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3편 > - 조삼현
낙화송
담장 아래
봄색을 접는다
허공의
푸른 쟁반에 수 놓인
유색(愉色) 크리스털 빛
밤새
한 줌의 바람 소리
머물다 간 줄만 알았는데
네 하얀 알몸이
소금에 절여 쓰러지듯
고스란히 땅위에 졌구나
가녀린 백옥의 널
안아주지 못한 채
서성이는 눈으로 줍는다
사월에 밀려
망연히 너를 보내는 아침
아, 목련이여!
이야포*
파도를 잠재우고
여기 쉬어 있는가
검은 몽돌의 뜰에 안긴
옴팡진 포구는
바람도 휘어가 평온의 湖水다
통통배 지켜보는
몇백 미터 울 안에
다시마 전복들이
해산(解産)에 들고
간간히 배 띄운 시간
가슴장화 추킨 어부가
개 짖는 소리에
긴 뱃줄 끌어안고 웃는다
포구의 냄새 스멀스멀
구불진 섬 길이 촉을 새울 때
반응 없던 이야포는
양 눈을 떠 어부를 부른다
육지에서 손님 왔다고
* 이야포: 금오도에 접한 작은 섬(안도)의 포구
붉은 담장
포동포동 살 붙은 장미를
담장 너머로 내려보낸다
작은 촉새 한 마리
앵두가지에 버티려다
툭 차고 그곳으로 날 때
청록바람도
갈참나무 숲 가던 길 멈추고
몇 번을 머물러 돌았다
고분고분
수줍게 인사하는 고운 자태로
아무나 따라나설까
어미는 걱정이다
바깥세상 살피느라
어린 애송이 목은
한 뼘이 더 늘고
해코지할까 살피는
붉은 오월의 담장,
내 어머니 처럼
<수필> - 조삼현
복날 식(食)
조 삼 현
실컷 땀 흘려가며 한 끼를 택해야 할 그날이 왔다. 어지간히 쥐어짜던지 말이야, 윗도리 대신 삼베적삼 하나 걸치거나 속곳 벗고 마오리족 의상처럼 몸뚱이 편하다면 오히려 그게 낳을 것 같은 날, 십여 발 걷기도 두려운데 점심 한 끼를 위해 그 집을 기억하고 찾아가야 한다니 편치 않은 날이다. 그래서 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에 툭 하고 한마디 던졌다가 본전도 못 찾고 속된말로 깨갱 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한낮 피하여 가족들과 다소곳이 저녁 외식을 택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말인데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냐고 주위 분들로부터 단칼을 맞은 거지.
연중 절기와 명절, 제사와 가족 간의 기념일 등이 넘치는데도 伏날은 참 특이할 만큼 위대하다. 그날이 마치 남성네들 깃대 세우는 선택된 날처럼 기다리고 투합하는 예가 많더라고. 나처럼 좀 싫어하는 자도 있을 텐데 말이지. 한 예로 셀러리맨 계에서는 상사를 모시거나 패를 쥔 순번이 되면 식당가를 선점하고 예약하는데 적잖은 부담이 된다는 거지. 예약이 성사되어도 늘 만석 상태가 되거나 정시를 벗어나는 짜증 감, 허접한 좌석조차도 감사할 만큼 허리 굽혀 사정하는 일을 흔히 겪거든. 두 번째 날(중복)이 찾아오던 그 날도 쭈뼛쭈뼛 조심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또다시 보기 좋게 당하고 만 나는 앞으로 절대 재론하지 않기로 각성하고 혹시 집 식구가 복날 어쩌고저쩌고 말 나오면 낮과 저녁을 나누어 복 食을 두 번 치르면 될 것이다
식구가 자꾸 복날에는 집에 와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던 이유가 있다. 결혼 직후부터 개고기를 먹느냐고 물었을 때 난 아니라고 잡아떼다가 어느 순간 들통이 나면서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이후부터 인식전환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리 쉽지는 않았다. 왜 옛적부터 복날에는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설이 삼계탕이나 민물 어죽 탕 등 여타 고기보다 우세하고 당연히 건강을 추어주는 원기회복 으뜸식은 개복(犬福)이라고 절여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풍습탈피는 어려운 거지. 문명 앞에 머리 숙인 후 도대체 伏과 福은 어떤 관계인가를 두고 여기저기 눈알을 들여다 댔으나 명쾌한 답도 없었지. 伏이었으니 엎드린다는 뜻인지라 개는 주인에게 충견으로써 엎드리는 게 당연한데 사람이 더위가 오면 개처럼 바짝 엎드려 나돌지 말아야 한다니 그거참 비유치곤 기막힌 메타포(metaphor) 적 수사다.
어찌 보면 괴사일지 모르지만, 중국 사기에도 버젓이 기록되었다니 토 달지는 않겠고 복날이 보편화 된 이상 부정하지도 않겠다. 다만 인간의 정서와 삶에 가장 의협적인 동물을 팽하여 그것도 식용화해 버린다니 그 얼마나 잔인한가 말이다. 인간의 심애를 파괴하는 패륜적 행태 같아서 나름대로 추론해 보았지. 왕과 신하, 사람과 개의 주종적 관계에서 분명한 촉이 있었지. 넌지시 군주 시대로 거슬러 가 보면 절대복종과 존하가 분명한 틀에서 충성도를 갈음하고자 했던 권좌의 의도가 수상한 거야. 이것은 순전히 나의 뇌피셜이니 믿거나 말거나다. 한여름 더위에 정사는 뒤로하고 시원한 누각에서 낮잠이나 자고픈데 누가 옥쇄라도 훔칠 음모가 두려워 신하를 충견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징적인 개를 잡아서 식음토록 하였던 거야, 아니면 춘곤기를 겪고 난 뒤 열사들의 허약한 심신을 헤아린 특별 하사인 척 군령 역시 충성을 담보한 선의로 포장한 거야. 그것도 완벽성을 달성하려고 한여름에 세 번씩이나 치르도록 일정을 지정하였으니 참으로 이해 불가지.
식가들의 정곡을 찌를지 몰라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격아 높아지게 된 개들은 인간의 반려란 애호와 함께 지위가 상승되고 학대적 행위마저 엄금하여 쇠고랑도 감수해야 하니 400년전 백인에게 짓밟혀진 인디언보다 낳은 신분계급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이제는 묵은 때를 씻기 위해 개똥을 밟아도 허리 굽혀 福으로 받아들이지. 명예회복을 위해 여름날 그들에게 살 붙은 뼈다귀 하나쯤 건네주면 어뗘? 요즘 다이어트 등 건강관리의 식단조절을 하면서 너무 고기고기 외치지 않았으면 좋겠더라고. 고기를 먹든 찬밥을 먹든 물밥만 먹든 간에 시비 거는 건 아니지만 핸드폰과 워치에서도 온갖 앱을 받아보면 식이요법에 고기를 멀리하라는 게 십상이니 죽을 먹고도 잘만 엎드리면 되지 않겠어. 잡신의 악령을 쫓는다는 원시적 샤머니즘을 빌어 팥죽을 먹으러 갔더니 그게 福날이고 더 행복이더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