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제 개편]
연장근로 단위 週→月-年 확대 ‘몰아서 일하고 길게 쉬기’ 가능 야당 반대에 국회 통과 미지수정부가 ‘주 52시간’에 묶여 있던 근로시간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안을 6일 확정해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70년간 주(週) 기준이었던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분기(3개월), 반기(6개월), 연 기준으로 확대해 ‘몰아서 일하기’가 가능해진다. 또 연장, 야근, 휴일근무 뒤 발생하는 휴가를 적립해놨다가 ‘몰아서 쉬는 것’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야당이 정부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어 여소야대 국회를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표했다. 현재 사용자(고용주)는 근로자에게 주당 법정 기본근로시간 40시간과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더한 52시간 이상 일을 시킬 수 없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 받는다. 개편안은 ‘주 12시간’ 이내로 묶여 있던 연장근로를 월 52시간, 분기 140시간, 반기 250시간, 연 440시간 내에서 노사 합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바꿨다.
개편안에 따르면 휴게시간 등을 제외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69시간까지 늘어난다. 단, 근무일과 근무일 사이에 ‘11시간 연속휴식 부여’라는 조건이 붙는다. 연속휴식이 어려울 때는 주 64시간까지만 근무해야 한다. 연장, 야근, 휴일근로 뒤 발생하는 휴가를 적립해뒀다가 사용하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도 도입된다.
근로시간 관련 규제들도 완화된다. 현재는 근로자가 4시간 일할 때마다 무조건 30분 휴식시간이 발생하기 때문에 ‘반차’를 내면 4시간 30분 뒤에 퇴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앞으로는 휴식시간 30분을 포기하고 4시간만 일한 뒤 퇴근할 수 있도록 했다. 출퇴근 시간, 근무 요일 등을 고르는 선택근로제 허용 기간도 일반 업종은 연간 1개월에서 3개월로, 연구개발직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린다.
연장근로시간의 1.5배 휴가로 적립… ‘한달 제주살이’ 갈 수도
근로시간제 개편野 “청년층, 69시간제 반대…엉터리 노동개혁 중단해야” Q&A로 본 근로시간제 개편안
근로시간 단위 週→年 확대하면 연장근로 총량 100→70%로 줄여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안될땐 주 64시간 근로로 제한, 건강권 보호 퇴근후 회사연락 안받을 권리… 정부, 올해 TF 만들어 논의키로
정부는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시행되면 ‘원할 때 몰아서 일하고, 길게 쉴 수 있는’ 유연근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무슨 요일에 몇 시간 동안 일할지 등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초과 근무를 포인트처럼 적립해 ‘제주 한 달 살이’ 같은 장기 휴가도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을 질의응답으로 정리했다.
―‘연장근로시간 단위’가 바뀐다는데 무슨 뜻인가.
“지금은 1주일 단위로 근로시간을 규제한다. 주당 법정근로시간은 40시간, 최대 연장근로시간은 12시간이고 이를 어기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반면 개편안은 이를 주, 월, 분기(3개월), 반기(6개월), 연 단위로 다양화했다. 근로시간 선택의 폭을 넓혀 그 안에서 노사가 좀 더 유연하게 근로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장근로시간 단위가 길어지면 사업주가 이를 악용해 과로, 혹사 등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정부는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장치를 마련했다. 연장근로시간 단위를 길게 선택할수록, 그에 비례해 연장근로 총량은 90%, 80% 식으로 줄어들게 했다. 이에 따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갈수록 ‘주’로 환산한 연장근로시간은 각각 최대 12시간, 10.8시간, 9.6시간, 8.5시간으로 점차 줄어든다. 근로시간 유연성을 더 많이 확보할수록 그 대가로 연장근로 상한은 줄어드는 구조라 사업주가 반드시 긴 연장근로시간 단위만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용 범위 안에서는 일주일에 70, 80시간 근무도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월 단위 이상으로 연장근로시간을 관리할 경우 근로일과 그 다음 근로일 사이에 최소 11시간 이상 연속으로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했다. 따라서 일과 중 휴게시간까지 감안하면 아무리 길어도 근로시간은 주당 69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이를 넘기면 위법이다.”
