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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10. 예술 작품과 같은 삶(La vie comme oeuvre d’art, 1986)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in Pourparlers 1972-1990, 1990, pp. 129-138.(P.250)
- 에리봉(Didier Eribon 1953-), Le Nouvel Observateur, 23 août 1986,
[[[푸꼬의 사상을 3시기로 나누면, 우선 고고학적 탐구의 시기로서 지식(에피스테메)관심이고, 바슐라르의 사학적 탐구와 유사하며, 둘째 고문서학자로서 새로운 지도 제작의 시기로서 권력에 관심이고, 니체가 도입되었고, 셋째가 “다르게 사유하기”로서 새로운 주체에 대한 관심인데, 성관심과 자아의 정초(fondation)에 있을 것이다. (47MKA)]]
*우선 들뢰즈가 푸꼬(Foucault, 1986)를 발표하고, 일반인을 위한 대담이 두 편이나 된다. 「9. 사물들을 쪼개다, 단어들을 쪼개다(1986)」(Libération, 2 et 3 septembre 1986)와 「10. 예술 작품과 같은 삶(1968)」(Le Nouvel Observateur, 23 août 1986), - 다른 한편은 「11. 푸꼬의 초상(1986)」(1986. 대담 날자와 잡지 이름이 없다)
이 두 대담 – 제9장과 10장 - 은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 길고 어려운 9월 대담을, 간략하고 알기 쉬운 8월 대담보다 먼저 실었을까? 대담 제목도 9월 제목이 8월 제목보다 어려운데, 또한 9월의 해방(Libération)지 보다, 8월의 새로운 관찰자(Le Nouvel Observateur)가 더 대중적이지 않는가. - 이런 관점은 나의 것이고, 들뢰즈가 편집할 때는 의도가 있었으리라. 전자에서는 책보다 푸꼬와 연관이 많고, 후자에서는 주로 그가 출간한 푸꼬(Foucault, 1986)에 관한 것이다. 나로서는 푸꼬(Foucault, 1986)를 읽은 독자는 후자(§10)를 먼저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54SKF)
**쪼개다(fendre)에 대하여, ... 갈래, 가지치기, 이중화 등의 의미로 썼을 것이다. 펜싱에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발을 내딛기 즉 가랑이 벌리기도 팡드르(fendre) 동작이다. 들뢰즈 설명을 간단히 보면, 푸꼬는 ‘알다’라는 인식론에서 출발하여, 사유를 깊이 또는 넓게하면 갈라지는 측면이 있는데 한쪽은 권력 쪽으로 다른 한쪽은 주체화정립 쪽이다. 들뢰즈는 이 양면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푸꼬의 작업과정을 보면 ‘알다’, ‘할 수 있다’(권력) 그리고 성의 역사에 관하여 집필하면서 인민의 자주화 또는 주체화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나로서는 통시적으로 과정으로서 세 시기와 공시적으로 세 층위가 구별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들뢰즈는 이 둘 측면이 푸꼬에게 죽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푸꼬의 작품인 레이몽 루셀(Raymond Roussel, 1963)과 짧은 논문인 「비열한 인간들의 삶(La vie des hommes infâmes, 1977)」을 주목하라고 한다.
