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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7. 어린 양이 인을 떼심
(4) 일곱 번째 인의 개봉
⑭ 큰 음녀의 받을 심판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자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계시록17장~18장)
<일곱째 대접의 내용>
17장과 18장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마지막인 일곱째 대접은 공기 중에 쏟아졌다고 한다. 공기 중이라는 말은 영계라는 뜻과 같다. 영계에 쏟아진 재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재앙을 내리는 곳은 성전의 보좌이므로 하나님의 표현의 보좌이다. 표현의 보좌로부터 짐승의 보좌로 심판이 내려오는 그런 광경이다. 이 말을 우리가 영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표현되면, 진실이 표현되면, 진리가 표현되면 사탄이 자연히 드러나게 되고 거짓이 밝혀지게 된다는 것이다. 성전의 보좌가 열리게 되면 짐승의 보좌가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표현되면 거짓 하나님인 사탄이 드러나게 된다. 진실이 드러나야만 거짓이 드러나지 진실이 나오지 않으면 거짓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후벼 파더라도 나오지 않는다.
세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실을 밝히겠다고 난리를 친다. 그것을 통해서 현재 자기들의 진실성을 입증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후벼 파봐야 나오지 않는다. 진실이 드러나야 가짜가 드러나는 것이지 같은 가짜끼리 후벼 파봐야 그것이 나오겠느냐 결국 사람들이 뒤로 알고 보면 정치보복이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아니라 하지만 결국 알고 보면 정치보복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표현되어야 사탄이 드러나게 된다. 진실이 표현되어야 거짓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만이 참된 심판이 되는 것이다.
짐승의 보좌! 지난번에 말씀드렸지만 짐승은 인간이 못된 것이 짐승이다. 저 짐승 같은 놈 이렇게 말할 때는 인간 못 된 놈이라는 뜻이다. 좋은 말로 하면 인간이 덜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인간이 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섯째날 짐승도 만들어지고 사람도 만들어졌는데 짐승까지만 만들어지고 못 만들어진 것도 있고 짐승의 단계를 벗어나서 인간이 된 것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도 짐승의 수준에서 머물러버릴 수도 있고 거기서 사람 수준에 오를 수도 있다. 우리는 한면으로는 짐승이고 한면으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면으로는 짐승과 똑같다. 거기서 머무르는 것은 짐승이고 거기서 넘어가면 사람이 된다. 짐승의 보좌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사람이 덜된, 못된 그런 보좌이고 왕권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보좌에 비하면 세상의 보좌는 덜된 보좌이다. 어린양의 그리스도의 보좌에 비하면 세상의 보좌는 인간이 아닌 짐승의 보좌라는 뜻이다. 참사람의 보좌가 안됐다는 말이다. 참사람의 보좌까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짐승의 보좌가 된 것이다.
침팬지나 우랑우탄이나 유인원을 보면 사람하고 흡사하다. 우리 기준으로 말하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지만 생각도 있고 감정도 있고 다 있다고 할 수 있다. 맨 처음 침팬지를 보고서 상당히 그때 좀 허탈한 감이 들었다. 창경원에 가서 앉아있는 것을 아무리 봐도 털이 좀 있다, 좀 검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꼭 인간이었다. 우리 기준으로 봐서 코가 납작해서 좀 못생겼는데 자기들 기준으로 봐서 못생긴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볼 때 털이 있으므로 짐승 같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털이 있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우리처럼 옷 입을 필요도 없고 항상 털외투를 입고 다니는 것이다. 그것도 좋은 것이라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하고 못할 것이 없다. 특별히 특이한 것은 보통 짐승은 젖이 밑으로 쭉 6개씩 달려있는데 이것은 사람처럼 달려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나니 허탈한 생각이 들었는데 인간과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하는 생각이 옛날에 들었다.
여기서 짐승의 보좌라고 표현한 것은 참사람의 보좌가 아니라는 뜻이다. 세상의 보좌는 참사람이 덜된 것의 보좌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서 사람들이 완전한 것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전쟁만 할 수밖에 없다. 짐승의 보좌를 짐승의 보좌로 알면 짐승의 보좌니까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짐승의 보좌를 사람의 보좌로 잘못 생각하고 있으니까 왜 잘못하나 왜 정의가 없냐하고 있다. 돼지보고 너는 왜 똥을 싸냐하고 개보고 왜 짖느냐고 하는 것이나 똑같다. 개는 짖는 것이 당연하고 돼지는 깨끗한 것을 좋아해도 게으르기 때문에 똥을 싸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세상을 알 때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를 알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돼지보고 더러운 놈이다 하지 않는다. 돼지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보고 악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이므로.
세상을 볼 때 세상을 정확히 알면, 그렇다고 세상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대로 특색이 있고 그들대로 다 잘한 것이다.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면 새는 날아가는 것이고 지렁이는 기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알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 계시록에 나오는 것은 참사람과 참사람 안 된 것에 대한 문제이다. 성전의 보좌와 짐승의 보좌로 나온 것은 참사람과 참사람 아닌 것의 보좌를 얘기한다.