―회사 업무 특성상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지 않는 대신에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4시간 이내로 줄이거나 4주 평균 64시간 이내로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휴식시간 없이 64시간을 초과 근무하면 뇌혈관 및 심장 질병 발병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조치다.”
―집안 사정으로 석 달간 ‘주 4일 근무’를 하려는데 가능한가.
“개편안이 시행되면 가능하다. 근로자가 한 주에 며칠을 출근할지,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할지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선택근로제라고 한다. 현재는 1년을 기준으로 일반 근로자는 최대 1개월, 연구개발직은 최대 3개월 사용할 수 있지만, 개편안은 각각 3개월, 6개월로 확대했다. 특정 주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탄력근로제의 경우 현재는 노사가 한번 정하면 바꿀 수 없는데, 앞으로는 노사 협의로 바꿀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신설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무엇인가.
“연장, 야간, 휴일근로를 하면 현재도 수당 대신 1.5배 시간의 보상휴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운영 기준이 없어 이를 실제 활용하는 기업은 2021년 기준 5.1%에 불과하다. 정부는 적립 및 사용 방법 등 법적 기준을 마련해 근로시간저축계좌를 만들고, 여기에 쌓인 보상휴가를 기존 연차휴가와 붙여서 한 달씩 장기간 휴가를 쓰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 방침이다.”
―고소득 컨설턴트다. 근로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고소득 및 전문직종에는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일본은 이들 직종에 대해 ‘근로시간과 성과의 연관성이 낮고 오히려 근로자 자율성을 저해한다’며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올해 관련 실태조사를 할 계획이다.”
―밤낮으로 걸려오는 회사 전화 탓에 사실상 24시간이 근로시간이다.
“정부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논의에 착수한다. 올해 전문가 참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가능한 정책을 연구한다.”
―새로운 근로시간제는 어떻게 사업장에 도입할 수 있나.
“근로시간제는 근로자들이 선출한 ‘근로자 대표’가 사용자와 합의해 결정한다. 그동안은 근로자 대표에 대한 정의, 역할 등이 모호해 노동조합, 혹은 사업자가 선임한 직원이 이를 대신했는데 앞으로 정부가 근로자 대표를 제도화해 역할, 선출 방법 등을 명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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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노동자 삶 거꾸로 되돌려”
양대 노총 “총력투쟁으로 저지할것”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노종자의 삶을 거꾸로 되돌리는 노동 개악”이라고 비판하며 “국회에서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했다.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노동계 역시 “총력 투쟁으로 저지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6일 국회 브리핑에서 “우리나라는 2018년 주 52시간 상한제를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을 겨우 벗어나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다시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를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원내대변인은 “정부는 왜 노동조합과의 대화나 협의는 하지 않나.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을 검토한 뒤 구체적인 입장을 정할 방침이다.
정의당도 “과로사 조장 정책”이라고 성토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사실상 사용자가 주도하는 노동시간 선택권, 연속 집중 노동을 합법화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과로와 위험으로 내모는 것”이라며 “탁상공론 친기업 정책, 정부의 노동 개악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개편안을 “초장시간 압축 노동을 조장하는 법”이라며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과로 산재는 인정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제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5일 연속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2시까지 일을 시켜도 합법이 되는 개편안에는 오직 사업주의 이익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재계 “근로시간 유연화 환영… 업무효율 향상시킬 것” 기업 10곳중 8곳 “경쟁력에 도움”재계에서는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추진과 관련해 6일 일제히 “환영한다”는 입장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법안 개정에 대해 “기업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노사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이 옳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그동안 획일적, 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에 따른 경영계의 어려움이 해소되기를 바란다”는 입장문을 냈다. 한국무역협회는 “주 52시간제로 현장 인력 운용 제약이 커졌고 수출경쟁력의 위축으로 이어졌다”며 “이번 개편안으로 수출과 생산유연성이 회복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중견·중소기업도 반겼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불필요한 노사 갈등을 완화하고 경제 발전을 위한 연대 의식을 강화할 것”이라며 환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업종 특성과 현장 상황에 맞는 근로시간 활용이 가능해 경영 애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봤다.