‘보다’를 지나서 ‘알다’는 일정한 지성의 과정으로서 성취할 수 있다. ‘알다’에서 ‘할 수 있다’는 몸이 따라주어야 하고, 또한 시간의 경과를 필요로한다. 그 과정에는 노력과 실행(프라그마)이라는 측면이 들어 있다. 근대의 인식론이 권력 또는 권리를 옹위하였던 측면이 많다.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국가 또는 교회에 포섭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그러면 비판의 노력과 실행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 들뢰즈는 당연히 인민 속에서 일 것이다. 푸꼬는 이런 상황과 환경에서 경계 “밖(dehors)”에 주목했으리라. 그런데 그 “밖”이란 “안”이란 경계가 있을 때, 설명과 언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역시 인식론은 경계(페라스)에 대한 사고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알다’를 넘는다고 할 때, 경계가 있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리라. 그런데 데카르트에서 넘어서는 무한을 관념의 직관으로 대체한다. 푸꼬는 알다는 직관으로 대체하지 않고서 과정으로 말하고 쓰고 그리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가 실행하느냐에 관해서, 신이 실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은 죽었다기 보다 신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일까? 생명일 것이다. 현존에서 개체 또는 개인일까? 그 경계 속에서 규정된 것보다 넓고 깊은, 즉 너머서가 있을 것이다. 생의 권능이라 할 수 있다. 권능은 어디에 소속되거나 또는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대상으로서 개별자나 타자가 아니다. 그 권능의 실행 또는 실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을 다룰 수 밖에 없으리라. 주체가 아니라 주체화과정. 역사에서 또는 삶의 현실에서 주체화과정은 어느 인간이든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예술작품”처럼 만들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 여기서, 감성적, 미학적, 심층적(이 셋은 같은 의미이다) 터전에서 생성과 변화, 확장 또는 창조의 역할이 등장할 것이다. 너머서, 도피안에 이르는 삶(une Vie)을 성취하려는 예술작품으로서 특이자를 사유해야 할 것이다. 들뢰즈는 푸꼬도 이 특이자를 생각했을 것이라고 보고, 또한 그 터전과 영역의 확장으로 흐르는 리좀 속에서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너머서가 도덕론의 경계를 지나 도피안(到彼岸)으로 가자고 할 때 윤리학이 될 것이라 한다. 경계에서 해방, 국가의 권력과 종교의 권위를 너머서 활동에서 즐거움과 행복(잘, 건강)을 만들어 가고, 자기의 새로운 모습으로 되기에서 자연의 자기 자발성에 따라 완성의 길로 향하는 환희의 경지에서 자유를 성취할 것이다. 행복의 도덕론에서 자유의 윤리학의 길을 푸꼬가 잘 보았다고 들뢰즈는 주석을 다는 셈이다. (54SKH)
한사람의 삶, 예술작품과 같은 삶의 모습, 초상이 아닐까...
III. 미셸 푸꼬(Michel Foucault) 113-161
9. 사물들을 쪼개다, 단어들을 쪼개다(Fendre les choses, fendre les mots, 1986) 115-128
10. 예술 작품과 같은 삶(La vie comme oeuvre d’art, 1986) 129-138
11. 푸꼬의 초상(Un portrait de Foucault, 1986) 139-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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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Michel Foucault 113-161
10. 예술 작품과 같은 삶(La vie comme oeuvre d’art, 128)
- 에리봉(Didier Eribon, 1953-), Le Nouvel Observateur, 23 août 1986, pp. 129-138.
I. - 당신은 푸꼬의 작품에 대해 이미 많이 언급 했다. [그런데] 왜 그가 죽은 지 2년이 지나서 이 책인가? (129)
[[여기서 이 책이란, 들뢰즈가 쓴 푸코(Foucault, 1986)을 말한다. <마실에서 천사흘밤>에 {들뢰즈(1925-1995): 푸코(1986)}(47MKA)꼭지를 참조 할 수 있습니다.]]
GD. - 사유의 논리, 그것은 균형있는 합리적 체계가 아니다. (129).
