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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방에서 옮겨왔습니다. 원고지 분량 81매입니다.
고기 맛
그것은 핏자국이었다. 차갑고 입맛 도는. 얼어붙은 핏자국과 핏자국에 달라붙어 있는 어떤 짐승의 털이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하얀 눈밭에 뿌려진 검붉은 핏자국은 이곳과 저곳의 경계선을 긋듯 선명했다. 짐승의 고깃덩이를 가져간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서너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저만치 앞에 백 년 이상은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 같은 서어나무들이 묵직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그 묵직한 숲의 그림자는 하얀 눈밭을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그 숲을 향해 나아가자 회색의 눈밭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것 같아 어지러웠다. 눈을 감았다가 뜬 순간 숲 한쪽에 어떤 구멍이 있었다. 구멍은 오솔길로 이어졌다. 그런데 오솔길로 접어든 순간 퀴퀴한 냄새가 확 달려들었다. 서어나무 숲이 이 퀴퀴한 냄새를 에두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위가 비틀려 반사적으로 뒤돌아섰다. 하지만 어깨동무가 더 견고해졌는지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가슴이 조여왔다. 그때 뒤에서 나를 구원하듯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돌아서서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암자라고는 했지만 빛바랜 기왓장이 눈 속에 숨어있을 뿐 암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석이나 탑이나 불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싹 쓸어서 어딘가에 파묻어버리기라도 한 양 어떤 흔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목탁 소리는 내가 환청을 들은 건가! 아무래도 살생을 금하는 스님의 윤리를 지키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암자는 옛날 시골 기와집과 비슷했는데 문이 세 개 있었다. 아마도 부엌과 방과 창고 문인 듯했다.
내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였다. 금단의 고기 맛에 대한 끝없는 식욕은 왜 찾아오는 것인지, 그 원인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해결책은 그다음의 문제였다.
내가 서성이고 있는데 남자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 남자는 내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동화 속에서 그려지는 사냥꾼의 모습도 아니었고 흡혈귀 영화에 나오는 창백한 얼굴도 아니었다. 묘하게도 아주 순수한 화가나 해맑은 시인 같은 얼굴이었다. 남자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는데 방 안에서도 불상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기자라고 했으나 남자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혼자 지내기 외로웠는데 찾아와줘서 고맙다고만 했다. 그런데 남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돌연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는 살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자니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지금 저 남자가 나보다 훨씬 더 심각한 함정에 빠져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 남자도 실패한 모양이었다. 이글거리던 눈빛이 이번엔 떨기 시작했다.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뚫어지라 내 눈 속을 응시하던 눈빛이 복잡해졌다. 놀라워하다가 무서워하다가 슬퍼하다가 부르르 떨다가 홀연 벌떡 일어섰다. 남자가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러나 그 복잡한 눈빛의 잔상은 한동안 내 눈앞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 전 퇴사하던 선배가 아주 귀한 거라며 파일 자료를 넘겨줬다. 묻혀버린 특종에 관한 자료였다. 그 자료 중에 이 남자와 관련된 자료가 있었다. 선배와 나는 한우 전문식당에서 만났다. 선배가 등심을 잘 달궈진 불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역시 한우는 마블링이 이 정도는 붙어줘야 맛있어.”
고기를 얹자마자 지글지글 고소한 소리가 났다. 침이 꿀꺽 넘어갔지만, 나는 마음이 급했다.
“증거도 확실한데 왜 발표하지 않았죠?”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지.”
“정치적인 이유요?”
“거기 날짜를 봐. 그때 외국에서 난리들 쳤잖아,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먹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기사를 어떻게 발표할 수 있었겠어.”
“그렇다고 해도 증거도 명확하고 증인도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죠?”
선배는 불판을 보더니, 등심을 뒤집었다. 등심에서 육즙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선배는 그 위에 소금을 살살 뿌리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 위에 높으신 분들이 직접 관여했어. 그 남자를 어디론가 데려갔지.”
“어디로요? 그 남자를 죽이기라도 했나요?”
“아니, 내가 알아냈지. 그 높은 곳에 아는 사람이 있었거든.”
“그래서 어디 있죠?”
“자 일단 한 점 먹어. 소고기는 살짝 덜 익었을 때 입속에 넣어야 맛있어.”
선배는 고기 한 점을 기름장에 찍어 입속에 넣고 씹었다. 사실 나는 생고기가 먹고 싶었다. 선배는 다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는 잠시 후에 말했다.
