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놈의 경고
신성한 매실 758
최림이 이틀간의 출장을 마치고 산음 경찰서에 출근했다.
그런데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홀로 당직 근무 중인 형사가 있었다.
“오셨네요. 권 팀장님과 팀원들은 지리산으로 출동했습니다.”
형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말했다.
“지리산에요?”
“네, 범인 검거를 위해 뭐라더라? 아, 네. 요한 공동체 마을로 간다고 했어요.”
그의 말에 최림은 민서라 아니, 민채원을 떠올렸다.
‘그녀를 이미 용의자로 확증했단 말일까?’
최림은 그녀에 대하여 최종보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권 팀장이 그녀의 검거를 위해 그곳으로 간 게 이상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오후 무렵 그곳에서 철수한 김유리의 말을 듣고 풀렸다.
김유리는 그간의 사정을 최림에게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그렇구나. 그런데 권 팀장님은 왜 그곳에 남았지?”
“아까 말했잖아요. 솔봉에 묻힌 시체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확인한다고.”
최림은 그런 주먹구구식의 수사에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권 팀장은 자기 상사였고 수사에 관한 한 선배였다.
그때 최림은 김유리에게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민채원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그녀의 학생 때 사진이었다.
“이게 누군데요?”
김유리는 눈 동그랗게 말았다.
“자세히 봐. 그 마을 사무국장을 봤다며? 이 여자야?”
그러자 김유리가 반색했다.
“맞아요. 이 여자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얼굴이 똑같네요.”
최림은 이제 확신했다.
민서라, 아니 민채원의 옆에는 분명히 전두태가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날, 원지 고수부지 방화·살인의 용의자는 원룸 영감의 아들과 아들 친구였다.
‘아! 이렇게 퍼즐이 완성되네.’
마침 퇴근 시간이었다.
어차피 권 팀장이 오늘 오지 못한다면 사무실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최림은 긴 퍼즐이 맞춰지자, 오늘은 느긋하게 술을 한잔하고 싶었다.
“김유리 형사, 내일 보지. 나 먼저 퇴근할게.”
권 팀장은 다음 날 오후 무렵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 옆에는 만신창이가 된 박수무당이 있었다.
권 팀장은 한눈에 보기에도 초췌했다.
“이 새끼는 도로 유치장에 처넣어. 그리고 검찰로 넘겨버려.”
권 팀장은 화가 잔뜩 난 채로 회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최림이 복귀한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빨리 들어가자.”
조 형사가 이후에 있을 권 팀장의 화풀이를 대비하여 팀원들을 독려했다.
겨우 회의실에 들어서서야, 권 팀장은 최림을 아는 체하였다.
회의실은 그야말로 침통한 분위기였다.
팀원들은 권 팀장의 솔봉 수색이 실패한 것으로 짐작되어 모두 숨을 죽였다.
모두 앞으로의 사건 수사는 지리멸렬할 것으로 짐작했다.
권 팀장은 팀원들이 자리에 앉자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제, 오늘 범인 검거에는 실패했다. 여러분 모두 수고가 많았다. 본인 생각에는 범인들은 아직도 지리산 일대에 있다.”
헉!
눈치 빠른 형사들은 벌써 한숨이 나왔다.
“그러니 내일부터 다시 그 일대를 그때처럼 샅샅이 수색할 것이야.”
“뭐야? 또?”
형사들은 웅성거렸다.
“조용! 그리 알고 미리미리 준비하도록 해. ”
권 팀장은 속전속결로 앞으로 수사계획을 발표했다.
“팀장님! 솔봉 수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때 눈치 없는 한 형사가 뻔한 결과를 질문했다.
옆에 있던 김유리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그는 더 나갔다.
“그것만 해결되면 만사 O.K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권 팀장은 그를 노려보더니 한마디 했다.
“짐승 사체였다. 됐냐? 이 좀만아! 어쨌든 모두 그리 알고 있도록. 이상! 그리고 최림, 넌 일단 남아봐.”
팀원들이 나가자 권 팀장은 피곤한 듯 크게 기지개를 켰다.
“보고해 봐.”
최림은 이 상황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결심했다.
그리곤 자신이 서울에 있을 때 전두태 체포를 위해 노력한 전 과정을 밝혔다.
더불어 전두태는 사람이 아니라, 악령의 우두머리인 점도 말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체포를 위해 자신이 속한 ‘악령퇴치반’의 이야기도 했다.
최림의 말에 권 팀장의 입은 쫙, 하고 벌어졌다.
