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행할 거리가 15km정도라 아침부터 여유를 보였다.
어제 먹다 남은 찌개에 남은 밥을 부어 끓여 먹고는 경로당에 붙어있는 화장실에 가서 세면하고 출발 준비를 했다.
다행히 오늘 날씨가 참 좋다고 느끼며 휴게소 앞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유치재까지 20여분 걸어가니 좌측 산길로 표지기들이 붙어있다.
산길 5분 다시 도로에 내려 목공소 삼거리에서 좌측 산길이 대간길임을 확인하고 숲 속으로 들어서니 초입부터 솔길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어린이날이라 집에 전화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좀 더 걷고 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걷고 있는데 산길에 두릅이 하나 둘씩 보여 라면에 넣어 끓여 먹자며 경현이랑 둘이서 몇 개 따서 배낭에 넣었다. 성산형은 앞서 걷느라 신경도 안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오르니 거의 평지 수준의 능선길이 이어져 걷기도 수월하고 상쾌해져 기분이 아주 좋다. 햇살이 눈부실 무렵, 간식도 챙겨 먹고 애들에게 전화한다며 핸드폰을 찾는데 옷가지랑 가방이랑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어젯밤에 창문 옆에 눕혀 둔 걸 깜빡했다.
잠시 쉬고 있으라 해 놓고 산길을 냅다 뛰기 시작하여 헉헉대며 도로를 따라 정자까지...
혹 정자에도 없으면 어쩌나 하면서 갔는데 어제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다시 그 길을 돌아오는데 휴게소 할머니가 나와서 인사하신다.
“짐은 다 어디가고 혼자 가?”
“예, 어쩌다 보니 핸드폰을 두고 와서 가지러 왔다 갑니다.”
“저런, 조심하지 않고...”
“건강하세요. 다음에 또 다시 올께요.”
“그려. 어여 가.”
그길을 돌아 성산형과 경현이가 기다리는 봉우리까지 잘도 달렸다.
찾기 쉬운 길이라 망정이지 혼자 알바라도 어쩌나 하며 도착해보니 그늘 아래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미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한 시간을 지체한 셈이다. 뛰어 다녀온 난 지치고 쉬고 있던 이들은 걸어야 했기에 내색 않고 5분 정도 있다가 운행하여 산길을 내려가니 공사중인지 산이 다 파해쳐져 있고 앞엔 고속도로처럼 보이는 아스팔트 길이 나 있다.
조심스레 공사현장을 내려와 지도를 살피니 88고속도로이며, 지하통로로 지나가라고 되어 있는데, 차들의 왕래를 보며 도로를 무단횡단 했다.
걷고 있는 내내 성산형은 아들이 말썽이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표지기가 붙어 있는 산길을 오르는데 경사가 심하고 산불이 났는지 나무들이 타서 보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밑에는 지리산 휴게소가 보이고 산 불중에 살아남았는지 두릅과 고사리도 하나씩 보인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기에 조심스레 하나씩 채취하고, 동네에서 약초하러 오셨다는 아줌마들도 오셔서 만나서 반가웠다.
우리의 배낭을 보고 백두대간 하시냐고 물으시길래 제주에서 와서 며칠을 걷고 있다 말씀드리자 잘 가시라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다.
정상에 올라 한숨 쉬며 간식 먹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능선과 지나온 능선을 감상하다 마음 다 잡아 먹고 다시 운행했다. 아침 뜀박질이 무리가 갔는지 죽을 맛인데 조망이 조아서 위안 삼고 걸었다.
693봉을 올라 라면을 끓이며 두릅을 넣어서 먹으니 안 먹어본 사람이야 그 맛을 알 리가 없다. 날씨 탓인지 물을 많이 먹었고 라면을 끓여 먹고 나니 서로에게 물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도 조금 더 운행하면 새목이재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고 지도에 나와있다.
물을 아끼자고 얘기하며 새목이재에 도착해보니 지도상에 샘 표시는 있는데 찾을수가 없어
여기저기 헤메다 좀 더 걷자고 하여 강행하는데 갈증이 왜 이리도 심한지...
대간의 붐이 인지 몇 년이 지났다고 들었는데 관에서 표시판을 해 논건 드물고 그저 대간꾼들이 붙여놓은 표지기와 GPS에 의존하여 걷다보니 조금씩 알바하기 시작하고 날씨는 무더워 오고 걷기가 싫증나기 시작했다. 시리봉을 지나 한 시간 여를 걸으니 역사의 현장이 나왔다. 아막성터와 아막산성,백제는 아막성, 신라는 보산성이라 불렀다 하고 양국 간에 치열한 전투가 이여졌던 곳이라 한다. 너덜 바위지대처럼 걷기는 좀 불편했지만 성을 쌓은 기술은 2000년이 흐른 지금 봐도 휼륭했다. 복성이재에 가면 마을로 내려가 물을 받아 오시겠다 하던 성산형은 언덕 하나 남기고 오른쪽 마을로 무작정 가신다.
