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을 벼르며 잡은 여행 장소와 날짜, 확정되고도 갑자기 하루가 지연되어 당황함에 이어 드디어 출발이다. 빠진 물건 없나를 여러 번 점검하여 짐을 확인하고 오후 4시쯤 인천행 리무진버스에 올랐다. 2시간이 못 걸려 공항에 도착하여 일행과 합류, 간단한 식사와 쇼핑으로 시간을 조정 하고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행이라야 4가족 8명 모두 30년이 넘는 학교 동창인 교사였고 해외여행도 여러 번 했으나 꼭 어린 아이 같은 설렘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젠 어떻게 좁아터진 비행기 좌석에서 거의 12시간이나 버티느냐가 걱정이다. 그래도 10여년전만해고 절반도 안 되는 거리인 싱가포르를 가려면 대만을 들려서 쉬며 갔었는데 남태평양 넘어 가는데 논스톱이라니 엄청 발전중이다.
비행기 이륙 후 위치가 청주-대구- 부산 상공을 지나 대마도 일본 큐슈까지 2시간 정도는 잘 버티었다. 앞으로는 얼마나 지루할까? 승무원에게 와인을 한잔 더 시켜 먹고 잠을 청했다. 그러니 예상외로 시간이 잘 가서 좋았다. 눈을 떠보면 5시간, 잠깐 화장실 갔다 와 책을 보다 졸리면 또 자고 재미있는 것 없나하고 옆을 보니 40대로 보이는 일본아줌마 자는 폼이 일품이다. 입을 벌리고 늘어지게 자는 품은 10여 시간 동안 변함없었다.(이럴 때 웃으면 안 되는데) 아침시간에 별로 힘들지 않고 눈을 떴고 뭐 한일 있다고 식사시간- 밥을 많이도 먹었다. 자다가도 다들 잘 잡수신다.
정확히 11시간 40분 만에 남 섬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크리스트 처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국 수속에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이 나라는 농산물 반 출입과 농약, 비료, 항생제등 약품에 대해서는 엄격한 농업국이라 그렇단다. 하여튼 별의별 검사를 다 받고서야 입국 대를 빠져나왔다.
공항에는 잘생긴 남자 가이드 한 사람과 큰 키에 매우 배가 불룩한 백인 기사님이 나와 계신다. 버스에 오르자 기사님 첫 번째 인사말이 ‘키아오레’ 원주민인 마오리족 말로 ‘안녕’이란다. 몇 번 따라 연습했다. 시계를 고쳐놓자. 시차가 4시간 그런데 섬어 타임 1시간 12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4+1하니 오후 3시이다. 친절한 가이드 아저씨는 뉴질랜드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기 시작한다. 너무 열심히 공부하지 않길 잘했다. 낙농 선진국이자 관광(년 250만)과 금융등 서비스가 주된 산업국인 뉴질랜드는 남북의 2개 섬으로 이루어져있으며 크기나 위도가 한국과 비슷하다. 북섬은 북한과 크기가 비슷한 12만㎢ 남섬은 남한의 1.5배 큰 15만㎢, 그러나 인구는 북섬 300만, 남섬100만 전 국민이 우리나라 부산시민보다 적은 400만 명이란다. 남섬은 고생대인 5억 년 전 곤즐와나 대륙에서 제일먼저 떨어져 나와 빙하로 덮인 뒤 침식작용을 거친 차가운 섬으로 바다에 잠겼다가 조륙운동으로 솟아 오른 지 얼마(600만년) 안 되는 빙하의 섬이며 현재도 매년 1cm정도씩 융기중이란다. 북섬은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더 젊은 섬이고. 그러니 남북 섬 공히 포유동물은 발 들여놓을 틈이 없었고 날수 있는 새와 바람에 날려 온 식물인 밀림의 천국이 되었단다. 천적이 없으니 새들은 마냥 번성하였고 덩치가 커지고 날개는 적어지거나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새 키위처럼 없어졌는데 약1000년 전 이곳이 폴리네시아 계열의 마오리족이 들어오고 200년 전엔 백인이 침입, 많은 동물(소, 양, 개, 사슴등)을 데려와 산림을 파괴하니 이곳 고유의 새들이 거의 전멸했단다. 그리고 아름드리 처녀림인 카우리 나무 들을 마구 베어가 지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단다.
