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제10구단 kt wiz 조범현 초대감독


조범현 曺凡鉉 1960년 10월 1일 생. 대구국민학교 - 대건중학교(대구)
- 충암고등학교(서울) - 인하대학교 졸업. 신장 / 체중 177Cm / 80Kg.
선수시절 포지션 / 포수 // 우 투 우 타. 1982년 OB BEARS 입단.
1991 삼성 - 1993 쌍방울코치 - 2000 삼성코치 - 2003 SK감독 - 2007KIA
코치 - 2007 KIA감독 - 2013삼성인스트럭터 - 2014kt감독 배번 70
(이상 '2014 KBO 가이드북'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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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광적(狂的)으로 야구를 즐긴다. 내 운명처럼 나는 철저한 야구팬이다.
내가 태어 난 곳이 대구 칠성동 342번지,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내가 태어난
바로 이웃에 야구장이 건립되었다. 이 야구장은 프로야구 삼성의 홈 구장이다.
이 야구장은 지금 오랜 전통 만큼, 아주 낙후된 야구장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다닌 대구칠성국민학교는 야구의 명문으로 수많은 선수들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프로야구 삼성의 초대감독 서영무(徐永武) - 국민학교의 동
문으로 친하게 지냈다.
1960~70년대 고등학교 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그는 경북고등학교
감독으로 수많은 우승을 일구어 내었고 그가 서울 동대문야구장에 나타나는 저
녁시간에는 어김없이 함께 만나 술을 마셨다.
(2)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서영무감독이 이끄는 삼성의 서울경기는 빠짐없이
보게 되었다.
TV 중계가 아니고 야구장에 가게 되는 경우는 서영무감독의 '빽'으로 무료입장,
야구는 언제나 즐거웠다.
어떤 때는 구단버스로 서영무감독과 함께 서울에서 대구로 이동, 대구경기를 보
기도 했다. 참으로 행복한 추억인데 야속하게도 그는 오래 살지를 못했다.
유니폼 배번이 '63', 63세까지 감독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배번에 담았지만 참으
로 - 참으로 안타깝게도 감독생활을 짧게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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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범현감독. 그가 우리나라 야구역사에 처음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제7회 봉황대기전국고교야구대회(鳳凰大旗全國高敎野球大會)에서였다.
이 대회는 1971년에 첫 대회가 열렸고 첫 대회의 우승팀은 경북고등학교였다.
이 대회는 여름방학 중 예선 없이 야구팀이 있는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와 재일교포
고등학교 선발팀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라 고교 야구대회로는 그 규모가 가장 큰 대
회였다.
조범현선수가 포수로 출전한 충암고는 1977년 제7회 대회에서 진흥고를 꺾고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는데 조범현 선수가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조범현선수는 이 대회를 통하여 고등학교 야구선수로 그의 이름을 화려하게 세상에
크게 알리게 된 것이다.
충암고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있었고 나는 그 때 은평구 갈현동에 살았기에 충암고
의 우승은 나에게 각별한 기쁨이었고 자연스럽게 조범현 선수와 함께 충암고 야구팀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야구를 좋아하니 그 언제인가, 조범현선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어 졌다.
그러고는 37년의 세월이 흐른 2014년 4월 8일(화), 고교선수가 아닌 프로야구의 사령탑
이 된 그를 내가 거주하고 있는 수원, kt wiz 임시 홈구장 성균관대 야구장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2)
김성근 감독과 조범현 포수 / 선수의 눈물을 닦아 주던 감독. 선수들은 우승으로 보답.
우리나라 프로야구계에서 김성근-조범현 두 분 사제지간의 각별한 관계는 공인된 사실로
회자가 되고 있다. 두 분의 만남은 충암고 야구부의 감독과 선수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1977년 충암고 시절의 유명한 일화 한 토막은 오랜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지금도
남아 있으리라.
당시 충암고는 해체된 대구 대건고 야구부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이 가운데 포수 조범현 선
수가 포함돼 있었다.
황금사자기대회, 충암고는 신일고와의 8강전에서 선발 기세봉의 호투로 8회까지 1-0으로 앞
섰으나 9회 1사 뒤 통한의 3점 홈런을 내줘 역전패 당했다.
마스크를 썼던 조범현은 그라운드에 눈물을 떨구며 일어날 줄 몰랐다. 김 감독은 패배의 쓴맛
을 삼키기에 앞서 눈 앞에서 그칠 줄 모르고 통곡하는 조범현을 진정시키느라 애타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이 후, 선수들을 강도 높게 훈련을 시키던 김성근 감독은 그 강도를 더욱 강화시켰다. 당시에
는 고교 전국대회에서 4강까지 오르면 대학진학의 특혜가 주어졌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의 이 원대한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더욱 더 마음을 단단히 먹
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봉황기대회 준비기간 중, 타격 지도에 몰입했던 감독은 한 선수가 휘두른 방
망이에 입을 정통으로 맞았다.
앞니 3개가 부러지면서 운동장 바닥에 쓰러졌는데 김 감독은 선수들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떨
어진 이나 찾아보자"는 말로 수십 바늘을 꿰매어야만 했던 중상을 수습했다.
이러한 감독의 열정에 충암고 선수들은 봉황기대회에서 창단 9년 만에 첫 우승기를 들어 올리며
감독에게 보답했다. (계속)
첫댓글 백두산님이 야구를 좋아 하시는줄은 몰랐네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대전광역시고향다시복귀하고싶어요제10구단새감독나오세요빨리와요제발보내드립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