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깊은 뜻이
석현수
목성균 선생은 그의 저서 『명태에 관한 추억』 속에서 아내와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내가 책을 내라고 성화를 했다. 애들처럼 자랑 하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남편의 생애에서 그거나마 자랑감으로 들어보고 싶은 아내의 마음’으로 표현해 놓고 있다. 그에게 아내는 어용御用 검열관이란다. 무조건의 칭찬이 그를 행복하게 할 뿐더러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고백한다.
내 글은 아내에게 자랑이 되지 못한다. 내가 쓴 것들은 글 나부랭이가 되어 천덕꾸러기다. 황칠이나 낙서 수준이어서 아내의 심사審査에는 문학이란 관문을 넘기는커녕 예선통과도 못 한다. 낙서나 하는 주제에 글을 빙자하여 밤잠을 설치고 있는 꼬락서니를 좋게 봐 줄 수가 없다. 가장 큰 비극은 새로운 작품집이 나오는 날에 있다. 한 사람을 향해 일제히 김 빼기 작업을 한다. 다시는 책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다음 해를 대비한 단속이 시작된다. “이게 마지막이라 약속해 주시오.” 책과 더불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가정이 화목해진다. 내 글은 겨울을 나는 보리밭 같다. 아내가 잊지 않고 자주 밟아 주어야 뿌리를 강하게 내릴 것이다.
수필이란 식구에게 매력이 없다. 소재니 주제니 하면서 툭하면 집안일이나 가족사를 시시콜콜 파헤치고, 정직하게 쓰는 글이 되어야 한다며 사돈 팔촌 이야기까지 남아나지 않으며, 고백적 문학이라며 팔푼이처럼 제 얼굴에 침이나 뱉고 돌아다니고, 서정적이어야 한다면서 옛 고향 집 능수버들까지 글 소재로 팔아먹고 있었으니 나도 아내 앞에 죄 없다는 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다. 좁은 평수의 아파트에 한솥밥을 먹으며 풍상 고초를 겪어가며 40년을 동고동락하는 마당에 무슨 이야기 할 것이 따로 있어 내 책에서 신기한 것을 찾아내겠는가? 아내를 위한 읽을거리를 따로 장만할 수도 없고, 여자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 드라마를 연출할 줄도 모른다. 짧은 재주로는 불감당이다. 살 붙이고 살다 보면 부부란 얼굴만 보아도 마음을 읽는 사이인데, 별도로 문학이란 도구를 이용해 유대를 증진할 방도가 있겠는가. 설령 삼국지 같은 긴 사연을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공허한 수다에 불과하리라. 아내는 결코 내 글을 자랑삼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에는 책 제목에서 잠깐 득을 보았다. 『말을 타고 쓰다』라고 했더니 승마도 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허풍을 떨었는지 궁금해서인지 책 표지를 들춰보는 성의를 보였다. 혹시 마음이라도 넓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설픈 기대는 금물이다. 책을 넘긴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일 분을 넘지 못했다. 후루룩 국 국물 한 모금 들이켤 순간이다. 다시 추달推撻이 시작된다. 거두절미하고 내년에도 다시 책을 낸다면 바로 당일 분서갱유를 각오해야 한단다. 진시황이여, 이럴 때 옛 선비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까.
톨스토이의 아내, 소크라테스, 모차르트, 공자, 이퇴계 선생의 아내를 생각해 본다. 이들의 눈에 비친, 가까이서 본 남편이란 존재는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남편이라는 점에서는 나도 이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룰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나는 희망적이다. 아내의 수모라는 공통분모 하나를 가졌으니 이것이 그동안의 창작활동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다. 역사에 큰 인물치고 고분고분하게 내조를 얻어낸 사람이 몇이 있었던가? 아내가 주는 시련이나 구박은 오히려 큰 그릇으로 향하는 수양의 길이 아니었던가. 아내여, 당신의 힘으로 나는 큰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의 속셈은 무엇일까? 악처가 좋아 악명을 날리겠다는 걸까? 아니다. 그 속을 내가 먼저 헤아린다. 글 쓰는 꼴이 보기 싫다는 강렬한 반응 뒤에는 무엇을 크게 숨기고 있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그가 택한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극렬한 관심이다. 지독한 반대는 그만큼 큰 관심을 뜻한다. 악처로서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고의성이 짙다. 남편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다. 그녀인들 어찌 어용 평론가로서 칭찬 일변도의 내조를 해 주는 부도婦道를 모르고 있으랴.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늦게 배운 도둑질이다. 날 샐 줄 모르는 어설픈 도둑임을 아내가 알고 있다. 재미에 빠져 주위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없어지고 점점 나홀로족이 되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귀가 여려 잘 썼노라며 조금만 추임새를 넣어도 자만에 빠진다. 변변치 못한 사람이 무식하게 용맹정진하다가 제 명대로 못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봄 앓았던 대상포진이란 병도 글쓰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싫어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는 두 가지 불만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글을 써 모아야 하는 일 년간의 노력이 한심해 보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돈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 출판명세표는 없는 집 제사 닥치듯 돌아왔고 남편은 자숙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차근차근 대화조차도 어려우니 아내가 쓸 대응책이라면 철저한 냉대로 빨리 링 위로 타월을 던지려는 권투 매니저의 심정이 아니겠는가. 남편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악처를 자처할 사람이다.
생각해 보니 나를 위한 배려가 가상嘉尙하다. 당신을 악처로 밀어 넣고, 그래서 내가 역사적 인물이 되면 무엇 하나. 내 아내를 크산티페(소크라테스의 아내), 콘스탄제(모차르트의 아내 ), 소피아(톨스토이의 아내)처럼 악처 반열에 올리기보다는 나는 차라리 위인 대열에서 뛰쳐나와 이들 악처 뒤에 기록될 내 아내의 이름부터 지워 달라고 사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