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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97
창세기 36:20-43
에돔의 왕들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을 말씀한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실체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한 말씀이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단순히 세일 산에 살고 있던 족속들과 에돔의 근황을 알리고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세일 산에 거하는 족속들에 대한 기록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말씀한다는 것이다. 에서가 세일을 차지한 곳이 어떤 상태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36:12에서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라고 말씀하였다. 에서의 후손 중 아말렉은 출애굽 때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전쟁을 하였다. 이때 하나님께서 친히 지팡이 잡고 산 꼭대기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을 모세가 아론과 훌과 함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전쟁을 하게 된다.
14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 17:13-16)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을 있었고 많은 세월 종살이를 하였기에 전쟁을 할 줄 모르는 자들이었다. 더구나 출애굽 후 첫 번째 전쟁이었다. 여호수아가 장수로 나가서 싸우지만 여호수아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으로 인해 이기는 전쟁이었다. 그래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하였기에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다. 그래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다. 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7-19)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피곤할 때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다는 것이다. 이것을 출애굽기 17:16에서 우리 성경은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각주에 보면 “여호와의 보좌를 향해 손을 들었으니”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즉 뒤에 떨어진 약한 자를 친 것이 손을 들어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를 공격하였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약자들 안에 하나님의 언약을 담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성취자로 오실 분은 이 땅에 사람들에 의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약자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신명기 25:19에서 “안식을 주실 때”라고 하여 언약의 땅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을 아말렉을 진멸하는 것으로 말씀한다. 왕을 세워 하나님의 안식이 주어지는 것을 아말렉의 진멸로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사울은 실패하였다(삼상 15:2-3). 하나님은 첫 번째 전쟁을 아말렉을 통해 출애굽의 성격을 보여주고자 하셨다. 즉 출애굽은 죄에서의 구원이고 그 구원은 대적자를 멸하시는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시는 언약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지팡이는 한쪽은 살리는 구원, 한쪽은 죽이는 심판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을 긍휼의 그릇으로 에서와 그 후손 아말렉은 진노의 그릇으로 사용하신다(롬 9:19-24).
“20 그 땅의 주민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21 디손과 에셀과 디산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세일의 자손 중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요”(20-21절). 20-30절은 본래 가나안 땅의 세일에 거하는 호리 족속을 열거하였다. 이들은 아마도 에서에 의하여 정복된 세일 땅의 원주민이었을 것이다(창 14:6).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주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같았느니라(신 2:12)
에서의 자손이 호리 족속을 멸하였다고 하였으나 창세기에서 호리 족속을 나열한 것을 보면 이때는 같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같이 거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는 상관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에서가 하나님의 언약에 이끌려 가는 민족이었다면 호리 족속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에서의 자손이 호리 족속과 함께 한다는 것은 율법적인 자기 행위로 의를 이루고자 하는 생각이 같고 삶의 방향성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서의 후손을 통해 호리 사람을 멸하신 것은 야곱과 에서의 관계가 단순히 적대 관계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적대 관계를 전환하여 겉사람, 육의 사람을 속사람, 영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 에서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다.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창 27:40)라고 하여 아우, 곧 이스라엘을 통해 오실 언약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이루시는 구원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에서를 통해서도 말씀을 이루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마치 세일에 거주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을 멸하심과 같으니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거주하였으며(신 2:22)
그래서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24절)라고 말씀한다. “나귀”는 짐을 지는 짐승이고, “광야”는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이다. “온천”이라는 말의 ‘옘’은 ‘따뜻한, 봄, 샘’이라는 뜻인데 말씀을 상징한다. “발견하였고”의 ‘마차’는 ‘만났다’라는 뜻이다. 에서와 같이 율법의 짐을 지는 존재로 살면서 말씀을 만나 말씀의 양육을 받지만 복음을 만나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한다.
“29 호리 족속의 족장들은 곧 로단 족장, 소발 족장, 시브온 족장, 아나 족장, 30 디손 족장, 에셀 족장, 디산 족장이라 이들은 그들의 족속들에 따라 세일 땅에 있는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었더라”(25-30절). 호리 족속 중에서도 족장이 나오고 왕이 나왔다. 그러나 말씀을 만나 아무리 가르침을 받고 훈련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알지 못하고 율법으로 살면 그것 자체로 심판과 저주 가운데 있는 것이 된다. 호리 족속은 세일 산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는 야곱과 에서를 통해 진멸당하는 족속이 된다.
