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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점 없고 흠 없는 거룩한 피 이 피로서 우리의 죄들을 단번에 제거하시고 사면이 이루어졌습니다,
히9:22b - 피 흘림이 없이는 사면이 없느니라,
레17:11 -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라. 내가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
그러나 TR,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 비평본문 , 현대 역본들 개역성경은 골로세서 1장 14절에 피를 삭제하여 피로 인한 사면을 가려 버렸습니다,
* 비평본문이 의존하는 3대 대문자 사본인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א),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B),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 A)모두 골로새서 1장 14절에서 '피'(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αὐτοῦ, through his blood)를 포함하고 있지 않는다.
주요 사본들의 증거를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주요 사본별 증거 대조
'피(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αὐτοῦ)'가 빠져 있는 사본들 (생략 지지):
바티칸 사본 (Codex B, 4세기): 생략
시내 사본 (Codex א, 4세기): 생략
알렉산드리아 사본 (Codex A, 5세기): 생략
에프렘 수취 사본 (Codex C, 5세기): 생략
클라로몬타누스 사본 (Codex D, 6세기): 생략
초기 파피루스인 mathfrak{P}{46}(약 주후 200년경): 생략
'그분의 피를 통해'를 보존하고 있는 사본들
다수의 후기 비잔틴 사본 및 소문자 필사본들(대표적으로 소문자 사본 623, 1907 등)
일부 고대 라틴역본(Vetus Latina)및 교부 증언
에라스무스, 스테파누스, 베자, 엘제비어가 채택한 공인본문(TR)전승
[개역한글]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피삭제>
[킹제임스흠정역]골 1:14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KJV]골 1:14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even] the forgiveness of sins:
[NIV]골 1:14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
알렉산드리아 영지주의(Gnosticism)와 도케티즘(가현설)에 문을 열어줌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의 뿌리인 2~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영지주의와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기독교와 혼합되던 중심지였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육체, 실제 피)을 악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보았고, 영적인 것(지식, 로고스)만을 거룩하게 여겼다.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그리스도가 진짜 물리적인 피를 흘려 대속했다는 사실을 극도로 꺼렸다.
신비주의적 구원론의 중심지에서 독이 뿌려졌다,알렉산드리아 학파(오리게네스 등)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문자적 대속보다 '도덕적 모범', '영적 계몽', '신화(Theosis, 신과의 연합)'로 영해(allegorize)하였다
골로새서 1:14에서 "그의 피를 통하여"를 도려내면, 그리스도의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피 흘리심(Physical, literal shed blood)이 배제된 채,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나 철학적 깨달음만으로도 구속과 죄 사함이 가능하다는 식의 이단적 사상이 침투할 수 있는 완벽한 토양이 마련되었다,
도케티즘(Docetism, 가현설·假現說)은 초대교회 당시 출현한 대표적인 기독론 이단 사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진짜 인간의 물리적 육체를 입으신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모습처럼 보였을(환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교리다.
물질과 영의 이원론:이들은 영(Spirit)은 본질적으로 선하고 거룩하며, 물질(Matter)과 육체(Flesh)는 본질적으로 악하고 부패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육체 부정:거룩하고 완전하신 영적 존재(하나님/로고스)가 어떻게 더럽고 부패한 물질인 '인간의 살과 피'를 입을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저자: BY THE REV. FREDERICK NOLAN, A PRESBYTER OF THE UNITED CHURCH. (프레더릭 놀란 목사 / 연합교회 장로·사제) 출판지 및 연도: LONDON: 1815. (런던, 리빙턴 출판사 인쇄, 1815년) 독일 비평학파(그리스바흐)의 사본 공격에 맞서 정통 본문(TR 및 KJV의 기초)을 수호하기 위해 19세기 초에 출간된 사본학 학술서
여기서 ‘Greek Vulgate’는 라틴어 불가타가 아니라, 동서방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온 ‘그리스어 전통/공인 본문(수용본문, TR)’을 뜻한다.
