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꽃술이 지고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숲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곳이다. 사진은 갈대숲 사이로 난 나무보도
한 해가 저물어간다. 누구나 생각이 많은 때다.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느라 머릿속은 복잡하다.
겨울 갈대숲. 뚜벅뚜벅 걸으며 생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낙조가 곁들여지면 더 좋다. 화려한 갈대꽃은 진 지 오래지만 키 큰 갈대는 바람을 따라 일렁인다. 갈대꽃에 시선을 뺏길 리 없으니 오히려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으리라.
순천만. 갈대숲이라면 떼 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곳이다. 면적은 2.3㎢(70만 평)에 달할 정도로 광활하다.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순천만 풍광과 낙조는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압도적인 자연 속에서 사람은 단순해질 수 있다. 그런 만큼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에 더없이 좋다.
우리나라 어디보다 넓은 순천만 갈대숲은 만물이 숨을 죽이고 쓸쓸해지는 겨울이 되더라도 잠을 자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계절보다 더 시끌벅적해지는 게 겨울의 순천만이다. 바로 겨울을 나려고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온 철새들 때문이다. 순천만에는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 같은 철새와 텃새를 통틀어 200종이 넘는 조류가 살고 있다.
한 부부가 낙안읍성 골목길을 거닐고 있다. 초가집들은 '박제된' 집이 아니라 주민들이 살고 있고 일부는 민박집으로 운영한다.
순천만 갈대밭은 또 한편으로 소설가 김승옥과 그의 단편 '무진기행'을 떠올리게도 한다. 소설 속 무진은 글자 그대로 안개 축축한 가상의 공간이지만 순천 사람들은 무진을 아침 안개 자욱한 순천만 한편의 마을로 특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순천은 김승옥이 성장한 곳으로 소설 속 주인공이 2박 3일을 보내는 무진 포구는 순천만의 바닷가 마을 어느 한 곳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저런 일들로 유명세를 떨치는 탓에 사실 순천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이라도 낯익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갈대밭이나 낙안읍성 같은 순천의 명소는 인터넷에서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단행본을 가릴 것 없이 자주 접할 수 있다. 또 조계산을 끼고 있는 선암사와 조계사도 말할 것 없다. 하지만 갈대밭의 아름다움이나 선암사, 조계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가더라도 관광버스 타고 가서 휙 구경하고는 '다 봤다'고 할 곳은 더더욱 아니다. 뚜벅뚜벅 걸으며 '느리게' 감상하고 느껴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갈대숲은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을 들어선 뒤 대대포구 옆 무진교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이 지나기에 넉넉한 목재 덱을 설치해 편안하게 갈대 사이를 걸을 수 있다. 무진교에서 2.1㎞ 거리인 용산전망대를 빼먹으면 허전하다. '용산전망대를 가지 않으면 순천만 갈대숲을 다녀왔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용산전망대에서의 순천만 조망은 압도적이다.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동천을 끼고 있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이곳에서 서쪽으로는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순천만 낙조는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다. 낙조를 촬영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3층으로 된 전망대에는 '사진작가들은 1, 2층을 이용하라'는 안내문까지 세워둘 정도다.
갈대숲을 느리게 거닐고 용산전망대에서 광활한 순천만을 조망하면서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거나 새해의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 어떨까.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
◇ 드넓은 갯벌·철새·드라마 촬영장·낙안읍성…명불허전 '생태수도'
- 순천시, 명소 투어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 2층버스·갈대열차·생태체험선 색다른 재미 - 운항시간 사전 확인 등 시간 안배 잘해야 - 순천문학관·뿌리깊은나무박물관 둘러볼 만
'대한민국 생태수도'로 내세울 정도로 순천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곳이 순천만이다. 그런 만큼 순천 여행은 순천만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고 순천에 순천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순천은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한 모든 지정문화재를 보유한 곳이다. 국가지정 명승인 순천만을 비롯해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등 국가지정문화재와 지방지정문화재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순천의 명소를 다니기도 편리하다. 순천은 기초자치단체로는 드물게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문객에게는 더없이 편리하다. '순천만 생태탐조투어'를 이용해 순천 여행을 다녀왔다.
■빨간색 2층 버스 색다른 재미
빨간색 2층 투어버스(위 사진), 서울 달동네 세트장.