“31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 32 브올의 아들 벨라가 에돔의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의 이름은 딘하바며”(31-32절). “딘하바”는 ‘심판하다’라는 뜻이다. 에돔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앞서서 왕을 세웠고 그 왕을 중심으로 행하는 나라였다. 도성의 이름도 심판한다는 뜻으로 힘을 자랑하는 족속이 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왕은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 즉 에돔의 후손들 가운데서도 스스로 왕의 행세를 하고 신적인 것을 기대하는 그 모습이 하나님의 언약을 떠난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죄인들은 언제나 사람에게 기대를 걸고 거기에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거부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때 에돔을 만난 사건을 이렇게 언급한다.
19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큰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20 그는 이르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21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민 20:19-21)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서 정복하여야 할 족속과 그대로 두어야 할 족속을 하나님께서 구별시켜 주신다. 그중에 에돔 땅은 정복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 이유는 에돔의 땅은 에서의 후손에게 언약으로 주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았는데도 에돔 족속에 대해서는 관대하신 하나님께서 신명기 23:3-8을 보면 길을 비켜주지 않은 것은 똑같은데 모압과 암몬 족속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에돔 족속은 형제이기 때문에 삼 대 후에는 총회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3’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완성하시는 대 수를 말한다.
에돔이나 모압과 암몬이 이스라엘을 거부하고 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모압 왕 발락이 발람 선지자를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였지만 에돔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야곱의 언약 속에 야곱을 저주하면 저주를 받고 야곱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언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에돔이 저주 아래 있는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윗을 사울이 죽이려고 하자 도망을 가다가 놉 땅의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방문한 것을 고발하는 자가 에돔인 도엑이라고 밝혀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후에는 계속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존재로 등장한다(옵 1:1-12).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두 살 아래를 죽이라고 명령한 헤롯을 에돔의 후손으로 바로 왕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적자로 밝히고 있다.
31-39절에서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33, 34, 35, 36, 37, 38, 39절)라는 표현이 계속 반복된다. 그리고 “그 도성의 이름은”(32, 35, 39절)이라는 표현이 중간중간 언급된다. “도성”은 바벨탑과 성으로 드러난 것처럼 죄인이 자기 힘을 자랑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징적인 것이다.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이 계속 대신하여 바뀌는 것을 통해 왕은 언약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약의 말씀이 계승되지 않으니 그 왕의 자리는 사람의 계명과 교훈으로 드러나는데 어떤 기준이 없이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극대화되어 드러나는 것이 39절 말씀이다.
“그 도성 이름은 바우”라고 하였는데 ‘파우’는 ‘신음, 괴로워함’이라는 뜻인데 ‘파아’(소리치다, 외치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언약과 상관없이 사람의 계명과 교훈을 가르치고 소리치니 백성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왕이 소리치니 사람들은 그것을 옳은 것으로, 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으로 가르치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을 지옥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 될 뿐이니 그것은 괴로움이다.
“40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이름은 그 종족과 거처와 이름을 따라 나누면 이러하니 딤나 족장, 알와 족장, 여뎃 족장, 41 오홀리바마 족장, 엘라 족장, 비논 족장, 42 그나스 족장, 데만 족장, 밉살 족장, 43 막디엘 족장, 이람 족장이라 이들은 그 구역과 거처를 따른 에돔 족장들이며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40-43절).
이처럼 에서는 크고 강한 군주였으며 에돔 족속의 조상이었다. 강성한 에서와는 대조적으로 야곱은 언약의 땅에 거주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더욱 공고히 확증하는 것이 된다. 에서와 달리 하나님의 언약에 이끌려가는 야곱은 고생과 환난 가운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것이 복의 상태라고 말씀한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상태, 목마르고 핍박을 받는 상태가 하나님의 왕국이다(마 5:3-10).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부자가 되고 왕이 되어 사는 에돔, 아말렉이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와 우리의 모습이다. 에돔과 아말렉과 같은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은혜를 입히신 자가 언약의 완성 안에 있는 성도이다(2024120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첫댓글 아멘~♡
창세기 36장
24.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
시브온의 자손은 이러하니 곧 아야와 아나이니라. 이 아나는 자기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먹일 때에 광야에서 노새들을 발견한 자더라.
궁금한 점은 온천과 노새는 상이한 것 같은데 노새로 전개 되였을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KJV의 번역입니다.
한글킹제임스 번역자들은 그것만이 제대로된 성경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옘'의 뜻이 불분명한 것이 사실인데 그중에 '노새'(mules)라는 뜻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