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7-11
하 늘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나는 지나간 날, 신학교를 다닐 때에 구약성서 선생님으로부터 “땅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암 하레쯔”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그 의미는 잘 기억이 되지 않아, 수년전에 구약교수님께 전화로 질문을 하였다. 정리하면 다음의 말인 것 같다. 암 하레쯔, 곧 땅의 사람들이라는 말은 소위 왕으로 세워질 정도의 큰 이들을 가리켜서 말하다가, 포로 귀환 이 후에는 서서히 밑바닥의 사람들을 이르는 지칭어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빌려 소식지의 이름을 “땅의 사람들”이라는 표제를 달았었다. 그러다가 소식지를 관공서에 등록하려 했더니, 어느 이가 오래전에 이미 땅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평리(新坪里)를 뜻하는 “새땅의 사람들”이라고 개명하여 쓰고 있다. 우리 집 이름을 정하는 데에는, 새땅이라는 뜻을 지닌 신평리(新坪里)에 위치한 우리 모임이기에 이름을 새땅공동체로 지으려하였으나, 그러기에는 어색하게 여겨져서, 이에 버금간다고 여겨지는 새터공동체로 정하고 이제껏 살아왔다. 나는 이 이름이 지금도 좋다. 물론 새터라는 말은 사람들이 옛날부터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사용하여왔던 평범한 지명에 불과하다. 우리 마을 분들은 다른 이름으로 신평리를 그 오랜 예전부터 “벌말”이라고 불러왔다.
무슨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행조건인 전제(前提)가 필요하다. 그 전제는 그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떠한 다른 결론을 얻을 수도 있다. 나는 작은 소식지의 제목 새땅의 사람들 바로상단 부분에 “새 하늘을 꿈꾸며”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것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하늘나라를 염두 해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땅에 살면서 하늘로 회귀(回歸)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고 서있는 그림을 볼 수 있다. 또 도심 속의 하늘로 치솟은 바벨탑과도 같은 마천루(摩天樓)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오늘도 하늘로 날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 때문 일가? 시인 천상병은 귀천(歸天)을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신천지(新天地)를 바래왔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義)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다(베드로후서 3:13). 우리의 옛사람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우르는 천지인(天地人)을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나는 얼굴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에 늘 부끄러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본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하늘 무서운 것을 알아차리려고도 해본다. 이 시간 하늘은 나에게 절대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먼저 삶에 연연하는 나에게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에게는 공자님이 말씀하신 子曰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이니라(자왈 순천자는 존하고 역천자는 망이니라). 즉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는 말이 또 생각난다. 사람들은 때로는 약삭빠르게 남들과 사귀면서 살아가는 처세(處世)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은 그렇게 약삭빠른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하라는 시간적으로는 느릴 수밖에 없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을 말한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의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이리라. 그것은 손대지 않고 뜻밖에 얻는 좋은 운수라고 얘기하는 요행수(僥倖數)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새사람들이 가끔씩 이야기하는 과도하고 힘겨운 일을 억지로 우겨서 하는 무리수(無理數)도 아닐 것이다. 그저 어떠한 일을 묵묵히 한다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결과를 중시하기보다는, 하나하나 일을 해나가는, 즉 과정을 밟는 편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나도 성공지상주의나, 수년 전부터 행해지는 로또복권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속물(俗物)에 불과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범인(凡人)으로서는 할 수 없는 어려운 다음의 가르침을 주셨다.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그리고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고 하였다(누가복음 12:34). 또 다른 말을 하자면 천심(天心) 또는 천의(天意)라는 말을 하고 싶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있고, 천의(天意)는 하늘의 뜻, 혹은 하나님의 뜻 이다.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뜻은 다분히 신앙적이다. 그 내용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공동체 이야기
존재(存在)의 의미(意味)
하나님이 처음사람을 지을 때에, 흙으로 사람모양을 만드시고 싱싱하고 힘찬 기운인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 넣었더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창세기 2:7).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코에 입김(汽)을 불어넣었다라고 말한다. 영어 성서에서는 생령(生靈)을 living being(리빙 비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의미를 내가 옮겨 보자면, 말 그대로 살아있는 존재(存在)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의 존재(存在)의 의미(意味)는 무엇인가? 공동체 안에서 나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금방 생각되어지는 말은, 나도 예수님이 세상에 온 목적과 같지 않을까? 그분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마가복음 10:45). 나도 작은 시늉이라도 냈으면 한다. 바울도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간다고 말하고 있다(로마서 15:25). 나는 또 다른 바울의 말과 같이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었으면 한다(로마서 12:15). 하나님 나에게 긍휼과 자비를 주옵소서. 더욱 바라기는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스스로의 존재(存在)의 의미(意味)를 찾게 하옵소서. 그러면서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갖게 하옵소서. 서로를 보면서는, 시편 133:1의 말씀과 같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이야기들을 하게 하옵소서.
공 동 체 소 식
. ”
☻ 새터 공동체 가족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2007년 12월 2일 주일 오후 4시에 새터공동체가 새터공동체교회로 설립되는 교회설립예배를 드립니다. 장애등으로 소외된 자와 일반인들을 위한 성숙한 교회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이원교회.최선희.주식회사EG.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진영택.김기홍.추부제일교회.김포중앙교회여전도회.양오석.이병덕.대전충남지방통계청.수영교회.채윤기(박현실).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4인).주식회사EG(이광형).대전성남교회중등부(김영균외14인).금성교회.진주문교회여전도회(4인).진명구.신평교회.대덕교회.세광교회.대전성남교회.충전교회.살림교회(박상용외11인).김종택.금산푸드뱅크(3인).신건태.대전성남교회중등부(김영균외12인)김용미..대전노회.한국도로공사무주지사추부영업소(11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