[이 ‘합리적 체계가 아니다’는 하나의 통일된 체계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들뢰즈는 다양한 논리들을 저술했다. 문학에서 프루스트를 통해 기호의 논리(1964), 니체를 통해 권능의 논리(1962), 스피노자를 통해 표현의 논리(1968), 구조를 넘어 생성에서 의미의 논리(1969), 철학사의 이중성을 밝히면서 차히의 논리(1969), 인류학에서 리좀의 논리(1980), 회화에서 감각작용의 논리(1981), 벩송의 기억을 빗대어 영화에서 이미지의 논리(1983, 1985), 개별자들의 현존을 다루면서 주름의 논리(1988). 이런 논리들에서 보면 삶은 다양체이라는 점이다(54SKH)]
II. - 당신은 그[푸꼬]를 무엇보다 철학자로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역사적 탐구들을 강조 하는데도 말이다. (130)
[에리봉(Didier Eribon, 1953-)은 철학이란 형이상학의 주제들을, 또는 주제들을 공시태 위에서 통시적 관점들을, 다루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고 여긴다. 푸꼬처럼 통시태에서 새로운 주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감옥, 병원 등의 역사적 발전 또는 전개과정에서 새로운 주제를 솟아나게 했다. 권력이라고. 이런 권력을 보았기에 지식을 다루며 제도를 옹호하는 지성이 거의 광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도 밝힐 수 있었다.(54SKH)]
GD. - 역사는 자기의 방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푸꼬는 결코 역사가가 되지 못한다. 푸꼬는 철학자이며, 그는 역사와 더불어 역사에 대한 철학들의 연관과는 아주 다른 연관을 발명한다.(130)
벤(Paul Veyne, 1930-)이 말하듯이, 영원성에처럼 시간에 대립되는 것, 그것은 우리의 활동성(actualité, 현실성)이다. 푸꼬는 동시대 철학자들 중에 가장 현실적인 철학자이다. 19세기와 가장 근본적으로 단절한 철학자이다(거기에서 19세기를 사유하는 그의 소양이 나온다). 현실성, 그것은 푸꼬의 관심이고, 또한 니체가 반현실 또는 반시대라고 불렀던 것이며, 그것은 이루어진 것(in actu)으로 있는 것이다. 즉 사유의 작동(acte)로서 철학이다. (130)
III. - 이런 의미에서 당신은 푸꼬에서 본질적인 것의 질문, 사람들은 생각하다(penser, 사유하다)를 무엇이라 부르는 지를 말할 수 있는가? (130)
GD. - 푸꼬에게서 사유하다(penser)에는 세 가지 층위(les couches ou les terrains successifs)가 있다. 우선 보다와 말하다, 둘째는 ‘할 수 있다’(pouvoir, 권력) 즉 힘들의 연관을 유지하는 것이다. 셋째는 “주체화(과정)”으로서 사유의 발견물이다. (131) [9장에서 말한 세 가지 차원과 같은 의미인데, 세 가지 위상일 수 있다. 그런데 들뢰즈는 이것을 층위로 보고 고고학적 의미를 설명한다. 게다가 고고학은 통시적 의미가 아니라 공시적 의미이다. 말하자면 가우스의 종모양이 기학적 평면에서이라면, 들뢰즈의 층위 설명은 럭비공을 세워놓은 것과 같은 상하(위도, 상층-표면-심층)의 위상이다. 들뢰즈가 보기에 푸꼬는 상층-표면-심층의 층위를 동시대(통시적으로)로 고고학적으로 탐구하였다는 것이다. (54LLI)
니체가 생의 새로운 가능성들의 발명이라고 하듯이, [푸꼬에게서] 현존 양태[양식]의 구성이 중요하다. 현존은 주체처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처럼 만들어 가는 것이며, 이 마지막 단계가 바로 예술가-사유(la pensée-artiste)이다. (131) [삶에서 주체화는 자기 완성체, 즉 인격 도야로 가는 길인데 이를 “예술가-사유”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체화가 욕망이다.]