<관광1일째>
시내관광으로 먼저 이곳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고딕대성당을 들어갔다. 나는 침략에 악용되던 종교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참 싫어한다. 그래서 밖에서 구경하기로 했다. 성당 바로 앞에서는 소년들의 기타 연주, 춤 등 별 볼일 없는 야외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많이도 모여서 열심히 봐주고 호응하며 돈도 많이 던져주는 소박함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7월 말 한 여름이지만 오후 기온이 16도를 가리켜 추운 편이었고 옷차림도 4계절복장이 모두 눈에 띠었다. 동양인은 두꺼운 옷을, 백인은 반팔이 많았고 백인들의 특징은 나이가 좀 들면 남녀 공히 허리둘레와 몸무게가 엄청나서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더구나 중년의 여자분 들은 등과 어깨를 드러낸 좀 야한 복장이 많았고(보여줄 것도 없구만) 어린 처녀들 복장은 얌전하여 우리와 대조를 이루었다.
근교에서 가장 큰 시민공원이라는 해글리 공원(여의도의 절반크기)에 갔다. 그런데 좀 실망스럽다. 어찌된 일인지 식물이 장미, 다알리아, 폐추니아, 베고니아, 제라늄 등으로 꾸며진 화초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고 나무도 특별한 게 없는 우리 눈에 익은 전나무, 단풍나무, 사시나무, 메타세콰이아등 이다. 그러나 겨울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적고 낮아야 영하 2-3도로서 겨울에도 나무가 잘 자라서 빨리 큰단다. 또 모든 나무는 우리나라 같은 모습이 아니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이등변 삼각형이다. 거목으로 자란 전나무의 잘린 가지에서 본 나이테는 실로 1년에 자란 굵기가 엄청났다.
다음에 다시 둘러보기로 하고 근처 일식집에서 저녁을 했다. 큰 키에 늘씬한 외모의 주인아줌마는 능숙한 한국말로 우리를 맞이했고 공손하게 인사하는 기모노차림의 종업원들도 우리말에 익숙했다. 내가 ‘한국인이지?’ 하니 모두 웃는다. 무늬만 일식집이란 거다. 가이드 아저씨가 ‘왜 우리가 일본 애들 집에 가요?’하여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리고 서울보다 더 진한 한국식 생선 요리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근교 숙소인 가든 호텔로 이동 짐을 푸는데 호텔이 아니라 완전 펜션수준이다. 홋수가 메겨진 1층으로 된 방들, 한국 펜션 그대로다. 이렇게 넓은 땅에 높은 건물을 왜 세우겠는가?
짐을 풀고 주변을 산책을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받으면서도 다시 식물을 관찰하러 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위도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엄청 떨어진 나라인데 가꾸어진 잔디에도 클로버, 민들레등 낮 익은 잡초들이 보이고 맨땅에는 까막중, 비름, 씀바귀, 강아지풀, 방동사니, 사위멜빵, 인동초까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잡초들
<관광2일째>
아침에 일어나 호텔부근의 식물을 찾아 사진을 찍어댔다. 버스타고 번화가를 통과하는데 내가 아는 식물이 절반이다. 신나무, 목백합, 플라타나스 등이 가로수로 많았고 후박나무, 마가목 등은 정원수로도 인기였다. 여기가 한국인가? 누구인가 한국 묘목을 많이 장려하고 있구나. 호텔 바로 앞거리 표시판을 보고 또 놀랐다. ‘Pagoda. st’ -아! 이 부근에 한국인이 몰려 사는구나. 그 골목에선 무궁화도 보인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을 때 이 나라 고유의 식물 식물을 찾아 나섰다. 눈에 낯설고 많이 사는 식물들 이곳 나무들은 엄청 크니 아주 작은 넘으로 골라 찍었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오늘 일정이 만만하지 않단다. 약 600km를 달려야하는 코스- 다시 설명이 시작되었다. 남 섬은 빙하침식으로 이루이진 흙이 적고 돌투성이의 강수량도 매우 적은 거의 사막 같은 곳이란다. 습곡산맥으로 솟아올라 구불구불 길게 뻗은 서든 알프스 산맥(길이1000km) 서부는 세계 최고의 강수량 (년 14000mm)을 자랑하며 1년 중 300일 이상 비가 내리나 산이 높아 구름은 넘어오지 못하여 동부는 거의 사막 수준이라고, 그래도 빙하수가 많은 덕분에 스프링클러로 물을 뿜어서 초원지대를 유지한단다. 남섬 북부 지역인 여기는 나은 편이고 남으로 갈수록 척박한 평원이 이어진단다. 밖에는 흰색의 메꽃과 들국화 비슷한 꽃들이 지천이다.