관광객 아줌마들이 나물을 캐고 있는데 어디가면 먹을 게 있느냐고 여쭸더니 다음 길에 포장마차가 있다고 하신다.
소리쳐 성산형이 발길을 돌려 포장도로를 따라 포차로 가시라 하고 우린 언덕을 하나 넘어서 함류했다. 우선 포차에 들어가 막걸리를 시키고 시원하게 한 잔하는데 옆에 경상도 말씨를 쓰시는 아줌마들이 말을 건네온다.
“저 큰 배낭 매고 어디까지 가시는겨?”
“백두대간 종주합니다. 제주에서 몇 일전 출발하여 매일 걷고 있어요. 먹을 것 있으면 좀 나눠 주세요.”
성산형은 넉살도 좋다. 그 말이 끝나자 아줌마들은 짐을 푸시고 떡을 주시더니 걸신든 듯 먹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밥도 주시고 상추와 된장, 단무지까지 주신다.
그걸 다 먹고 눈치 보는데 한 아줌마는 뭘 더 주려하는 눈치고, 옆에 사람 만류하는 눈친데, 맘 좋게 생긴 아줌마 참외를 꺼내 주신다.
게눈 감추듯 먹고서는 성산형 왈 “우리 물이 필요한데 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옆에서 듣는게 민망할 정도로 들이대시는데 아줌마들이 물도 주신다.
포차 아줌마도 얘길 듣다가 물이 좀 남아 있다며 보태 주신다.
토.일요일만 장사하는데 오늘은 어린이날이라 특별히 나와 있다 하시는데 오전에 꼬였던 일들이 한번에 풀렸다. 완전 대박이다.
포차에서 나오니 옆이 바로 그늘이라 매트 깔고 누웠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주위의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우리의 사연을 듣고자 했다,
성산형이 안주무시고 먼저 얘기를 나누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라 이해할런지 몰라도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박수까지 치시는 분들도 있고, 할 수있다 할수 없다 갑론을박이다. 어떤 분이 차에 가서 사탕 한 줌 들고 나와 걷는 길에 요기하라며 주시고 배낭 한번 들어보자는 분도 계시고... 시원하고 재미있었지만 마냥 그런데서 쉴 수만은 없어 지리산과 덕유산 중간이라고 하는 복성이재를 떠나 봉화산으로 향했다.
복성이재는 옛날에 변도탄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는데 임진왜란을 예측해 북두칠성 중 하나인 복성이 이 곳에 떨어져 그 곳에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거기에 두었던 쌀가루를 나중에 군량미로 사용되게 했다고 해서 복성이재로 불린다 하고 아래 동네는 성리 마을이라 하는데 흥부가 놀부에게 쫒겨나 살았던 마을이라고 한다. 흥부의 묘라는 표식기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저 고전으로만 알았던 이들이 실제 존재했다하니...
험한 산새는 아닌데 배도 부르고 한참을 자고나니 걷기가 싫어졌다.
소나무 지대를 지나 조금 더 걷노라니 철쭉제를 준비한다고 등산로 옆쪽에서 분주한 모습들이 보이는데 철쭉은 이제야 시작되고 있으니 무슨 꽃 축제 같은게 타이밍을 맞추는 게 힘이 드는가 보구나 생각하는데 전망대 비슷한게 나오고 사람들이 좀 있는데 “하드, 아이스크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냅다 뛰어가 하나씩 먹고 입맛 다시다 또 하나씩 더 사먹었다. 산 옆구리에서 먹는 아이스크림 맛도 정말 최고다.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린 운동회 날이라도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을 맘껏 먹어보는게 소원이었다. 물론 시골 친구들도 별반 없었는데 우리 집만 유별나게도...
그래서 인지 그래도 인지 대통령이 꿈이었다.
대통령이 되어서 권력을 맘껏 휘두르는게 아니라 밥 대신 매일 자장면 먹고 물 대신 매일 환타를 먹고, 암튼 배고픔에 꿈이...어머니가 보고파 목메어 왔다.
잠시 숨을 돌리고 산정을 향해 가는데 몇몇 등산객들이 두릅을 채취하고 있어 우리도 신경쓰며 두릅을 찾았다.
올라가는 길이라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길을 물으면 우리가 올라온 길 안내도 해드리고 그들은 우리가 초행길인걸 알턱이 없으니까 ㅎㅎ
봉화산 정상부위는 잡목 하나 없이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큰 두레왓이 생각나 피식하고 웃었다. 몇 해전 상훈형이랑 동료들 그리고 만드레님과 동행하여 석굴암을 거쳐 큰두레왓을 가다가 안개가 많이 껴 도중에 하산 한 일이 있었다.