[푸꼬에서 생각하다(penser)는 사고하다에서 사유하다로 전향이 있을 것 같다. 지성의 사고는 사물들과 사건들에게 경계를 긋고, 거기에 만들어진 법칙을 적용하는 것인데, 그 사물들과 사건들의 경계가 없는 경계 바깥을 생각하면서, 경계의 안팎이 있기나 하나라고 사유할 때, 지식은 경계로부터가 아니고, 경계를 만들어가는 데, 규정 속에 넣기가 잘 안 되는 것을 바깥에 두는 것이 철학이 되느냐는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바깥이라는 것이 만들고자 하는 어떤 스타일, 형식에서 이미 벗어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법칙이든 규칙이든 질서든 장치든 벗어난 것이 없듯이 완전한 통일도 없다는 것이 푸꼬의 고민이 아닐까? - 안다(savoir)는 것이 경계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면, 권력의 형성과 닮았다는 것을 볼 것이다. 들뢰즈가 푸꼬를 보는 관점의 하나 일 것이다. - 그런데 근대사회에서 ‘안다’는 것이 진리, 평등, 행복,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여겼는데, 안다는 것이 경계를 긋는 것이고 권력을 만드는 것이라면, 지식이란 것이 행복도 자유도 규제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 파라독스. 지식이 광기를 만들었구나. 푸꼬는 권력에서, 그러면 이 경계를 만드는 자(사건)가 누구(무엇)인가로서 경계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IV. - 순서에 의해서 층계참을 다루어 봅시다. “문헌(l’archive)”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말하기를, 푸꼬에게서 문헌은 “청시각적(시청각적)인가”? (131)
GD. - 고고학, 즉 계보학, 그것은 또한 지질학이다. 이 고고학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것이 아니며, 현재의 고고학이다. 어떤 방식으로 고고학은 항상 현재에 속한다. 고고학, 그것은 고문서(l’archive, 자료, 문헌)이며, 두 부분으로 된 문서, 즉 청각-시각적 문헌이다. 문법의 과목과 사물의 과목이다. (132)
[문헌이란 일반적으로 옛 자료만을 생각하여 고문헌이라고 번역하는데, 요즘 현재로서는 마그네틱 테이프(비데오)도 문헌이고, LP판도 문헌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푸꼬의 문헌(l’archive)은 박홍규의 표현으로 자료의 총체이다. 규소의 시대에 자료들은 범위가 엄청나다. DC인사이드, 유투브. 일베. 성매매를 하는 n번 방도 있고 ... 등등등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DC인사드 같은 세상이 있는데, 예전에 기록도 등록도 없이 묻혔는데, 규소의 시대에는 어딘가, 영혼 속의 추억처럼, 이미지로 남아있을 수 있다. (54SKH)]
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비의지적 인격성으로서, 즉 제3인칭으로서, 자기 철학을 갖는다. 푸꼬를 만난 철학자들, 이들에게 충격을 준 것, 그것은 (두)눈이며 목소리였고, 이 둘 사이에 바로선 조각상이었다. (132)
[눈(시각)과 목소리(청각)에 의한 철학을 하는 철학자 푸꼬는, 일반적으로 자료들로서 문헌이라기보다, 보는 것(le visible)과 말하는 것(l’énonçable)에서 지식의 자료를 찾는다. 생물학과 심리학의 자료는 수학과 물리학의 자료와 전혀 다르다.]