버스는 남으로 한없이 달린다. 참 사진 찍고 싶은 경치가 많았으나 그대로 달려서 아쉬웠다. 설혹 쉬는 곳은 어김없이 제법 인구 밀집지역으로 식물도 비슷했다. 상점은 한국인이 경영하고 있어 물건 사기는 편했다. 한 곳에 들려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먹었다. 이곳을 들르는 백인들은 대부분 아이스크림을 시도 때도 없이 먹는다. 그 이유는 주식인 양 고기가 열이 많아서라는데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허리 둘래가 저리 두꺼운가?
환상이라는 캔터베리 평원은 평평한 구릉 지대였다. 나무가 제법 있었는데 우리가 흔히 본 잎이 길고 뻣뻣한 해송과 같은 소나무가 주를 이루었고 미루나무와 버드나무도 많이 보였다. 과거에는 아름 들이 거목이 많았음직한 들판 그러나 모두 베어내고 거대한 목장으로 변해있었다. 소와 양이 풀을 뜯는 광경은 자주 목격되나 정리된 목장 대부분은 비어있다. 10개 정도의 목장에서 하나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휴경지란다. 한번 사용한 곳은 갈아엎고 토양 재부양지, 잡초생산지등으로 돌려가며 사용하여 5년이 되어야 다시 가축들을 방목한단다. 그러니 토양이 건강하고 냄새가 없을 수밖에. 주인이 다른 경계에는 나무를 심어 표시를 하는데 경계 림은 소나무나 향나무가 대부분이나 요즘은 미류 나무로 바뀌고 있는듯했다. 이 나라 대표라고 할 만한 활엽수가 계속 눈에 띄어 이름을 물으니 ‘블루금’이며 호주 유칼리나무 사촌쯤 된단다. 우리나라 참나무만큼이나 많이 자란다.
건조지대로 들어갈수록 큰 나무가 적어지더니 작은 나무뿐인 관목지대로 들어섰다. 여기부터는 스프링클러가 많아졌다. 가정의 정원에도 작은 스프링클러는 기본이고 목장마다 한쪽 날개가 5m는 돼 보이는 스프링클러가 원을 그리며 물을 뿜어댄다. 그리고 황량한 들판에 100m가 넘는 물 뿜는 기계가 10여개의 바퀴를 달고 서서히 움직이는 광경은 꼭 거대한 공룡의 움직임 이었다. 나무라고는 ‘고스’라는 개나리 비슷한 노란 꽃이 피는 넘과 이곳 대표적인 건조식물인 ‘마두카’(가시나무이며 약용으로 주목받고 있음)만이 눈에 띤다. 그래도 물이 흐르는 곳에는 버드나무가 길게 뻗어 자라고 우리에 눈 익은 찔레와 해당화도 많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풍경은 벌통이었다. 여러 개의 벌통 5-6통을 세로로 쌓아놓았는데 보통 10개쯤이 놓여있었다. 이곳의 양봉에 대해 물으니 목축 농부의 부업이며 건조지역에 많단다. 마두카 나무 꽃에서 나는 꿀을 주로 채취하는데 매우 깨끗하고 성분도 좋아 주요 수출품이란다. 그런데 북 섬에는 더 꽃이 많으나 양봉은 안한단다. 왜냐하면 열대에 속한 북섬 지방에는 겨울에도 꽃이 많아 벌들이 꿀을 안 모은단다.
갑자기 ‘오른쪽 산맥을 보라.’ 고한다. 지금부터 보이는 산들은 높이가 2000m이상이고 이정도 높이에는 빙하와 만년설이 있어 흰색으로 보인단다. 그래서 이 부근에는 빙하가 녹아내리는 물이 풍부하고 빙하호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 유일하게 이 깨끗한 빙하 수에 연어를 양식한단다. 3-400km를 달렸나보다. 부카키란 커다란 호수에 왔다. 호수 빛이 완전 옥색 빛이다. 어떤 물감을 탔는가했더니 빙하가 녹은 물이고 이 주변에는 천연옥이 풍부한 곳인데 빙하가 흐를 때 옥돌끼리 마찰하여 생긴 가루가 섞여서 그렇단다. 호수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주변의 들풀들도 찍었다. 다양한 들꽃이 있었는데 루핀이라는 들꽃이 여러 색으로 제일 많아 길가를 수놓고 있었다.
주요 관광지라는 남 섬 최대 호수라는 태아나우 호수에 잠시 들렸다. 이 호수는 경치가 그만이었는데 여름이지만 비교적 쌀쌀하여 대부분 긴 팔 옷을 입은 지금 호수가 백사장에는 피서객이 눈에 띠었다. 비키니 아가씨들이 찬 물속에는 못 들어가고 일광욕만 즐긴다.