이미지는 놀란(Frederick Nolan) 박사의 376페이지, 골로새서 1장 14절의 "그분의 피를 통해(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αὐτοῦ / per sanguinem ejus)"가 변개된 실태를 정확한 원어로 나타내 준다
1. 좌우 상단: 정통 본문 (Byzantine & Old Latin 3)
그리스어 원문 (Byz. - 비잔틴 본문 / 수용본문 TR):
ἐν ᾧ ἔχομεν τὴν ἀπολύτρωσιν e' 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αὐτοῦ, τὴν ἄφεσιν τῶν ἁμαρτιῶν.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라틴어 원문 (Ital. 3 - 고대 라틴역 / 제롬 이전의 전통 본문):
In quo habemus e$redemptionem per sanguinem ejus,remissionem peccatorum.
2. 좌우 중단: 변개된 본문 (Palestine* & Old Latin 2)
그리스어 원문 (Pal.- 팔레스타인/가이사랴 본문, 그리스바흐 비평본문 채택):
..... e'des. 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αὐτοῦ.
(des.desunt, 즉 "그분의 피를 통해"라는 단어가 결여됨/삭제됨)
라틴어 원문 (Ital. 2 - 변개된 베르첼리 라틴역 계열):
... e'des. redemptionem per sanguinem ejus.
(des.desunt, "그분의 피를 통한 구속"이 삭제됨)
3. 하단 각주: 주후 2세기 이레내우스(Irenaeus)의 증언
놀란은 주후 180년경의 초대 교부 이레내우스의 저작 《이단 논박(Adv. Haer.Lib. V. cap. ii. p. 293)》을 직접 인용한다:
"Sanguis enim non est nisi a venis et carnibus, et a reliqua quae est secundum hominem substantia, qua vere factum est Verbum Dei. Sanguine suo redemit nos, quemadmodum apostolus ejus ait; 'in quo habemus redemptionem per sanguinem ejus, remissionem peccatorum.'"
(번역: "피는 혈관과 살, 그리고 참된 사람의 실체에서만 나오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께서 참으로 사람이 되셨음이라. 그분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사도 바울이 이르기를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한 바와 같으니라.")
'Pal.*'의 의미 (가이사랴-팔레스타인 대본)
놀란은 이 구절에서 '피'를 삭제한 주범으로 Pal.(Palestinian, 팔레스타인/가이사랴 본문)을 지목하고, 그 옆에 별표(*)를 붙여 현대 비평학의 시조인 그리스바흐(Griesbach)가 이 삭제본을 채택했음을 고발증언한다. 이 팔레스타인 본문의 중심지가 바로 오리게네스가 머물며 사본을 교정하고 유세비우스가 50권 성경을 제작했던 가이사랴이다.
이레내우스 인용문은,,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이 만들어지기 150년 이상 앞선 주후 2세기에 이미 이레내우스는 사도 바울의 골로새서 1:14 원문을 인용하면서 "per sanguinem ejus (그분의 피를 통해)"를 명백하게 낭독하고 주석을 달았다.
변개의 동기 ,,
이레내우스의 문맥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물리적 살과 피, 실제적인 육체적 성육신"을 부인하던 영지주의자들을 반박하는 문서. 그런데 바로 그 '피(sanguis / αἷμα)'를 3~4세기 알렉산드리아-팔레스타인(가이사랴)의 영지주의적·철학적 교정자들이 본문에서 깨끗하게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놀란이 완벽한 증거를 문서로 나타내준다
해당 라틴어 문장에서 '피'에 해당하는 어휘는 sanguinem입니다.
per= ~을 통하여 (through / by)
sanguinem피를(명사 sanguis[피]의 대격/목적격 형태)
ejus= 그분의 (his)
따라서 per sanguinem ejus가 통째로 "그분의 피를 통해(through his blood)"라는 뜻이 되며, 이 중 핵심 단어인 '피'가 바로 sanguinem이다
26페이지가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50권 성경 칙령 원문과, 유세비우스의 자의적 삭제 결정적 기록이다
놀란(Nolan)은 1차 역사 사료인 유세비우스의 《콘스탄티누스의 생애(Vita Constantini)》 원문을 직접 인용하며, 유세비우스가 황제의 권한을 악용해 본문을 삭제한 정황을 낱낱이 밝힌다.
