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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 구례를 꿈꾸다.
장 나 현
쌀쌀한 바람이 뺨을 스치며 다시 가슴에 빨간불이 켜졌다. 환희, 외로움, 애잔함, 갈망, 사랑, 고통, 두려움, 벅차오름, 온갖 감정 덩어리들이 모순으로 얼룩져 회오리가 일었다. 두 팔에 리듬을 실어 사춘기 소녀처럼 춤을 추는 나무, 제 흥을 못 참겠다는 듯 망울망울 터지는 꽃들, 자신의 몸을 보여 인간에게 깨달음을 전해주는 산, 두 눈으로 껴안을 수 없는 하늘이 아지랑이를 모락모락 피우고 있다. 만물이 말을 걸때면 여지없이 떠나야한다.
‘미래는 오지 않았고 과거는 지나갔어. 그저 느낌 가는 대로 현재를 온전히 즐기며 존재하자.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처럼’ 니코츠 카잔스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의 조르바는 늘 호기심을 가지고 매일 보는 하늘을 봐도 경탄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화자와 울타리 곁을 지나다 갓 핀 수선화를 꺾어 생전 처음으로 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보며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릴까요! 언제면 우리가 팔을 벌리고 돌, 비, 꽃, 그리고 사람들, 만물을 안을 수 있을까요? ‘ 라고 묻던 조르바. 그가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조르바는 자유인이기 때문에 누구에나 구속되지 않으며 규율이란 그에게 그저 웃음거리다. 대지로부터 태초의 탯줄을 간직한 채 두 다리로 대지를 마음껏 누비는 조르바를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따뜻한 햇살이 이마에 입맞춤하고 투명한 하늘은 더욱 푸른빛을 더하며 속삭이는 듯하다.
2월 달력이 며칠 남지 않은 토요일 오전 3시간을 달려 전남 구례에 도착했다.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훌쩍 떠나왔기 때문에 정해진 일정이란 게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후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헝클어진 감정들을 풀어 놓자 설렘과 기쁨의 감정이 다보록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섬진강은 자전거길이 다정하게 이어져있다. 해질녘의 하늘은 노란빛이 파스텔화처럼 부드럽게 하늘을 감싸 하늘색과 경계가 없다. 자전거를 빌려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달렸다. 옷을 벗은 나무들은 조그맣게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미약한 물줄기에서 시작되었을 섬진강은 200km 넘게 이어져 바다로 흐른다. 바닥에 온 돌들을 적시고 바위를 휘휘 돌아 흐른다. 아직 차가운 바람에 손이 시리지만 가슴 속 깊이 들어오는 바람은 상쾌하다. 태양의 붉은 빛이 산머리 위에 점점 사라지자 자전거 머리를 돌렸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주위에 어둠이 내리자 졸졸 흐르던 물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사람도 물처럼 순리를 따르면 깊고 넓은 바다에 다다른다고 섬진강이 일러주고 있었다. 인생도, 사람과의 관계도 억지로 되는 것이 없다. 진실한 관계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흘러야한다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바로 옆에 있는 곡성천문대에 들렀다. 안타깝게 7, 8시 관람은 매진이어서 9시 관람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9시 표를 샀지만 관람 시간까지 2시간이 넘게 남았다. 고민하다 7시 관람에 은근슬쩍 몸을 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불이 꺼지자 돔형 천장에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로 시작하는 내레이션과 멋진 영상이 펼쳐진다. 빅뱅부터 생명의 진화를 3D 다큐로 보여준다. 컴컴한 우주가 바다로 변하여 고래가 솟는 장면에서 여기저기 탄식이 흘렀다. 20분간의 황홀한 영상이 끝나자 천체망원경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안내자가 별빛까지 닿는 레이저 포인터로 별자리를 그려주었다.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을 연결하여 이름을 지어주고 이야기를 만들다니 옛날 사람들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 인공위성처럼 밝게 빛나는 별은 목성으로 망원경으로 관찰하니 두 줄이 선명하게 비친다. 