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운 전도사 구원론의 글 2013년 9월25일 글
오늘도 칼빈을 성토하며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칼빈의 영향으로 구원을 매우 쉽게 여기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라고 성경에 쓰여 있지 않느냐…? 라고 항변합니다.
저는 그들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장난이냐고요..
자! 한 번 들어보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맞습니다. 옳습니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믿음이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계속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이론이 아닌 성경으로 이를 증명하겠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도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았습니다. ----> 십자가 사건 이전 상황으로 볼때 인가?
십자가 사건 이후에 상황으로 볼때인가?
성막, 놋뱀, 유월절 어린양의 피.. 등등
모두 예수님의 나타남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사람들도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대다수가 구원받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고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상당수가 또다시 범죄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상징하는 만나를 먹고 구원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매우 많은 수가 불평하다 죽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출애굽 사건 1세대는 구원을 받았는가? 못받았는가? 김관운 전도사 주장은 못받은것으로 보는데 잘못된 횡설수설 이론이다.
자! 이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지속할 때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킹제임스 흠정역: 더욱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work out) 변개된 성경은 변개된 주장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것은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완료형도 있다는 것을 알아라>
어떤 이들은 구원이란 영혼육의 구원이라 영은 구원받았는데 육은 아직 구원을 받는 중이다.. 라며 분리하는 것을 듣습니다.
김관운 전도사 모르면 배워서 사역하라 < 영은 거듭나고 혼은 구원받고 육은 구속받아야 된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가 발생합니다.
만약 그가 영만 구원받고 아직 육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날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다면
육은 지옥에 가고 영만 천국에 가게 됩니까?
그럼 그 영은 육을 찾으러 지옥으로 가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천국에서 귀신(?)이 돼서 천국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게 되나요?
이런 치명적인 논리의 허점이 있음에도
<킹제임스흠정역.요6:63 :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영.혼.육에 대해서 다시 배우라.
여전히 구원을 그런 식으로 분리해서 가르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지 그지없습니다.
구약을 통해 본 구원의 개념은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이 아닌 현재진행형입니다.
하지만..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음을 보면 구원이 과거완료형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후 범죄하기 전에 죽은 이가 있다면 그는 구원받은 상태로 죽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럼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인한 구원은 그에게 과거완료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그들이 구원자의 능력을 기억하지 못해 그들의 믿음을 놓치고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광야에서 버림을 당하는 참사를 당하게 됨을 성경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자의 능력을 기억못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께서 기억을 해주시는 것을 왜 모르나 완료형 주장했다가 진행형 주장했다가 횡설수설 하지 마시라 구원은 완료형이다.
그렇다면 구원은 현재진행형으로 봐야 옳습니다.
이처럼 한 사건에서 과거완료형으로 또 현재진행형으로 동시에 나타나는 신비가 바로 구원의 신비입니다.
사도바울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칼빈주의로 오염이 됐기에
한 번 구원 받으면 그것이 영원히 지속한다고 세뇌가 됐습니다.
사도바울조차 자신이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했는데.. 도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구원에서 버림받을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두려운것이다 성경을 다시 확인하시라>
그 결과.. 어떤 목사님은 아들이 어머니와 동침을 해도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휴거된다고 자신 있게 선포하고 그 밑에 성도들은 아멘 합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우리들은 구원을 자랑하며 나아가 구원을 확신하라고 강요까지 합니다.
아니 오히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믿음이 없다고 다그치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이 들었다면 가슴이 답답해 아무 말도 못 했지 싶습니다.
구원이란 참 신비한 것 같습니다.
<구원이 신비한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육체안에 나타나신것이 신비하고 예수님의 신부됨이 신비한것이다 성경을 확인하라>
성경에 나타난 구원은 과거완료형이며 동시에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우리의 구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성경이 계속 우리에게 주지시키는 구원의 핵심 주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구원을 잃지 않으려는.. 마지막까지 구원을 완성하려는..
<구원은 영적 출생의 시작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구원은 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피를 토하는 선한 싸움이 있어야 한다고 증명하고 있음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위한 피를 토하는 선한 싸움..
그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늘 나를 죽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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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교회 김관운 전도사가 성경을 바로보지 못하고 많은 공격성글들을
바이블 빌리버의 시각으로 보면 터무니 없는 주장들이다.
물론 칼빈의 예정론이 바르지 못한 이론인것은 맞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이론을 떠벌리고 다시 바르지 못한것을 가르쳐서야 되는가?
바른 교리로 가르쳐야 많은 온라인 회원들이
알것이 아닌가?
김관운 전도사!!
맑은 정신으로 돌아가시라
첫댓글 진짜.. 횡설수설이 맞네요.
김관운 전도사는 차라리.. 그냥 "끝까지 견뎌야 하고 죽어봐야 안다" 라고 주장하는게 더 날뻔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버림당할까봐.. 그 구절은 바로 다음장 10장에서 "본보기" 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예
횡설수설입니다.
많은 회원들이 김관운 전도사를 추종하고 있으니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