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백여덟 번째
큐비츠할 친구가 그리운 나이
성공한 어느 노인이 더 이상 부러울 것도, 부족한 것도 없을 텐데 늘 우울해하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노인이 “큐비츠할 친구들이 없어. 다 떠났어.” 그러더랍니다. 큐비츠할 상대가 없어 우울하다는 겁니다. ‘큐비츠’란 ‘별것 아닌 시시한 이야기, 서로 골려 먹는 이야기’라는 뜻의 이디시어 Yiddish語라고 합니다. 이디시어는 중세 독일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히브리어와 현지 독일어를 섞어 쓰기 시작하면서 탄생한 언어입니다. 무슨 특별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 놓고 시시덕거리며 농담할 대상들이 없어 우울하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실제로 우리네 일상에서 아주 중요해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며 대화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은퇴해서 한가로이 지내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독서나 운동을 한다고 해도 온종일 하는 것도 아니고, 신앙인들도 종일 기도만 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도 머리를 맞대고 머리를 짜내야 하는 일거리도 없습니다. 신앙을 얘기하고 철학을 얘기하는 상대는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그저 실없는 말만 늘어놓으면서도 그가 있어 즐거운 게 지금 우리의 처지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젊은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시간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사실은 우리네 삶이란 소소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와 헤어져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도 아까 했던 얘기를 떠올리며 혼자 히죽히죽 웃을 수 있는 대화, 그게 큐비츠입니다. 그런 관계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지요. 오랜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기에 가능합니다. 그 시간과 공간에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천하에 실없는 소리지만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지요. 큐비츠할 친구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