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우리들 교회 김양재목사님 설교 2008.11.23)
창세기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르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아브라함을 셈의 후예중 골라내셔서 예수님의 직통조상으로 삼으셨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해서 부르셨다. 자원함이 아님
-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모세는 “혀가 둔함”을, 예레미야는 “나이가 어림”을,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함”을 핑계대어 능력없고 연약함을 고백했다.
스스로 할 수 있다 자원한 사람은 없으며, 하나님께서 택해서 부르시는 것이다.
■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우리 인생의 목적은 “거룩”, 우리가 떠나야 할 ”썩어질 정욕”이 있고
부르심 받는 인생에는 반드시 “떠남”의 영성이 있다.
Ⅰ.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1) 본토
■ 이 세상에서 의지하던 육적, 정신적, 영적인 것들을 떠나려면 너무나 힘들다
■ 예를 들면 금전 - 십일조는 재물이 나의 주인이 아님을 주님께 고백하는 것
(2) 친척
■ 고대는 친족이 힘이었다.
■ 친척을 떠난 다는 것은 그러므로 양쪽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3) 아버지의 집
■ 예수를 만나는데 가장 도움이 되거나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부모
■ 부모를 떠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그 부모가 육적으로 잘 해주는
부모일 때 더더욱 떠나기 어렵다, 상처주는 부모는 차라리 떠나기 쉽다.
■ 아브라함의 약점은 자식이 없는 것인데,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약속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일단 형식적으로 떠난 것이다.
Ⅱ.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 니므롯은 제 멋대로 시나이 평지에 바벨탑을 세워 수치의 이름이 되었다.
▶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야 창대케 된다.
- 하나님이 지시할 땅이 어디인가?
- 아브라함은 인생의 곤고함(형·아버지의 죽음, 아들없음)을 느끼고 떠났다.
- 곤고함을 느끼는 것은 선택받은 자의 특권
- 케빈 마리 브렌틀렉의 “하나님께 묻고 싶은 단 하나의 질문은 무엇인가?”(USA 투데이)에
대다수의 답은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였다.
- 내 인생의 목적은 바로 “거룩”
- 우리는 어떤 일로가 아니라 어떤 분께 부름을 받았는지 먼저 알아야 함
- 일을 하기 위해서보다 존재하도록 부르심 받음이 우선이다.(doing보다 being이 중요함)
-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면,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야 함
- 그러나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행7:2~4)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 아브라함도 하란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메소보다미다(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옮길 수 있었다.
- 게다가 하나님은 아브라함 즉시에 복을 주시지 않았다. 가나안 땅에서도 유업을 주시지 않았으며
700년이 흐른 후에야 자손에게 복을 주셨다.
- 지금 당장 눈앞에서 잘 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자손들에게 하나님 주권이 있음을
보여주는 삶이 되어야 함
-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선택의 여지가 없음) 그래서 순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택자는 인도해주시는 것이 은혜이고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은혜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 (고후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정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는 항상 약속과 함께 하신다.
Ⅲ. 베푸실 복
▶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에 주실 복
(1)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함 – 아브라함의 인생 백년을 창세기 열 세장에 걸쳐 소개함
(구속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history이기 때문)
(2) 복을 주어 – 계속적으로 복을 주신다는 의미
(3) 네 이름을 창대하게 – 하나님의 친구라 일컬음을 받음
(4) 복이 될지라
- 복의 근원, 타인에게 복이 되는 삶, 희생하는 삶
- 이땅에서는 피곤하고 고달픈 삶. 이땅에서 누리는 물질적인 복이 아님
(5) 적극적인 축복
- 바라크(복) : 절대 권능을 통한 하나님의 실제적 은혜
: 무릎꿇고 기도와 경배 찬양을 올려드림, 사람의 최고의 복
: 나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도 바라크의 복을 주심
(6) 소극적인 축복
- 너를 저주하는 자(복수)는 내가(단수) 저주하리니
- 나를 저주하는 세상 모두를 일일이 찾아가 개별적으로 저주하신다고 하니
나를 핍박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함
(7)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 너로 말미암아 : 네 안에서 날 자 즉 예수 그리스도
▶ 흩어진 사람들이 복을 받을 길을 열어놓으심
▶ 이런 복의 길을 듣고도 왜 떠나지 않는가?
