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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
호국 보훈의 달에 진정 이웃을 사랑합시다. 마5:39-42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6,25이후 교전 중 사망한 400명의 희생자들을 전사자로 처리해 국가유공자로 예우한다고 합니다.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을 제대로 대우해야 목숨을 걸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 그들의 처절한 희생아래 나라는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때문입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는데 잔인한 계절이었고 천안함의 달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발발할 것 같은 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최고 통치자의 입에서 [전쟁 두려워하지 않지만 원치도 않는다]라는 말이 여과 없이 보도되어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20-30대 남자들은 동원령을 걱정합니다.
전쟁이 발발되면 자기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생명도 내것이 아닙니다.
지난 60년 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경제대국으로 회복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열강과의 경쟁에서 영원한 패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인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의무적으로 반드시 막아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전쟁만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북한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지만 우리는 가진 것이 많고 지킬 것이 많고 배가 불러 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했기에 전쟁만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군인들의 전투력이 극대화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군인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이번 천안함 사건으로 국민들은 우리군의 전투력을 의구심을 갖고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두 동강난 배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시계가 나빠 파악하지 못해 제때 구조하지 못하는 실정인데, 북한 잠수정은 ㄷ 자로 침투해서 작전 중인 이동하는 초계함을 잠수함을 찾고 있는 함정을 그렇게 정확하게 선저에서 버블젯 효과로 파괴하고 귀신도 모르게 철수해버렸으니 남북의 전투력의 차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인지 생각조차 하기 끔찍스럽습니다.
군현대화 사업으로 그동안 국가예산의 7-8% 즉 북한군보다 몇 배의 예산을 쏟아 부었는데 왜 이런 꼴이 되었을까요? 북한 인민군보다 몇배의 월급을 주었는데 이게 무슨일입니까?
북한 국가예산에 준하는 천문학적 국방비를 우리 군이 쓰면서 독수리 훈련 중인 함정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하는 것입니까? 돈만 쓰고 방어준비를 안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래도 이 나라에서 동족상잔의 전쟁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자존심 싸움으로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최고가 아니라 먹이로 유인해서 철망으로 몰아넣을 때까지, 부드럽게 여유있게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군대를 안가 본 사람은 전쟁이 두렵지 않은수 있을 것입니다.
호랑이를 보지 않고 책에서만 본 사람은 장난감이나 고양이인 줄 착각할 수 있어요...
전 국민이 하나 되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남북이 통일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없다고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법으로 지키는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호국 보훈의 달에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사랑엔 예외도 한계도 없다 하십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묻는 율법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막12:30-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러면 그 이웃이 누구입니까?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나 죽게된 자를 레위인과 율법사는 그냥 모른채 지나쳤지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 사람을 구해주었는데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바로 사마리아사람이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웃사촌이라고 어렵고 힘들 때 서로 돕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주는 자가 이웃입니다.
즉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본문 말씀은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할까요?
호국보훈의 달에 진정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면
첫째로 행위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5:39)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하십니다.
[대적하다] 는 헬라어 ‘안디스테미’는 ‘안티:반대하다, 대신하다’와 ‘히스테미:두다, 세우다’는 말의 합성어로써 “~에 대항하여 일어서다”는 뜻입니다.
[악한 자]는 악을 행하는 자나 비열한 자를 말하므로 결국 본문의 말씀은 자신에 대하여 위해를 가한 비열한 상대에 대하여 그 어떤 복수도 삼가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피해자가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보상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교훈으로써 동해보복법을 절대 진리로 알고 있었던 당시 중동지방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동해보복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처럼 내가 당한 곳이 눈이면 상대의 눈을 빼고 이빨이 빠졌으면 그 사람의 이빨을 내가 빠진 만큼 빼라는 보복하기 위한 원칙이 아닙니다.
당시의 사회규범이 내가 하나를 당하면 열을 보복하는 것이기에 복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사랑의 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즉 내가 당한 것 이상 보복하지 말라는 법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그런 악한 자에게 당한 것을 원수 갚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을 돌려대며]
여기서 [치다;라피조]는 ‘막대기로 때리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비록 손으로 때리는 것이지만 큰 고통을 줄 만큼 매우 세게 친 것입니다.
손으로 뺨을 치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것입니다.
더욱이 오른편 뺨을 쳤다는 것은 왼손으로 쳤다는 의미이고 이는 모욕중의 모욕인 것입니다.
만약 오른 손으로 쳤다면 손등으로 쳤다는 것이고 이것은 살의를 가지고 쳤다는 것입니다 .
