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南征 淸風 金欽 箸 남쪽으로 가다 청풍 김 흠 지음
漢班彪有北征賦, 唐杜甫 又有北征詩. 皆避亂而作. 余四二八三年 十二月 二十五日 發京城 南入加德島. 蓋避中共之亂也 故曰南征. 避亂民 滿山遍野 而其慘狀 目不忍見. 余因宣敎會之紹介 入此島. 此安全 雖曰幸也. 心甚不安者 以其民衆之流離也.
四二八三(一九五0)年 臘月卄五去. 北胡侵國都 老僕離家室 信徒尤被害 不能守聖日. 人人棄錦帛 處處離蓬蓽 永浦人如海. 有誰能呼出? 輸官貪 又暴擭金. 時不失 禮儀顧不暇. 謨生計 密勿魚貫人鱗 至虎口 禍迫切.
夜深車始發 心神多恍惚 避亂如是難. 此生何處畢? 荷物與人身 共載 無分別. 鷄犬盡驚駭 人烟杳蕭瑟. 監官發號令 無証拒之, 血無証 盡逐出 號哭聲不絶. 輸送本無賃 逐出誠寃鬱. 有金或買券 無金潛入窟. 此時誠何時? 人心皆盪譎 官吏誠何心? 使民徒畏裂. 三夜太四着 砲鳴動車轍. 車內忽緊張 景色 大不悅. 警吏皆武裝 秉客多戰慄.
須更飛機來 夜深黑如漆, 探索無根據 不可投彈 實匪類潛伏處. 時時謨用拙炊事, 㝡爲難 不食至日沒. 幸得車停時 拾薪炊麵末 無饍猶甘食. 此聚如蟻穴 飢至雷鳴腹, 寢時寒澈骨. 此身寄何處? 手中無一物 飢寒愈鋒鏑. 盜賊卽讎卒 又至淸道驛 凛凛危一髮.
是日卽除夕, 泣禱悲鳴咽. 爲親誠不孝與友, 多怨結, 爲國又不忠 有誰能顧恤? 主惟不棄我 滌罪期如雪. 亡妻順天氏 食貧衣獘禍 事夫誠有禮 敎子志不屈. 我反不施愛, 先我病夭折 追悔心甚痛. 時時禱屈膝, 是夜尤痛悔 悲苦心 如裂骨. 埋北山下 松柏前後列. 余往淸津時 更緬付火慄 臘月三十日 卽妻紀念日.
身依荷物上 髮亂渾忘櫛. 密陽多亂民 只待輸官喝. 遙望驛南樓 隔在烟一抹 茫茫無去處. 時時食每闕 忘生又忘死 忍飢又忍喝. 穉孫何處在? 敎友不聞說. 求生甚苟苟 車內多耳聒. 夜深到釜港 海色天共豁. 離京 第十日. 回憶蒼荒發砲聲 撼山岳 彈丸飛如鶻 五百文化都 忍任賊, 馳突棄客 盡百車.
我獨無勇決 下車何處去? 無人迎爲匹坐. 待天明後郵荷 氣欲奪. 驛亭人堵立番 人驅去疾驅 人人不應 噴水皆散拔. 官送豈如此接民 小無恤? 軍人滿港都 凜凜氣肅殺. 乃往聖山敎 同役來不絶, 郵荷入其堂. 又幸逢史越 得聞加德島 陰國如恒崵 釜山猶冬陰.
加德天地別 秉船又至加 一月之九日. 海色明如鏡 山形圓如月. 避亂至此島 是山之保身哲. 黙禱救亂民 俯首念先烈 回亡家 何保民? 誠我豈治 白眼生蓽戶 黃金入禁闧? 宇宙新開闢 賢聖皆非達.
한나라 반표(班彪)에게는 북정부(北征賦)가 있고, 1) 당나라 두보(杜甫)에게는 또 북정시(北征詩)가 있었다. 나는 단기 4283년 12월 25일 서울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와서 가덕도(加島)에 들어왔다. 대개 중공(中共)의 난을 피함이었기에 남쪽으로 갔다고 남정(南征)이라 했다. 피란민은 산과 들에 그들먹하였고 그 비참한 현상은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선교회(宣敎會)의 소개로 인하여 이 섬에 들어왔다. 이 안전함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이 아주 불안하였으니 그런 민중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단기 4283년(서기 1950) 12월 25일에 감. 북쪽 오랑캐가 서울을 침입하여 늙은 종은 집을 떠났고 신도들은 더욱 피해를 받았으니 크리스마스[聖日]는 지킬 수가 없었다. 사람마다 비단옷도 버리고 곳곳에는 초라한 집도 떠났으니 영등포 나루터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불러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수송관(輸送官)은 탐욕스러워 또 돈을 마구 거두었다. 때를 놓치지 않을세라 예의도 돌아볼 여가가 없었다. 삶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생선꾸러미처럼 빽빽하게 2) 호랑이 입에 이른 것 같아서 재난이 긴박하였다.