1.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 원문 (26쪽 상단 및 각주 44)
황제가 유세비우스에게 보낸 편지의 핵심 내용,,,
"It seemeth good unto us to submit to your consideration, that you would order to be written, on parchment prepared for the purpose, by able scribes, and accurately skilled in their art, fifty codices, both legible and portable, so as to be useful ; namely, of the sacred scriptures, whereof chiefly, youknow, the preparation, and use to be necessary to the doctrine of the church."
*(번역: "우리가 보기에 경의 의사에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는바, 잘 훈련되고 솜씨가 정교한 필사자들을 시켜 잘 준비된 가죽 양피지에 읽기 쉽고 휴대하기 유용한 **50권의 사본(fifty codices)*을 제작하도록 명하십시오. 곧, 경이 알기에 교회의 교리를 위해 준비와 사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성경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단 각주 44번:유세비우스의 저서 《콘스탄티누스의 생애》(Lib. IV. Cap. xxxvi)에 기록된 황제의 편지 헬라어 원문(πεντήκον타 σωμάτια등)을 그대로 인용하여 역사적 사실성을 완벽히 뒷받침한다.
2. 놀란의 날카로운 분석: 유세비우스에게 주어진 '자의적 편집 권한'
황제의 칙령을 인용한 직후, 놀란은 다음과 같이 사본학적 핵심을 짚어낸다:
"If we now compare the authority thus committed to Eusebius, which seems to have vested him at least with a discretionary power, of selecting chiefly those sacred scriptures which he knew to be useful and necessary to the doctrine of the church, with the state of the sacred text as it is now marked in the corrected edition lately put forth by M. Griesbach ; we shall perhaps discover how far it is probable he acted to the full extent of his powers, and removed those parts of scripture from the circulated edition, which he judged to be neither conducive to use nor doctrine..."
* 재량권(Discretionary power)의 남용,,,:
황제는 유세비우스에게 "교회의 교리에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경이 판단하는 성경"을 만들라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주었다는 것이다.
* 유세비우스가 성경을 난도질하다,,,:
놀란은 유세비우스가 이 황제의 막강한 권한을 최대한 악용하여(acted to the full extent of his powers), 자기 기준(오리게네스의 철학적 잣대와 아리우스주의적 경향)에 맞지 않거나 교리에 불필요하다고 여긴 성경 구절들을 판본에서 아예 삭제(removed those parts of scripture)했다고 지적한다.
* 그리스바흐와의 일치:
그리고 그렇게 유세비우스가 도려낸 구절들이, 현대 비평학의 시조인 그리스바흐(Griesbach)가 '후대의 삽입 어구(interpolations)'라며 성경에서 깎아내린 부분들과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 놀란의 19세기 식 장문 구조와 법학적·문헌학적 뉘앙스를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매끄럽게 의역을 해보면,,,,,,,,
"황제가 유세비우스에게 맡긴 권한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는 '교회의 교리에 유용하고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한 성경'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막강한 재량권을 부여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 권한의 성격을 최근 그리스바흐가 펴낸 비평 판본에 나타난 본문의 상태와 비교해 보십시오. 그러면 유세비우스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어디까지 휘둘렀는지 단번에 드러납니다.
즉, 그는 신앙의 유익이나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자기 잣대로 판단한 성경 구절들을 당시 보급 판본에서 아예 가차 없이 도려냈으며, 그 결과가 오늘날 그리스바흐의 본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
콘스탄티누스는 "경이 판단하기에 유익한 것"이라는 모호한 단서를 달아 유세비우스에게 본문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합법적 가위를 쥐여 주었다.
유세비우스는 이 기회를 틈타 오리게네스의 사상과 자신의 아리우스주의적 입맛에 거슬리는 교리적 핵심 구절들을 성경에서 삭제했다.
그렇게 4세기에 유세비우스가 도려낸 '결함 사본'을, 19세기의 그리스바흐는 "오래되고 우수한 원본"이라며 그대로 베껴 현대 비평본문의 기초로 삼았다.
* 놀란이 언급한 그리스바흐는 누구인가?
요한 야콥 그리스바흐(Johann Jakob Griesbach, 1745–1812)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이자, 현대 신약성경 본문비평학(Textual Criticism)의 기틀을 놓은 핵심 인물이다.