또는 뒤에서 기습적으로 불의의 공격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당한자의 입장에서 정당방위로 가해자에게 가혹하고 잔인한 보복조치를 해도 정당하고 무방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문은 실정법에서 보복이 허용되었다 할지라도 왼편 뺨까지 돌려대라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왼편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면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하면 바보거나 부족하거나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시기에 다툼과 싸움과 투쟁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것 즉 전쟁은 꼭 새로운 건설을 위해 파괴가 필수적이듯 새로운 문화의 발전과 사회의 성장을 위할 때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자 원수들]은 원래 비열하고 악랄한 자들을 말합니다.
선하고 의로운 자들이라면 악을 행할 리가 없죠.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고 대적하지 말고 직접 원수 갚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해외 어린이들이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돕기 위해 유니세프등 여러 가지 단체에서 한 구좌에 수 만원씩 하는 후원금을 매달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도 중요합니다만, 악한 일만을 일삼고 있는 북한 괴뢰정권의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선교헌금을 하는 것도 중요 합니다.
그들을 진정으로 이웃으로 같은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공산주의 즉 신을 무시하는 저들의 실체를 분명히 깨달아 경각심을 갖아야 합니다.
이념 교육은 학교에서 할 수 없으니 교회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철저한 신본주의로 무장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장삼고 무신론자를 이길 수 있는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저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외유내강이라고 겉에서는 부드럽게 저들을 감복시키고 감싸 안아야 합니다.
이럴 때 나라의 어른이 필요합니다. 말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네요.
전국 교회가 이번 사건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국가의 안녕을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없고 도와 줄 사람이 없기에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적절한 외교조치를 통해 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변4대강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한반도비핵화비무장지대]를 선언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속히 통일이 올 수 있도록 기도하기를 원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을 돌려주는 것이며,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즉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나에게 잘못 대하는 자에게 보복하거나 복수심을 갖지 말고 , 복수할 기회를 노리지 말라 하십니다.
오히려 용서하고 나아가 악을 행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태도가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인줄 믿습니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고전13:4“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 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눅10: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용서와 관심과 인내가 사랑입니다.
기도와 돌봄과 포용과 감사가 사랑입니다.
행위로 사랑하라는 것은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용서하고 관심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도하고 돌보고 포용하며 돌보와 주라는 것인 줄 바로 믿고 구별된 삶을 통해 거룩을 실천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호국보훈의 달에 진정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면
둘째로 가지고 있는 소유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40)
여기서 송사하다는 말은 재판하다, 비난하다, 헐뜯다는 뜻이므로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조차 취하려는 상대에게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속옷은 겉옷보다 값도 싸고 보잘 것 없는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반면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틴에서 밤에 덮고 자야하는 필수품이므로 전당잡지 못하도록 율법에 금한 귀한 생필품입니다.
혹시 저당을 잡아도 얼어 죽지 않도록 밤에는 돌려주어야 합니다.
출22:26-27“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그가 내가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라.”
안에 받쳐 입는 속옷(키톤)은 많아도 밖에 걸쳐 입는 겉옷은 하나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고, 얼어 죽을지도 모르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양도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남이 입던 속옷을 입는다는 것은 꺼림칙해서 지금같이 풍요한 시대엔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흔히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적진에 들어가 노획할 수 있도록 축복을 주셨다는 말씀은 죽은 자의 옷을 벗기고 그들이 먹던 식량이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뒤져 취해서 가진다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알았습니다.
지금 같으면 꺼림칙해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소각하죠.
그런데 그들은 노획물을 가지고 그렇게 행복하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 문제의 핵심사항을 다루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재산상의 문제나 자신의 권리를 논쟁하는 데에 힘을 소모시켜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복수해서도 안 됩니다.
믿는 자들은 자아를 잊어버리고, 재산을 잊어버리고 ,권리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살라 말씀 합니다.
자신의 겉옷을 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하는 바는 , 믿는 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고 방어하거나 저항하거나 논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람은 용서하며 빼앗으려는 자에게 그보다 더 주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속옷뿐만 아니라 겉옷까지 주며,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차지하거나 취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데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를 위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며, 분쟁과 다툼으로 인해 상실되고 고갈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회복하는 지름길인줄 믿기 원합니다.
이 세상은 분열과 다툼, 고통과 미움, 분쟁과 전쟁으로 가득합니다.
개개인이 자아 중심적이기 때문에 세상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화평의 사람, 즉 자신의 마음이 자기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말 합니다.
세상과 세상 속에 속한 것들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자신의 재산을 위해 싸우거나 다시 찾으려는 시도는, 그것을 포기하고 새롭게 구입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대가를 지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때가 언제입니까?