밤이 깊어서야 차가 출발하였는데 몸과 마음은 대단히 어지러웠으니 피난은 이토록 어려웠다. 이 삶이 어디에서 끝이 날까? 짐짝과 사람의 몸이 한데 실려서 분별함도 없었다. 개와 닭도 다 놀라고 아득히 인가의 연기조차 쓸쓸할 뿐이었다. 감독관이 호령으로 소리쳤다, 증명이 없으면 거절하고, 혈육이 증명되지 않으면 다 쫓겨났으니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수송하는 데는 본래 차 삯이 없었는데 쫓겨난 원통함이란 정말로 억울하였다. 혹 돈이 있으면 표를 사고 돈이 없으면 굴속으로 숨어들었다. 지금이 진실로 어느 때인가? 인심이 다 온통 속이는 판이니 관리는 정말 어떤 마음인가? 백성 무리들을 두려움으로 찢어지게 하네. 사흘 밤을 넘겨 나흘째 도착한 데서 포 소리가 찻길을 울렸다. 차안이 갑자기 긴장하더니 형편이 크게 기쁘지는 않았다. 경찰관들이 다 무장을 하고서 승객을 붙잡아서 많이들 두려워했다.
모름지기 다시 비행기가 왔으나 칠흑 같은 깊은 밤이라, 근거지를 찾을 수가 없어 공비(共匪)들이 잠복한 곳에 폭탄을 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때때로 졸속으로 밥을 지으려고 꾀했지만 가장 어려움은 해가 지도록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차가 멈출 때 나뭇가지를 주워서 밀가루로 음식을 만드니 반찬이 없어도 맛있게 먹었다. 개미굴 같이 이렇게 모여 있는데 배는 고파 뱃속에서 천둥이 치고, 잘 때는 추위가 뼛속에 사무쳤다. 이 몸을 어디에 부쳐 살까? 손에는 아무 것도 없고 주리고 춥기는 칼이나 창끝보다 더 매서웠다. 3) 도적 즉 원수의 병졸들이 또 청도(淸道) 역까지 이르렀으니 냉엄한 위험이 아슬아슬하였다.
이날이 곧 섣달그믐밤이었는데, 울며 기도하니 슬픔에 목이 메었다. 부모님께 불효하고 형제우애도 잘못했으며, 원수도 많이 맺었고, 나라를 위해서도 충성하지 못했으니 누가 능히 돌보아 불쌍히 여길 수 있겠는가? 주님만이 날 버리지 않으셔서 죄 씻어 눈과 같이 희게 하셨다. 세상 떠난 아내 순천김씨는 4) 음식이 가난하고 의복은 헤졌던 불행 중에서 지아비를 섬김에 진실로 예절(禮節)이 있었으며 자식들은 뜻이 꺾이지 않도록 가르쳤다. 나는 오히려 사랑을 베풀지도 못했는데, 병들어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미루어 뉘우치는 마음이 몹시도 아프다. 때때로 무릎 꿇고 기도 하는데, 오늘 밤은 더욱 통회하니 슬프고 아픈 마음이 뼈를 찢는 것 같구나. 북산(北山) 아래 소나무 앞 뒷줄에 매장하였었다. 내가 함경북도 청진(淸津)에 살 때에 다시 화장(火葬)하여 옮겼다. 5) 섣달 30일이 곧 아내의 기념일이다. 6)
몸은 짐짝 위에 맡기고 머리는 뒤헝클어 빗질도 잊어버렸다. 밀양(密陽)에는 난민들도 많았는데 그저 수송관(輸送官)이 7) 소리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역의 남쪽누각에서 떨어져서 연기 한줄기가 아득히 정처 없이 흘러갔다. 어쩌다가 먹으니 번번이 건너뛰어서 사는지 또 죽는지도 잊어버리고 주림도 참고 또 목마름도 참았다. 어린 손자는 어디에 있나? 교우들의 말을 들을 수도 없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 몹시도 구차하였으니 차 안은 몹시 떠들어서 귀가 먹먹했다. 밤이 깊어서야 부산항에 도착하였는데 바다경치는 하늘과 함께 확 트였다. 서울 떠난 지 열흘째다. 되돌아보면 아득히 대포 터지는 소리가 산악을 뒤흔들고 총알이 매 떼처럼 날아다녔으니 500년의 문화도시 서울은 적도들이 세차게 쳐들어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나그네들도 뿌리쳐버리고 수많은 차량이 동이 났었다.