“조용한 암자 하나를 통째로 구해서 줬더군. 중노릇이라도 하면서 득도하라는 거였지. 그런데 그 남자 사망신고까지 되어있더라고.”
“사망신고요?”
“그랬지. 그 남자 가족도 그가 죽은 줄 알고 있더라고. 누군가 그 가족에게 보상금까지 챙겨줬고 말이야.”
“가족이 있었나요?”
“젊은 부인과 어린아이가 있었지. 그 남자 살아 있다면 지금은 오십 대 중후반이겠군. 이건 내 추측인데, 그 남자 어쩌면 그 암자에서 연구 대상이 되어있을지도 몰라. 금단의 고기 맛을 맛보려는 인간들이 많을 테니까.”
“설마요?”
“설마라고! 왜 자네도 고기를 좋아하니까 한번 찾아가 보지 그래. 크크.”
선배는 그렇게 추측한 내용까지 덧붙여서 모든 것이 사실인 양 내게 말했다. 잠시 후 내가 주문한 생고기가 나왔다. 생고기를 입속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하지만 이젠 생고기조차도 맛이 없었다. 이 남자를 어떻게든 만나야만 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그 복잡한 눈빛의 잔상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 남자도 어떤 함정에 빠진 게 분명했다. 얼마 후 남자는 저녁상을 차려 내 앞에 가져다 놓고 마주 앉았다. 말로는 절 밥이라며 들여왔지만, 그 상에는 버젓이 고깃국이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 고깃국이 정체불명의 시뻘건 탕이었다. 산토끼라며 먹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시뻘건 것이 과연 산토끼인지 그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스님께서도 토끼를 잡아서 먹나요?”
“나는 가짜 중이니 신경 쓰지 말게.”
남자는 처음부터 내게 반말을 했다. 내가 바라보자 남자는 무엇인가를 씹더니 목구멍으로 넘기고는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다.
“자네도 혹시 그것인가?”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남자는 먼저 말을 꺼내놓고도 더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더니 한동안 침묵했다. 기자의 직감이었지만 남자는 지금 그 머릿속이 매우 심란해 보였다. 그런데 남자가 말한 그것이란 무엇일까? 내가 왜 왔는지 알고 있다는 뜻일까? 내가 그 침묵을 뚫고 그 심란한 눈빛을 정면으로 응시하자 남자가 말했다.
“그냥 밥이나 먹게.”
남자는 가짜 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뻘건 탕에서 고기 한 점을 집어내 우걱우걱 씹었다. 나는 저절로 온 신경이 이 시뻘건 탕에 집중됐다. 남자가 먹어보라고 했으나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정체 모를 식욕, 고기 맛에 대한 욕구가 불쑥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다른 반찬으로만 손이 갔다.
“자네는 고기를 싫어하나?”
“그건 아니지만.”
나는 그냥 얼버무렸다. 그러자 남자가 느닷없이 고기 한 점을 내 밥그릇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먹어보게. 보약이 따로 없으니.”
다행히 남자가 올려놓은 고깃점은 토끼의 다리뼈로 보였다. 나도 고기라면 안 먹어본 것이 없어서 이것이 토끼 고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못 먹었어도 백 마리 이상은 먹어본 토끼 고기가 분명했다. 그렇게 토끼 뼈가 붙어있는 고기 몇 점을 골라 먹으며 식사를 끝냈다.
남자는 밥상을 들고 나가더니 이번엔 찻상을 들고 들어왔다. 남자는 말이나 행동과 달리 내게 친절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았는지도 몰랐다. 남자는 마주 놓은 두 개의 찻잔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하필 시뻘건 찻물이었다. 오미자라고 했다. 나는 남자의 눈치를 보다가 살짝 맛을 보았다. 다행히 피 맛은 없었다.
“차 맛이 별로인가?”
“아니, 괜찮네요.”
나는 찻잔을 들고 몇 모금 마셨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잠깐만 기다려보게.”
남자는 밖으로 나가더니 한참 만에 술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술상에는 역시 고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고기가 반가웠다. 이곳에 올라오면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소주와 수육용 돼지고기를 가져왔는데, 그것들이었다.
“자네는 술을 좋아하는구먼.”
