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년전 깨달음
바가바드 기타 8장. 불멸의 브라만 요가
아르주나가 말했습니다.
무엇이 브라만이며 무엇이 자아에 관한 것이며 무엇이 행위입니까?
오 최고의 인간이시여!
그리고 존재들에 관해 무어라 말하며 신들에 관해 무어라 말합니까?
여기 이 몸에서 제사에 관해 누가 어떻게 말해지며
자기를 제어한 자들은 세상을 떠날때 어떻게 당신을 알아야 합니까?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브라만은 지고의 불멸자이고 만물의 자아와 관련된 본성이라 불린다.
존재들의 양태를 일으키는 산출력이 행위라고 알려진 것이다.
존재들에 대해서는 소멸하는 양태이며 또 신들에 대해서는 정신이며
제사에 관련해서는 여기 몸에 있는 바로 나이로다.
육신을 지닌 자들의 으뜸이여
임종시에 나만을 생각하면서 육신을 벗고 떠나는 자는
나의 상태에 이를 것이니 여기에 아무 의심이 없도다.
마지막에 어떤 상태를 생각하며 육신을 던져버리든
그는 언제나 그 상태가 되게끔 되어 바로 그 상태로 돌아간다. 쿤티의 아들이여
그러므로 모든 때에 나를 기억하고 싸우라.
마음과 지성이 나에게 고정되어 그대는 틀림없이 바로 나에게 올 것이다.
그는 훈련의 요가로 제어되어 다른 것을 향하지 않은 생각으로
지고의 신적 정신을 명상하면서 그에게로 간다. 프르타의 아들이여
태고의 현자이고 통치자이며 미세한 것보다 더 미세하고
불가사의 한 형태의 어둠 너머 태양빛깔을 지닌
만물의 제정자를 명상하는 자는 세상을 떠날때 부동의 마음을 가지고
신에로 제거되어, 또 요가의 힘으로 호흡을 미간사이로 정확히
몰아넣으면서 지고의 신적정신에 이른다.
베다를 아는 사람들이 불멸자라 부르는 것
애욕에서 해방된 수행자들이 들어가는 것
금욕을 행하면서 바라는 그것을 내가 그대에게 간략히 말해주겠노라.
몸의 모든 뭄을 제어하면서 의근을 심장에 가두고
자기의 호흡을 머리에 두면서 요가의 집지에 머물러서
옴하고 한 음절 브라만을 발하면서 나를 명상하고
육신을 버리고 떠나가는 자는 지고의 목표에 이른다.
언제나 다른 생각없이 항상 나를 생각하는 자
그렇듯 항시 제어된 요가행자들에게 나는 어디 쉽도다. 프르타의 아들이여
나에게로 와 지고의 완성에 이른 위대한 자들은
더이상 고통의 근원이고 항구하지 못한 환생을 얻지 않는다.
브라만의 세계에서조차도 아르주나여
사람들은 되돌아온다.
그라나 나에게 오면, 쿤티의 아들이, 환생이란 없다.
브라만의 한 낮이 천 유가에 해당하며 한 밤이 천유가 됨을 아는 사람들은
밤과 낮을 아는 자들이다.
브라마의 낮이 오면 미현현에서 모든 현현물이 출현하며
밤이 오면 바로 거기 미현현이라 부르는 것에 융해된다.
이 존재들의 무리는 거듭거듭 생성되었다가 밤이 오면 힘없이 융해되어 버리며
낮이 오면, 프르타의 아들이여, 다시 출현한다.
그러나 이 미현현보다 더 높은 또 다른 영원한 미현현의 상태가 있나니
모든 존재가 소멸해도 그것은 소멸하지 않는다.
이 미현현은 불멸자라 하며 사람들은 그것을 지고의 목표라고 말한다.
거기에 이르면 되돌아 오지 않나니 그것은 나의 지고의 주처로다.
그는 지고의 정신이지만, 프르타의 아들이여,
전심의 신애로 이어질 수 있다.
그안에 존재들이 거하고 그가 이 온세계에 퍼져 있도다.
그러나 요가행자들이 죽어서 어떤 때 환생하지 않고
어떤 때 환생하는지 그때를 내가 말해 주겠노라. 아르주나여
불, 빛, 낮, 달의 밝음, 태양의 북쪽 진로의 여섯달,
이 안에 죽으면 브라만을 아는 사람들은 브라만으로 간다.
연기, 밤, 그리고 달의 어둠, 태양의 남쪽진로의 여섯다,
그 안에 죽으면 요가행자는 달빛을 얻으며 다시 돌아온다.
이 밝고 어두운 두길은 세상의 영원한 길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나에 의해서는 돌아옴없는 경지로 가고
다른 하나에 의해서는 다시 돌아온다.
이 두길을 알면, 프르타의 아들이여,
어떤 요가행자도 미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어느 때이든 요가로 제어되어 있으라.
이것을 알면 요가행자는 베다들, 제사들, 고행들, 그리고 보시들에 따른
공덕의 결과를 모두 초월하여 지고의 원초적 경지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