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인을 주목한다>
소박한 선비, 사소한 행복
-최승법의『행복한 노후』
김우연(시인·문학평론가)
1. 고하 최승범
고하古河 최승범崔勝範은 1958년《현대문학》에 김동리의 추천을 통해 시조로 등단하였다. 1957년부터 1996년까지 전북대학교에서 시조와 수필을 지도해 오셨으며, 현재는 전북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고하문학관 관장이다. 그간에 다수의 시집과 수필집과 이론서 등 60여 권이 넘는 저서를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시조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 그래서 시조시인들에게 선생의 시조 사랑은 큰 귀감이 되고 있다. 2018년 8월에 ‘제22회 만해축전, 만해대상문예부문’을 수상하신 바 있다.《나래시조》127호(2018겨울) <특집>에서 정온유 시인은「맑게 가난한 선비, 최승범 시인」에서 “그냥 일상적인 사소함을 정갈하게 가꾸는 삶이 선비 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고하문학관 김순임 사원은 “교수님 곁에 있으면 제 마음까지 맑아지는 듯해요. 교수님의 모든 언행들이 맑게 느껴지지 때문이에요. 사람을 대할 때 권위의식이 없고, 차별하지 않으시면서 잘 챙겨주십니다. 하지만 정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몹시 화를 내시기도 합니다. 약속을 소중히 여기시고 당신의 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셔요. 그리고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데 아마 건강 비결이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통해보면 선생의 인품이 전해지는 듯하다.
고하 선생은 1931년 남원에서 출생하였으며, 가람 이병기의 제자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나를 낳으신 건 우리 부모님이지만 내가 부모 슬하를 떠나서는 가람 선생님이 나를 키웠다고 해야 해”(《나래시조》127호)라는 말씀에는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담겨 있다. 유명한 시인 신석정의 맏사위이기도 하다.
현대시조의 개척자로 평을 받고 계시는 고하 선생이 아흔의 연세임에도, 2019년에는 시조집『화시』와 단시조집 『행복한 노후』를 펴내시어 선생의 시조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화시』에 대한 평론을『현대시조』143호(2020봄)에「그림 같은 시, 시 같은 그림」을 발표한 바 있다.『화시』에 산문으로「스승 가람 추억」에서 “가람께서는 강의시간의 판서에도 자획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정서(正書)이셨다”라고 하셨다. 그런데《현대시조》에 실은 졸고를 읽으시고는 직접 정서(正書)의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귀한 평론으로 잘 간수하여 앞으로의 시작에도 도움이 되도록, 지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씀에는 고하 선생의 겸손한 인품이 전해졌다.
오늘날에는 시조의 세계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시조의 국민화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조의 세계화는 공허한 소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조의 세계화와 국민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한 쪽에만 매달려서는 안 될 일이다. 법화칠유法華七喩 중, 다섯 번째인 ‘계주繫珠’의 비유처럼, 우리 겨레는 시조라는 보배구슬을 가지고 있다. 1932년 가람 선생이 주창하신 <시조혁신론>을 고하 선생은 계승하시면서 후진들에게 시조 사랑을 몸소 보이시고 있다.
여기에서는 단시조집『행복한 노후』에 나타난 몇 작품을 통하여 고하 선생의 생활과 생각의 한 부분을 찾아보고자 한다.
2.『행복한 노후』
먼저 이 시조집의 표제시「행복한 노후」를 읽어본다.
시인 김석규의
시행이 눈을 끈다
-“여름의 나무 그늘은 바둑판이다
해 저물 때까지 도끼자루 썩는다”
그렇군
내일도 오늘이면 그래
행복한 날
이겠네
물질적 풍요를 이룬 현대에서 대가족제도 때와는 달리 노후에 외롭고 불행한 이들이 많다. 이런 해결을 위해 젊을 때부터 육체적 건강에 더 치중하는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 충족 없이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시에서는 ‘김석규’의 시집에서 “여름의 나무 그늘은 바둑판이다/ 해 저물 때까지 도끼자루 섞는다”라며 동화를 떠올리면서 오늘 이대로가 가장 행복한 날임을 확인하고 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생각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오늘도 나는」에서는 “늙음을 말한 시나/ 수필을 만나면// 건너뛸 수가 없다/ 안경알을 닦는다// 오늘도/ 나는 젊음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도/ 나는 젊음을// 챙기”고 있다는 말은 서산대사 오도송 첫 구절에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이라는 말과 통한다. 학자로서, 시인으로서 젊음을 챙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의「시인」에 나오는 “시인은/ 우주를 고아내야만/ 시인” 이라는 말처럼 우주를 고아내는 일일 것이다.