그 후로 틈만 나면 만드레님이랑 둘이서 그 길을 따라 올라갔다. 라면에 쇠주 한잔 걸치고 내려오고 다음에 조금 더 올라가고 그 다음에 조금 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지만 초행길이라 두려움도 있었고 갈 때 마다 비가 오거나 인개가 끼거나 해서 한 번도 오르지 못했었는데...
봉화산 정상에 서니 좁은 땅 덩어리에 이렣게 산이 많을까 싶을 정도로 사방 팔방 모두가 산이다. 봉화대가 있고 흉물스런 통신 기지국 같은 것도 있다.
표지석에서 기념 촬영 한번 씩 하고 텐트 칠 장소를 물색하느데 임도를 따라 차량 하나가 지나가고 능선 아래에 정자가 보였다. 정자까지 걸어가 정자 옆 지리산 자락이 잘 보이는 곳에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텐트를 쳤다.
물이 넉넉하지 않고 술도 한 방울 없이 라면 만으로 저녁을 대신 하려니 내가 이 짓을 해야는가 회의도 느껴졌다.
어린이날 집에서 애들과 놀아주고 맛난 거 먹을걸...하긴 그 동안 애비 노릇 제대로 한 적도 없지만 집 떠나고 나니 애절하고 미안하고 그렇다.
대충 먹고 대간길 도움주신 분들게 전화를 하려니 배터리가 얼마 남아있지 않아서 그마저 안된다.
그저 잠시 메시지 확인하고 자리에 누워 물을 잘 챙기고 다녀야지 다짐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별과 달을 헤인다
첫댓글 감사히 읽으며 뭐라 표현할 말이 ~~환타 지금도 있겠지만 그 옛날엔 왜 그리도 먹고팠는지 ㅋㅋ 수고하셨습니다^^
한잔술에 옛 생각으로 가슴이 짠해옵니다. 자장면 먹고 며칠간을 세수 안하고 학교에 나가 폼 잡았었는데...이 순간 더 가슴이 저린건 무슨 이유인지 혼자 술 마시며 울고있답니다. 옛날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다는 모르겠지만 저도 옛날 생각하면 눈물이 주루룩 ~~울고 싶을땐 우는것도 ^^
대장님 화이팅~!!!
물의소중함!!! 항상 감사히 마셔야겠다^^ 점점 스토리가 잼나다~~
앞으론 점점 힘들고 아픈 산행길인데, 기억은 또렸한데 표현 할 수 있을까? 같이 산행한 성산형님과 경현이에게 누가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다. 댓글 고맙다 칭구야
제미도있고 짠 하기도하고 아이스께끼 정말오렌만에
들어본 말 정겹게들리네요 두분을 볼때마다
대단하다은생각쁜 우리하늘산학에 업으면 절때안델분*^^*
즐겁게 읽고갑니다 *♥o♥*
누님이야 말로 제주도 하늘 산악회의 감초이십니다 변함없이 행복하고 예쁜 모습 간직하세요
대장님~~~~~존경합니다. 대간의 기운과 열정으로 지금도 그랬듯 앞으로도 멋진 날들로 채워지시길 빌께요.
고맙구나 대간길에서 멀어지니 허탈하고 허무하고 뭘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 정신 좀 자려야겠다.
언제 어느 떼나 지나온 순간들 은 아쉽고 그리운게
인생인데 누구나 할수없는 경험을 함으로써 평생
잊지못할 추억과 소중한 재산이 될겁니다...
그리고 산길에서 물이 소중함 을 절실히...
항상 형님의 열정을 배우려 노력합니다.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아~~그날이여~~
많이도 힘 들었지만 그래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네 평생 잊지 못할꺼야
두릅,아이스크림,환타지난시간들과 옛추억이 되버린 것들
빙대장님과 함께 대간길을 걷는 느낌입니다
함 같이 가시죠 엄청 잼나요
함께 대간길을 여행합니다~~큰 숨이 들이쉬어지네요... 다음 후속기가 기대됩니다..대장님 멋~~지십니다~~^^
검터를 잘 못하는 아날로그ㅠ 무한 관심 고맙습니다.
정성가득한글 감사하고~~흑흑 짜장면 곱배기사줄께~~
배고프다. 배달 시켜주라 ㅋ
글솜씨두 ~ 얼굴만큼이나~ 멋지네여~
별루란 얘긴줄 압니다.
굿
Thank~!!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에고고,,그냥 그노래가 생각나네,,,
그런 노래 들으면 어머님 생각에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