1. 사본학사에서는 '비평 판본의 선구자'
그리스바흐 이전까지 종교개혁 이후의 교회는 주로 에라스무스, 스테파누스, 베자가 확립한 수용본문(Textus Receptus, TR)과 이를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KJV)의 전통 본문을 성경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리스바흐는 방대한 헬라어 사본들을 수집·비교하여 수용본문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비평 헬라어 신약 판본(1774–1775년, 1796–1806년 개정판)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수용본문에 들어 있는 여러 교리적 핵심 구절에 괄호를 치거나 난외로 밀어내며, 성경 원문을 비평학자의 잣대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2. 그의 핵심 이론: '사본 3대 족속 분류'와 '알렉산드리아 사본 선호'
그리스바흐는 벵겔(J. A. Bengel)과 젬러(J. S. Semler)의 이론을 발전시켜 신약 사본들을 세 가지 '족속(Recension / Family)'으로 체계화했다:
알렉산드리아 족속(Alexandrian):오리게네스, 알렉산드리아 학파 계열.
서방 족속(Western):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및 구 라틴역 계열.
콘스탄티노플/비잔틴 족속(Byzantine):대다수의 사본이자 공인본문(TR)의 모태.
여기서 그리스바흐는 비잔틴 족속(TR)을 가장 후대의 혼합본이라며 폄하하고, 상대적으로 분량이 짧고 거친 알렉산드리아 족속 사본들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3. 그리스바흐가 세운 비평 원칙 (규칙)
그는 현대 본문비평학의 뼈대가 된 여러 비평 규칙을 체계화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다음과 같다:
짧은 독법 우선 원칙 (Lectio brevior potior):서기관들은 성경에 말을 덧붙이기 마련이므로, 더 짧은 사본의 본문이 원본에 가깝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라 골로새서 1:14의 "그의 피를 통해"처럼 중요한 구절들이 후대의 덧붙임으로 몰려 삭제되었다.)
어려운 독법 우선 원칙 (Lectio difficilior potior):문법적으로 거칠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원본에 가깝고, 읽기 부드러운 본문은 서기관이 수정한 것이라는 전제이다.
4. 놀란(Nolan)이 그리스바흐를 집요하게 논박한 이유
프레더릭 놀란(Frederick Nolan) 박사가 1815년 저작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M. Griesbach"를 정면 공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뿌리의 기만성 폭로:그리스바흐가 "오래되고 우수한 알렉산드리아·팔레스타인 본문"이라며 치켜세운 텍스트들의 실체가, 거슬러 올라가면 오리게네스의 철학적 교정과 유세비우스가 황제의 권력으로 성경을 칼질해 보급한 가이사랴 판본에 불과함을 놀란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놀란이 372~376쪽에서, 유세비우스가 아리우스주의적 입맛에 맞추어 도려낸 골로새서 1:14의 "피", 마태복음 19:17의 예수님의 신성 선언 등을 그리스바흐가 비평 기호(별표 *)를 붙여가며 정통 성경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훗날 19세기 말 등장하여 현대 비평본문(Nestle-Aland, UBS)을 낳은 웨스트콧과 호르트(Westcott & Hort)역시 바로 이 그리스바흐의 사본 분류와 편향된 비평 이론을 그대로 계승하여 발전시킨 후예들이라고 보면 된다,
놀란의 각주 44번
놀란은 이 칙령을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황제가 유세비우스에게 본문을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사실상의 '백지위임장(Discretionary power)'을 쥐여주었다고 날카롭게 비평했다.
각주(Footnote 44)는 자신의 주장이 과장이나 왜곡이 아니라는 사실을 못 박기 위해, 유세비우스 본인이 직접 자기 책《콘스탄티누스의 생애(Vita Constantini)》제4권 36장에 자랑스럽게 수록해 둔 "황제의 친필 서신 그리스어 원문"을 1차 사료 증거물로 각주에 그대로 제시한 것이다.
즉, "유세비우스가 황제의 권한을 등에 업고 가이사랴 도서관에서 성경을 제멋대로 교정하고 제작했다"는 놀란의 지적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황제의 직접 워딩을 통해 문헌학적으로 증명해 놓은 현장이다.