■예화 1
5번 결혼한 시아버지(76세). 4번째 어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는 시집살이를 견디다못해 아이들을 놔두고
자살하고 3번째 시어머니의 딸은 장례식장에서 자기 어머니 몫을 내놓으라며 농기구로 사람을 해침
하다못해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기를 물어죽이는 등 죽음이 있는 듯한 가정.
25년전 결혼후 남편과 유학가서 부모의 도움없이 엄청나게 성공했는데, 지금은 돈 가져오라고
날마다 전화하는 시아버지가 도저히 용서가 안되고 용서라는 말 자체가 사치로 느껴짐. 기도를 해도
용서가 안 되고 미안하다는 말도 듣기 싫고, 날마다 설교듣고 말씀듣고 주님을 부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형편이다.
■예화 2
말씀 없이 의로운 아버지. 강남 8학군 선생님으로 교육보다 인성이 우선이라며 어렸을 때는 놀게 해주고
가족들과 엄마에게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상하고 잘해주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이 교회에 와서
왜 그렇게 상처받고 바람피우는 사람이 많은지 이상할 정도였다. 믿음 없이 화목한 가정이 문제라는
목사님 말씀이 이상하고 그 가치관을 바꾸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직장을 통한 고난이 있어서
이 교회에 붙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고난이 축복인데, 엄마와 자신이 병원에 다니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큰 직장 고난이 와도 교회 근처에도 안 가는 아버지를 보면, 그보다 더한 고난이 올까봐
걱정스럽다.
■예화 3
보육원에서 어렵게 자란 남자. 어려서부터 새벽에 일어나 무조건 기도하고 큐티하고 일하면서 자랐다.
기숙사가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가려니 성적이 안되어서 고2때부터 허벅지를 연필로 찔러가며 어렵게
공부하여 공고에 들어가고 졸업할 무렵 좋은 직장에도 취직하게 되었다. 그런데 20세 무렵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서 35만원 되는 월급 중 30만원을 가져가고 45만원 월급일 때는 40만원을 가져가서
십일조도 못하게 함. 배우자 기도 중 90%가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는데, 자기의 살아가는 형편을 보더니
1300만원 모아놓은 돈중 500만원을 가져가려는 엄마를 딱 거절하고 믿음생활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함.
엄마는 나쁜 남자가 뒤에 있었는데 결국에는 그 남자 때문에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었음.
▶ 이중 누가 가장 좋은 부모인가?
- 세상에서 좋다고 말하는 기준의 아버지는 믿음을 가질래야 믿음을 가질 수 없게 한다.
- 세상의 좋다 싫다는 기준이 잘못 되었다.
▶ 무엇이 떠나는 것인가?
- 좋은 아버지 나쁜 아버지는 이 땅에 없다
- 아브라함을 부르신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는데 불쌍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부르셨다.
우리는 그런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걸어가야 하는데 배부르고 등이 따시면 “목적지”가 안보인다.
- 이 세상이 목적인 “아버지”를 떠나야 한다.
- 큰 민족이 창대키 위해 내가 복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 엄청난 복을 주시려고 준비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사탕”이나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 그러면 어떻게 떠나야 하는가?
- 상처주는 부모는 용서함으로,
안일함을 주는 부모는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떠나야 함
- 이것이 진정한 “긍정의 힘”이 아닌가”
- 나를 예수믿게 해주고, 하나님 부르게 해주는 부모가 최고의 부모
- 좋고 나쁘고를 인생의 잣대로 정하지 말라
그것이 “떠나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