오전 11시가 가까워지자 독특한 모양의 빨간색 2층 투어버스가 순천역 앞에 도착했다. 버스의 1층은 마주 보는 좌석으로 되어 있고 2층은 일반 버스 좌석 형태지만 운전석이 가리지 않는 탁 트인 전면 조망을 누릴 수 있다. 11시에 출발하는 순천만 생태탐조투어 버스는 조례동의 드라마 촬영장을 거쳐 순천만자연생태공원으로 간다. 투어버스의 이용요금이 5000원인데 드라마 촬영장 입장료가 3000원, 생태공원 입장료가 2000원이 포함돼 있다. 입장료를 제하면 거저인 셈이다. 거기다가 순천만 생태공원에 갈 때까지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설명까지 들을 수 있다.
순천역에서 10분이면 도착하는 드라마 촬영장은 산기슭에 있던 군부대가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들어섰다. 세트장은 크게 순천 세트장, 서울 달동네 세트장으로 나뉜다. 이곳에서 제빵왕 김탁구, 에덴의 동쪽, 빛과 그림자 등 히트 드라마들이 탄생했다. 순천 세트장은 1960년대 순천 시내 뒷골목의 모습을 재현했다. 또 언덕 위의 세트장은 1970년대 서울 달동네의 모습을 200여 채의 건물로 꾸몄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수십 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처음 만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인 '댄디잡화점'은 외상사절 문구와 함께 '럭키치약' '빠-다- 캬라멜' 등이 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한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부모 세대의 기억을 전해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파출소와 전파상, 방앗간과 신발가게 등을 지난다. 벽에 걸린 '너도나도 혼분식 실천하여 경제부흥 이룩하자!'란 현수막이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극장 간판도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언덕에 만든 달동네 세트장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달동네를 그대로 옮겨오듯이 만든 곳이다. 달동네의 사실감을 살리려 봉천동 달동네 철거 당시 나온 쓰레기를 실어와 일부 사용했다고 한다. 달동네 세트장은 드라마 '사랑과 야망' '제빵왕 김탁구' 영화 '그해 여름' '님은 먼 곳에' 등의 촬영 세트장으로 쓰였다. 드라마나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배경이 된 세트장에서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세트장이라고 '박제된' 건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석구석 '화장실' 팻말이 붙은 곳은 '진짜' 화장실이다. 또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는 군것질을 할 수도 있다. 입구에 가까운 순양극장에서는 얼마 전부터 주말마다 상설공연을 하고 있다.
■갈대숲 즐기는 또다른 방법
자연생태관(위 사진), 갈대열차.
이어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에 도착하면 동천 하구 방향으로 탁 트인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투어버스 이용권을 보이면 공원에 들어갈 수 있다. 공원에 들어선 뒤에는 자유롭게 둘러보면 된다. 먼저 천문대와 순천만 자연생태관이 방문객을 맞는다. 천문대에서는 낮엔 태양 관측, 밤엔 천체 관측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날씨나 시간이 괜찮다면 참여해볼 만하다.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2층에는 소형 망원경으로 가까이 논을 거니는 흑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다. 지난 10월부터 날아오기 시작한 흑두루미는 요즘은 500마리를 넘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천문대는 자연생태관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자연생태관을 들어서면 거대한 흑두루미 모형 두 마리가 맞이한다. 1층 전시실에선 CCTV로 흑두루미가 거니는 순천만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흑두루미의 머리를 마주한다. 전시실에는 갯벌의 생성 과정과 순천만 갯벌에 사는 생물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전시한다. 또 순천만에 사는 다양한 조류와 둥지, 알도 전시하고 있다.
생태관에서 조금만 걸으면 갈대숲 입구이자 생태체험선 선착장, 갈대열차 출발 장소다. 여기서는 시간을 맞춰 선택할 수 있다. 갈대열차를 타면 순천문학관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갈대열차는 이용료 1000원으로 하루 10여 차례 운행한다. 시간별로 예약할 수 있으니 미리 일정에 맞춰 예약하면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 둑길을 따라 10분이면 순천문학관에 닿는다. 한옥 스타일로 꾸민 순천문학관은 소설가 김승옥과 '오세암'을 쓴 아동문학가 정채봉의 주요 작품과 유품들로 꾸몄다. 아쉬운 점이라면 15분이면 타고 온 갈대열차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대포구에서 걸어가면 15분 정도 걸린다.