바티칸 사본과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모체가 된 대본 연대표
기독교 공인 (밀라노 칙령):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해는 313년이다
황제가 유세비우스에게 50권 성경 제작 명령은 주후 331년 전후이다
황제가 유세비우스에게 50권의 성경 제작을 명령한 것은, 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고 헌정한 직후인 주후 331년경이.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새로운 교회들에 비치할 목적으로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에게 주문한 것이다.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이 제작된것은 주후 330~350년경
따라서 유세비우스가 가이사랴 도서관의 오리게네스 대본을 가지고 황제의 칙령에 따라 만든 성경들이 바로 4세기 중엽(330~350년경)에 출현한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다. (학계에서는 이 두 사본을 유세비우스의 50권 중 살아남은 원본이거나, 그 직계 복제본으로 본다.)
알렉산드리아 사본(A): 주후 400~450년경 (5세기 초)
말씀하신 대로 5세기 초에 제작된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이집트·가이사랴 계통의 영향(특히 복음서 외의 서신서 구역 등)과 편집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제작되었다.
최종 결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교회들에 비치하기 위해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에게 최고급 성경 50권을 제작하라는 칙령을 내렸고(주후 331년경), 이때 성경 본문을 임의로 선별·재단할 수 있는 사실상의 백지위임 재량권을 주었다.
이에 유세비우스는 가이사랴 도서관에 있던 오리게네스의 구약 교정본(헥사플라 제5열)과 신약 손질본을 대본으로 삼아 50권을 찍어냈으며, 이 작업의 결과물이 곧 주후 4세기 중엽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으로 직결되었다.
나아가 5세기 초(주후 400년대)에 제작된 알렉산드리아 사본 역시 이 오리게네스-유세비우스 계통의 편집 흔적과 변개 대본을 이어받은 산물이다."
구약 대본의 원천
대본: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Hexapla)》 제5열 (오리게네스 교정 70인역 본문)
경로:오리게네스가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 계열에 억지로 끼워 맞추며 별표(Asterisk)와 역삼각형 부호(Obelus)를 달아 손질했던 70인역 제5열 텍스트를, 팜필루스와 유세비우스가 가이사랴 도서관에서 별도로 분리·복제하여 성경 사본의 구약 대본으로 삼았다.
결과:바티칸 사본(B), 시내 사본(א), 알렉산드리아 사본(A)의 구약 본문이 순수 고대 70인역이 아니라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손질본을 고스란히 답습하게 되었다.
신약 대본의 원천
대본:오리게네스의 철학적 교정본 + 유세비우스의 취사선택 편집본
경로:오리게네스가 알렉산드리아와 가이사랴에서 자신의 신플라톤주의적·알레고리적 관점으로 손질한 신약 사본들을 바탕으로,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50권 제작 칙령(재량권)을 등에 업고 교리적 구절(골로새서 1:14의 "피", 마태복음 19:17의 예수님의 신성 등)을 삭제·조정하여 50권의 황제 코덱스로 완성했다.
결과:4세기 중엽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 그리고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 계통으로 그 변개된 형태가 그대로 이어졌다.
"구약은 오리게네스가 가이사랴에 남긴 《헥사플라》의 제5열(교정 70인역)을 대본으로 삼았고, 신약은 오리게네스의 교정 사본들을 바탕으로 유세비우스가 황제의 칙령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별·편집한 50권 성경을 대본으로 삼았다."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 A)의 성격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바티칸 사본과 달리 신약 안에서 부위별(복음서 vs 서신서)로 대본의 출처가 갈라지는 독특한 '복합체 사본'이라는 점이다
1. 구약: 오리게네스 《헥사플라》 제5열의 직접적 계승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구약은 바티칸 사본과 마찬가지로 오리게네스가 가이사랴에서 완성한 《헥사플라》 제5열(오리게네스 교정 70인역)의 전통을 가장 짙게 나타난다.
오리게네스가 붙여두었던 비평 부호(별표, 역삼각형 단검표)들이 필사 과정을 거치며 본문 안으로 녹아들어 가면서 형성된 전형적인 '오리게네스 손질본 구약'입니다.