수백만 년 전의 별빛을 보며 문득 나는 그저 광활한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일었다. 137억년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시기에 빅뱅이 시작되고 1,200만 년 전부터 인류가 진화했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이전, 바다 속 미물이었던 존재가 내가되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삶을 사랑하고 감사해야겠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내 또래의 손님 한 사람과 컵라면을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게스트하우스 여사장님과 함께 우리는 이야기를 꽃피운다. 사업을 하느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던 사장님은 어느 봄날 섬진강을 거닐다 지금의 게스트하우스 건물을 보자 온몸에 전류가 흘렀다 한다. 사장님이 꿈꾸던 삶은 물가가 내려 보이고 흐드러지게 꽃이 핀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숨 쉬며 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가는 나그네에게 휴식을 선사하고 교감을 하는 것. 가장 기억에 남은 손님은 멀리 캐나다에서 온 손님이었다고 한다. 캐나다 손님은 산유화, 목련, 벚꽃이 아찔하게 피어있던 날, 강변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한다. 늦겨울이라 울긋불긋한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봄꽃이 만발한 듯하다. 창틈으로 은은한 꽃향기가 불어와 코끝을 간지럽힌다. 봄이 오면 이곳에 꼭 다시 한 번 와보고 싶다.
이튿날 아침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토스트와 진한 커피 향으로 졸음을 쫓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구례와 5개 군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해발 1,915m 이다. 나는 노고단 까지 오르기로 했다. 차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성삼재 휴게소 까지 올라갔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이곳에 안기면 지혜와 이치를 깨닫는다는 지리산은 새하얀 눈에 뒤 덮여 있었다. 한참 늦게 출발했던 등산객들이 모두 저만치 앞질러 간다. 눈 속에서 푸릇하게 고개를 내미는 풀 한포기, 산 새소리, 얼음물 녹아 흐르는 소리, 나무들이 건네는 몸짓을 모두 새겨 넣느라 느릿느릿 쉬어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 정도 오르니 노고단대피소에 다다랐다. 대피소에는 밥 짓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예약을 하면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대피소에서 노고단까지는 나무계단길이 이어져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녹아 마른 땅을 들어내고 있었다. 노고단은 신라 화랑들이 수련을 하면서 탑과 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할머니께 기원했던 곳이란다. 정상에 오르니 1961년에 복원한 돌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산제를 지내는 산악인들이 보이고 두 손을 마주하고 소원을 비는 사람도 보인다. 청명한 하늘에는 구름이 포말처럼 떠있다. 발을 굴러 뛰어오르면 머리에 부드러운 크림이 감길 듯하다. 멀리 반야봉, 천왕봉, 삼도봉이 보이고 저만치 아래에는 점점이 화엄사가, 실 가락 같은 섬진강이 내려다보인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는 말이 떠올랐다. 사소한 괴로움이, 기쁨의 순간들이 점점이 모여 아름다운 모자이크 화처럼 조망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오르나 보다.
이 날은 내가 태어난 날로 혼자 여행하며 많은 것을 깨달은 가장 멋진 생일이었다. 무엇을 하기보다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야하는지 알 것 같다. 신비롭게 빛나는 별빛을 가슴에 새기며 존재의 귀중함을 배웠다. 또한 니체 철학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고난 속에서 행복이 꽃 피고 행복 속에 고난이 숨어있다. 피할 수 없기에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이다. 자신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능력을 최대로 끌어 모아 스스로를 창조해야 한다. 이것은 초인이라 불리우는 ‘위버멘쉬’이다. 저마다는 소중한 존재이며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 사랑이 가득 넘쳐 다른 이에게 흐르게 하는 것이 모두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며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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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현 씨 잘 읽었어요
무슨 연구 논문 같아요
진지한 글이 부럽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잘 쓰셨네요~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