자신이 손해를 당한 때 , 자신의 가족이 손해를 당한 때입니다.
롬12:18-19“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재산상의 문제, 즉 권리나 특권이나 소유권으로 인해 다툼으로써 힘을 낭비하거나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5: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하십니다.
다른 사람과 다투고 논쟁하는 것은 믿는 자를 분열시키는 자로, 세상적인 욕심 즉 식탐과 탐욕과 권탐에 빠진 논쟁자 다투는 자 싸움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자로 보게 합니다.
어렵겠지만 자존심 상하지만 내가 먼저 참고 양보하고 포용하며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성도되기 원합니다.
성경에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출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되 지팡이니이다” 할 때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던지라 하고 그 지팡이가 뱀이 되어 물려고 대들 때 다시 잡으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 뱀 꼬리를 잡고 이적을 행하라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산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사랑 즉 자기에게 유익할 때만 하는 사랑 , 선택적인 사랑 즉 나쁜 것은 사랑하지 않고 나에게 좋은 것만 사랑하는 사랑, 유한적인 사랑 즉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받아들이는 사랑, 맹목적인 사랑, 순간적인 사랑, 인간적인 사랑, 제한적인 사랑, 율법적인 사랑, 계산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는 것입니다.
선한 자나 악한 자를 공평하게 대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마5:44-45“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하신 이런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영원토록 변함없는 사랑으로 보호하시는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써 내려 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러한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악한 자의 요구함을 대적하지 말고 더 많이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눅6:34-36“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이런 사랑을 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답게 사랑하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호국보훈의 달에 진정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면
셋째로 봉사와 수고의 헌신으로 사랑하라 하십니다.(41-42)
[억지로 오리를 가게하거든] 는 말은 강제로 봉사하게 하다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페르시아 황제가 조서를 전달할 때 사람들을 징벌하여 짐을 지게 만들거나 문서를 전달하게 한 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로마의 식민지인 유대에서도 이러한 양민징발규정이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로마군이 필요하면 누구나 [이짐을 지고 따라오라]하면 그때부터 징용되어 오리 ( 밀리온 핸)를 가야하는 의무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본문에서 오리를 가라했을 때 오리를 더 동행하는 너그러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42절에서 [거절하지 말라]는 것은 ‘~로부터 돌아서다’는 뜻입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여야 할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묵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윤리는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점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궁핍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뿐 아니라 항상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변명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구하는 자에게 주며, 그들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분별없이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112:5“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자가 잘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는 말씀처럼 주는 일은 항상 공의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어야 하는 경우와 주지 말아야 하는 경우를 알기 위해서 두 가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먼저 받는 사람에 대한 효과가 연구되어야 합니다.
주게 됨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게으름, 나태함, 무능함, 방탕함을 유발한다면 주어선 안 됩니다.
고기나 식량을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그물과 고기 잡는 법을 교육하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고 종자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주는 사람의 능력을 고려해야 합니다.
믿는 자는 계속해서 주어야 하며, 점점 더 주는 것을 배워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믿는 자들이 퍼주기식 도움을 주는 목적을 언젠가 알 수 있도록 관심과 긍휼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음을 깨달을 때 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 심령이 가난한자가 천국을 얻는 비결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자신의 능력과 ,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통해 주기를 원하고 계시는지와 ,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실제적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궁핍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데 요구되는 물질을 얻기 위해서 일합니다.
엡4:28“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가진 것을 기쁨으로 주는 자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주는 일은 인격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과 인격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과 관련되기를 원하십니다.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주는 일은 받는 사람의 인격을 손상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빌려주고 꾸어주고 나누어 줌으로써 도움 받는 사람이 점점 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고, 어떻게 더 근면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해야 합니다.
꾸는 사람은 반드시 갚을 생각을 하고 받아야 합니다.
참으로 궁핍한 자를 돕지 않는 것보다는 직업적인 거지라도 도와주는 것이 낫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수고가 없는 것은 가짜입니다.
요일4: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마음과 물질과 몸이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며, 사랑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이며, 모든 율법의 마침이요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피차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주신 이웃을 봉사와 수고의 헌신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부탁합
니다.
결론
호국보훈의 달에 진정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면
첫째로 행위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5:39)
둘째로 가지고 있는 소유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40)
셋째로 봉사와 수고의 헌신으로 사랑하라 하십니다.(41-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이 반려자관계까지 발전하기를 원합니다.
전국교회가 다니엘 작정 구국기도회를 통해 남북 간에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온 교인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