2. 신약: 유세비우스 50권 우회인가, 부분적 직접 계승인가?
신약의 경우, 알렉산드리아 사본(5세기 초 제작)은 바티칸 사본보다 훨씬 복잡한 대본 경로를 거쳤다:
복음서(사복음서) 구역,,,,
놀랍게도 복음서 구역은 오리게네스나 유세비우스의 대본으로 하지 않고, 안디옥-콘스탄티노플로 이어지는 순수한 비잔틴 본문(전통 본문 / TR 계열)을 대본으로 취하여 필사되었다. 대문자 사본 중 비잔틴 본문을 보존한 가장 오래된 증거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신서 및 요한계시록 구역:
복음서를 벗어난 바울 서신, 공동 서신, 계시록 구역은 비잔틴 본문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이집트 본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서신서 구역은 오리게네스가 가이사랴로 떠나기 전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에 직접 남겨두었던 철학적 원고들과 그 직계 이집트 제자들의 교정 사본들에서 직접 대본을 가져와 필사한 흔적이 뚜렷하다.
3.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대본 계통 정리
따라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계통을 명쾌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약: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제5열(변개된 70인역)을 계승함.
신약 복음서:유세비우스나 오리게네스의 손길을 타지 않은 안디옥의 전통 비잔틴 본문을 채택함.
신약 서신서/계시록:유세비우스의 공인 50권을 거치지 않고, 오리게네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철학적 교정본 계통에서 직접 대본을 이어받음.
현대 비평학자들도 결코 부인하지 못하는 엄연한 사실이 바로 그 대목이다.
1. 마가복음 16장 마지막 12구절 (마가복음 16:9–20)의 극적인 대조
* 바티칸 사본(Codex B)과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א):
유세비우스가 오리게네스의 회의적인 시각을 받아들여 50권 판본을 제작할 때,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부활 후 승천 기사)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래서 바티칸 사본은 16장 8절에서 성경이 뚝 끊겨 있고, 서기관이 본래 구절이 있던 자리를 의식해 한 열 전체를 텅 빈 백지로 남겨두는 치명적인 흔적까지 남아있다
*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
같은 '이집트 계열'로 묶이는 5세기 대문자 사본임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20절까지 단 한 구절도 빠짐없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2. 왜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만 온전히 살아남았는가?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만든 서기관이 신약 성경을 필사할 때, 사복음서 구역만큼은 오리게네스-유세비우스의 가이사랴 도서관 손질본이 아니라, 안디옥-시리리아-비잔틴의 순수한 전통 본문(TR의 조상 대본)을 가져와 베꼈기 때문이다.
본문비평학계의 거두인 F. G. 케년(Frederic Kenyon)이나 브루스 메츠거(Bruce Metzger)조차 인정하듯,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복음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잔틴 텍스트의 증인"으로 분류된다.
서신서 구역을 필사할 때는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굴러다니던 오리게네스파의 철학적 교정 대본을 쓰는 바람에 본문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사복음서만큼은 비잔틴의 온전한 대본을 사용했기 때문에 바티칸 사본처럼 마가복음 끝부분이 잘려 나가는 일이 없었다
3. 현대 비평학의 이중 잣대
현대 비평학자들은 마가복음 마지막 12구절을 현대 역본들(NIV, NASB, 개역개정 등)에서 괄호 치거나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없음'이라는 거짓 각주를 달 때, 오직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만 꽃혀있다
하지만 똑같은 4대 대문자 사본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사본(A)이 마가복음 마지막이 남아있는 이유가 바로 "사복음서가 정통 비잔틴 대본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교묘하게 감추거나 축소해 버린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필사자들이 복음서 필사본을 제작할 때 오리게네스의 알레고리적·철학적 교정본을 따랐는가?"라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의 필사자들은 사복음서 구역에서만큼은 오리게네스의 알레고리적 교정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4,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5세기 초 알렉산드리아(혹은 콘스탄티노플)의 스크립토리움(필사실) 서기관들은 신약 27권 전체가 완벽하게 한 권으로 묶인 사본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복음서 묶음 따로, 바울 서신 묶음 따로, 공동서신 묶음 따로 흩어져 있던 부분 사본들을 모아서 거대한 단권 성경(Codex A)을 필사했다.