나는 나도 모르게 소주와 돼지고기를 보자 웃었던 거다. 소주와 돼지고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이것만이 맘 놓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기자답지 못하게 속을 보였던 거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고 남자가 가지고 들어오는 음식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리는 사이좋게 술을 한 잔씩 마시고 다시 술잔을 채웠다. 남자가 물었다.
“그래, 뭘 취재하려고 왔나?”
취재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직업의식이 생겼다. 사실 취재보다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정체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그것을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특별히 취재 내용이 정해진 것은 아니고, 그냥 산에서 혼자 사시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됩니다.”
“그런가?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우리는 술을 몇 잔 더 마셨다. 그동안 남자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들만 내어놓았다.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직접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장의사 하시면서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내가 느닷없이 질문해서 그런지 남자는 순간 얼굴을 찡그렸으나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기자라고 했을 때 이미 이런 질문을 예상했을 터였다.
“장의사! 그래 장의사,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었지.”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죠?”
“말이 좋아 장의사였지 난 사실 염하는 일을 좋아했네. 시체를 닦고 깨끗하게 옷을 입혔지. 저승 가는 길에 새 옷을 입혀서 보내는 일이잖나. 얼마나 매력적인가?”
순간 나는 내가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질문했다.
“그게 전부인가요?”
이미 질문을 해놓고도 아차 싶어 질끈 눈을 감았으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아니, 아니지.”
남자는 소주를 털어 넣고는 어떤 결심을 한 듯 얼굴 근육을 당기고는 눈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저승 가는 사람들은 내게 고기 한 점을 주어야 했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네? 저승 가는 사람이 고기 한 점을 주다니요? 그 고기가 뭐죠?”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네.”
남자는 다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왜 이야기를 하다가 말지! 그 사건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했나? 한 시간쯤 후에 다시 방에 들어온 남자는 술상을 치우더니 이부자리를 이쪽과 저쪽에 폈다. 그러고는 불을 껐다. 우리는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방에 창문이 있었으나 달이 뜨지 않았는지 이쪽과 저쪽 사이는 컴컴했다. 저쪽에 그가 있었으나 이쪽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저쪽에선 알아볼 수 없었고, 반대로 저쪽에서 그가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이쪽에선 알아볼 수 없었다. 이 거리감은 편안하기도 했지만 섬뜩하기도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그가 나에게 이것저것 세세하게 물었다. 마치 저쪽이 기자인 것 같았다. 이름과 나이를 물었고, 어려서는 어디에서 살았는지, 형제와 부모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가 이렇게 살갑게 묻자 이쪽과 저쪽이라는 상황은 마치 거리감과 친근함의 기이한 동거 같았다. 나는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대답했다. 이 남자에게 물어볼 게 많았기에 일단은 나부터 숨김없이 대답했다. 또한, 이렇게라도 친근감을 형성해서 그가 언제 불쑥 들어낼지도 모르는 그 욕구를 절제시켜야만 했다. 그때 한순간 저쪽에 있는 남자가 말없이 이쪽의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그 시선이 느껴지자 머리털이 빳빳하게 섰다. 하마터면 저 남자의 친절함에 내가 깜박 속아 넘어갈 뻔했다. 정신을 똑바로 가다듬었다. 남자는 분명 입맛을 다시고 있을 거다. 이 긴 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몇 번을 깜박거리다가 눈이 감긴 것 같았다. 잠든 사실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을 때 저쪽의 남자는 방에 없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내 팔다리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 확인했다. 창밖은 아직 깜깜했다. 그때 밖에서 날카로운 어떤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문가로 다가가 문을 살며시 열어 틈새를 만들고 거실을 내다보았다. 거실 한쪽은 주방이었는데 백열등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빛의 일부가 주방 옆으로 난 문 안쪽으로 흘러갔다. 날카로운 소리는 바로 그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거실로 나가 그 문 앞으로 다가갔을 때 그 소리가 칼 가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칼 가는 소리는 이 조용한 새벽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경쾌했고 리듬감 있었다. 장인의 솜씨랄까.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문 안쪽을 살며시 들여다봤다. 문 안쪽은 빛이 흘러 들어가기는 했으나 어두웠다. 순간 내 눈동자가 빛을 따라 들어가 어떤 형체와 마주쳤다. 천장을 향해 두 팔을 올려 만세를 부르고 있는 어떤 시체였다. 두 팔 사이에선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고 가슴팍은 쫙 파헤쳐 있었으며 하체는 아예 없었다. 그런 시체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꼭 한 번 찾아가 봐. 그 남자가 군침을 흘리면서 두 다리로 걷는 어떤 사냥감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하!”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최강수!”
