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떠나가는 장충단 공원
배호 (裵湖, 본명은 배신웅(裵信雄), 1942.4.24 - 1971.11.7)
1942.4.24. 중국 산동성 제남시 경7로 위15호에서 부친 독립투사 배국민과 모친 김금순 사이에 1남 1녀중 장남으로 출생, 해방후인 1946.4.경부터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81번지에서 생활을 했다. 1949년부터1955년까지 서울 창신초등학교를 다녔다(6.25때 부산 피난후 서울 수복시 서울로 옴). 1955년 서울 영창학교(성동중 전신)1학년 1학기 마치고 부친 별세로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의 모자원에서 생활하면서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를 수료했다.
1956.8. 음악을 하기 위해 혼자 상경하여 막내 외삼촌 김광빈를 통해 드럼을 배우기 시작 음악에 입문했다. 1958년 1년만에 드럼을 마스터하고 「김광빈 악단」에서 주로 연주를 하였다. 1960년 부평 미군부대 Camp Market 관할 클럽 등에서 2년간 악단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하였다. 1963년 「김광빈 악단」및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 부르기 시작 김광빈 작편곡의 굳바이 등 최초로 녹음하여 가수 데뷔 음반 최초 발표, 藝名을 裵湖로 지었다.
1964년 낙원동 Prince 카바레에서 밴드 마스터로 Pick Up되어「배호와 그 악단」이란 이름으로 12인조의 풀 밴드 구성하여 드럼치며 노래하는 가수로 장안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같은해 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과 정성수 작사 김인배 작곡의 [황금의 눈] 등을 발표하였다. 1966년 신장염 발병으로 투병 생활 시작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랑] 등 10여곡 병상 취임 당시 노래의 여러 군데에서 가쁜 호흡으로 인하여 가사를 짧게 끊어서 부른 흔적이 있다.
1966년 가을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청량리 단칸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던중 신진 작곡가 배상태를 만나 그의 대표곡이자 최대 힛트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를 취임하여 1967년 4월에 음반을 발표, 특색있는 음색과 신기의 호소력으로 전국 인기챠드를 휩쓸면서 정상의 인기가수로 부상하다. 이어서 발표된 최치수 작사 배상태 작곡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연속 힛트함으로써 인기가수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으며 그해부터 각 매스컴 주최 행사에서 수상 릴레이가 시작되고 1968년 MBC 10대 가수상 수상- 라디오 등 인기 정상과 더불어 몸이 회복되면서 왕성한 가수활동 시작하여 힛트곡 [안녕] 및 주옥같은 번안곡 등 생애 최고로 활발한 활동과 노래를 발표하면서 본인이 내 생애 최고의 한해로 말할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차지 하면서 가을부터 TBC, KBS, MBC 등 주요 가요 가수상을 휩쓸었다.
1969년 1월 아세아레코드사 전속에서 신세기레코드사 전속으로 소속을 옮기면서 무겁고 어두우면서도 가일층 성숙된 톤으로 [한목숨 다바쳐][당신] 등의 명곡을 남겼다. 공개방송.업소출연.지방공연 등 무리한 활동으로 신장염 재발로 신한의원 입원중 12월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시에는 동료가수(이상렬 등)의 등에 업혀 출연 청중들을 숙연하게 한 가운데 청중들로부터 쾌유를 비는 감격스러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1970년 5월부터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어 서울 시내 극장무대를 시작으로 다시 공연활을 시작 백영호 작곡의 [비내리는 명동] 등 많은 곡을 취임하였고, 生의 觀照的 분위기의 곡들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연말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에는 건강하고 밝은 표정으로 트로피를 들고 관중을 향해 인사하다. 동년 2월 문산 공연중 병세의 악화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치료하다. 동년 3월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대도레코드사에서 지난 힛트곡들을 마치 굵은 붓으로 거칠게 텃치하는 듯한 톤으로 리바이벌을 하였다. 동년 여름 그의 마지막 곡들인 [0시의 이별][마지막 잎새] 등을 취입하였다. 동년 10월 초까지 죽어도 무대에서 쓰러지겠다는 초인적인 의지로 극장. 업소 등의 무대에 섰으며, 어떤 때에는 음악만 틀어 놓고 그대로 무대에서 서 있기도 하였다.
1971년 10월 20일 MBC '별이 빛나는 밤에'(진행:이종환) 출연후 감기 증세와 함께 신장염 악화 27일 신한의원 입원. 동년 30일 세브란스 병원 입원 이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메다가 11월 7일 더 이상 가망이 없지 퇴원 미아리 집으로 가던중 완전 의식불명 그날 저녁 9시 45분경 자택에서 운명하였다. 동년 11월 11일 예총회관(현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가수협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 경기도 장흥소재 신세계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서울의 여러 명소들을 노래 불렀는데 '삼각지 로타리'와 '안개낀 장춘단 공원' 비내리는 명동거리' 등 추억속에 그러한 곳을 상징처럼 지난날의 사랑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슬픈사연이 깃든 애상의 표현으로 노래한 것은 어쩌면 배호 자신의 운명 같은 가련함을 추억속에 그려보며 구슬프고 애달프고 절절하게 구수한 목소리로 불러진 노래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