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73)효부열녀상
신관 사또가 부임해 고을을 둘러보니 발길 닿는 곳마다
선비촌이요, 양반 집성촌이요, 명문대갓집이다.
그래서 사또는 이방에게
“다가오는 단오절에는 그네뛰기나 씨름대회만 할 게 아니라 효부열녀를 뽑아 큰 상을 내리고
효부열녀비를 세워라. 그리고 비각을 지으라”고 지시했다.
올해는 누가 씨름 장사가 돼 황소를 타갈까 하는 세간의 관심사는 쑥 들어가고, 효부열녀로
누가 뽑힐까로 온 고을이 들떴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효부열녀 후보들이 천거됐다.
단오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자 추천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이방이 그중에서 열 사람을 뽑고
육방관속이 회합해 두 사람으로 압축시켰다.
류씨 가문의 홀로된 며느리 권이화, 그리고 이씨 가문의 청상과부 장수월행, 이 두 사람이
마지막 관문을 남기고 있었다.
권이화는 남편의 삼년상을 치르고 탈상한 후에도 소복을 벗지 않고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왔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한방에서 자며 똥칠을 한 벽과 방바닥을 닦아내고 시어머니를 목간시켰다.
장수월행은 탈상 후 절에 가서 극락왕생 백일기도를 올리고 홀로 된 시어머니를 매일 저녁 씻겨 드렸다.
효부열녀비를 세우고 비각까지 짓는다니 이것은 당사자 혼자만이 아닌 가문의 일이 됐다.
시집 가문에 친정 가문까지 합세하니 네 가문이 두 패로 갈라져 박이 터져라 가문의 영광을 내걸고
한판 대결이 펼쳐졌다.
당사자 가문이 아닌 제삼자의 추천서를 받으러 양 가문은 혈안이 됐다.
궁궐에서 부승지를 하다가 퇴임해 낙향한 우 대감의 추천서를 결국 류씨 가문이 낚아챘다.
그날 밤 권이화의 시아버지 류 참사는 집사에게 우 대감의 추천서와 묵직한 전대를 들고
몰래 서헌으로 가 사또에게 전해주라 일렀다. 집사는 야음을 틈타 관아로 향했다.
집사가 사람 눈을 피해 관아로 가던 중 당산목 앞을 지날 때
“헉!” 남자 둘이 단검을 뽑아들고 가는 길목을 막았다.
당산목 뒤에서 장옷을 눌러 쓴 여인네가 나와 우 대감의 추천서를 받아서 갈기갈기 찢어
개울물에 띄워보내고 조용히 속삭였다.
“전대는 자네가 갖고 가게. 은밀히 이뤄지는 일이라 사또가 영수증을 써주는 일도 없을 터이고
류 참사가 사또에게 물어볼 일도 없을 테니!”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이방 앞에 장옷을 덮어쓴 여인이 가로막고 패물 주머니를 건네주며
“장수월행의 어미요” 한마디만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단옷날 뚜껑을 여니 효부열녀상은 장수월행이 받게 됐다.
권이화는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싸들고 누워 울고
시가 쪽 류씨 가문과 친가 쪽 권씨 가문은 곡소리 없는 초상집이 됐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한다 해도 소문의 꼬리는 이어졌다.
‘장옷 눌러쓴 여인은 누구인가? 장수월행의 친정어미? 아니면 고모? 시누이?’
몇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아버지 탈상을 하자 홀로 큰 집을 지키던 권이화는 집과 전답을 모두 팔아
하인·하녀들에게 후하게 전대를 채워주고 자신은 흔적없이 고향을 등졌다.
칠년이 흘렀다.
어느 봄이 무르익은 날, 권이화의 친정집에 사인교 가마가 와서 친정어머니를 태우고 집을 떠났다.
날이 저물면 주막에서 자고 먼동이 트면 또 발걸음을 재촉해 닷새째, 사인교는 나룻배 포구에 닿았다.
“어머니~” 나루터에서 기다리던 권이화가 달려가 품에 안겼다.
“빙모님, 인사 올리겠습니다.” 덩치가 산같은 남정네가 나루터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할머니~” 처음 보지만 이남일녀 핏줄은 지남철처럼 할머니에게 안겼다.
사위 조 대인은 객주(客主)로 대상인이었다.
서른여섯칸 객줏집에는 수많은 창고에 물산들이 꽉꽉 찼고
늘어선 객방엔 화주들이 득실거리고 드넓은 마당엔 우마차가 가득하다.
서른둘이 된 권이화는 싱글싱글 웃으며 화색이 돌았다.
권이화와 늙은 어머니는 삼경이 지났는데도 끝없이 얘기꽃을 피웠다.
“엄마, 장수월행은?”
“그 애는 효부열녀가 돼 사또가 비를 세우고 시집 가문과 친정 가문을 빛냈지만
그것이 족쇄가 돼 시댁 별당에서 감옥살이로 한평생을 보낼 것이다.”
노모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그때 효부열녀상을 타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이냐!”
“그때는 죽고 싶을 만큼 낙담을 했는데….”
권이화도 어머니 말에 미소로 동의했다.
“엄마, 그때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던 장옷 쓴 여자
내가 상 타는 걸 그렇게 가로막고 훼방 놓았던 그 여자 정체는 밝혀졌어?”
“장수월행 어미거나 그 집안 여자였겠지.”
노모가 마당에 나와 별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건 나였어. 류씨네 집사에게 칼을 들이댄 두 남자는 네 오빠들이었고!”
첫댓글 한낮 땡볕은 여전히 따깝운 일기온차가
심한 요즘 건강유의 하시면서 행복한
일요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