생태체험선 에코피아호를 타면 드넓은 갯벌과 갈대 군락, 철새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S자로 휘어져 흘러가는 동천을 따라 내려간 뒤 순천만의 한쪽 끝에서 끝까지 둘러보고 다시 대대포구로 올라오는 6㎞ 코스다. 갯벌에서 먹이를 찾는 도요새와 물떼새 등 여러 철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생태체험선을 타려면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운항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물때에 따라 바닷물이 많이 빠질 때는 배가 운항하지 않는다. 순천만생태공원에서 용산전망대를 다녀오는 한편으로 갈대열차와 생태체험선을 모두 타려면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낙안읍성에서 성벽 돌기
낙안읍성
하루를 순천만에서 보냈다면 또 하루는 순천의 다른 명소를 찾아가면 좋다. 낙안읍성은 대표적인 순천의 명소 가운데 시내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다. 불재 고개를 넘어 금전산 자락을 거쳐 내리막길에 접어들면 넓은 읍성이 나타난다. 주차장과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는 동문에서 읍성 순례를 시작한다.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낙안읍성은 동헌과 객사, 내아 등 옛 관청과 함께 골목골목 누비고 돌아다니며 초가지붕을 인 마을에서 주민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장 너머 볼 수 있다. 대장간이나 목공예체험장에서 체험해볼 수도 있고 투호나 그네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낙안읍성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게 성벽 밟기다. 동문과 서문 등 외에도 곳곳에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특히 남문인 쌍청루와 서문 사이 계단 위 '전망 좋은 곳'에서는 낙안읍성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
낙안읍성을 둘러본 뒤에는 조금만 짬을 내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들러봐도 좋다. 동문에서 150m 떨어진 이곳은 옛 낙안 출신인 '뿌리깊은나무'의 한창기 선생이 생전에 수집한 유물을 기탁해 만들어졌다. 전시실엔 기와와 옹기양념단지, 별도끼, 항아리 등 청동기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생활 도구와 의상,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이와 함께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출판물과 한창기 선생의 친필 원고도 전시하고 있다.
◇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내년 4월 개막
- '지구의 정원' 주제 10개 구역으로 구성
내년이면 순천에 또 하나의 볼거리가 문을 연다. 세계의 정원문화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순천만 입구 동천 주변의 박람회장에서 내년 4월 20일 개막해 6개월 동안 열린다. 29개국이 가입한 AIPH(국제원예생산자협회)의 승인을 받은 박람회는 '지구의 정원, 순천만'을 주제로 해 크게 10개의 구역(존·Zone)으로 나눠 구성된다.
박람회 행사장은 동천 양쪽에 A 나무존부터 J 순천만존까지 차례대로 조성되고 있다. 순서대로 나무 물새 꽃길 패밀리 숲길 미래 웰빙 세계 습지 순천만으로 각각 주제를 정해 특색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행사장은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동천의 동쪽에 있다. 주행사장은 C, D, G, H 구역으로 구성된다. C구역(꽃길존)은 공연장과 함께 에코지오 도시숲, 환상의 정원을 선보인다. D구역(패밀리존)은 허브카페, 소망의 언덕, 동화 속 미로정원, 마녀의 약초꽃길, 야수의 장미정원 등 흥미를 끄는 독특한 정원들을 갖추고 있다.
네덜란드정원의 풍차.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조직위 제공
G구역(웰빙존)은 산야초원, 한방 약초동산, 한방체험관과 함께 중국정원과 프랑스정원이 들어선다. 이곳은 약초의 특징과 효능을 주제로 감상과 함께 체험도 할 수 있다. 산이나 들을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모든 약초를 모아 대규모 재배공원과 체험관을 운영한다. H구역(세계존)에는 박람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세계 각국의 특색있는 정원들이 자리를 잡는다. 독일 네덜란드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일본 파키스탄정원이 고유의 정원문화를 선보인다. H구역에는 이외에도 순천만 바람언덕, 에코지오 식물공장, 어린이 놀이정원, 세계국화원 등이 있다.
동천 서쪽에는 나무존, 물새존, 산길존, 미래존이 들어선다. 특히 물새존의 4만5000㎡ 부지에 들어서는 순천만 국제습지센터는 정원박람회를 대표하는 주제관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스템과 태양광·지열을 활용해 에너지를 절감한 친환경 건물로 기존에 운영하는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의 자연생태관을 대체하게 된다.
내년 4월 박람회 개최에 맞춰 완공해 운행할 무인궤도차(PRT·Personal Rapid Transit)도 볼거리다. 국제습지센터에서 순천만 입구의 순천문학관까지 둑길을 따라 4.6㎞ 거리를 왕복 운행할 PRT는 6인승으로 40대가 택시처럼 운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