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북아일랜드 협약
같은 영토 내인데 英·북아일랜드 교역은 통관 대상이었죠
입력 : 2023.03.01 03:30 조선일보
북아일랜드 협약
▲ 27일(현지 시각) 북아일랜드 협약 관련 새로운 조치에 합의한 뒤 악수를 나누는 리시 수낙(왼쪽)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오른쪽).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과 유럽연합(EU)이 27일(현지 시각) 북아일랜드 관련 새로운 협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보도됐어요.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에 어떤 무역 장벽도 없이 활발한 교역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이는 기존에 '북아일랜드 협약'이라고 불리던 협약을 수정한 거죠.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 과정에서 EU와 체결한 '북아일랜드 협약'은 2021년부터 발효됐는데요. 이 협약에 따르면 영국의 영토인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 후에도 EU 단일 시장에 남게 됐어요. 세관 검사나 관세 납부 등의 절차 없이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공화국 및 나머지 EU 회원국으로 물품을 이동시킬 수 있었죠. 반대로 영국에서 북아일랜드로 물품이 이동할 때는 한 국가임에도 EU가 요구하는 엄격한 통관 절차를 거쳐야 했어요.
그래서 북아일랜드는 영국 본토와의 물품 이동 제약에 대한 불만이 컸고, 영국 역시 EU에 지속적으로 '북아일랜드 협약'에 대한 재협상 의지를 드러내 왔어요. '북아일랜드 협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아일랜드, 1949년 英 연방서 독립
영국은 본토인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아일랜드섬의 북아일랜드, 이렇게 네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아일랜드섬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1949년 아일랜드가 영국 연방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면서 북아일랜드만 영국의 영토로 남게 됐지요.
오늘날 아일랜드인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민족은 기원전 5세기쯤 이주한 켈트족입니다. 이들은 대다수가 가톨릭교도지요.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 속에 전통문화를 지켜오던 이들은 12세기 영국 헨리 2세의 침략으로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됐어요. 16세기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종교개혁을 일으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해 영국 국교회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가톨릭교도가 다수인 아일랜드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강화됐답니다.
아일랜드에 남아있던 가톨릭 구교도들은 영국의 압력에 끊임없이 저항했어요. 영국은 아일랜드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북부인 얼스터 지방에 신교도들을 이주시켰어요. 이때부터 아일랜드 북부 지역은 새로 이주한 신교도 주민과 기존의 아일랜드 구교도 주민 사이에 분쟁이 자주 일어났지요.
1801년 아일랜드가 결국 영국에 합병됐지만 아일랜드인들은 독립운동을 이어갔어요. 1919년 아일랜드는 독립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데요. 1921년 결국 영국은 영국계 신교도가 많은 얼스터 지방(현재의 북아일랜드)을 분리하고 아일랜드를 자치령으로 인정하는 타협안을 승인합니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수립됐지요. 이후 아일랜드는 헌법을 개정해 1949년 영(英)연방에서 탈퇴, 완전히 독립했어요. 그러나 영국 영토로 남은 북아일랜드에는 영국계가 많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교와 구교의 분쟁이 자주 일어났지요.
북아일랜드, 구교도·신교도 갈등
북아일랜드에서는 지속적으로 가톨릭 구교도들의 시민권 운동이 일어났어요. 선거권에서뿐만 아니라 공영주택을 할당하거나 취직할 때 구교도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거든요. 1972년에는 영국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구교도 시민 14명이 사망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극렬한 분쟁은 1990년대까지 계속됐죠. 1996년부터 아일랜드·북아일랜드·영국의 다자간 평화협상이 시작됐고, 1998년 4월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약속하는 '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됐어요.
이 협정으로 북아일랜드에는 자치적인 의회와 행정부가 설립되고 북아일랜드인들은 시민권을 보장받았어요. 또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자유로운 통행과 무역이 가능해졌고,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했답니다.
통관 지연으로 불만 증폭
브렉시트 이전에는 영국이 EU의 규칙을 따랐기 때문에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의 교역은 쉬웠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EU에서 떠나기로 하면서 좀 복잡한 문제가 생겼어요. EU 비회원국 영토인 북아일랜드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기 때문에 특별한 무역 협정이 필요했던 거죠. EU는 EU 외 국가에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한 엄격한 검사를 요구하거든요. EU는 북아일랜드가 EU 단일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뒷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어요.
영국과 EU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국경 문제는 역사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엄격한 국경 통제와 검사가 분쟁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양측은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인 '벨파스트 협정'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합의했고 '북아일랜드 협약'을 체결했어요.
이 협약에 따르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에서는 상품을 확인하지 않고,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에서 모든 검사 및 문서 확인을 해야 해요. 그런데 이 협약 때문에 북아일랜드 내에서는 불만이 생겼어요. 영국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는 '국내 이동' 물품이 통관 대상이 되면서 냉장육이나 신선식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또한 이 협약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의 일부로 존속하는 것을 찬성하는 연방주의자들과 아일랜드 통일을 원하는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을 부추겼어요. 연방주의자들은 영국 본토와 새로운 장벽이 생겼다며 시위를 벌이다가 민족주의자들과 충돌하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영국은 EU에 '북아일랜드 협약'의 개정을 요구해왔던 거죠.
▲ 1916년 아일랜드 시민군이 봉기를 일으키며 발표한 선언문.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실제 독립은 1949년 이루어졌어요. /위키피디아
▲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아일랜드 독립전쟁’ 기념 동상. 전쟁 당시 영국에 대항해 싸운 아일랜드 무장단체를 묘사하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 북아일랜드 데리에 있는 ‘피의 일요일’ 기념비. ‘피의 일요일’ 사건은 1972년 1월 30일 데리에서 시민권 운동을 벌이던 비무장 가톨릭 구교도들에게 영국군이 발포(發砲)하여 14명의 사망자를 낸 유혈 사태입니다. /위키피디아
기획·구성=안영 기자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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