V. - 거기에는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와 닮은 점이 없는가, 심지어는 블랑쇼의 영향이 없는가? (133)
GD. - 푸꼬는 블랑쇼에 관해서 빚지고 있다고 항상 인정했다. 이마도 3가지 점에 관해서 이다. 우선 “말하다, 그것은 ‥…‘보다’가 아니다”라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무엇을 말하면서 만드는 이런 차이가 있는데, 사람들은 언어를 언어의 극단의 경계에 운반하고, 사람들은 언어를 표현할 수 없는 것(l’indicible)의 권능[잠재력]으로 고양한다. 그러고 나서, 1,2인칭과 연관해서 3인칭의 우월성, 즉 “그(il)” 또는 중성인 사람들(l’on)이 있고, 언어학적 인칭론의 거부가 있다. 결국에는 바깥(le Dehors)에 대한 주제인데, 즉 연관이며, 또한 “비-연관(non-rapport)”인데, 전체 외부세계보다 더 멀리 있는 온바깥(un Dehors)과 연관이다. (133)
[(알다, 인식을) ‘말하다’는 둘로 쪼개진다. 즉 가지치기 또는 이중화의 길을 걷는다. 누구의 말을 하는가? (누구라는 주체화는 말하는 위상에 따라 다르다) 하나는 위계질서의 위로 향하면서 국가와 제국의 기구 안에서 지위를 차지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체제를 옹호하고 예속하는 길이다. 체제 안에서 여행 또는 구경꾼의 역할을 한다. 이에 비해 다른 하나는 노마드로서 흐르면서, 탈주선에서 인민의 말을 한다. 전쟁기계는 국가기구에 대해 저항하며 새로운 창안, 새로운 예술을 발명하려 한다. 이런 저항자가 누군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에 4인칭 옹(l’on)이다. 제도에서 보아 바깥이지만,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심층이다. 들뢰즈가 이 “바깥”을 심층으로 다시 다룬 것은 장점이다. 푸꼬의 사유의 흐름에서 “바깥”이 주체화의 길을 마련하는 터전이며, 국가 기구에 대해 탈영토이다. (54SKH)]
‘보다-말하다’라는 선접은 레이몽 루셀(Raymond Roussel, 1877-1933)의 책과 마그리트Magritte, 1898–1967)의 원문과 더불어 절정을 이루며,보이는 것과 발설하는 것의 새로운 지위를 단련시킬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 말하다(on parle)”라고 발설된 것을 이론을 활성화하러 갈 것이다. [더하여] 온바깥의 선으로 향한 가까움과 멈의 전향(la conversion)은, 마치 삶과 죽음의 시금석([la] épreuve)처럼, 푸꼬에게 고유한 사유 작용들[현실태들]을 – 접힘과 펼침(하이덱거와는 아주 다른)을 - 훈련시키려 할 것이고, 또한 결국에는 주체화 과정의 토대로 있게 될 것이다. (133)
VI. - 문헌(l’archive) 또는 ‘알다’의 분석 다음에, 푸꼬는 권력(le pouvoir, ‘할 수 있다’)을, 그러고 나서 주관화(방식)를 발견할 것이다. 지식과 권력 사이에 그리고 권력과 주관화(방식)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가? (134)
GD. - 권력(할 수 있다)은 정확하게 지식의 형식들 사이에 또는 그 아래에 지나가는 비형체적 요소이다. 이 때문에 미시물리학이라 말한다. 그것(le pouvoir)은 힘(une force)이며, 힘들의 연관이며, 형식[형상]들이 아니다. (134)
[미시물리학이라 해서, 분자, 입자, 미립자 등으로 원자론적 요소들을 다루듯이 다루는 것이 아니라, 힘들의 연관, 즉 흐름, 강도, 속도, 파(결)들을 다룬다. 그럼에도 들뢰즈의 전쟁기계와 푸꼬가 장치와 배열로 설명하는 것은 연관들을 가시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작동하는 덩이는 리좀처럼 흐르고, 기계와 장치들의 연관은 중생의 수레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저항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푸꼬는 자문한다: 어떻게 선을 넘는가(franchir)? 어떻게 차례로 힘들의 연관을 넘어서는가(dépasser)? 또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든 권력에 예속하든, 그 권력과 마주함(un tête-à-tête)에서 죄인[매인 자]인가? 그것은 푸꼬의 가장 폭력적인 원전들 속에 있고 또한 “비열한 인간”에 관한 가장 이상한 원전들 속에 있다. 푸꼬는 오랫동안 대답을 내 놓았다. 힘의 선을 넘는다, 권력을 넘어선다, 이것은 마치 힘을 휘어지게 하는 것처럼, 다른 힘들을 감화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스스로 감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푸꼬에 따르면 주름(un pli)이며, 즉 힘이 자기와 연관이다. 