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과 다윗 17 (삼상 31:1-13)
영적적용 : 육신완성론
요약
사울의 최후는 육신적인 면의 종말의 예표이다. 사울이 화살을 맞고 중상함은 말씀으로 생각의 변화를, 자결함은 육신적인 것을 죽이는 회개를, 머리가 베임은 하나님 주권중심을, 갑옷을 빼앗김은 영적인 일에 거스리지 아니함을, 시체가 성벽에 내걸림은 죄를 수치로 아는 가치관의 변화를, 시체가 불살라짐은 영성을 입어 변화됨을, 에셀나무 아래 매장됨은 부활의 소망을 상징한다.
설명
육신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나타난다.
1. 영적인 훈련을 통해서 변화된다.
1절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 영적인 강한 훈련을 통하여 육적인 것을 회개하게 된다.
2. 이제는 마음이 육신의 욕망을 따르지 않는다.
1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 죽으니라"
☞ 사울을 따르는 백성들은 육신적인 것을 쫓던 마음을 상징한다.
3. 신앙의 인격으로 조성되어 간다.
2절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 세 아들은 지정의 인격의 삼요소이다.
4.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3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 화살은 말씀이나 생각 사상 등을 가리킨다.
5. 죄악의 수치를 알고 회개해야 한다.
4절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 이 견딜 수없는 죄악의 수치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6. 자기 주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9절 "사울의 머리를 베고"
☞ 이는 하나님 주권중심의 회복을 뜻한다.
7. 신령한 일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9절 "그 갑옷을 벗기고"
☞ 성령을 거스리는 대적 성향을 버림을 가리킨다.
8.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10절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으매"
☞ 자신의 죄를 수치로 아는 가치관의 변화가 생겨나야 한다.
9. 주를 위해 신령한 불이 붙어야 한다.
12절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 육체가 영성을 입어 변화됨을 상징한다.
10. 육신은 죽어도 영원한 부활의 소망이 있다.
13절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일을 금식하였더
라"
☞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육신은 부활하게 될 것이다.
강해
오늘은 사울과 다윗 마지막 회가 되겠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우리 안의 존재하는 두 성향 즉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대립적인 양상과 아울러 영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점점 육신적인 것이 그 권세를 잃고 최후에는 육신마저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신령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사울의 최후를 단지 교훈적인 측면으로만 본다면 육신을 따르는 삶의 비극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즉 육신을 따라 살면 그 인생이 심히 방황하고 자기의 영혼과 인생까지도 불행케 되며 귀한 모든 약속과 특권을 상징하고 수치 당하다가 결국은 회개치 않으므로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측면에서 사울의 최후를 볼 때 영성화되어 가는 성도의 육신적인 면의 종말을 예표함입니다. 비록 우리의 육신일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그것은 신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그 구체적인 사항을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울은 블레셋에 의하여 죽었습니다.
1절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라 했습니다.
여기 블레셋은 사단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사단에게 멸망 당하는 이 사건이 어떻게 영성적 육신론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더욱 영성적으로 만드시기 위해 사단을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자기를 낮추고 강해지고 갖가지의 신령한 것들로 무장하게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육신적인 것을 죽이는 데는 사단과의 전쟁 그 수준의 영적인 강도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사단의 시험은 결국은 성도를 온전케 만드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2. 사울을 따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1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했습니다.
대개 백성들은 마음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사울을 따르는 백성들이 죽었다란 이제 육신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성적으로 변화된 성도들은 온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3. 사울의 세 아들 역시 죽었습니다.
2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했습니다.
여기 사울의 세 아들은 육신적인 마음의 삼 요소를 가리킵니다. 즉 마음의 삼 요소는 지정의인데 지정의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고 육신적인 일에 힘쓰던 그 마음이 이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4. 사울은 화살을 맞고 중상을 당했습니다.
3절에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했습니다.
여기 길보아산 전투에서 패전하여 적군이 심히 근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활 쏘는 자가 사울을 발견하고는 화살을 날렸습니다. 이것이 사울이 죽게 된 배경인데 여기 화살은 생각이나 사상 말씀 등을 비유합니다. 그리고 몰려오는 전쟁터의 적군들은 성령의 상징입니다(사59:19, 사13:9). 그러니까 성령으로 전해지는 말씀을 통해 육적인 요소들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5. 사울은 자기 칼로서 자결했습니다.
4절에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5 병기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했습니다.
사울이 자결하게 된 동기는 블레셋의 화살을 맞고 잡혀 모욕을 당할까 두려워서 였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성령의 말씀 앞에서 자기 육신적인 것의 부끄러움을 깨닫게 되어 자기를 치며 회개하게 됩니다.
6. 사울의 머리는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9절에 "사울의 머리를 베고 "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육신적인 것의 머리도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제는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내 방법대로 나의 마음대로 살지 않겠다는 여호와 하나님 주권중심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7. 사울은 갑옷도 벗김을 당했습니다.
9절에 "그 갑옷을 벗기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이 사실을 이처럼 상세히 기록함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울의 갑옷을 벗겼다는 내용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영감성을 믿기에 뜻없이 기록된 것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즉 여기 그 갑옷이 벗김은 이제 육신적인 일을 위해 도모하지 않게 됨을 가리킵니다. 다른 말로 육신적인 것을 주장함으로 영적인 일을 거스리지 않는 대적 성향을 버림을 가리킵니다.
8. 사울의 시체는 성벽에 내걸렸습니다.
10절에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으매" 했습니다.
당시 시체를 공개적으로 내 거는 것은 큰 수치와 모욕을 주는 것을 뜻했습니다.
특히 시체를 성벽에 거는 것은 국제적인 수치를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못을 박음은 쉽게 내릴 수 없는 고정을 의미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자라서 영성화되면 자신의 죄를 수치로 아는 가치관의 변화가 생겨납니다. 죄악과 육신적인 것에 대해 견딜수 없고 숨길 수 없는 이 수치심은 장성한 자만이 느끼는 느낌입니다.
9. 사울의 시체는 불살라졌습니다.
12절에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했습니다.
여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이 자기들을 위험에서 건저준 생명의 은인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목숨을 걸고 의리를 지켰습니다. 이는 육체가 영성을 입어 변화됨을 상징하며 그래서 주를 위해 열심히 충성함을 가리킵니다.
10. 사울의 시체는 에셀나무 아래 매장되었습니다.
13절에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일을 금식하였더라" 했습니다.
여기 에셀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단히 신성시하는 나무로서 그 아래에 사울의 뼈를 매장 함은 신령한 의미에서 볼 때 장차 육신의 부활의 소망을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육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성향 때문에 하나님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타락과 범죄와 사단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은혜를 강하게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 선하매 버릴 것이 없다고 했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짐이니라 했습니다(딤전4:5). 우리 육신이 그렇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는 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서 거룩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육신적인 성향들은 사라지고 도리어 육신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사용되어지는 신령한 성향으로 바꾸어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