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좁은 갱생원 사무실 안에 서울시청 사회과에서 나온 공무원들과 갱생원 직원들, 11명의 동장들 그리고 알로이시오 신부와 수녀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1981년1월1일부터 갱생원의 운영 주체가 마리아수녀회가 된다’고 선포했다.
모두들 선 채 서울시 공무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11명의 동장들만은 못마땅한 얼굴을 한 채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운영 주체가 누가 되든 전혀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1980년 12월31일, 서울시는 복지시설의 위탁운영에 관한 조례를 급히 만들었고, 마리아수녀회와 서울시는 원생 명단과 인계물품의 목록이 포함된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공식적으로 마리아수녀회가‘서울시립갱생원’ 운영을 맡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인수인계 과정에 들어갔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정식으로 갱생원을 인수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큰 어려움에 부딪히고 말았다. 원생들을 돌보고 있던 각 동의 동장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알로이시오 신부에게 거부 반응을 보이면서 사나운 이리처럼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인수인계를 받은 뒤 며칠 동안은 미처 부식을 마련하지 못해 갱생원에 이미 준비되어 있던 재료로 밥을 해서 나누어주었다.
김치가 보이지 않자 주방을 맡았던 조 요셉피나 수녀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한 원생이 흙 묻은 장화에 물을 한바가지 끼얹고는 마치 물탱크처럼 생긴 곳의 뚜껑을 열고 내려갔다.
요셉피나 수녀가 따라 가보니 그 원생은 장화발로 다른 김치를 밟아 가며 김치 몇 포기를 물통에 담고 있었다. 사람이 먹을 김치를 장화 발로 밟으며 꺼내 오는 것도 놀랄 일이었는데, 김치는 제대로 김장을 하지 않아 고춧가루가 하나도 없는 흰 배추 그대로였다.
놀랄 일은 그 뒤에 또 일어났다. 밥을 해서 나눠주자 동장들은 반찬 그릇을 알로이시오 신부 코 앞에 들이대며 “야! 이 따위를 반찬이라고 주냐?”며 집어 던지고 행패를 부렸다.
그동안 동장들은 자기들 밑에서 부하 노릇을 하는 실장들과 생활 동 처마 밑에 솥을 걸어 놓고 따로 음식을 만들어 먹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갱생원에 납품되는 식재료들이 대부분 질이 형편없자 자기들은 먹지 않고 원생들에게만 주었으니 원생들이 먹는 반찬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을 놓고 동장들의 행패가 계속되던 며칠 뒤, 쌀을 가득 실은 부식차가 갱생원에 들어왔다. 요셉피나 수녀는 쌀을 창고에 쌓으라고 지시했다. 그때 동장 한 명이 쫓아오더니 동장 한 명당 쌀 열 포대씩 따로 한곳에 내리라고 했다. 그동안 쌀이나 고기가 들어오면 으레 원생들이 먹기 전에 동장들이 자기들 몫을 따로 챙겼던 것이다.
하지만 요셉피나 수녀는 동장의 말을 무시하고 쌀을 모두 창고에 쌓게 했다. 화가 난 동장은 “수녀 새끼들이 오더니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하며 요세피나 수녀의 멱살을 붙잡았다.
“뭐 이 따위 남자가 있담!”
얼떨결에 멱살을 잡힌 요셉피나 수녀는 같이 멱살을 잡고는 있는 힘껏 밀쳐버렸다. 동장은 빙그르 돌면서 언 땅 위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훗날 요셉피나수녀는 어디서 그런 용기와 힘이 났는지 자신도 놀랐다고 했다. 동장이 다시 일어나 달려들었지만 마침 다른 수녀들이 왔고, 부산 소년의 집에서 자란 대학생들까지 몰려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알로이시오 신부는 소년의 집에서 자란 대학생 20여 명을 갱생원에서 지내게 하면서 수녀들을 돕게 했다)
갱생원을 인수한 지 1주일쯤 지나자 동장들은 노골적으로 수녀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각 동에서 원생 두세 명을 시간마다 돌아가며 사무실로 보내 행패를 부리게 했다.
동장들의 지시를 받고 사무실에온 원생들은 “잘해 주겠다고 온 당신들이 그동안 우리를 위해 한 것이 무엇이냐? 바뀐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배고파 못 살겠다.” 소리치고 험한 소리들을 퍼부었다. 이런 행패는 날마다 계속 되었다.
동장들의 횡포와 방해가 너무 심해 수녀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동장들은 환자들을 모아 놓은 방에는 절대 못 들어가게 했다. 의무 담당 수녀가 환자 방에 들어가려고 하면 막무가내로 아무 이상 없다는 소리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죽어 나오는 사람이 생기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 1천2백 명의 원생보다 11명의 동장들이 수녀들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