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지도가 위나라가 천하의 중심에서 패권을 외치던 때죠.
위문후 위무후 양대에 걸쳐서 국력이 굉장한 신장을 보인 위나라는 삼진동맹(조.위.한)의 맹주를 자처하며
제나라를 격파하여 무릎 꿇리고 진나라를 공략하여 수도를 옴기게 만들며 초나라의 대군을
격파해서 북방진출을 틀어 막아 버립니다.
이때 위나라는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그 비싸다는 주먹만한 야명주로 궁궐안을 밝히는
돈의 힘을 보여줍니다.
군사력도 위나라가 최초로 정규군을 도입해 혹독한 훈련과 표준화된 무기 규격. 강철 무기등을 도입하여
당시 봉건국들의 머슴들을 가병으로 거느리며 전쟁나면 농사짓던 머슴 대리고 전쟁하던것과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군대로서 타국을 격파해버립니다.
이 위나라의 위용을 보고 제나라와 초나라. 조.한.진등도 적극적으로 신진 관념을 받아들입니다.
두번째 지도는 위나라가 손빈에게 마릉전투에서 털리고
상앙에게 상땅을 털리고 한참 후 입니다.
최초의 합종이라고 볼 수 있는대 위나라가 삼진의 맹주를 스스로 버리고 조와 한을 공격하여 삼키려 하자
조와 한이 타국, 특히 제나라의 도움을 요청하여 제나라가 위위구조란 고사성어처럼 한단의 포위를 풀고
마릉전투에서 대장군 방연과 태자를 죽이고 10만 대군을 전멸시킵니다.
그때를 맞춰 공손 앙이 20년 변법을 통해서 만들어진 신군(새로운 군대)을 가지고 상땅을 공략하는데
이때 공손 앙이 친분을 이용하여 공자 앙을 꼬여내어 속인 후 20만 대군을 격파 합니다.
이로서 241년 부터 240년 까지 연이어 위나라는 30만 대군이 증발되어 버리고 가장 중요한 서쪽 방어선이 무너짐으로서
대량으로 천도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죠.
그런 이후 제나라가 얼마나 팽창을 했는지 보면 아실 수 있습니다.
실상 파촉땅과 한중은 별로 먹을게 없고 지도상의 부분일 뿐임으로 이때 당시엔 제나라가 진나라에 우위를 서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환공 이후 패권잡은지 수백년 만에 천하통일이 가장 앞에 있었다고 봐야겠죠.
세번째 지도는 그런 제나라가 5국 연합에 털린겁니다.
그야말로 처절하게 털립니다. 284년도에 악의가 이끄는 5국 연합에 철저하게 털리고 거와 즉묵만 남은 상태이며
조나라가 황하변의 땅을 차지했고 위나라도 한 땅 차지하고 초나라도 서주 부군을 먹은걸 보실 수 있습니다.
위나라때에도 연합이라 볼 수 있지만 조.한이 제나라에 자신의 위급을 알리고 도와달라 청한것이라
명확한 연합이라 볼 수 없고 제나라가 주도하에 칠때 진나라가 위가 약해진 틈을 타서
상앙은 공자 앙에게 사기 치고 상 땅을 먹은거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엔 아주 주도적으로 약속하여 5국이 연합하여 제나라를 털어버립니다.
외교적으로 약속하며 쳐들어 간건 이 때가 처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네번째 지도는 본격적인 진나라의 압박입니다.
278년 초나라의 수도가 함락당하며 초나라는 천도를 거 땅으로 천도를 감행하고
삼국지로 설명하자면 형주와 양양 남양땅을 다 상실하고 한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습니다.
이때가 바로 범저가 등용되어 원교근공이란 국시를 밀고 나가던 때입니다.
기존의 진나라가 장의에 연횡책을 밀고 나가던걸 버리고 본격적으로 천하통일의 계획이 실행되던
때가 바로 이때 입니다.
다섯번째 지도가 이제 밀릴 만큼 밀린 육국입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한나라는 쪼그라 들 만큼 쪼그라 들었고 신릉군이 죽은 위나라는 20여개 성을 대거 상실합니다.
신릉군이 243년에 죽었으니 현재 킹덤에서 발생하는 240년 대 연합에선 저 보단 조금 괜찮은 수준입니다.
네번째 지도와 다섯번째 지도의 중간 지점 즘(한나라는 비슷하고)이 현 연합의 발생 수준입니다.
연합은 발생하지만 284년에 제나라는 털린게 아직도 후유증이 있었고
조와 연은 몇 해전만 해도 서로 치고 받는등
연합이라고 하나 서로 의심에 휩싸여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bc240년 연합이 진에게 패하자 앞 다투어 진에게 신종하며 자기들 끼리 싸우는
행태를 보입니다. 망조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