나는 그렇게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주저앉았다.정신을 차렸을 때 남자가 저쪽에서 시퍼런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칼은 네모난 모양의 묵직한 칼이었다. 나는 방으로 기어들어 가 무언인가 저항할 물건을 찾았다. 손에 잡힌 것은 겨우 삐쩍 마른 효자손이었다. 이따위 효자손으로 묵직한 칼을 대적할 수는 없을 터였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 최강수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살금살금 거실로 나가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려고 하자 최강수가 저쪽에서 말했다.
“이 깜깜한 새벽에 어딜 가나? 해장이나 하고 가게.”
남자가 쫓아와 해칠 것만 같아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무엇인가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음식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묘하게도 그 냄새가 나를 안정시켰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다시 거실로 나가자 최강수가 주방에서 무엇인가를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나를 해칠 것 같지는 않았다. 은근슬쩍 아까 그 문으로 다가가 시체를 자세히 보니 멧돼지와 같은 커다란 짐승처럼 보였다. 나는 그제야 의미 없이 들고 있었던 효자손을 내려놓았다.
얼마 후 우리는 밥상을 놓고 마주 앉았다. 최강수가 느닷없이 얼마 전에 퇴직한 그 선배 이름을 물었다.
“김문식인가?”
선배 이름을 그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자 순간 묘하게도 경계심이 사라졌다. 놀랍게도 그와 내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함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 남자가 조금은 편하게 생각되었다.
“네, 맞아요.”
“왜? 그 사건을 이제라도 밝히려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그러면 왜 왔지?”
내가 머뭇거리자 최강수가 다시 해장이나 하고 내려가라고 했다. 그러고도 내가 머뭇거리자 이렇게 말했다.
“그 안에 있는 고기는 자네가 생각하는 그 고기는 아니니까, 맘 놓고 먹게나.”
“그런데 그 고기는 왜 먹은 거죠?”
“밥이나 먹게.”
“먹은 게 확실하군요.”
“밥 먹고 내려가시게. 오전 중에 내려가야 오늘 중으로 산을 벗어날 수 있을 거네. 밤새 눈이 더 쌓였으니까 말이야.”
최강수는 밥을 몇 술 뜨더니 수저를 놓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런데 금방 다시 들어와서는 어디를 가려는지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었다. 그 차림새가 사냥이라도 가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나간 후에야 밥을 먹은 후 설거지까지 했다. 그리고 잠시 주춤하다가 주방 옆으로 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그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그곳은 옛날 부엌이었다. 부엌에서는 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햇살이 부엌 안으로 들어왔다. 만세를 부르고 있는 그 시체는 짐승이 분명했다. 매달려 있는 시체는 그것 외에도 서너 개가 더 있었다. 어제 맡았던 퀴퀴한 냄새의 근원지가 이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들은 크기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토끼나 노루 같은 것이었다. 한쪽 벽에는 여러 가지 칼들이 잘 정리되어 벽에 붙어있었다. 다섯 개씩 다섯 줄로 가지런히 붙어있는 날카로운 칼들은 크기나 모양들이 다양했다. 그것들은 벽에 걸린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최강수를 찾아 나섰다. 아직 할 말이 많았다. 눈 위에 나 있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얼마쯤 가다가 어떤 짐승의 핏자국과 마주해야 했다. 그곳에서 얼마를 더 가자 그곳에 최강수가 있었다. 그곳은 서어나무가 어깨동무를 형성한 경계 선상의 어디쯤으로 생각되었다. 모닥불을 지펴놓고 그 앞에 앉아 어떤 고깃점을 뜯어먹고 있었다. 아침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내가 다가가서 옆에 앉자 최강수가 고깃점을 건넸다.
“내려가라고 하지 않았나! 아직 늦지 않았으니 빨리 내려가시게.”
“알고 싶은 것이 있어요.”
“난 알려줄 것이 없네.”
“그 식욕! 말이에요. 그 욕구는 왜 생기는 거죠?‘
“식욕? 무슨 욕구?”
“그 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요.”
그가 내 눈동자를 다시 응시했다. 금세 다시 또 복잡한 눈빛을 했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왜 궁금하지?”
“내가 당신과 같으니까요.”
