 함께 떠올려 보십시오. 정죄가 아니라 그분께로 걸어가는 걸음이 회개입니다.
결론 — 거울 앞에 선다는 것
소돔은 데이그마, 거울이었습니다. 거울은 남을 보라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비추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저 멀리 소돔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에 비친 얼굴이 아무리 두렵더라도, 우리는 혼자 그 앞에 서 있지 않습니다. 이미 그 심판의 자리에 서서 우리를 대신하신 분이 계십니다.
소돔은 심판이 실제임을 보여주는 거울이고, 십자가는 그 심판을 대신 짊어지신 은혜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