힘들의 연관을 “이중화하는(doubler)” 것이고, 우리에게 저항하도록 허락하는 자기 연관이며, 우리를 빠져나게 하는 것이며, 삶 또는 죽음을 권력에 대항하여 되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푸꼬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이 발명했던 것이다. .. 이것은 현존을 예술 작품처럼 생산하는 능력적 규칙들(regles facultatives)이며, 현존의 양태들 또는 (심지어 자살도 그것의 일부를 이루는) 삶의 스타일들을 구성하는 윤리적이자 동시에 감성적(미학적)인 규칙들이다. (134-135)
[권력을 소유하든 권력에 종속되든 둘 다 매인 자(속박된 자)이다. 권력에 저항하는 자들이 권력을 닮아가는 것은, 권력이라는 것이 위계이기에 그 위계의 싸움을 하는 것이 그와 닮아간다. 노마드는 권력을 해체하는데 있다. 문제가 생길 때 전쟁기계들은, 그 문제를 안고 있는 선(기계)이 작동하고 다른 선들이 연대하는 것이다. / 힘들의 연관을 이중화한다 것은 흐름은 여러 갈래로 진행할 수 있다. 그 갈래들의 능력들이 부분의 규칙들을 만들 수 있다. 영토에 따라 도덕론이 달리 형성될 수 있고, 새로운 창안의 감성은 새로운 종교성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런 발상이 그리스인들에게 생겼다는 것, 그것도 소크라테스 시대에 있었다는 것, 그것을 영토와 연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푸이예(Fouillée, 1838-1912)가 생각한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동방의 참주제(전제군주제)도 아니고, 제우스의 권위를 상위로 삼는 신화도 아닌, 인간으로서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고민을 했다.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주체화란 심지어 “인격(la personne)”과 더불어 보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개별이든 집단이든 개체화(une individuation)이다. 그것은 사건을 특징지운다(어느 날 어느 시각에, 강, 바람, 생명‥…). 그것은 인격적 주체가 아니라 강도 있는 양태이다. 그것은 특수한 차원이며, 그 차원 없이 사람들은 지식을 넘어서지도 권력에 저항할 수도 없다. (135)
자신의 방법에 부합하여, 푸꼬가 본질적으로 관심 갖는 것, 그것은 그리스인들로 회귀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nous aujourd’hui) 이다: [말하자면, 그의 관심은] 현존의 우리양태들인 어떤 것인가? 우리의 삶의 가능성들 또는 우리의 주체화 과정은 어떤 것인가? 이다. (136)
[현존(실존주의라고 좁힐 이유가 없다)의 관심은 철학사의 관통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존재의 관심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관념도 개념도 아니고, 현존의 감화가 인간의 최대 관심이었었다. 그런데 현존을 이해하기 위해, 소크라테스 이래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벩송은 올바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존의 문제거리는 심층에서 표면으로 올라와야 하며, 문제거리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문제를 해소하기 때문이며,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VII. - 앞서 푸꼬는 많은 소통을 일으켰던 ‘인간의 죽음’의 주제를 발전시켰다. 그것은 창조적 인간 현존의 관념과 양립가능한가? (136)
GD. - 인간의 죽음, 그것은 여전히 최악(pire)이다. 즉 주체의 사건, 거기에 오해들이 푸꼬의 사유에 다수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 오해들은 결코 순결하지 못하고, 그것들은 짐승의 짓과 고 고의적인 짓의 혼합물들이다. 사람들은 사상가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사상가에게서 모순들을 찾기를 좋아한다. (136)
