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수 시인이 유인수 작가의 그림에 대해 적은 글에서 작가의 작품을 어느 정도 접근하는 기회를 갖도록 해보자.
'80년대 였던가, 내가 처음으로 만난 유화백의 그림에서 나는 도무지 이완시키거나 해체시킬 수 없는 선들의 조합을 보았다. 그 선들은 때로는 광물성 혹은 식물성으로 때로는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등등의 성격으로 유추 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 개개의 선이 개별적으로 상징하는 의미에 있다기 보다는 그것들이 너무 견고하게 직조되어 나와 무엇인가의 사이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막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 점이었다. 답답하였다. 그리고 그 답답함을 현대의 고독이나 단절 또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벽과의 마주침 쯤으로 이해하며 스스로 긍정의 고개짓을 하였다. 참으로 알량하기 짝이 없는 자의적 감상이며 해석이었다는 부끄러움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 후 90년대가 되면서 나의 유화백 화실 엿보기는 좀 더 색다른 재미를 얻기 시작 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무렵부터 그의 화폭에는 그토록 치밀하고 견고하게 구조되었던 선들의 틈새를 비집고 흠사 벌집과도 같은 무수한 기하학적 입체 공간이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저마다의 한정된 공간 속에서 곡마단의 어릿광대처럼 기기묘묘한 자세로 파닥거리고 있는 익명의 사람들, 나는 그들을 통해 나태도 갈망도 절망도 보았고, 고통과 경이와 쾌락도 보았다. 매달림도 기어오름도 흔들림도 보았고, 뒤집힘과 포개짐과 떨어짐도 보았다. 그리고 가끔은 그 모든 삶들이 나 자신의 삶으로 겹쳐지는 당혹한 거북함도 피할수는 없었지만 고성능 투시경을 눈에다 얹은 듯 훔쳐보는 재미를 한껏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욕망이 들끓는 거대 도시(세계)와 일탈의 자유를 얻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이 유화백의 주된 관심사였다면 처참한 생선의 잔해와 한 마리 새의 등장으로 대비되는 아이러니야 말로 이제까지 그가 견지해 왔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자 태도에 해당될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