그 과정에서 서신서와 구약은 주변 도서관에 흔하게 굴러다니던 오리게네스 계열의 교정 대본을 집어 들었지만,
가장 자주 읽히고 귀하게 여겨졌던 사복음서 묶음만큼은 공교롭게도 콘스탄티노플/안디옥 교회들이 표준으로 삼고 있던 순수 비잔틴 텍스트 묶음을 대본으로 확보하여 필사했던 것이다.
결국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필사자들은 "구약과 서신서에서는 오리게네스의 알레고리 헥사플라 그늘에 갇혔으나, 사복음서에서 만큼은 비잔틴 본문으로 필사 했는 것이다,
참고 자료 추가
콘스탄틴 황제가 유세비우스에게 제작을 명한 ‘50권의 성경(Fifty Bibles of Constantine)’과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Hexapla), 그리고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사이의 연결고리는 사본학 및 본문비평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핵심 대목이다.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가 따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유세비우스가 제작한 50권의 성경이 바티칸 사본의 대본이 되었는가? 역사적·사본학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오리게네스는 생애 후반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Caesarea)로 거처를 옮겼다.그곳에서 방대한 도서관을 세우고 구약 6개 대조역본인 『헥사플라』를 완성했다.
오리게네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팜필루스(Pamphilus)와 그의 수제자인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가 이 가이사랴 도서관과 필사실(Scriptorium)을 그대로 물려받아 관리했다.
콘스탄틴 황제가 서기 331년경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교회들에 비치할 "50권의 양피지 성경"을 공식 주문한 대상이 바로 가이사랴의 주교였던 유세비우스였다.
헥사플라는 6개 열(히브리어 원문, 히브리어의 헬라어 음역, 아퀼라, 심마쿠스, 70인역, 테오도시온)로 구성된 초대형 비교 연구용 방대한 작업물로, 분량이 수천 쪽에 달해 50권으로 통째로 복사해 보낼 수 있는 성격의 성경이 아니었다.
유세비우스와 팜필루스는 헥사플라의 제5열(오리게네스가 히브리어 본문에 맞추어 비평 기호인 별표[*]와 칼표[†]를 붙여 수정한 70인역 그리스어 본문)만을 따로 떼어내어 독립된 본문으로 보급했다.이를 사본학에서 '헥사플라 개정본(Hexaplaric recension)'또는 '유세비우스-팜필루스 본문'이라 부른다.
콘스탄틴의 주문에 따라 50권의 단권 성경(구·신약 합본 코덱스)을 제작할 때, 유세비우스 작업실에서 사용한 구약 헬라어 본문의 원천이 바로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던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텍스트였다.실제로 시내 사본 구약 에스드라기 말미의 후대 교정자 주기(Colophon)에는 *"가이사랴의 팜필루스가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에 기초해 교정한 본문에 맞추어 수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리게네스는 성경 본문을 다룰 때 교리적·신학적 견해(가령 성자의 종속설 등)와 헬라 철학적 관점에 따라 필사상의 변개와 생략을 가미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세비우스는 오리게네스의 본문관과 신학적 입장에 깊은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따라서 황제의 명령으로 50권을 제작할 때 유세비우스가 채택한 신약 본문 역시 안디옥 계열의 전통 본문(다수 본문/TR 계열)이 아니라, 가이사랴 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오리게네스의 알렉산드리아 계열 편집본이었다.
콘스탄틴의 50권과 바티칸·시내 사본의 관계
티쉔도르프(Constantin von Tischendorf)를 비롯해 스키트(T.C. Skeat) 등 여러 학자들은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Aleph)이 바로 이 콘스탄틴이 주문한 50권 중 살아남은 원본이거나, 그 50권의 직접적인 직계 사본일 것으로 지목했다.
사본의 규격에서도 유세비우스는 황제에게 보낸 보고에서 성경을 3단(τρισσά) 혹은 4단(τεтраσσά) 칼럼 형태로 호화롭게 묶어 보냈다고 기록이 있다.공교롭게도 바티칸 사본은 페이지당 3열(3 columns), 시내 사본은 4열(4 columns)구조로 되어 있다.