A. 음녀와 짐승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인데 큰 음녀와 짐승인데 큰 음녀는 위대한 도시, 크다는 말은 위대하다는 뜻이다. 문명은 점점 도시화되고 있다. 도시화 되는데 이것은 바벨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흩어짐을 면하자 이것이 도시화이다. 도시화된다는 것은 사람의 위대한 힘을 집결하자는 뜻이다. 이것이 계시록에는 서울특별시다 이런 문제가 아니고 결국 교회의 이상이다. 교회도 하나의 사회이다. 어떤 잘못된 교회이다. 짐승은 사람에 비해 힘이 세므로 종말적인 권세를 의미한다. 사자나 호랑이나 곰의 힘을 사람이 당해낼 수가 없다. 곰이 한번 쳐버리면 힘이 세므로 사람이 납작해진다. 이것은 종말론적 제국, 종말론적 권세를 상징한다. 큰 음녀는 이런 종말적인 권세를 타고 있다. 깔고 앉아 있다는 것은 그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B. 큰 음녀의 모습
큰 음녀의 모습을 보니 여러 가지 모습이 되는데 사탄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탄은 두 가지로 표현되는데 하나는 짐승으로 하나는 음녀로 짐승은 권세를 표현하기위해 있고 음녀는 어떤 사회, 종교를 표현하기 위해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합해서 세상이 된다. 짐승과 음녀가 합해서 세상이 된다. 이 큰 음녀의 모습은 자주빛 붉은 옷을 입었더라. 자주빛은 왕의 옷이다. 왕권을 상징하는 옷이다. 마가복음 1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에게 자주색옷을 입혔다고 했는데 유태인의 왕이라는 것을 조롱하기 위해서 입혔던 옷이다. 음녀는 왕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왕이 아닌데도 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 금, 보석, 진주로 꾸몄음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다. 새 예루살렘성과 비슷하다. 새 예루살렘도 금과 보석과 진주로 되어 있는 성인데 이 성도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다. 새 예루살렘을 말할 때 계시록 21장에서는“신부가 남편을 위해서 단장한 것 같더라”했다. 큰 음녀가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더라고 했다. 우리말로 비슷한 말인데 단장했다는 말은 코스메오γοσμεω(kosmeo)하는 말로 정리했다 배열했다는 뜻이다. 정리했다는 것은 우리가 신랑을 위해서 정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집을 가려면 정리를 해야 된다. 시집가기 전에는 어떻게 했던지 시집을 가려면 정리를 해야 한다. 그것이 단장한 것이다. 화장을 한 것이 단장이 아니라 주변정리를 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없겠지만 처녀들이 혹시 옛날의 남자 친구도 있고 할 것인데 시집을 가려면 싹 없애야 한다. 불에다 싹 태워버리고 가야된다. 물론 마음에도 태워버려야 되겠지만 겉으로도 없애야 한다. 다음에 신랑이 그것을 보면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싹 정리해서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 예루살렘은 단장되어 있다. 코스메오γοσμεω(kosmeo)라고 했다. 정리해서 영화롭게 한 것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했을 때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 말씀을 생각해보면 정리했다는 말이다. 우리 인생을 정리했다. 하나님을 위한 목적으로 정리했다. 아버지만을 위한 목적으로 정리한 사람이다. 그것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갈 길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리하는 중이다. 모든 것을 정리하는 중이다.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집에 가서 모든 것을 정리해서 팔 것은 팔고 없앨 것은 없애고 모두 현금화시킨다. 논도 있고 밭도 있고 산도 있고 여러 가지 재산이 있었는데 그 재산들을 모두 정리해서 다 현금화시켜서 밭주인에게 가서 이것을 삽시다 이렇게 되었다. 물건을 사러간 사람이 현금을 안가지고 가서 우리 집에 밭도 있고 논도 있고 산도 있는데 이것 좀 사자하면 팔겠는가 안 팔고 돈으로 정리해서 오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벌써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를 알고 무엇을 사야할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을 정리해서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정리해야 한다. 이것이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큰 음녀는 꾸몄다.(계17:4) 크리소라는 단어를 썼는데 도금한다, 입힌다는 뜻이다. 속은 그냥 있는데 껍데기만 쌌다는 뜻이다. 새 예루살렘은 정리할 때 많은 과정을 거친다. 산을 팔아야 되고 논을 팔아야 되는 것은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금화 시키려면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 새 예루살렘은 과정을 거쳐서 처리되고, 정리되고 영화롭게 된 것이다. 우리의 성품이나 생활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처리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다. 처리는 정리하기 위해서 한다. 정리는 우리가 쓸데가 있기 때문에, 쓸데에 맞추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맞추기 위해서 정리하는 중이다. 그분이 우리의 표본이 되고 우리의 신랑이 되기 때문에 그분에게 맞추기 위해서 정리하는 중에 있다.