“이런 제기랄!”
“그 원인을 알고 있나요?”
“그것을 알면 내가 이러고 살겠나?”
“그러면 지난 삼십여 년간 어떻게 지냈죠?”
“이러고 지냈지, 마치 하이에나처럼.”
“하이에나?”
“그래, 나는 날마다 사냥하네.”
“짐승이 짐승을 잡아먹는 거군요. 철저한 먹이사슬의 제왕!”
“제왕? 하하! 그래 제왕이 맞는 것 같군. 적어도 이곳에선 그렇지.”
최강수는 다시 고깃점을 내게 권했다. 그러고는 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아주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자네는 그 고기를 먹어본 경험이 있나?”
순간 당황했으나 최강수 앞에서 그 사실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숨길 이유도 도망칠 이유도 없었다.
“중학생 때, 골목에서 깡패들을 만났죠. 그놈들이 여자 친구를 붙들었어요. 여자 친구가 소리를 질렀고 나는 달려들어서 한 놈의 팔뚝을 물어뜯었죠. 살점이 내 입속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내가 두 번인가 씹었는데 그것을 여자 친구가 봤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것을 내뱉었죠. 하지만 여자 친구는 귀신이라도 본 듯 헐레벌떡 도망쳤어요. 쫓아가다가 넘어졌는데 그때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떠올랐죠. 기억이 되살아나듯 말이에요. 어떤 어린아이가 죽은 여자의 품으로 파고드는 모습이죠.”
“여자의 품?”
“네. 그 이후 몇 번이나 그 꿈을 꾸었죠. 하지만 어린아이가 누군지? 죽은 여자는 또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어요.”
그가 또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게 전부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그보다 더 잔인한 것이 있어요.”
“그게 뭐지?”
“사랑이에요.”
내가 사랑이라고 말하자 최강수가 눈을 치켜뜨고 쳐다봤다.
“사랑? 무슨 뜻이지?”
“그녀는 예뻤죠. 그날 내 프러포즈는 완벽했어요. 그녀의 확답을 얻었고 그녀의 하얀 손가락에 반지도 끼워주었죠. 그런데 그녀의 붉은 입술이 다가오자 난 불안감에 휩싸였어요. 그러나 그 순간에 그 달콤함을 포기할 수는 없었죠. 진정 포기했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이미 내 안에 그녀가 들어와 있었죠. 달콤한 키스, 참을 수 없었어요. 한순간 무언가를 깨물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순식간에 뜨겁고도 황홀한 피 맛이 입안에 번졌어요. 곧바로 그녀의 비명이 찢어진 혓바닥을 뚫고 나와 울려 퍼졌죠.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그 비명은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나는 진정 여자를 사랑하고 싶어요.”
내가 눈물을 보이자 최강수는 뭔가를 회상이라도 하듯 여러 단어를 일정한 간격으로 툭툭 내뱉다가 내 눈동자를 바라봤다.
“사랑, 여자, 키스, 섹스, 피 맛, 고기 맛.”
내 두 눈을 빤히 응시하던 최강수의 눈빛이 심하게 요동쳤다. 최강수가 왜 나를 보면서 저런 복잡한 눈빛과 무서운 얼굴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때 저만치 앞에 또 다른 생명체가 나타났다. 빨간 눈깔, 펑퍼짐한 엉덩이, 앙증맞은 꼬리, 잿빛의 산토끼였다. 다소 덩치가 컸지만 귀엽다면 귀여운 그놈이 하필 두 명의 하이에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볼 것도 없었다. 최강수가 활을 집어 들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활을 받아들었다. 나는 마치 아버지 앞에서 처음으로 사냥하는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활시위를 당겼고 놓았다. 곧바로 가느다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놈이 펑퍼짐한 엉덩이를 보이며 쓰러졌다. 내가 그 주검에 다가갔을 때 그 앞에는 두 마리의 새끼 토끼가 그 주검의 가슴을 물어뜯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가 아팠다. 또다시 어린아이가 여자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최강수가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 새끼 토끼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곳에 새끼 토끼는 없었다.
그렇게 동질감을 형성한 우리는 저녁 무렵 안마당에서 고기 파티를 벌였다. 고기를 실컷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마당에 장작불을 피웠고 최강수는 땅속에 묻어두었던 술을 꺼내왔다. 다래를 발효시킨 술이라고 했다. 꿩, 노루, 멧돼지가 숯불에 구워질 재료였다. 최강수는 여러 종류의 칼을 도마 위에 늘어놓더니 현란한 솜씨로 고깃덩이를 해체했다. 어떤 예술 행위를 보는 듯했다.