[사상가에게서 비판과 모순을 찾으려는 짐승 같은 짓, 이것은 푸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에게도 해당한다. 이런 표현은 124쪽에도 나왔다. 실제로 소칼(Alan Sokal, 1955-)과 브릭몽(Jean Bricmont, 1952-)의 지적사기꾼(Impostures intellectuelles1997): Fashionable Nonsense: Postmodern Intellectuals' Abuse of Science (1998; UK: Intellectual Impostures)이란 책도 나왔다.]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1966)에서 푸꼬는 고전 시대에인간은 있는 그대로 생각하지 않고 신의 “이미지”에 따라 생각한다고 제시한다. 정확하게 왜냐하면 신의 힘들은 무한한 힘들과 혼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19세기에서는 인간의 힘들은 생명, 생산, 언어와 같은 그러한 것들만큼 – 혼성된 것(le composé)이 인간-형식이라는 방식으로 된 만큼 - 유한한 힘들과 대치한다. 그리고 형상[형식]이 먼저 현존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의 힘들이 새로운 힘들과 연관 속에 여전히 들어가는 지를, 따라가야할 어떠한 이유도 형상에게 없다. 혼성된 것은 신도 인간도 아니고, 새로운 형식의 전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21세기의 인간은 생명과 대치되고, 마치 탄소의 힘처럼 생명과 더불어 혼성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힘들이 규소(실리콘, silicium)와 혼성될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 어떤 새로운 형식이 일어나는 중인가? 푸꼬는 두 선구자, 니체(Nietzsche, 1844-1900)와 랭보(Rimbaud, 1856–1891)를 가졌는데, 그는 여기에다가 찬란한 그의 버전을 첨가한다. 우리는 생명(삶)과 언어와 더불어 어떤 수준의 연관들을 갖는가? 온권력과 어떤 새로운 수준의 투쟁들(les luttes)을 갖는가? 그가 거기로부터 주체화의 양태들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은 동일한 문제를 추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137)
[들뢰즈가 푸꼬에 따라서 고전주의 시대인 17세기, 오만에 찬 지성의 시대 19세기를 규정하고, 21세기에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그러면 21세기 규소의 시대에 삶과 언어는 어떤 연관들을 맺을까? 규소의 시대에 입말과 이미지(여러 이미지들)의 연관은 새로운 권력을 형성할까?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중국의 화웨이(华为, 화위)의 대결로 드러날까? 생명에 관한한 바이러스의 통제 또는 조화의 방식이 권력의 지위에 어떤 투쟁을 것인가? (54SKH)]
VIII – 당신이 “현존 양태들”이라고 부른 것들에는 그리고 푸꼬가 “삶의 스타일들”이라고 불렀던 것에는, 당신이 그렇게 불렀던 생의 미학적인 것(une esthétique)이 있다; 예술 작품과 같은 생(삶). 또한 [마찬가지로 그것은] 윤리학(une éthique)과 같다! (137)
GD. - 도덕이란 특수한 전형의 강제적 규칙(les règles contraignantes)의 일체와 같다면, ... 윤리학은 임의적(선택적, 능력적) 규칙(les règles facultatives)의 일체이다. (137)
[들뢰즈 식으로 보면 도덕론은 크리스트교에, 윤리학은 불교에 가깝다. 전자는 사회활동에서 관계의 규제인데 비해, 후자는 자연(본성)의 자기 생성(완성)에 이르는 길의 추구이다. 전자는 권력으로부터 해방 또는 자기 예속인데 비해, 후자에서는 자기 창조이라는 점에서 자신을 예술작품(걸작)을 만드는 노력이다. - 벩송의 MR에서 도덕은 영웅(예수와 소크라테스) 행위에서 종교는 보살(신비가)에서 찾는다. (54LMA)]
[삶 자체를 예술 작품처럼 만들기, 그것은 불교에서 보살되기, 벩송의 MR에서 신비가되기일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삶의 과정은 구도의 과정이며, 점수(漸修)의 과정이다. 과정의 마감을 스스로 하는 인간이 현자, 군자, 철학자(소크라테스), 보살(싯달다)이다. (54SKH)]
사람들은 이것(ceci, 윤리학)을 말하고 저것(cela 도덕론)을 행한다. 그것(ça)이 현존의 어떤 양태를 함축하는가? 사람들이 영혼의 저변의(낮은) 힘에서만 – 증오하는 삶 또는 생명에 반대하여 복수 – 행할 수 있거나 말할 수 있는 것(사물)들이 있다. 가끔은 몸짓 또는 충분한 언어이다. 이것들은 우리를 이런저런 것으로서 구성하고 함축하는 삶의 스타일들이다. 이것은 이미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에게서 “양태”의 관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푸꼬의 제1철학에서부터 현재로 있지 않는가? 즉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고(capable)” 무엇을 말할 수 “수 있는”(발설의 의미에서)가? (138)