이번에 수능시험을 봤다. 수능시험 본 학생들은 그 동안 여러 가지 공부를 했는데 막상 시험 보러 가려면 정리를 해서 가야한다. 아는 것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된 학생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아는 것은 많은데 시험장에 가면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정리를 해야 한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어도 이말 조금 듣고 저 말 조금 듣고 하면 안 되고 정리가 되어야 한다. 처리되고 정리되어야한다. 신랑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의 모든 인생은 정리되어야 되고 처리되어야 된다. 거기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거기 필요한 것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지금 길이 바쁘고 가야될 곳이 중요하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을 정리함에 있어서 쉬워지게 된다. 어느 것은 필요하고 어느 것은 필요하지 않구나 하게 된다.
우리가 인공위성을 타고 달나라에 간다면 많은 문제들을 정리해야 한다. 첫째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무거운 것은 안 되고 가벼워야 된다. 비행기 값이 비싼 이유가 저렇게 큰 덩어리를 만들려면 엄청난 압력을 받고 가는 것이므로 첫째로 단단해야 된다. 공기 중에 올라가면 영하70도 이상 되는데 영하 70도에서 견뎌야 한다. 시간당 1000km로 가야되므로 압력이 엄청나게 많다. 보통 다른 것 같으면 열이 일어난다. 거기서 견뎌야 되고 사람이 많이 타야 된다. 물론 크게 하고 단단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무거워서 올라갈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가벼워야 되고 단단해야 되므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다. 가볍고도 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티타늄을 사용한다는데 그것은 가볍고도 단단한 것이다. 안경테도 가볍고 단단해야 하므로 티타늄으로 만든다. 단단하게만 하려면 간단하지만 무거운 것을 끼고 있으려면 많이 아프다. 단단하면서 가벼워야하므로 값이 비싸다.
우리가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를 처리하고 정리하는 것은 이런 문제에 속한다. 그분에게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것은 좋아도 필요 없는 것이 있고 이것은 값이 많아도 필요 없는 것이 있다. 값이 없는 것 같지만 필요한 것도 있다. 가볍고도 단단해야 된다. 새들은 가벼워야 되므로 뼈가 아주 단단하다. 소뼈는 땅위에 걸어 다니는 것이므로 무거워도 상관없다. 새들은 몸이 무거우면 날아가지 못하므로 조류들의 뼈를 보면 아주 단단하고 얇고 가볍다. 티타늄 재료와 마찬가지이다. 그런 뼈들을 개가 먹으면 뼈가 너무 단단해서 창자가 뚫어진다. 개한테 닭 뼈다귀 같은 것을 주면 창자에 찔려 개가 죽는다. 제주에서도 닭 뼈를 주어서 개가 죽었다.
새 예루살렘은 과정을 거쳐서 처리되고 정리된 사람들을 말한 것이다. 신랑 그리스도를 위해서 처리되고 정리된 사람들이다. 날아가려면 가벼워져야 된다. 좋은 것이 아무리 있어도 소용이 없다. 큰 음녀는 도금을 했으므로 속과 겉이 다르다. 이 사람은 남편이 없고 자칭 여왕이라고 말한다. 여왕이란 말은 자주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머리가 없고 자기가 주동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나는 과부도 아니고 여왕이다. 이것이 세상의 속성인데 세상의 모든 속성은 자기가 다 자주자이고 자기가 다 여왕이다.
2) 손에 금잔을 들었음
손에 금잔을 들었다. 금잔은 왕의 술잔이다. 예레미야 51장 3절에 보면“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미쳤도다”세상을 자세히 보면 어떤 큰 제국의 영광, 금잔, 거기서 주는 포도주를 마시고 다 미쳤다 세상은 세계 제패권을 가지고 미쳐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꾸 바꾸어진다. 희랍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영국으로 불란스로 미국으로 소련으로 중국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미쳐있다.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들이 여기 미쳐서 전쟁을 하는 것이다.
왕의 술잔에는 가증한 물건들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하더라. 다니엘서 11장 31절에“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를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이런 말이 나오고“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단12:11) 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모두 우상 숭배로 예표된 거짓 숭배를 말한다. 황제숭배가 옛날에는 굉장히 성행했는가 보다. 일본에서 천왕을 숭배하듯이 황제숭배를 했는데 일본의 천왕숭배는 의미가 좀 다르지만 고대 중동이나 그런 곳에서는 황제를 완전히 신으로 섬겼던 그런 때가 있었다. 이것은 왕권의 자랑이다. 왕권의 자랑이 가증한 것들에 속한다. 세상이 볼 때는 참 영화로운 것이고 빛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가증한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만일 세상의 어떤 자랑들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술잔에 넣고 있다면 세상은 볼 때 부럽다 하겠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가증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세상의 것들은 자기 자랑이고 자기 능력의 표현이고 자주자의 표현이므로 하나님이 볼 때는 미운 것이다. 가증하다는 말은 밉다는 말이다. 하나님으로 영화로워야 되고 하나님으로 자랑해야 되고 그분으로 영광스럽게 되어야 되는데 자기가 만든 것으로 자기 영광을 나타내고 있으면 하나님이 볼 때 미운 것이다. 가증한 것들로 가득하다. 왕의 술잔에는 하나님이 볼 때 미운 것들로 가득차 있다는 뜻이다.