우리에게 퀴퀴한 고기 냄새는 별다른 방해가 되지 않았다. 미친 듯이 먹었고 미친 듯이 마셨다. 뚝뚝 떨어지는 핏물 섞인 육즙을 최대한 만끽했다. 술에 취해 가는 나 자신을 그냥 모른척했다. 그러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이 암자의 마당은 원시시대로 돌아가 있었다. 어떤 식인종 마을 같았다. 부족 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나는 여전히 장작불 앞에 앉아서 해소되지 않는 식욕을, 어떤 욕구를, 어떤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순간 땅바닥에서 석탑과 불상이 솟아올랐다. 그때 최강수가 크고 묵직한 칼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러나 나는 술에 취해 도망갈 수도 반항할 수도 없었다. 최강수는 벌써 내 앞까지 와서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이 욕구를 가지고 평생을 사느니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칼이 내 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목탁 소리에 눈을 뜨자 최강수가 목탁을 내려놓고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사위가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그 욕구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칼 가는 경쾌한 소리, 부엌 벽면에 걸려있던 예술작품, 현란한 정육 기술, 칼춤의 춤사위, 그리고 시인 같았던 첫인상, 이 모든 것이 최강수의 모습이었다.
칼춤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식인종 마을에서 암자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도 술이 깼는지 모른다. 그때 회색 눈이 펑펑 쏟아졌다. 우리의 만찬도 그렇게 끝났다. 나는 술에 취한 듯 혹은 취하지 않은 듯 몽롱했다. 우리는 어젯밤처럼 이쪽과 저쪽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 저쪽에 있는 최강수를 바라봤다. 어둠이 눈에 있을 즈음 최강수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둠의 저쪽에서 최강수가 침묵을 깼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그 목소리에서는 어떤 비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비장함은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사르르 떨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자 나는 저쪽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오래전에 한 가족이 있었네. 아빠와 병든 엄마, 그리고 열세 살짜리 큰아들과 네 살짜리 작은아들이 한 가족이었지. 아빠는 엄마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네. 하지만 엄마의 병은 좋아지지 않았지. 그러는 사이에 아빠의 사업은 엉망이 됐고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쓰고 말았지. 빚은 산더미였고 이 가족에게 더는 희망이 없었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와 엄마가 웃는 얼굴을 하고는 두 아들에게 여행을 가자고 말했지. 그러자 두 아들은 마냥 신났네. 큰아들은 엄마의 병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지. 큰아들은 아빠와 함께 배낭을 꾸리며 기뻤네. 그 가족은 저녁나절 바닷가에 도착했지. 아빠는 작은 배를 하나 빌렸고 그 가족은 그 배를 타고 무인도로 들어갔네.”
최강수가 무인도라고 하자 머릿속에서 회색 바다가 출렁거렸다. 악몽에 시달릴 때마다 회색 파도가 출렁거렸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배가 없었네. 큰아들이 아빠에게 배가 없어졌다고 말했지만, 아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 배는 필요 없다고 말이야. 하여간 그 가족의 캠핑이 시작됐지. 텐트도 취사도구도 완벽했네. 그런데 이틀이 지나자 먹을 게 전부 떨어졌지 뭔가. 사실 아빠와 엄마는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이었네. 굶어 죽든 아니면 집단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었지. 아빠와 엄마가 무인도를 선택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엄마에게는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었던 거지. 하필 두 아들에게도 유전이 됐고 말이야. 그러니 누구도 무인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지.”
해산물 알레르기라는 말에 다소 놀랐다. 나도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자 최강수가 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하여간 이튿날 아침 큰아들이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사라지고 없었네. 아빠는 두 아들에게 말했지. 지난밤 엄마가 몹시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말이야. 새벽에 배가 와서 데려갔다고 했지. 큰아들은 뭔가 여러 가지로 이상했으나 아빠의 말을 믿었네. 하지만 두 아들은 금세 배가 고팠지. 작은아들이 울기 시작하자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바닷가에서 조개 같은 것을 주워 와서 끓여 먹였지. 아이들에게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달리 먹을 것이 없었던 거네. 아이들은 목이 붓고 열이 났으나 그대로 두고 보는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되자 아빠가 아이들을 깨우더니 고깃국을 먹자고 했네. 운 좋게 산토끼를 잡았다고 했지. 무인도에서 산토끼라니! 하여간 두 아들은 고깃국을 맛있게 먹었고 아빠는 배가 부르다며 먹지 않았네.”
