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와 이웃 종교] (14)사십구재는 불교식 의례… 가톨릭 신자는 해선 안 돼
프란치스코 교황이 5월 27일 바티칸에서 태국 불교 승려 대표단과 만났다. OSV
가톨릭 신자로서 불교의 좌선 체험을 해도 됩니까?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모두 그 신앙의 실천에서 ‘명상의 차원’을 강조합니다. (중략) 명상 생활을 하는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을 가져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교황청 종교간대화부, 1998년 부처님 오신 날에 불자들에게 보내는 경축 메시지)
불교의 좌선은 마음의 고요함을 추구하고 자기를 깊이 성찰하며 자아를 버리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고요한 환경에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고르며 잡념을 버리고 정신을 통일해서 아주 맑아진 심경에 도달하는 경험을 가톨릭교회의 묵상이나 관상 생활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미 행해지고 있습니다.
본디 좌선은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종교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계속되는 좌선만으로’ 하느님과 일치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심리적 정신적 활력을 주려는 보조 수단으로, 그리고 불교 전통에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영성 교류’ 차원에서 좌선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 경우에도 현대의 뉴에이지 사상이나 종교 혼합주의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 깊게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묵상과 관상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영성의 확고한 기초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가톨릭 신자를 위해 사십구재를 거행해도 됩니까?
“어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환생(reincarnation)을 생각하였습니다. 온전한 정화에 도달하기까지, 전생에 따라 더 높거나 낮은 형태의 새로운 삶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몇몇 동양 종교에 깊이 뿌리박은 이 믿음은 그 자체로서 인간이 죽음의 궁극성을 거슬러 반발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불멸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제삼천년기」 9항)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대개 새로운 몸을 받아 환생하기 전까지 저승에서 49일 동안을 머무릅니다. 그때 그는 7일마다 저승의 왕들에게서 자신의 선행과 악행에 대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을 통과하면 조건에 맞는 곳으로 환생할 수 있습니다. 심판을 통과하지 못한 영혼은 다음 7일째 되는 날 다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최종 심판을 받고 누구나 환생하게 되는 날이 49일째입니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불자들은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짧게 머물고 더 좋은 조건에서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일에 한 번씩 재(齋)를 지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48일째 되는 날 사십구재를 한 번만 지냅니다. 49일째 되는 날이면 이미 죽은 사람은 다음 생으로 환생하여 직접적인 인연이 끊긴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십구재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한 장례 예식이므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이러한 사십구재를 거행하거나 49일째에 위령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전생에 무슨 업보를 쌓아서’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스도교 계시는 환생을 배제하고 인간이 유일한 지상 실존의 과정에서 이루도록 부름 받은 성취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제삼천년기」 9항)
‘전생에 무슨 업보를 쌓아서’ 또는 ‘내가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말에서 우리 문화에 스며들어 있는 불교의 윤회와 업(業)에 대한 가르침이 무의식중에 표출됩니다.
전생(전세)이란 지금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생애로 현세·내세와 함께 불교의 삼세(三世)를 이룹니다. 전생의 인간과 현생의 인간 사이에 몸과 기억과 인격 등의 동일성이 보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윤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과 다릅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 영혼은 육체의 파멸과 더불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현생의 행위에 상응하는 다양한 모습의 생명체로 다양한 세계에 다시 태어납니다. 따라서 현재의 삶의 조건은 과거의 삶, 곧 전생에서 자신이 행한 것의 결과인 업보이기에, 현재의 삶에서 느끼는 행복과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선물인 개인의 삶이 단 한 번 주어지며 인간이 죽음으로 지상의 생을 마친다고 할지라도 사라지지 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이가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가르칩니다. 하느님과 누리는 영원한 삶을 희망하는 가톨릭 신자는 단 한 번뿐인 삶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값지게 살려 노력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청합니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는 불교의 핵심 교리를 내포하는 ‘전생에 무슨 업보를 쌓아서’ 또는 ‘내가 다시 태어나도…’라는 말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