3) 이마에 이름이 있음
이마에 이름이 있는데 비밀(μυστηριον)이다, 큰 바벨론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미스테리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미스테리라는 말은 희랍어에서 나온 말 같은데 비밀이다, 큰 바벨론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볼 때 큰 바벨론은 물질적 바벨론하고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질적 바벨론 같으면 비밀이라는 말이 안 나온다. 물질적 바벨론이 아니고 어떤 정신적이고 영적인 바벨론이기 때문에 비밀이라는 말이 붙었다. 숨어있는 바벨론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지배하기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력, 보이지 않는 힘이다. 이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다, 근원이라는 것이다. 어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것이 고대사회에서는 종교였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상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지만 그때 당시로는 간단하게 종교이다.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정교일치의 사회, 고대사회 일수록 정교일치의 사회다. 원시사회는 지금 말하면 무당인데 무당이, 신접한 사람이 결국 추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차차 내려와서 황제예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은 정교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미국 ?에서 여러 나라들이 정교분리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옛날에는 정교가 분리되지 않고 지금도 중동에는 정교가 분리되지 않고 이라크나 이란에 가면 정교가 하나가 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호메인옹 같은 사람은 왕이 아니지만 종교적인 실권자다. 종교적인 실권자에 의해서 왕도 움직여진다. 이런 사회가 로마 제국에까지 왔다. 그래서 교황이 생기게 되고 황제가 있게 되었다. 여기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병폐들 때문에 혁명을 일으키고 혁명을 일으켜서 지금 미국이라는 사회로 돌아오면서 미국의 헌법에는 정교분리가 확립되어 있고 우리나라 헌법에도 정교분리가 확립되어 있다.
이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했으니 이것은 짐승을 움직이는 힘이다. 짐승의 보좌가 노골적인 바벨론이라면 여기 큰 음녀는 비밀한 바벨론이고 숨어있는 바벨론이다. 로마를 움직이는 것은 로마의 종교였다. 지금 말하면 천주교, 가톨릭이 로마를 움직이는 종교였다. 말기에 와서는 어느 때는 종교가 로마를 움직이고 어느 때는 로마가 종교를 움직이고 했다. 서로 싸우는 역사가 계속되게 되었다. 옛날에는 아예 그런 것이 없고 종교가 정치를 완전히 지배하는 그런 사회였다.
여기서 음행(πορνε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포르네오라는 말인데 우리가 포르노라고 말하는 팔다(πορνος)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래서 창녀라는 말이 자기 몸을 판다고 해서 나오게 되었다. 세상 왕들과 거민들과 깊은 이해관계가 있는 어떤 것인데 그것이 그때 당시로는 종교다. 분명하게 물질적 쓸 때는 아직은 로마제국이 국교화 되기 전이었다. 그런 시대인데 이런 예언을 하게 되었다. 그의 영적인 안목에서는 그 어떤 영적인 지배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그런 계시를 본 것 같다. 유태나라 같은 곳은 정교가 일치된 나라이다. 유대인으로서 요한에게는 장차 올 세계가 이 비밀한 바벨론에 의해서 바벨론이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다. 유태나라가 그랬기 때문이다. 세상 왕들과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으면 왕들이 나오고 종교가 나온다. 그 나라의 흥망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그들의 종교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여호와의 예배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꼭 종교가 그렇다고 볼 수 없는데 지금 정교분리가 되어 있는 이런 사회 안에서는 종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철학사상이 세상을 휩쓸고 다닌다. 꼭 종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힘이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고 마지막에는 그것이 종교화 된다.