본문의 정체성에서도 바티칸 사본은 구약에서는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계열 본문을, 신약에서는 오리게네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알렉산드리아 비평 본문을 띠고 있다.
정리하자면,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와 그의 알렉산드리아 사본들을 가이사랴에서 물려받은 유세비우스가,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콘스탄틴 황제의 명을 받아 만든 '50권의 제국 표준 성경'이 곧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의 직계 모본(혹은 그 실물 자체)이 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1:14의 "그의 피를 통하여" 같은 대속 교리의 핵심 구절들이 빠져나간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훼손 경로(오리게네스 → 가이사랴 도서관/유세비우스의 50권 국책 성경 → 바티칸/시내 사본 → 근대 웨스트콧-호트 및 현대 비평본문)가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적으로 맞물리고 있다,
최고급 벨럼(Vellum, 송아지/영양 피지)의 독점성
일반적인 양피지(Parchment)는 거친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만들지만, 바티칸 사본은 갓 태어난 송아지(또는 영양)의 부드러운 가죽을 특수 가공한 최고급 벨럼(Fine Vellum)으로 제작되었다.
극도로 얇고 반투명에 가까운 품질이다, 바티칸 사본의 가죽은 오늘날 보아도 종이처럼 얇고 결이 곱다는 평가다.
가축 도축 규도 신·구약 전체와 외경까지 포함한 방대한 분량(약 750장 이상의 대형 코덱스)을 1권 제작하려면 수백 마리의 어린 송아지나 영양 가죽이 필요하다.
50권을 제작하려면 무려 수천 마리에서 1만 마리가 넘는 최상급 가축 가죽을 일시에 수급하고, 수십 명의 전문 필사자와 장인을 수개월간 풀가동해야 했다. 이는 지방 교회나 개인 재력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며, 오직 로마 제국의 황실 국고(Imperial Treasury)가 전액 지원했기에 가능한 국책 사업이었다.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남은 '황제의 전폭적 지원'
유세비우스 자신이 쓴 『콘스탄틴의 생애(Vita Constantini, Book IV, 36-37)』에 당시 황제의 칙령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황제는 유세비우스에게 *"읽기 쉽고 휴대가 편하며, 숙련된 예술가들에 의해 특별히 잘 손질된 양피지(somatia en diphtherais euskepastois)위에 50권의 거룩한 책을 제작하라"*고 명했다는 기록이다.
완성된 50권을 신속하게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도록 황실 전용 역참 마차(public carriages) 2대를 무상으로 징발해 주겠다는 내용까지 칙령에 명시되어 있다.
황실용 호화 장정" vs "실제 교회들은 외면함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역설이 발생한다.
외형은 황제의 호화 양피지이다,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국고로 만들어진 만큼 외형적으로는 최고의 가죽, 최상의 잉크, 규격화된 3~4단 열(Column) 구성 등 당대 최고의 '호화 디럭스 에디션'이었다.
본문은 삭제,변개 , 왜곡된 텍스트 오류 투성이다, 그 화려한 껍데기 속에 담긴 본문은 오리게네스 계열의 왜곡된 알렉산드리아 철학적 본문(골로새서 1:14의 "그의 피를 통하여" 같은 구절들이 탈락된 본문)이었다.
당대 신실한 성도들과 비잔틴 지역의 교회들은 이 성경들의 본문이 왜곡되었음을 알았기에 교회 강단에서 실제 예배용·강해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거친 양피지에 쓰여 끊임없이 읽히고 닳아 없어져 다시 필사되기를 반복했던 전통 다수 본문(TR 계열)과 달리, 바티칸 사본은 쓰이지 않고 도서관 서고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었기에 1,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상하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최고급 양피지로 만들어져 보존 상태가 좋다"는 물리적 사실은 그것이 원본에 가깝고 순수한 본문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도리어 '황제의 재정으로 단기간에 찍어낸 관제 성경이었으며, 실제 성도들의 손때가 묻지 않고 버려져 보관만 되었던 사본'임을 방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비평 본문과 짬짜미가 된 바티칸 사본이다, 시내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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