최강수는 잠시 침묵했다. 나도 그냥 침묵했는데 자꾸만 회색 바다가 떠올랐다. 최강수가 길게 호흡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다음 날이 문제였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큰아들이 아침에 아빠를 미행했던 거네. 아빠는 해안절벽 밑으로 가더니 어떤 동굴로 들어갔지. 큰아들이 동굴 앞으로 갔을 때 아빠는 동굴 안에서 걸어 나왔네. 그런데 아빠의 손에 칼과 어떤 고깃덩이가 들려있었지. 큰아들이 뭐냐고 묻자 큰 물고기를 잡았다고 했네. 얼마 후 고깃국을 먹다가 큰아들은 뭔가 이상했네. 그 국물은 절대 생선 국물이 아니었거든. 고깃국을 먹던 큰아들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동굴로 달려갔네. 곧바로 아빠가 쫓아갔지. 하지만 이틀이나 굶은 아빠는 힘이 없었지. 아빠가 쫓아갔을 때 큰아들은 벌써 동굴 안에서 걸어 나왔네. 그러자 아빠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말했지. 아니라고, 자기가 아니라고, 네 엄마가 그러자고 했다고, 너희들을 어떻게든 살리라고 했다고, 그렇게 횡설수설하던 아빠는 어디론가 사라졌지. 아빠는 나중에 해안가에서 시체로 발견됐네.”
최강수가 다시 침묵했다. 얼마 후 내가 물었다.
“그래서 두 아들은 어떻게 됐죠?”
최강수가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최강수는 심호흡하더니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빠가 사라지자 큰아들은 바닷가에서 울었네. 그때 동생이 와서 어깨를 잡았지. 큰아들에게는 지켜주어야 할 동생이 있었던 거네. 생각해보게. 무인도에서 열세 살 아이가 혼자 동생을 보살펴야 했으니 얼마나 막막했겠나? 그곳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가 아닌가?”
최강수는 마치 내게 동의를 얻어내려는 듯 이쪽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눈물이 반사되어 빛을 냈다. 나는 최강수의 말에 동의하듯 일어나 앉았다.
“그다음 날 아침에도 큰아들은 고깃국을 끓여서 동생에게 먹였네. 자신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배가 부르다며 먹지 않았지. 다시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었네. 동생이 큰아들을 쫓아왔고 엄마를 보고 말았지. 동굴 바닥에 죽은 엄마의 자갈 무덤이 있었던 거네. 바닷물이 들어와 자갈 무덤을 쓸고 나가자 엄마의 옷소매가 드러났지. 아빠가 엄마를 바다에 수장했던 거네. 아마도 부패하는 걸 막기 위해서 그랬겠지. 순간 큰아들은 동생의 커다란 눈동자를 보고 말았네. 큰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빠처럼 말했지. 아니야, 내가 하지 않았어. 그런데 말이야. 동생은 울면서 엄마 품으로 기어들어 갔네. 그렇게 울던 동생은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고 큰아들은 이젠 더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
최강수는 일어나 앉더니 물 한 잔을 벌컥 마셨다. 그리고 저쪽에서 어둠을 뚫고 내게로 와 물을 권했다. 나도 물을 받아 마셨다.
“큰아들은 엄마의 주검을 동굴에서 끌어냈네. 그런 다음 덤불과 옷가지와 텐트 등을 전부 올려놓고 불을 지폈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거야. 불이 커져서 섬 전체를 태웠던 거지. 그 불길을 보고 누군가 무인도로 왔고 두 아들은 구조되었네. 그때 아빠의 시체도 발견됐지.”
“그 이후 두 아들은요?”
“두 아들은 고아원에 보내졌지. 그런데 큰아들에게는 문제가 있었네. 더는 동생의 커다란 눈동자를 볼 수가 없었던 거지. 그날이 자꾸 생각났거든. 무인도에서 자기를 바라보던 동생의 눈동자가 생각났던 거네. 그리고 아빠의 눈을 바라보던 자신의 눈. 그 눈에 비치던 아빠의 모습까지 떠올랐지. 반복해서 악몽을 꾸었네. 왜 아니겠는가? 날마다 악몽을 꾸지 않았겠나?”