4)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음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다. 이것은 피를 흘렸음을 의미하고 있는데 종교가 흘린 피를 의미한다. 유태교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너희가 담당하리라”(마23:30, 눅11:51 참조) 이런 말이 나온다. 종교적인 이유로 많은 선지자를 죽였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시대에도 마찬가지고 가톨릭시대에도 마찬가지고 개신교에 와서까지도 역시 그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빌라도가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책임을 안지겠다 하니“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27:25)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유태인들이 독일에서 6백만이 학살당했는데 이것을 이 예언에 응한 것이라 한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 달라 했기 때문에 그 보복을 받은 것이라 해석한다.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지만 유태교라는 종교가 유태사회에서 행한 일들 가운데 선지자들을 죽인 죄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고 그와 똑같이 로만가톨릭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것을 볼 수 있다.자기들이 말할 때는 이단이지만 그것이 진실한 성도들일 수 있다. 그 사람들을 죽인 죄를 반드시 담당해야한다. 기독교 역시 자기들이 볼 때 이단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이 볼 때 진실하다면 그들은 그 피를 담당해야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 목사로 있다가 퇴직한 사람인데“기독교 죄악사”란 책을 썼다. 2천년 기독교 역사의 죄악사를 고발한다고 썼는데 그것도 일각에 불과하겠지만 그것을 고발하겠다는 정신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을 읽어보면 로마제국이 기독교인을 핍박해서 죽인 것보다 로마교가 종교가 성도들을 죽인 숫자가 더 많다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했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디.
5) 많은 물과 짐승을 타고 있음
a. 많은 물 위에 앉음
많은 물과 짐승을 타고 있다. 많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5:9, 11:1, 사8:7, 렘47:2 참조)을 가리켜 말할 때 많은 물이라고 표현을 했다. 많은 물위에 앉아있으니까 많은 백성과 나라들을 지배하고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의 임금들도 있고 땅의 거민들이 있다. 땅의 임금과 거민이 세상인데 그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b. 붉은 빛 짐승을 탔음(13:1 참조)
붉은 빛 짐승을 탔다고 했는데 이 붉은 빛 짐승은 전쟁과 관계되고 힘과 관계된다. 우리는 둘째 말이 붉은 말이었고 그 붉은 말은 전쟁의 말이라는 말을 6장 3절에서 맨 처음에 했다. 붉은 말 그리고 여자가 낳은 아이를 삼키기 위해 있던 용도 붉은 용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힘과 전쟁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런 짐승을 탔더라고 했으니 세상의 큰 권세를 타고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세상의 큰 권세를 타고 있는 종교가 과연 어떤 종교일까? 물론 어떤 종교든지 그렇게 하기를 다 원하고 있다. 못해서 그렇지 세상의 권세를 타고 앉아 있기를 종교마다 다 원하고 있다.
(1) 광야에 있음(영으로 데리고 감)
광야에 있다. 영적으로 나를 끌고 광야로 데려갔다 했는데 영으로 말하면 영적광야이다. 이 영적광야가 어디인가? 세상은 영적 광야이다. 세상은 화려하지만 영적으로는 광야이다. 광야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황무하다는 말이다. 교회가 핍박당하는 곳이 여기였다. 계시록 12장에서 아이를 낳은 여자가 광야 자기 곳으로 가더라 그래서 1260일 동안 용에게 핍박을 받더라는 말이 나온다. 영적으로 황무한 곳에서 교회는 핍박을 당한다. 영적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곳에서는 교회가 살판이 나겠지만 영적으로 황폐한 곳에 가면 교회는 핍박을 당하게 된다.
(2)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함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더라고 했다. 이 참람(βλασφημια)하다는 말은 중상, 조롱, 모독, 헐뜯음 등의 뜻이다. 이름을 여러 개 달고 있다는 말이 아니고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린양을 조롱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보면 자기가 세상의 세력이 크니까 자연히 어린양을 조롱하고 중상하고 멸시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호랑이 몸에는 어린양을 조롱하는 하는 것이 가득하다. 호랑이의 이빨도 어린양을 조롱하고 있고 눈썹도 어린양을 조롱하고 있고 수염도 어린양을 조롱하고 있고 얼룩무늬도 어린양을 조롱하고 있고 모든 것이 다 어린양을 조롱하는 색깔이다. 즉 참람한 이름들이 가득한 것이다. 제국과 황제들에게는 그 자체가 어린양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이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에서 보면 우리가 그것을 역력하게 볼 수 있다. 어린양을 조롱하는 이름이 가득 차 있는 사람도 있고, 조금 덜 차 있는 사람도 있고 일부만 조금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완전히 차서 손톱 끝부터 발톱 끝까지 어린양을 조롱하는 이름으로 가득차서 멸시하는 이름으로 충만해 있는 사람도 있다.