“세상에!”
최림은 그제야 서울에서의 일, 즉 민채원의 존재에 관해 소상히 밝혔다.
권 팀장은 경악했다.
“그럼, 어제 만났던 그 마을 사무국장 민서라가 네가 말하는 민채원?”
“네.”
“민채원은 전두태의 열렬한 신자?”
“네.”
“원지 둔치 범인들은 민채원의 일명 제자들?”
“맞습니다.”
“그렇다면 전두태란 자와 범인들이 분명히 그 마을에 있다고?”
“그 마을이나 아니면 그 인근 은신처에 있을 겁니다.”
권 팀장은 최림의 거듭된 발언에 정신이 나간 듯했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일이!”
“제 예상이 맞을 겁니다.”
“아니, 그렇다면 그 마을이 원래 사이비 종교집단의 근원지였단 말 아냐?”
“그럼요. 전두태가 최초에 공들여 만든 천년왕국의 본원이지요.”
“그놈 때문에, 어렸을 때 네 부모가 돌아가셨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권 팀장은 이번엔 머리를 떨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건이 너무 커. 우리 소관이 아니야.”
“네? 무슨 말씀을?”
“전두태를 포함하여 모두를 잡는 건 불가능하단 말이야.”
최림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일단 원지 둔치 범인 둘만 잡는다.”
“네? 왜요?”
“그게 우리 임무잖아.”
“나머지는요? 주범 전두태와 민채원은요?”
권 팀장은 최림의 다그침에 화를 내었다.
“그건 우리 알 바 아냐. 그런 건 경남청이나 서울 본청에 맡겨야지.”
‘이런!’
권 팀장의 고집에 최림은 며칠 동안 고생이 수포가 되는 기분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평소 권 팀장의 고집을 잘 아는 최림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뭘 어떡해? 내일부터 김유리와 함께 지리산 일대를 수색해야지.”
권 팀장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회의실을 나가려 했다.
그러면서 최림에게 한마디 했다.
“우린 이 사건의 배후 검거 따윈 필요 없어. 범인만 잡으면 돼. 알겠어?”
그 말에 최림이 발끈했다.
“서울청에서 절 이런 시골로 발령 낸 건 전두태 체포 때문이라고요!”
“…….”
“전두태 검거는 제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국정원과 CIA의 최종목표라고요!”
“…….”
“놈을 잡아야 합니다. 그놈을 잡아야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요!”
최림이 목숨 걸고 요구하자, 권 팀장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알았어. 너무 흥분하지 마. 자, 그럼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줄까.”
그제야 최림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눈 그치면 혼자 그 마을에 다녀오겠습니다.”
“혼자?”
“네, 전두태와 원지 둔치 범인들이 그곳에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
“그다음엔?”
“반드시 증거를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
마침내 권 팀당이 결정을 내렸다.
“좋다. 그렇게 하지. 대신,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자. 오케이?”
“좋습니다. 하나 더! 눈이 그칠 때까지 수색은 보류하십시오.”
“알았다. 시벌놈아!”
다음 날, 권 팀장에게 김유리가 편지 한 통을 가져왔다.
권 팀장은 이렇다저렇다 하는 표정 없이 김유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무실은 간혹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날 뿐 적막 그 자체였다.
“뭔데?”
권 팀장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권태가 묻어있었다.
“팀장님 앞으로 등기우편물이 왔습니다. 여기.”
김유리는 편지를 공손히 책상 위에 두고 물러났다.
“우편물?”
“네,”
“이상한데, 내 우편물을 경찰서가 아니라 집으로 오는데.”
권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냥 일반적인 편지였다.
겉봉투엔 정확히 자신의 이름, ‘권필봉’이라고 적혀있었다.
발신인은 아무 표시가 없었다.
권 팀장은 아무 생각 없이 편지 겉봉을 찢었다.
‘이게 뭐지?’
그러면서도 발신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편지를 쭉 읽어나갔다.
그런데 내용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심하게 굳어졌다.
급기야 그는 적막한 사무실 분위기를 깰 만큼 심한 욕을 했다.
“이런 개새끼!”
계속 곁눈질로 권 팀장을 쳐다보던 팀원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권 팀장은 편지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봐! 최림.”
권 팀장의 목소리마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한 최림은 즉각 그의 앞으로 왔다.
“이거 한번 읽어봐.”
권 팀장은 편지를 던지듯 주더니, 의자를 뒤로 돌려버렸다.
빙그르르.
최림이 얼른 편지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