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퇴직 후의 값진 삶
어느 날 광주광역시 교육청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내용인즉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육연수원에서 협력위원으로 활동하도록 추천했다는 것이다. 서울과 제주도를 제외한 각 시·도에서 한 명씩 추천되어 활동한다는 것이다. 주로 주요 업무가 전국에서 교장연수를 수강하러 오시는 분들의 담임 역할은 물론 분임토의를 주제하고 분임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퇴임한 입장인데도 연수업무를 주로 맡아왔다는 이유에서인지 추천해주신 교육감님에게 감사하고 기 추천된 만큼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저런 구상에 매우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찾아간 충남 청원에 소재한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육연수원에서 담당 연구사와 연구관들로 부터 우리 협력위원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안내를 받고 대강당 개강식장에서 협력위원으로 소개를 받을 땐 가슴 뿌듯함과 열심히 소임을 다해야겠다는 각오가 일렁이기도 했다. 그 후 내가 맡게 된 교장반에 들어가서 자신을 소개하고 교장연수를 수강하시는 전국에서 오신 예비교장선생님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조언과 함께 출석 점검을 하고 앞으로 수강기간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다짐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그곳 교원대학교 종합교육연수원장이 초대하는 오찬에 참석하여 상견례는 물론 ‘질 높은 수강을 위해 협력해 달라’는 원장님의 당부의 말씀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리고 배당 받은 숙소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며 열심히 준비하고 수강생들을 뒷바라지 했다.
열정의 꽃들을 만나다
매우 의미 있는 일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퇴임 후의 첫 단추를 잘 꿰맨 느낌의 한 주가 끝나고 조치원역을 출발하여 무궁화호에 몸을 싣고 광주로 내려 올 때의 기쁨은 대단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으로 만난 협력위원들은 역시 각 시도에서 추천되어 오신 분들로서 각 시·도 교육국장, 교육장, 교장 등 경력도 화려한 분들이었다.
이곳에 차출되어 활동하시다 1-2년이면 교체되시는데 난 거의 4년여를 그곳에서 협력위원과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년 6개월 간 협력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공과를 인정받아 김명수 한국교원대학교육연수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기도 했다.
각 시·도에서 엄격한 기준에 의하여 차출된 분들이요, 앞으로현직 교장으로 출발하기 위한 교장자격연수의 과정이기에 수강자 모두는 교직의 최종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열정은 물론 지금까지의 교직경험을 총 망라하여 정리하며 ‘교장은 교육현장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 최선을 다하곤 했다.
그렇기에 수강태도는 물론 과제 해결, 분임토의, 각종 발표 등 어느 분야에도 소홀함이 없었고 연수 현장은 최선의 열기로 가득했다.
전국의 지역이 다르고 학교 규모가 다른 곳에서 오신 분들이기에 이곳 연수원에서 현장의 다양한 사례발표 등은 공감하는 바가 많았을 것이고 새롭게 출발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섭렵해야할 사례들이 참으로 많으리라 예견되기도 했다.
특히 유치원장들의 연수는 불을 뿜는 순간도 많았다. 공립유치원보다 사립유치원에서 오신 분들이 많아 유치원의 규모, 그리고 운영 기법이 다르기에 이질감이라기보다 전혀 접해보지도 못한 사례들이 쏟아지니 크게 도움이 되었으리란 느낌도 받았었다.
이에 걸맞게 협력위원으로서의 활동도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해야만 했고 신뢰를 쌓아야만 했다. 특히 협력위원장으로서의 약 2년 6개월은 교원연수원의 업무 추진 방향의 섭렵, 협력위원들의 명쾌한 활동 방향제시. 일일계획과 결과의 종합 등 조금은 다른 위원들보다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도 많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협력위원의 활동 4년여가 교육위원으로서의 활동이나 초청 강의 등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활용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퇴임 후의 보람 1호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대한민국의 교직자 중 ‘교직의 꽃’이라고 하는 교장자격연수 현장의 열정에 찬 연수생들과 함께한 4년은 그야말로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성의 시간도 되었었지만 그 귀한 만남의 시간은 퇴임 후 나의 값진 삶 1호로 기억되었다.
일반적으로 시·도에서 추천되어 1~2년이면 교체되곤 했던 협력위원 자리를 그것도 협력위원장이란 이름으로 3년여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자문해 보기도 한다. 나름의 답은 열정과 성실 그리고 배려 등이 그 주요 요인이었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본다.
참으로 보람 있고 값진 시간이었기에 오랜 기억으로 남게 되리라.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