(3) 일곱머리와 열뿔이 있음
a) <일곱머리>-여자가 앉은 일곱산, 일곱왕(로마의 일곱산 참조)
일곱 머리와 열뿔이 있더라고 한다.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라고 한다. 이 일곱 산은 일곱 왕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로마라는 도시가 일곱 산위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는 로마라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있다. 여기 일곱 왕이 나오는데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않았고 여덟째는 일곱 중에 속한 자라고 표현해 놓았다. 이는 그때 당시의 말 못할 사정, 노골적으로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참고(로마 황제들)
1대는 아우구스터스(시저) B.C.30-14(A.D.), 2대는 티베리우스 A.D.14-37, 3대는 가리구라 A.D.37-41, 4대는 클라디우스(A.D.41-54), 5대는 네로(A.D.54-68)이다. 그리고 A.D.68-69에는 갈바, 오소, 비레니우스가 있기는 하지만 왕이라 할 수는 없고 1년 사이에 바꿔진 사람들이다. 6대는 베스파시안(A.D.69-79), 7대는 티투스(타이터스) (A.D.79-81)인데 우리가 잘 아는 예루살렘 성을 함락한 사람이다. 그런데 타이터스의 아버지 베스파시안 때 이미 로마에 의해서 유태라는 나라는 정복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거기서 반란이 일어나서 타이터스가 가서 완전 초토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8대는 도미시안(A.D.81-96)인데 사도요한의 시대는 도미시안 시대이다. 타이터스 시대를 지나서 도미시안 시대까지 왔다. A.D.81-96년까지이니까 이 시대 속에 있었던 것이다. 요한은 도미시안 때 섬에 유배를 가 있었다.
여기서 여덟째나 일곱째에 속한다고 하니까 도미시안은 타이터스에 속한다는 말이 된다. 즉 성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않았고 여덟째는 일곱 중에 속한 자라는 알쏭달쏭한 말이 이런 황제들을 놓고 하는 말이라고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해석하면 이 말이 맞을 것이다. 이것은 다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꼭 역사적인 네로가 아니더라도 네로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모든 제왕은 알고 보면 다 네로이다. 네로의 혼을 받고 있는 네로의 혼 안에 있는 네로의 혼을 받은 모든 제왕은 다 네로에 속한다. 타이터스의 혼을 받은 모든 제왕은 다 타이터스에 해당된다.
b) <열뿔>-열왕
열뿔이 있는데 이것은 열왕이라고 말한다.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짐승으로부터 일시적 권세를 받아서 한뜻으로 짐승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더라고 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해석하기를 구라파의 10개국을 상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구체적인 물질적인 세계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왕할 때 열이라는 숫자는 항상 완성의 숫자, 충만의 숫자이니까 그런 의미로 쓰여졌다. 이 사람들이 모두 공통적인 특색이 있는 것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더라는 것이다.(10:11-21 참조)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모든 것이 사실은 열뿔에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옛날도 마찬가지이다. 예언은 항상 그렇다. 지금도 열뿔이 있을 수 있고 그때도 열뿔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에 한하여 완전한 숫자, 충만한 숫자이다.
이것을 종합적으로 말하면‘종말적 권력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양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총체적인 세력이다. 그것은 옛날도 있고 오늘날도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니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한다. 이것을 볼 때 이것이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가지고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어린양의 역사 안에서 호랑이를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역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다.“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니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했는데 여기의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입은 자들이 누구인가? 오늘 우리이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과연 세상의 권세를 이기는가? 이기지 못한다. 우리는 어떻게 이기는가? 영적으로 이긴다는 말이다. 이것은 영적 전쟁이다. 이것이 로마 나라냐 아니냐, 구라파냐 아니냐고 해서 거기에 예언을 맞추려고 한다. 늘 예언이 안 맞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2000년 동안 이것을 현실에 역사에 적용을 해서 해석을 했다. 아무리 해석해도 안 맞는 것이다. 2000년을 마지막으로 해서 한참 난리를 치지 않았는가. 2000년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하여 난리를 쳤는데 2000년이 지나고 나니 요즘은 완전히 들어갔다. 어디 땅 속으로 들어갔는지 무저갱으로 들어갔는지 그 소리가 다 없어진 것 같고, 3000년이라는 말은 아직 안 나오고 있다. 유명한 사람들이 난리치더니 어디로 들어갔는지 다 들어가고 없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을 역사에 맞추려고 하다보니 자기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연구하여 계산을 했겠지만 그것은 안 맞는다. 이것은 영적인 전쟁이다.
오늘 우리가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하다면 우리는 어린양과 더불어서 짐승의 세력을 이길 것이다. 지금도 이기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길 것이다. 이것이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날 날도 올 것이다.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는 영적인 전쟁 가운데 있다.
6) 열뿔과 짐승이 음녀를 멸망시킴
열뿔과 짐승이 음녀를 멸망시키더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열뿔과 짐승을 타고 있었고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열뿔과 짐승이 음녀를 멸망시키더라는 것이다. 망하게 하고 벌거벗기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사르고 저희 나라를 짐승에게 주더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더라. 그런데 이것은 세상의 권력은 종교의 지배를 받아도 마지막에는 그 종교를 자기가 지배해버리고 만다. 자기가 세력을 얻으면 지배해버리고 만다.
