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50-58. 영생의 복은 주님의 재림때 완성
예수님은 오셔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천국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한 몸이 된 모든 성도들의 복된 공동공간입니다. 천국은 완성된 형태의 사랑이며 기쁨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자리엔 이미 천국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신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음 다음에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어차피 확률이 1대 1이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손해인지 도박을 해보자. 천국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 세상을 함부로 살았는데 죽어서 보니 하나님도 있고 천국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과, 천국이 있다고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하나님도 천국도 없는 경우의 사람중. 누가 낭패를 볼까요?”
이슬람교도 무슬림의 말입니다.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지만 우리 교주의 무덤은 웅장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모하메드의 이름다운 분묘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야. 이 말을 들은 크리스천이 대답하기를 맞아, 그것이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점이지.
모하메드나 다른 종교의 교주는 모두 죽어 무덤에 묻혀 썩어 버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무덤은 없는 것이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종교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외에 부활을 말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한국은 대부분 산속에서 수행하는 소승불교였는데 요즘은 산에서 내려와서 포교를 하는 대승불교가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찬불가도 만들고, 심방도 하고, 불교 어린이 학교도 개설하고, 수련회도 하고 주일마다 정기 예불도 드립니다.
불교가 아무리 기독교를 모방한다 해도 한 가지 모방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 기독교 역시 존재의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지키는 주일은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은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늘나라는 혈과 육으로는 갈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50절에서 ‘혈과 육’은 ‘썩는 것’은 죄아래 있는 것으로 불완전을 말씀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썩지 않는 것, 완전한 것, 거룩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곳입니다. 이 말은 현재 입고 있는 육체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몸을 입어야 할까요,
예수님이 요6: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고전6:9,10절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다시 말해서 죄 아래 있는 현재의 몸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빌3:20절에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지금 우리에게 하늘의 시민권이 있다손 쳐도 지금의 몸으로는 갈수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죽어야 한다고 있습니다. 영과 육이 분리 되는 것은 죽음의 문을 넘어야 합니다. 죽었다고 해서 바로 새 몸을 입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셔야만 새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1,2절“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그러므로 죽음은 끝도 아니고 불행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원한 복과 소망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죽음의 과정을 지나야만 하는 것이며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사망권세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완전히 이기게 됩니다.
지금까지 사망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인간을 지배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법칙에 의하여 죄인 된 인간은 한 번 죽을 수밖에 없었고 그 후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정하신 규정입니다.
지금까지 죽지않은 사람은 없었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냥꾼이 독수리를 잡으려고 화살을 겨누면서 독수리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독수리는 자신이 죽을 줄도 모르고 뱀을 잡으려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이 뱀을 쳐다보았더니 뱀도 어딘가를 노려보았는데, 뱀은 꼼짝도 하지 않고 개구리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개구리도 마찬가지로 꿈쩍 않고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 개구리는 무당벌레를 잡으려고 노려보았습니다. 무당벌레도 꼼짝 않고 있었는데, 진딧물을 잡아먹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냥꾼은 그 먹이사슬을 보다가 슬그머니 화살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혹시 누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노려보는 것은 아닐까?' 사냥꾼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습니다. 인간은 죽음에 의해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고 모든 사람은 죄의 대가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망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인간 최고의 두려움입니다.
병에 걸리는 것이 두렵고 특히 중병에 걸리는 것이 더 두려운 이유는 그 병을 치루면서 당해야 하는 고통 때문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죽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왜 무서운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한 번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생명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을 지배하는 최고의 대적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칙 때문에,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법칙이기 때문에 인간은 죄를 지으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 죽음의 권세는 지금까지도 인간을 지배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배할 것입니다. 이 죽음의 권세를 이겨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러나 죽음은 정복되지 않았습니다.
정복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인간을 지배하고 있고 인간은 죽음 앞에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 사망을 꺽기위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일은 비밀이라고 하십니다. 그가 오실 때는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오시지 않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이 알도록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때는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유업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함을 설명합니다. 이 영원한 유업은 육체적인 삶을 넘어선 것으로, 부패하지 않고, 죽음을 이기는 새로운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상속입니다.
구원의 최종 단계는 부활체를 덧입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에 참여할 이들이라면 자연인처럼 ‘육’이 아닌 육을 초월한 ‘영’에 의해 사는 것, 성령의 의해 사는 것을 말하는데 부활에 대한 비밀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요5:25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또 고후4:14절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부활에 참여할 이들이라면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54~57절).
래서 예수님 자신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런 영생의 축복을 우리가 언제 누리게 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그 때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라고 말씀합니다.
주께서 천사장의 나팔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활한 생명들은 이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죽을 것이 아니라 죽지 아니할 것으로 옷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되는데 그 천국에서는 한 마디로 죽음이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천국의 삶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천국은 사망이 없는 곳입니다. 사망이 없으니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도 없고 아픈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살 곳이 바로 사망이 없는 천국입니다.
그 천국의 축복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크리스천들에게 "주 안에서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확신시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고난과 시련, 그리고 봉사의 모든 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수고는 영원한 유업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광과 상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믿음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제공합니다. 우리의 여정이 때로는 어렵고 힘들 수 있으나,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승리와 영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등대지기 /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