최강수는 다시 이쪽을 쳐다봤다. 자신의 물음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그 큰아들이 최강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고아원에서 도망쳤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동생에게서 도망쳤지.”
최강수는 목이 타는지 또다시 물을 연거푸 마셨다. 이쪽에서도 저쪽의 최강수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최강수도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한순간 그는 잠들었다. 그의 숨소리가 한결 편안하게 들렸다. 그가 가여웠다. 나는 이쪽에서 어둠을 걷어내듯 저쪽으로 이부자리를 가져갔다. 최강수의 손을 잡았다. 이것이 내가 이 불쌍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나도 잠들었다.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서 어린아이가 사내아이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앞서가던 사내아이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어린아이가 뒤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내아이는 얼마쯤 가다가 땅을 팠다. 땅속에는 어린아이의 엄마가 누워있었다. 어린아이가 다가가자 그 사내아이가 뒤돌아섰다. 사내아이의 손에는 칼과 고깃점이 있었다. 사내아이가 어린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나를 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최강수는 옆자리에 없었다. 날마다 꾸던 악몽이었으나 오늘은 유난히 생생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싸늘해지더니 명치가 아팠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그렇다면 최강수가!”
정신을 차리고 여기저기 둘러봤으나 최강수는 집에 없었다. 마당으로 나와 길을 찾았다. 지난밤 눈이 내려서 그런지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길을 찾다가 산 아래 방향으로 나 있는 최강수의 발자국을 찾았다. 발자국은 나를 어깨동무의 구멍으로 인도했다. 얼마쯤 내려가자 어떤 냄새가 또다시 비위를 비틀었다. 저만치 앞에 묵직한 어깨동무가 나타났고 그 구멍 앞에 무엇인가 매달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것이 하이에나, 제왕, 최강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제왕을 잃은 산짐승들이 메아리로 화답했다.
목을 맨 밧줄을 끊고 최강수를 눈밭에 뉘었다. 최강수는 이미 싸늘했다. 그러나 그의 창백한 얼굴은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그 표정은 마치 이 지랄 같은 욕구로부터 해방됐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저만치 앞에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 밖으로 최강수가 벗어놓은 신발이 밝은 세상을 향해 툭 튀어 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이 경계선에 서서 바라봤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었을까? 도대체 이 경계선은 누가 정했을까? 그 높은 분들이 정했을까? 아니면 한 가족을 내몰았던 그 잘난 세상이 정했을까? 그도 아니면 최강수 본인이 스스로 정했을까?
나는 부엌 천장에 매달려 있는 그 주검들 밑에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최강수를 옮겨다 놓았다. 술을 그 위에 부은 후 무릎을 꿇고 절했다. 또 엄마와 아빠의 영혼을 위해 다시 술을 붓고 절했다. 그리고 최강수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내게 보여주듯 평온한 표정으로 웃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장례를 치렀다. 그러고는 장작에 불을 붙였다.
결국, 나는 고기 맛에 대한 그 끝없는 허기의 원인을 알아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자 땅속에 누워있던 엄마의 기억이 떠올랐다. 눈물이 흘러내려 입술에 닿았다. 눈물을 삼켰다. 엄마의 향기, 그 고기 맛! 그 끝없는 허기를 눈물로 가득 채우고 또 채웠다.
집에 돌아온 나는 어둠이 내리자 집 앞 골목 한가운데에 섰다. 한우, 삼겹살, 보신탕, 영양탕, 장어구이, 횟집 간판 불빛들이 묵직한 어깨동무를 하고는 그 퀴퀴한 냄새를 에둘렀다.
첫댓글 활발한 창작활동 성원합니다.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ㆍ합평방에도 참여해주세요ㆍ작가님의 이 시대의 소설 읽고 싶습니다ㆍ
퇴고하신 작품이군요.. 형과 동생이 서로 호칭하지 못한 기저는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겠지요..
개연성은 없지만 한여름 밤에 읽을 만한 장르소설로서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ㅎ
잘 읽었습니다..
작가 입장에선 장르소설을 쓴 게 아닌데 소재가 소재인지라 아무래도 좀 그렇습니다ㆍ감사합니다
퇴고하느라 수고했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ㆍ
퇴고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해요ㆍ좋은 글 쓰세요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