나 홀로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차에서 내린다면 어디로 간다나? 영접해주는 이 아무도 없어 마주 앉을 사람도 없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린 후에 짐을 나르니 기운이 다하였다. 역전의 휴식처엔 8) 사람들이 순번을 기다리며 도열(堵列)하는데 사람을 몰아가니 빨리 달리며 사람마다 순종하지 않고 분수처럼 다 흩어졌다. 관리가 사람들을 보내는데 어찌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렇게 백성을 취급한단 말인가? 군인이 항구도시에 가득하였는데 늠름한 기품은 쌀쌀하기가 매우 냉엄하였다. 바야흐로 성산교회에 가니 동역자들이 끊임없이 왔고 짐을 날라 교회당으로 들어갔다. 또 다행히도 사월(Charles Saur) 선교사를 만나서 가덕도는 늘 빛이 드는 양지와 같은 북쪽나라와 9) 같다면 부산은 겨울 음지와 같다는 말을 들었다.
가덕도의 천지를 선별하여서 배를 잡아탔고 또 가덕에 왔으니 1월의 9일이었다. 바다풍경은 거울처럼 맑고 산 모형은 달과 같이 둥글었다. 난리를 피하여 이 섬에 이르러 이 산이 이 몸을 분명히 보호하였다. 난민을 구원하도록 소리 없이 기도하고 머리 숙여 나라를 지키다가 희생된 선열들을 생각했다. 망가진 가정들을 회복하도록 어떻게 백성들을 돌볼까? 가난한 집을 10) 보면 무시하고 황금의 궁궐로만 들어가는 냉대의 눈초리를 내 어찌 정말 바로잡을 건가? 우주가 새로 생긴 이래로 어질고 거룩한 사람들도 이를 다 통달하지는 못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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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표 북정루(班彪 北征賦): 반표(班彪/ 3-54 AD)는 동한(東漢)의 사학자이며 문학가인데, 북정부(北征賦)는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북쪽으로 갔을 때 옛일을 그리워하며 오늘을 슬퍼[懷古傷今]한 내용이다.
2) 밀물(密勿): 부지런히 힘씀, 또는 대신(大臣)과 왕의 사이가 긴밀한 자리를 말하나 여기서는 빽빽함이라고 번역했다.
3) 봉적(鋒鏑): 창끝과 살촉.
4) 망처 순천씨(亡妻 順天氏): 이미 작고한 필자의 전부인(前夫人)으로 순천김씨 김소양(順天金氏 金瀟陽/ 1868-1933) 씨를 말한다.
5) 면부화율(緬付火慄): 면(緬)은 묘소를 옮긴다는 면례(緬禮)일 것 같고, 부화(付火)는 불을 붙인다는 말이 되며, 율(慄)은 몸씨 꺼리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묘소를 후에 화장을 해서 옮겼음을 예를 다하여 나타낸 의미인 것 같다.
6) 기념일(紀念日): 세상 떠난 날로 기일(忌日) 대신에 기념일이라 함은 기독교적인 표현인 것 같다.
7) 수관(輸官): 수송관(輸官官)으로 승객이나 하물(荷物)을 관리하여 보내는 담당 군인, 또는 책임관리.
8) 역정(驛亭): 예전의 역참(驛站)에 여행객을 위해 마련한 휴식처이니, 역전의 휴식공간을 말한다.
9) 음국(陰國): 북쪽에 있는 나라 곧 그늘지고 추운 나라라는 의미인데, 옛날 진시황(秦始皇) 춘추시대 형산(荊山) 북쪽 초(楚) 나라에 속한 지방이기도 했다.
10) 필호(蓽戶): 봉문필호(蓬門筆戶)와 같은 말로 나뭇가지와 풀로 얽어 만든 참 가난하고 초라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