그의 구문론은 볼수 있는 것에 대한 번쩍거림(les miroitements, 빛남, 반사), 반짝거림(les scintillements 섬광, 발광)을 수집하고 또한 끈(une lanière)처럼 꼬이고, 접히고 또 펼져지고, 또한 발설들의 정도에 따라 베낀다(모방한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그의 최종 작품들에서, 일종의 평온함으로 향할 것이고, 점점 더 간결한 선으로, 점점 더 순수한 선을 찾으며‥… (138)
[푸꼬의 성의 역사의 저술에 대해 매우 좋게 평가한다. 푸꼬는 주체화로 향한 것이, 그의 평온함을 향하는 것이라 하는데, 독자에게도 평온함을 준다. 내가 보기에, 푸꼬는 성의 역사에서 인간사에서 배려와 함께 성장과 확장을 통한 자기 수양과 점수의 길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인간은 스스로 자기 완성이라는 것에로 나아가는 고유한 노력이 있다. 저너머 높은 곳을 향하여(만디를 전자서), 보살이 되고자하는, 되기의 길이 있다는 낙관론이 들어있다고 본 들뢰즈의 평가는 정당할 것이고, 동료를 넘어서 동지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54SKH)]
(7:29, 54SKH)
* 인명 ***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lat.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이다.
1646 라이프니쯔 (Gottfrid Leibniz, 1646-1716) 이 다재다능한 철학자는 프랑스에 거주한 시간이 많아서 많은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뉴턴과 서로 따로 미적분을 발명하였다. 새로운 논리계산(명제계산)을 발명하고자 했다.
1844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독일의 문헌학자, 철학자. 서구의 오랜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니체-르네상스(Nietzsche-Renaissance) 이탈리아에서 .... 1964년?부터... ]
1856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6–1891) 프랑스 시인. 100행의 장편 시 「술취한 배(Le Bateau ivre, 1871)」(열다섯), 지옥에서 한 철(Une saison en enfer, 1873), Illuminations (1872-1875)
1877 루셀(Raymond Roussel, 1877-1933) 프랑스 시인, 소설가. 장편 운문소설 대역(La Doublure, 1897)에서 영광의 감각(« sensation de gloire universelle d'une intensité extraordinaire »)을 맛보았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인상(Impressions d'Afrique, 1910), 로쿠스 솔루스(Locus Solus, 1914) 나는 어떻게 어떤 종류의 책을 쓰게 되었는가(Comment j'ai écrit certains de mes livres, 1935)에서 자신만의 언어 유희 기법을 창안하였다.
1889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의 철학자.
1898 마그리뜨(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 벨기에 화가. 초현실주의자. 푸꼬의 저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마그리뜨에 관하여(Ceci n'est pas une pipe : Sur Magritte, 1973)이 있다.
1907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 프랑스의 소설가, 문학비평가,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친구이다.
1930 벤(Paul-Marie Veyne, 1930-), 프랑스 역사가, 고대 로마전공, ENS,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 푸꼬의 성의 역사 작업에 도움을 주었다. 미셀 푸꼬; 그의 사상과 인격(Michel Foucault. Sa pensée, sa personne, 2008)
1953 에리봉(Didier Eribon, 1953-) 프랑스 사회학자, 철학자. Libertation Le Nouvel Observateur, 에서 경력을 쌓았다. 미셸 푸꼬(Michel Foucault, 1926-1984, 1989(증보2011)
(lu 54LMC) (8:19, 54S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