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와 평신도
성경본문: 느헤미야 12: 42
42.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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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다. 역사적으로 조직교회와 유형교회가 생기면서 자연히 교회의 성직계급이 생기게 되어 헬라, 로마 시대의 도시국가에서 장 관과 시민의 이중적 대응성을 본따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평신도의 위 치를 상대적으로 약화시켰다.
중세 카톨릭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대립과 차별성을 교회 제도에 두었다. 최근에는 차츰 평신도의 역할이 강조되고 성직자 중심의 목회 구조에서 성직자와 평 신도의 공동의 목회 구조로 전환되어 가도 있다. 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데 에스라와 느헤미야와의 관계를 통하여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본다.
1. 함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고레스왕이 주전 538년에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의 유대포로민의 귀환을 허락하였다. 1차는 스룹바벨이 인도하였고 2차는 에스라가 인도하였고 3차는 느헤미야가 인도하였다. 백성을 인도하는 것도 성직자인 에스라, 평신도인 느헤미야가 함께 하였다. 고레스의 칙령은 성직자나 평신도 할 것없이 누구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보편적이며 누구나 믿으면 구원받게 된다. 출애굽 때에 직분이나 기능의 구분이 없듯이 포로귀환 때도 마찬가지였다.
요한복음 3:16에도 "누구든지"라고 하여 보편적 구원을 선언하신다.
성직자가 더 은혜와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이 버림이 될 까 염려하였고 야고보도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였다.
2. 각자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귀환하여 허물어진 성전을 다시 수축하였고 느헤미야는 성벽 을 재건하였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각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나라, 하나의 하나님의 나라,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모두의 역할이 필요하다.
성직자는 성직자의 일이 있고, 평신도는 평신도의 일이 있고, 성직자는 평신도의 일을 할 수 없고, 평신도는 성직자의 일을 할 수 없다.
사울왕은 사무엘이 더디 오므로 대신 제사를 드렸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사무엘이 늦게 오는 실수를 하였어도 왕이 제사장의 일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서로의 기능이 다르고 다른 기능이 다 모아져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가게 된다.
3. 동역자이기 때문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함께 일하는 자이며 하나가 되어서 일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동역자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먼저는 하나님과 우리가 동역자라고 하였고(고 후 6:1) 서로가 하나님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동역자라고 한다.
바울은 어느 한 교회에서 오래 있지 않았다. 바울은 그가 동역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없었으면 바울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디모데, 마가, 누가, 빌레몬, 디도, 아리스다고, 데마, 우르바노, 글레멘드, 아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에게 동역자라고 하였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동역자로서 하나가 되어 함께 하나님의 나라 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목회자에게 의존된 교회가 아니라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공동의 목회를 만들어가는 교회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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