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의 하늘 아래
이명철
lmc0926@hanmail.net
군산항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가 조금 못되어서였다. 어림잡아 1시간은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모두 삼삼오오 모여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다리는 것도 여행의 한 과정이다. 이 순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배는 정시에 도착하였다. 배는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갈매기는 어지럽게 춤을 추며 우리를 따라오고, 햇빛은 파도에 내려 은빛 물결로 반짝인다.
하늘 저 멀리 수평선은 바다와 맞닿았다. 하늘과 바다만 보인다.
하늘은 해와 달과 무수한 별들이 널려 있는 무한대의 공간이며, 태허(太虛)다. 땅에서 떨어진 넓은 공간에는 하늘만 보인다. 태허의 공간에 하느님이 계시고 천사가 있고, 신선 등이 살 것만 같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느님이 나라다. 저 바다와 섬과 육지도 하늘의 일부다. 그러기에 인간의 힘으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하늘에 있다고 하는 건 아닐까.
갈매기 한 마리 한가하게 날고 있다. 오리는 이미 하늘의 길손 계절 따라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갈매기와 오리는 하늘과 땅과 물속에서도 산다. 그래서 이러한 새들은 이승과 저승, 인간과 신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새(鳥)로 여겨져 선사시대부터 솟대의 머리에 앉는 귀한 대접을 밭는 모양이다.
뱃고동 소리는 선유도를 향해 울려 퍼진다. 선유도의 첫 섬이 우리를 맞는다. 선착장이 보인다. 섬들이 낯익다. 먼 하늘 아래 해무(海霧)는 하늘과 바다를 맞닿게 연결시키는 것 같다. 뱃길을 열어주고 갈매기에게 바닷길도 열어준다.
선유도의 신선은 어디에 있을까? 무녀(巫女)도에 있을까. 장자도에 있을까? 자고로 하늘의 기밀은 안다 할지라도 이를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를 따라오는 저 갈매기들이 하늘의 기밀을 잘 알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천기누설은 않으면서, 끼욱~ 선유도의 신선이 갈매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인가 암시해 주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있기에 선유도로 가는 뱃길에는 웃음이 있고 낭만이 흐른다.
선유도(仙遊島)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노니는 섬이다. 2.13㎢의 면적에 신시도, 무녀도, 방축도, 말도 등과 더불어 고군산군도를 이루며 군도의 중심 섬이다.
바다 위에 6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형제처럼 펼쳐져 있고 그 섬들의 모습은 서해바다 용왕과 신선들이 하늘나라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것처럼 아름답고 기묘하다. 장자도와 무녀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차량 통행은 불가능하고 스쿠터나 자전거 통행만 가능하다. 저 멀리 무녀도와 신시도를 연결하는 연도교가 보이고, 선유도와 무녀도를 연결하는 선유교가 철교처럼 보인다.
선유도의 망주봉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이곳 선유도에 유배된 충신이 있었다. 그는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북쪽 한양에 계신 임금을 그리워하며 다시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불러주지 않았다. 충신은 기다리는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 오늘도 망주봉이 된 충신은 한 많은 사연을 안은 채 먼 하늘을 응시하며 서있다.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는 저 멀리, 망주봉이 보인다. 망주봉의 망주폭포는 여름철에 비가 내리면 망주봉에서 7-8개의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장관을 이루는데, 이를 망주폭포라 한다.
무녀도는 장구 모양의 섬과 그 옆에 술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붙어 무당이 상을 차려놓고 춤을 추는 모양이라고 하여 무녀도라고 한다.
명사십리하면 해당화가 연상된다. 해당화는 보지 못하였지만, 천연해안사구로 된 해수욕장의 모래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저 넓은 모래사장에 갈매기 한 마리 살짝 앉으면 그게 바로 평사낙안(平沙落雁)이 아니겠는가. 저 멀리 섬들은 용사비등(龍蛇飛騰)의 모습이다. 곱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깨끗하면서도 용과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이 힘이 있다. 해와 달과 별이 하늘의 글씨며 그림이라면 바다와 섬과 갈매기는 신선의 글씨고 그림이다.
선유도라 불리는 고군산군도는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의 군락지로 자연이 창조해 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천혜해상관광공원이다.
장자도는 풍수지리 적 입장에서 보면 뛰는 말 앞의 커다란 먹이 그릇처럼 장자봉이 우뚝 솟아 있는 형국으로 눈앞의 선유도가 그 맥을 감싸고 있어 큰 인재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 한다. 선유도에 비해 작은 규모의 섬이지만 천연적인 대피항으로 60여 년 전만해도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섬이었다고 한다.
어떤 문우는 선유도는 하느님이 한 줌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어 기르는 섬이라했다. 마치 시루에 물을 주어 자라나는 콩나물 같이 멀리 바다에서 고개를 내민 섬, 섬 ,섬들. 하늘을 향하여 묵상(黙想)이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명사십리 해수욕장 언덕에서 추억을 심는다. 각자 어떤 추억의 씨앗을 심고 있던 내 상관할 바 아니로되, 자신의 생명이 있고서야 남이 있고 대상이 있듯, 내(我) 안의 창조를, 그것도 아름다운 창조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허공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해와 달과 별.....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수미산도 다 이 허공 안에 있다. 그 허공 안의 보이지 않는 하늘. 사람들의 성품이 공한 것도 다 이와 같다. 그 허공 같은 마음은 넓고 커서 법계(法界)에 두루 해있다. 그 공한 마음이 산도 만들고 들도 만들며 하늘도 만든다. 고로 마음은 하늘의 공간과 같아 우주도 품을 수 있다. 마음을 놓친 삶은 하늘을 외면한 허깨비 인생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 하늘의 햇살이 바다위에 반짝인다. 하늘이 허락한 저 아름다움. 못다 한 시어들이 벚꽃처럼 흩날리고, 쌓인 추억이 과거로 밀려가는데, 아, 어쩌랴! 저 아쉬움. 싸고 풀고를 거듭하며 영원한 하늘의 시간 태허(太虛)에 몸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