로마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황제가 가톨릭을 세웠다. 그때는 황제 밑에 있는 것처럼 되어있었지만 종교가 점점점점 세력을 확장해서 커 갔다. 왜냐하면 전 국민이 가톨릭이 되니까 황제도 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황 밑에 황제가 들어간다. 어느 시간이 돌아와서 황제권이 점점 커지면 자기가 종교를 지배하려고 한다. 마지막에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솔리니가 로마의 종교권을 완전히 제한해 버렸다. 지금은 로마라고 하면 이태리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로마시티, 그 한 도시를 이야기한다. 극히 제한된 하나의 도시를 이야기한다. 그곳만 분리시켜 여기에 살라고 무솔리니가 분리시켜 버렸다. 그 전까지는 구별이 없었다. 로마하면 이태리 반도 전체가 로마였다. 그리고 어쩌면 전 세계였다. 지금은 완전히 축소되어 땅은 그렇게 좁아졌다. 왜냐하면 세상 권력이 세력을 얻으니까 자기가 거기에 절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정치가들은 자기가 힘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힘을 얻기 위해서 이것도 이용하고 저것도 이용한다. 정치는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니까 경제도 이용하고 종교도 이용하고 모든 것을 다 이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도 여기에 몇만명이 모인다고 해보자.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될 것이다. 건축 일도 척척 진행될 것이고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가 몇만명 몇십만명 모인다면 표가 많으므로 국회의원 할 사람도 와야 되고 군수 할 사람도 와야 되고 다 와야 되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렇다. 정치가들이 교회에 가서 앉아있는 있는 것을 보면 좀 가증스럽다. 정치를 하려고 앉아있는 것이므로 그렇게 자기가 필요할 때는 오지만 필요하지 않을 때는 오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세력을 얻고 난 다음에 자기가 지배하고 싶지 자기가 지배를 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한 말은 열뿔과 짐승의 음녀를 멸망시키더라고 했다. 그것이 로마 역사에서 증명이 되었다. 완전 멸망은 못시켰지만 지금 바티칸에 가보면 그 영역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명 1동도 안 되는 조그만 영역을 로마 시티로 규정해 놓았다. 세상 권력은 종교를 이용하고 마지막에 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도 기독교가 필요 할 때는 이용하지만 세력을 일단 잡은 다음에는 없애버린다.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이것은 어떤 물질적 바벨론이 아니라 영적인 바벨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적인 바벨론이 멸망으로 차차 이어져가고 이 영적인 바벨론이 멸망하면서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시작된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이 세상 권력 때문에 못한 것이 아니고 이 영적권력인 바벨론 때문에 못한다. 영적권력인 이 바벨론이 없어져야 결국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세상 힘과 야합하는, 거기 합해진 그런 종교가 없어져야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진다는 뜻이 된다. 교회가 물량주의나 세력주의나 이런 것에서 벗어나야 어린양이 거기서 환영을 받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도 어린양은 환영받지 못한다. 말만 교회지 어린양 교회가 아니다. 어린양은 멸시받는 교회이다. 왜냐하면 커져야 되고 위대해져야 되고 높아져야 되고 세상에 인정받아야 되는데 어린양이 어디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결국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이루어질 수 없다.
바벨론의 멸망 큰 권세를 받은 다른 천사가 내려와서 땅이 환해지더라는 말은 땅에 모든 것이 다 밝혀지더라는 것이고 힘센 음성으로 외치는데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하는 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이 말은 이사야 13장과 예레미야 50장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다 하는 말이 나오고 여기서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예언이 되어있다.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될 것이라는 말이 있고 바벨론이 함락하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더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구절을 이용한 말이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모두가 영적인 말이다. 귀신의 처소, 각종 더러운 영,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 이것도 모두 구약성경에서 인용된 말이다.
그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 만국이라는 말은 나라라는 말이 아니고 모든 사람, 모든 민족, 모든 인간, 종족, 무리 이런 뜻이다.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고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에 인하여 치부하였도다”이것은 종교적인 세력으로 죄가 하늘에 사무쳤다는 것이다.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 불에 살라질 것이고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과 상고들이 불붙는 연기를 보면서 울고 가슴을 치더라는 말이 나온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세상의 왕들, 미국이나 중국은 일시에 안 무너진다. 일시에 무너질 수가 없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우려먹을 것이 있다고 미국이 아무리 망한다 해도 30년은 우려먹을 것이고 어쩌면 3백년 우려먹을 것이고 우리가 볼 때 객관적으로 중국이 한동안 완전히 빈민굴처럼 되었지만 그래도 중국은 먹을 것이 너무나 넉넉하다는 것이다. 부자가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남아있다는 식으로 중국은 그 광대한 땅에 광대한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 하면서도 굶어죽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일시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일시에 무너질 것은 큰 성 바벨론이다.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진실이 드러나면 일시간에 심판을 받는다. 상인들이 슬퍼하고 각선장과 승객들이 슬퍼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이것을 보면 물질적인 바벨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영적인 바벨론을 의미한다.