구체적인 내용에서 일부 아쉬움도 나왔다. 대한상의와 경총은 “근로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도입하는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를 강제하기보다는 기업별 상황에 맞게 노사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경련은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면서 총 근로시간을 축소하는 것은 ‘근로시간 유연화’라는 취지를 위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이날 국내 502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시장 개혁 관련 설문 결과도 발표했다. 응답 기업 10곳 중 8곳(79.5%)은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이 기업의 경영 활동과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또 80.7%는 신규 채용과 고용 안정 등 채용 시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MZ직장인 “3, 4일 몰아 일하고 길게 쉬고 싶어”… 기업들 고민곽도영 기자 | 구특교 기자 동아일보 2023-03-06
2030 절반 이상 ‘몰아서 일하기’ 선호 10명중 6명은 “연장근로 유연화를” 일부 기업 근무제 개편 현실화에 체력 부담-안전성 우려 목소리도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기업 구성원 중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60년간 지속돼 온 근로시간 제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효율성과 자기 결정권에 중점을 둔 MZ세대가 기업의 구조 개혁을 이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노노(勞勞) 갈등’이 표면화하는 등의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다.
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근로시간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 30대 근로자의 절반 이상(55.3%)이 ‘필요 시 주 3, 4일간 몰아서 일하고 주중 1, 2일 추가 휴무’하는 방식을 근로시간 선호 유형으로 꼽았다. 기존 산업계의 전통적인 근로 방식인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44.7%) 응답 비중을 넘어선 것이다. 조사는 전경련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0, 30대 임금근로자 70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를 바탕으로 전경련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큰 틀의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온 ‘주 단위’의 근로시간 규제는 시시각각 변하는 산업 현장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2030세대는 또 ‘현행 근로시간 제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57.0%로 나타났다. 근로시간 규제로 막혀 있는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에 따라 필요 시 연장근로 가능’이라는 응답이 48.4%, ‘소득 향상을 위해 연장근로를 적극적으로 희망’한다는 답변이 11.7%였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확보를 위해 연장근로를 엄격 규제해야 한다’는 응답은 39.9%로 조사됐다. 기존의 ‘노동자 휴식권 보장’과는 달리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더 쉬게 해 달라”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MZ세대의 이런 목소리는 기업 현장의 근무제도 개편으로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사업장과 근무 형태에 따라 근로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제 개편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산업계 현장 근로직의 4조 2교대 전환이나 개발·사무직군의 주 4일제 근무다. 4조 2교대는 4조 3교대 체제 대비 하루 근무 시간은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늘지만, 그만큼 휴무일이 늘어나는 구조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9일 창사 61년 만에 4조 3교대에서 4조 2교대로 근무제를 바꿨다.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포스코, 현대제철, LG디스플레이 등도 전환을 완료했고,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근무제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하루 근무 시간이 늘어나는 데 대한 체력 부담과 안전성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화솔루션은 최근 여수공장 근무자를 대상으로 4조 2교대 도입 관련 설문조사를 했는데 반대 의견이 절반 가까이 나오면서 결국 논의를 중단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50대 이상 고연차 현장직들 사이에선 장시간 근로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연차별로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4조 2교대 전환 후 안전사고가 크게 늘었다는 이유로 코레일에 4조 3교대 회귀 명령을 내렸다.
근무제 전환으로 인한 효율성 확보는 사업의 성격에 따라서도 다르다는 지적이다. 정유나 철강 등 모니터링 업무 비중이 높은 장치 산업과 달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조립 생산라인 위주의 업종에서는 4조 2교대 근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SK텔레콤과 카카오, 우아한형제들 등 정보기술(IT) 업계 개발·사무직을 중심으로 주 4일제나 4.5일제 실험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비상경영 등으로 주 4일제 전환을 철회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러 근로 형태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업종별로 기술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근무제 전환이 전 산업으로 일제히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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