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 장광순
늘어지는 주름살을 끌어올리다
거울을 괴롭히며 뒹굴뒹굴 구르던 날
탱탱한 근육을 자랑하는 손님이 찾아왔다
결코 친해지고 싶지 않은
만남을 꿈에도 그려본 적 없는데
무작정 찾아와 주저앉은 그가 달갑지 않다
빠른 속도로 길을 걷다
무심코 다리를 들어 올리다
미간을 찡그리게 하는 이와
동거하는 일이 징글징글하다
체외 충격기로 두들겨 패도
절절 끓는 찜질기로 고문을 해도
콧방귀 뀌는 모습이 대단하지만 얄밉다
운동에 게으름 피웠음을
깨닫게 해 주었지만 고맙지는 않다
사뿐사뿐 걸으며
나비처럼 춤추고 싶은 나
손님은 융숭하게
대접해야 한다지만
천적 오렌지 레몬 라벤더 오일을 준비한다
착 달라붙은 거머리 같은 그를
뚝 떼어 무인도에 가두기 위해
통을 유쾌하게 극복하는 생의 솔직함과 재치
불청객 '석회'와의 지독한 동거
이 시는 어깨나 관절 등에 석회가 쌓여 발생하는 통증(석회성 건염 등)을 삶에 불쑥 찾아온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은유하며 시작한다. 육체적 고통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시인은 이를 어둡고 절망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체외 충격기'나 '찜질기' 같은 물리적 치료 과정조차 콧방귀를 뀌며 버티는 '징글징글한 손님'과의 한판 승부로 유쾌하게 승화시켰다.
긍정과 위트로 이겨내는 몸의 고백
"나비처럼 춤추고 싶은" 순수한 열망과 대비되는 몸의 한계는 일상의 게으름을 돌이키게 만든다. 그러나 시인은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내며 고통을 미화하지 않고, "고맙지는 않다"는 솔직한 농담을 던지고 있다. 천연 오일과 같은 자구책을 동원해 거머리 같은 석회를 떼어내려는 화자의 분투는, 삶의 질병과 신체적 노화를 수용하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이겨내려는 건강하고 위트 있는 생명력을 잘 보여준다.
***심층 분석
詩〈석회>는 병리적 고통(석회성 건염)이라는 다소 딱딱하고 감각하기 힘든 대상을 일상적·시각적·유기체적 이미지로 전환하여 시적 의미망에 완벽히 안착시키고 있다.
이 시에서 이미저리가 의미망에 안착하는 핵심 과정을 3단계로 풀어본다.
1. 익숙한 불청객으로의 의인화 (관념의 구체화)
시의 초반부에서 '석회'라는 단단하고 거친 물질은 "탱탱한 근육을 자랑하는 손님"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로 제시했다.
본래 석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절 내부의 병리적 증상이지만, 시인은 이를 무작정 찾아와 주저앉은 '달갑지 않은 인물'로 시각화한 것이다.
이로써 질병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화자와 대립하는 일상적 인물 관계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 시적 의미망의 출발점을 형성했다.
2. 감각적 대립을 통한 고통의 입체적 형상화 (촉각·촉각적 다이내믹)
중반부에서는 치료의 과정과 통증이 팽팽한 감각적 대립으로 묘사된다.
"체외 충격기로 두들겨 패도", "절절 끓는 찜질기로 고문을 해도"와 같은 다이나믹한 물리적·촉각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에 대응하는 석회의 모습은 "콧방귀 뀌는 모습"이라는 미학적 위트로 마찰한다.
물리 치료의 매서운 자극과 이에 굴하지 않는 석회의 뻔뻔함이 대비를 이루며, '내 몸 안의 완고한 장애물'이라는 이미지가 명확한 선명성을 얻게 된다.
3. 유기체적 질감과 탈출의 희망 (의미망의 완성)
후반부에 이르러 석회는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착 달라붙은 거머리"라는 유기체적 이미지로 결합한다.
화자가 꿈꾸는 이미지인 "나비처럼 춤추고 싶은 나"(가벼움, 자유)와 석회의 "거머리"(중량감, 끈질김)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시인은 오렌지, 레몬, 라벤더 오일 같은 '천연적/향기적 이미지'를 방어책으로 제시하며, 거머리를 "무인도에 가두기 위한" 공간적 은유로 시를 마무리한다.
결국,
이 시의 이미저리는 '무형의 통증 ➔ 뻔뻔한 손님 ➔ 질긴 거머리 ➔ 무인도로의 격리'라는 흐름을 거친다. 추상적이고 고통스러운 신체 증상을 감각할 수 있는 유쾌한 서사적 이미지로 치환함으로써, 고통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맞서려는 시인의 위트와 생명력이라는 의미망에 자연스럽게 안착하게 된다.
시인의 위트와 통찰이 돋보이는 아주 유쾌하고 멋진 시다. 신체적 고통을 '뻔뻔한 손님'이나 '거머리'로 치환한 서사적 흐름이 일품이다.
만약 이 시를 한 단계 더 가다듬는다면, 후반부의 '천연 오일(오렌지, 레몬, 라벤더)' 모티프를 조금 더 정교하게 연결해 보면 어떨까 싶다.
앞선 문단들에서는 '체외 충격기', '찜질기' 등 석회를 직접 타격하는 센 자극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아로마 오일'이라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소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일이 단순히 거머리를 떼어내는 '도구'로 그치지 않고, "강한 충격(강함)으로도 안 되니 향기와 부드러움(유연함)으로 달래서 떼어낸다"는 식의 역설적 문맥을 한 줄 보완해 준다면, 물리적 격퇴를 넘어선 삶의 지혜와 깊이가 시 전체에 훨씬 부드럽게 스며들 것이다.
고통조차 웃음으로 담아내는 시인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져 읽는 내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시다.
들꽃 장광순
한행문학 신인행시문학상 / 시인 등단
제1회 전국 자연사랑 시화전 대상 수상
제30회 청량문화제 주부백일장 차상 수상
제2회 공감문학 자유시 공모전 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