세상을 지배하던 어떤 종교가 일시에 진실이 드러날 때 무너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을 좁혀서 기독교인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종파가 있다면 진실만 드러나면 일시에 거짓으로 드러날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면 일시에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로다”하는 저주가 나오게 되었고 “너희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 되었도다” 복술은 마술이고 술수인데 이것을 보더라도 세상의 재앙 그런 바벨론이 아니고 영적바벨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 안에는 많은 마술과 복술이 있다. 사람들이 이 복술에 취해있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비인간적인대로 돌아간다던지 천당에 간다는 명목으로 비인간화 되면 이것이 모두 복술과 마술에 놀아난 것이다. 남이 볼 때도 천당에 못가겠다고 생각하는데 자기는 천당에 간다고 믿고 있다든지 다니면서 너는 안 믿으니까 멸망 받고 우리는 믿으니까 구원받아 천당 간다고 하는 것은 모두 복술에 홀려서 그렇다. 진실을 모르는 것이다. 종교 안에는 많은 복술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거기에 말려들어 취해있다. 자기가 그렇게 될 줄로 생각한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가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이 두 가지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바벨론이고 하나는 영적인 바벨론이다. 마지막에 가면 이 둘이 하나가 되어서 결국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기 전에 이 둘이 함께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지고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기 전에 이 두 세력이 무너진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오늘 우리는 이 두 세계 속에 살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영적바벨론이다. 비밀이다, 큰 바벨론이다 하던 그 바벨론이 중요하다. 이것을 전통적으로 해석한 많은 사람들은 다 로만가톨릭이라 한다. 개신교에서는 그렇게 말한다. 물론 로만가톨릭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개신교의 성경을 연구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꼭 로만가톨릭 만이겠느냐 형식상으로 그렇게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그렇게 보이지만 개신교는 아니고 로만 캐톨릭은 맞다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도 똑같은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양을 멸시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큰 성 바벨론이다. 어린양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모든 영적세력은 모두 비밀인 큰 성 바벨론이다. 이 성 때문에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로만가톨릭 때문에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린양을 모독하는 큰 세력 때문에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로만 카톨릭때문 만이라면 개신교가 틀림없이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이루어낼 것인데 개신교가 나왔어도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될 만한 여건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신교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어린양이 설자리가 아직 없는 것이다. 바벨론이 무너질 때 어린양은 등장하게 될 것이다. 18장 19장으로 가면서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이것이 현재이기도 하고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한 것이다.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종말은 결국은 큰 맷돌 같은 돌이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거대한 성이 바다에 잠겨지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 어린양의 완전한 승리를 기대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미미할 것 같지만 이것은 실제이기 때문에 한번 이기면 영원히 이기는 것이다. 이 이김은 진실의 축적이므로 계속해서 진전되어 나가고 축적되어 나갈 것이다. 바벨론은 결국은 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진실이 드러나게 되면 거짓이 모두 밝혀지게 될 것이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창세 이후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는 자들은 다 짐승에 경배하더라. 에덴동산에서 나온 이후로 사람은 진실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허위의 세계로 넘어 왔다는 것이다. 속이는 세계로 넘어와서 그 속이는 세계 안에서는 무엇을 해도 다 속이는 것이다. 속이는 세계 속에서 진실하면 되느냐 하면 속이는 세계 속에서 진실한 것은 더 속이는 것일 수도 있다. 가짜 중에서 진짜처럼 생긴 것은 정말 가짜다. 가짜 세계에서 진짜처럼 생긴 것은 정말 가짜다.
우리가 요즘 약간 빛이 어두운데 가면 조화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영락없이 생화 같다. 손으로 꼭 만져보아야 할 정도로 눈으로 봐서는 잘 모른다. 그 정도로 잘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이냐 그렇지 않고 그것은 진실에서 더욱 먼 것이다. 세상이 진실하니 안하니 자랑하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진실의 세계가 아니라 거짓의 세계로 들어 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거짓의 세력을 혁파하고 진실의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오늘 큰 음녀인 바벨론은 거짓의 어미가 되었다. 거짓의 산실이 되어 이것이 세상에 계속 거짓을 공급하고 있다. 애기를 낳아서 생산을 하는데 산아제한도 하지 않고 계속내고 있으므로 세상이 계속 거짓으로 말려들어 갈 것이다. 우리는 어린양이 계속 승리를 해야 이것이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진실이 모든 것을 입증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 기 도 ]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거대하고 큰 바벨론 속에서 우리가 어린양의 진실과 생명을 보고 앞으로 갈 수 있는 그런 빛을 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바벨론의 영광을 보고 쫓아가는데 주님 우리가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보고 그 냄새를 맡고 우리가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고 우리가 지금 미미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분명히 본 것을 향해서 앞으로 갈수 있고 결말을 향해서 갈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더 깊은 감각과 더 완전한 영감을 주셔서 주님 당신이 있는 곳을 우리가 바라보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진실인 당신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나라를 소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땅위에 이 진실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