그 언제였던가
동리 선생께서는
추수문장을
사기도 하셨지만
시인은
우주를 고아내야만
시인이란
말씀이었다
그리하여「눈 감고 앉아」에서는 “눈 감고 앉아/ 만상을 헤아려보네// 지난 일들 되짚어 들고/ 오는 일들 모를 일이고// 먼 앞날/ 눈 감고 챙길 일/ 내 할 일은 아니제”라고 하고 있다. 법성게에서 ‘구세십세호상즉’이라고 하고 있다. 현재 이 순간에 과거·현재·미래가 다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막연히 ‘먼 앞날’은 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오늘, 이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시는 선생의 모습이 담겨 있다.「동리 선생」에서 “이 아침 문득/ 동리 선생 생각이다// ‘추수문장 불염진’/ 한 폭 글씨 때문이다// 생전에/ 내려 주신 휘호/ 두 눈 감고/ 그린다”라고 하였다.
고하 선생이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김동리 선생이 주신 휘호 ‘추수문장불염진’(가을물 같이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을 떠올리면서 평생을 맑게 살아오신 삶을 끝까지 살아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고하 선생의 고결한 성품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우보」에서는 “시작이 반이다/ 잰걸음 칠 일 아니다// 하룻길 셈하면/ 소 걸음이 잰걸음이다// 걸어서/ 팍팍하다며/ 한눈 팔지/ 말 일이다”라며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서 나아가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지팡이」에서는 “지팡이 없이/ 아직은 걷는다 해도// 이 나이면 당당히/ 짚는게 옳지// 무슨 힘/ 자랑이라고// 발뿌리 챙겨야지”라며 현재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고 있다. 불가에서 무엇인가 깨닫는다고 하면 우리는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방광불화엄경을 설법하시는 ‘무비스님’께서는 ‘신삼법인新三法印’을 주창하셨다. 그 첫째는 “∼구나”, 둘째는 “∼겠지”, 셋째는 “(오늘은 내 속을 끓게 했지만 그동안 나한테 베풀어준 인연을 생각하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면 꼬인거나 마음 상한 일이 잘 풀린다는 것이다. 첫째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둘째는 이유가 있겠지(예)약속을 어긴 경우), 그러면서 감사한다는 것이다. 일명 신삼법인은 “나·지·사 관법”이라고도 불린다. 사실 노인들은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치거나 하면 생명이 위태로운 것이다. 미리 자신을 안 다는 것은 평범하지만 작은 것이 큰 깨달음인 것이다.
떨림의 감지는
짜릿짜릿 즐겁다
산사에서 울려오는
파장의 종소리
뎅뎅뎅
귓불을 울리는
소리
소리
이 작품은 시집 제일 마지막에 실린「진동」이다. 산사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떨림의 감지는/ 짜릿짜릿 즐겁다”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단순히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니다. 화엄의 시각으로 보면 이 세상 삼라만상이 불佛이 아닌 것이 없다. 종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며 바위며 사람이며, 동물이며, 해와 달, 별 모든 존재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자만심 가득했던 소동파도 오도송에 “저 흐르는 물소리는 부처님의 다함없는 법문이요”(溪聲便是廣長舌)라고 읊은 바 있다. 이런 깨달음의 자세로 세상을 보면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녹음방초」에서는 “우리 들녘 천지/ 두 눈 펼져 보시게// 활짝 가슴 열어/ 저 지평선을 보시게// 늙은이/ 까칠한 볼 스치는// 산들바람도/ 보시게”라고 이 세상이 불국토요 천국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흔히 ‘무소유’라고 말하는 경지가 바로 이런 경지가 아닐까. 그러나 이런 것이 저 산속에만 있다면 일반인들은 거리가 멀 것이다. 학자, 선비, 시인으로서 현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하 선생은 일상생활에서 이런 경지가 몸에 배어 있음을 시집 첫 작품인「대화」에서 알 수 있다.
‘어디로 모실까요’
서글서글한 말씨다
방향을 말하자
잘 모시겠단다
‘춘추는
어찌 되십니까“
편해진
마음이다.
택시 기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편해진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남들과 말로 인하여 기쁨을 얻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작품으로는「태깔」이 있다. “선듯 제 자리/ 내어 앉으란다// 차 안은 한창/ 붐비는 속을// 저 학생/ 본디 있는 태깔// 곱기도/ 곱다”라며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준 학생을 태깔이 곱다고 한 것이다. 물론 아흔의 노인이 자리 양보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노인을 공경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서로 베풀며 살 때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법이다. 물질로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세상임을 깨닫게 해 준다. 사소한 일상생활 속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매우 큰 일인 것이다. 시인들은 더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들을 찾아보고, 감동을 주는 시를 써야 할 것이다.
3. 추수문장불염진
고하 선생의 단시조집『행복한 노후』를 살펴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오늘에 충실한 삶이다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의 실천에서 시작됨을 깨닫게 한다. 항상 규칙적인 생활과 바른 길을 실천하시면서 시조 창작을 평생 해 오시는 고하 선생은 후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소박한 선비, 사소한 행복”을 떠올리면서 고결하게 살아오신 삶을 떠올리게 하는 휘호 ‘추수문장불염진’을 다시금 돌아본다. 이것은「오늘 일」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의/ 명언이었던가// 움직임은 말에/ 앞서야 한다// 오늘 일/ 미루는 일은‘ 오늘을 잃은 일이다”라고 했듯이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는 교훈은 독자들에게도 가슴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