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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7
병 고침 받는 히스기야 / 김태복 목사
어제부터 맹지혜 선교사님을 위한 중보기도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가 이처럼 중병에 걸려서 돌아온 것은 우리 교회가 열심히 기도하지 않는 책임도 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앞에 “우리 교회가 이런 풍랑을 만난 것은 우리의 연고입니다.”라고 회개하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치유의 날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죽을병에서 고침 받아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은 히스기야 왕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1절에 보면 “그 때에”라는 말이 나오는 데,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히스기야가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으로 만든 바로 그때를 가리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째가 되는 해로써 그의 나이 39세가 되던 해를 말합니다. 39세이면 이제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히스기야는 과거에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앗수르 왕에게 돌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성전에 있는 모든 기명들 즉 금으로 만든 귀중품들을 앗수르 왕에게 뇌물로 바친 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금으로 도금한 것까지 다 벗겨서 앗수르에게 바쳤습니다. 아마 이때의 일들로 인하여 히스기야의 심신이 매우 괴로운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이 유대를 치기 위하여 내려 왔을 때 히스기야의 심신은 심한 공포로 두려움과 긴장으로 인해서 극도로 피곤해 있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은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앗수르를 따를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더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갈등의 때에 히스기야는 과감하게 앗수르를 버리고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18만 5천의 적군을 몰살시키심으로 극적으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오면서 너무나 긴장한 탓인지 전쟁이 끝나고 나서 히스기야는 병이 들고야 만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만나서 갖은 고생을 다한 후에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긴장감이 확 풀리면서 건강이 나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오랜 세월을 갖은 고생을 먹을 것 입을 것 아끼며 집을 사서 이제 살만하니까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분은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키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 자식들이 성공하였습니다. 이제 자식들로부터 효도를 받고 떵떵거리며 살만 하니까 병들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히스기야도 큰일을 막상 승리로 끝내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큰 병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병은 예사 병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큰병이였습니다. 1절에 보면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사의 진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흔히 환자가 죽을병에 걸린 것을 알지만 환자에게는 충격이 될까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면서 “너는 집을 처치하라”고 하시었습니다.
집을 처치하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아직 히스기야에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죽기 전에 가정 일도 정리하고, 나라 일을 정리하여 후임자에게 넘기라는 말씀입니다. 중병에 걸리었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인데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들었으니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러한 너무나 절박한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어떠한 자세를 보였습니까?
1.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죽음의 선언 앞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자기를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앗수르의 대군이 유대를 치기 위하여 쳐 내려 왔을 때에 자기가 하나님께 기도하던 때를 기억했습니다. 19:1에 보면,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기도했고, 19:2에서는 궁내대신, 서기관, 제사장, 장로들 모두에게 굵은 베 옷을 입히고 자신만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 모두에게 회개의 기도를 함으로 큰 승리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던 히스기야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도 또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2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모두 것을 전폐하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은 3절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5절 중반절에 보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날에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히스기야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이 아깝기 때문이 아니요, 세상에 미련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자를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그렇습니다. 맹지혜 선교사님은 너무나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반드시 윤호영 부부와 그 식구들과 우리 교우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시련은 큰 신유의 기적을 체험함으로 선교지역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또 하나의 훈련과정이 아닌가 믿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맹선교사님을 반드시 고쳐주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앞에는 못 고칠 병이 없으십니다.
성결교 총회장을 지내셨던 김무석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1966년 서울 답십리교회를 개척, 39년째 한 교회에 몸담고 있는 김 목사님은 지난 1985년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목회에 무리한 탓인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을 때 '간경화증'이란 6개월뿐이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일생 목회의 길을 걸어온 제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자 암담했습니다. 내세가 있기에 두려움은 없었지만 당시 중1, 고1, 고3이던 자녀들이 제일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사정해서 자녀들을 모두 그곳으로 보낸 뒤 계속 목회를 했습니다. 과연, 6개월이 되자 의사가 에고한 대로 김 목사는 쓰러졌습니다.
의식이 흐릿해지며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김 목사님은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강한 믿음이 생기면서 입에서 찬송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이때 김 목사님이 계속 부른 것은 찬송가 434장이었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놀라운 것은 의식을 잃어도 입에선 찬송이 계속 흘러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3일간을 사투하던 김 목사는 열이 내리며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의사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모든 병이 호잔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퇴원하고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목회를 하고 계시다는 간증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 앞에는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어제 저녁에 말씀드린 대로 ‘내 딸이다.’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믿음으로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히스기야는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3절 하반절에 “심히 통곡하더라”고 했습니다. 통곡의 기도, 눈물의 기도를 했습니다. 눈물은 이는 히스기야의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표현입니다.
사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직도 할 일이 많은 때에 39세 나이로 죽다니요. 안 됩니다.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연장시켜 주옵소서”라면서 울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또한 심히 통곡했다는 것은 철저한 회개를 했다는 표현입니다. 그동안 급할 때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평안할 때는 교만하기 짝이 없던 자신을 회개하면서 “하나님, 그 동안 너무나 교만하여 내 실력을 의지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번만 다시 살려주신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하면서 통곡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물이 이상한 쪽으로 메말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형제를 대할 때 우리들의 눈에 눈물이 없고, 남의 고통을 볼 때 눈물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의 기도엔 눈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됩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아픔과 고통을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맹지혜 선교사님의 중병을 나의 자녀의 병으로 알고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5절 중반절에 보면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된 것입니다.
5절 하반절에서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라 했습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에게 건강이 필요한 이유는 그가 성전에 올라가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를 하기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일하기 위하여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6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네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가 나를 위하고”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위한 일로 기도하시고 눈물을 흘리십시요. 그 때 그러한 눈물의 기도가 강한 역사가 나타하게 되는 것입니다.
1979년 9월 6일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에서 1등으로 당선 된 세릴프레위트양의 간증은 한때 많은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녀는 1968년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전복되어 왼쪽 다리를 다쳐서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훨체어를 타고 다니는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상처는 아물었지만 세포가 죽었기 때문인지 발육이 정지되어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2인치 짧은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그녀의 뛰어난 용모를 아까와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교회에 참석하여 훌륭한 신앙의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1974년 10월 21일 그녀는 미시시피주의 잭슨 시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300여 명의 참석자 가운데 섞여 하나님께 자기의 다리가 낫게 해달라고 마음을 쏟아 기도했습니다.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겠다고 서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열심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자기의 왼쪽 다리가 쭉쭉 늘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어나 걸어 보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녀는 52대 미스 아메리카로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미스 아메리카는 미스 유니버스나 다른 미인들과는 달리 용모만이 아니라 교양이 많은 사람이 당선되므로 거기에 뽑히는 사람은 더 명예스럽다고 합니다. TV에서 그녀는 간증하기를 “주님 외에 누가 저를 고쳤겠습니까”"라며 아름다운 소리로 주를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아니 아무리 하나님이 능치 못한다고 하실지라도 이미 굳어져 짧아진 다리가 기도로 길어진다는 것은 가능이나 한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맹지혜 선교사님과 가족들, 그리고 우리 교인들이 불붙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큰 치유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고 이 시간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