점심시간, 식당에 가는 버스에서 아저씨 말로는 얼마전만해도 이 부근에 관광 오려면 도시락을 준비해야했는데 요즘 여기에 한국인 경영하는 연어횟집이 생겼단다. 아무튼 식당에 도착하여 우리끼리 기분 좋게 떠들면서(손님은 100%한국인들이었음) 연어회에 포도주로 식사를 했다. 순수한 빙하수로 기른 연어회 엄청 맛있다.
다시 버스는 남으로 달린다. 이제 산맥의 높이는 3000m급이고 다음 호수에서 보이는 산은 대양주 최고봉인 Mt. 쿡(3754m)이란다. 낮아 보이나 매우 험하여 고도의 개인기를 지닌 등산가만 등정이 가능하며 하산 길에 많은 산악인이 목숨을 잃은 곳, 뉴질랜드 남 섬에서 태어난 등반가 힐러리 경이 이 산에서 기술을 읽혀 세계최초로 엘레베스트 등정에 성공했단다. 뉴질랜드 촌사람이라고 안 데려가려는 것을 운 좋게 짐꾼으로 따라간 것이 몇 차례 정상 공격이 실패한 영국팀 대장이 마지막으로 시험 삼아 올려 보냈더니 단번에 성공하자 영국은 자기민족의 영예라 하며 여왕이 작위까지 주었고 현재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폐에 살아있는 사람으로는 최초로 그려져 있단다. 와카티프 호수에서 Mt. 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호수의 색은 부카키호수 보다는 약간 덜 옥색이다. 이젠 산길을 따라 올라갈 차례. 가는 도중 옥빛 물의 거대한 수로를 보았다. 여러 호수의 높이는 많은 차이가 있고 이를 이용하여 수로를 연결하여 물을 떨어뜨려 수력발전을 한단다. 그 전력이 무려 전국 사용량의 40%, 정말 복 받은 나라다. 제법 고불거리는 길을 따라 올라가려니 양보다는 사슴이 많다. 물론 영국인이 가져온 것들, 과거에는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암컷을 주로 길렀는데 요즘은 녹용을 채취하려고 수컷을 많이 키운단다. 백인들이 녹용을? 이 나라 녹용 채취의 원조도 한국인에 의해서였단다. 우리 한의사가 녹용의 성분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이곳 박사들이 성분 분석한 결과 역시 녹용의 유용함을 알고 나서는 주요성분을 추출하여 환약으로 만들어 많이 먹는단다. 그러나 가공은 30%수준이고 나머지는 수출하는데 그 대부분은 역시 우리나라- 우리가 한의원에서 사먹은 녹용이 거의 뉴질랜드산 이었던 것이다.
산악 길을 따라 들어가니 우리나라 초겨울처럼 황량한 산악지대가 나온다. 강수량은 더 적고 살아있어도 누런색을 띤 억새나 띠 같은 풀들이 덮인 벌판과 바위투성이 민둥산 거의 사막에온 기분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퀸스타운 인데 이 척박하고 외진 곳이 유명한 관광지가 된 이유는 이 부근에서 사금이 발견된 이후란다. 돌이 풍화되어 부서져 떠내려 오는 과정에서 금 조각이 쌓인 사금을 채취하려고 백인이 몰려왔고 미련한 중국 인부를 이용 채취했단다.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꼬드겨 마약으로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거의 노예 같은 대우로 혹사시켰다니 그들의 아픔도 징용당해 끌려갔던 우리선조들 비슷했으리라. 그 후 사금이 바닥나자 백인은 떠나고 중국인들은 골치 꺼리가 됐는데 정부는 그들을 받아들여 동양인 이민의 원조가 되었고 현재도 후손이 남 섬에 많이 산단다. 지금은 채취 시설 일부만 황량하게 남아있다. 잠시 내려서 당시를 생각하며 사금체취시설을 둘러보았다.
사금 채취하던 백인들이 계곡을 따라 더 올라가니 경치가 매우 좋아 여왕님이 살만한 곳이라 하여 퀸스 타운이라 명명한 알프스를 닮은 곳이란다. 실로 빙하수가 넘실대며 건조지대를 흐르는 경관은 대양주속의 알프스라 할만 했다. 가는 도중 눈에 익은 풍경을 발견하였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세계 최초의 번지 점프장- 본래 번지점프란 칙 덩굴 같은 나무줄기를 다리에 묶고 10여m에서 뛰어내린 남태평양 어떤 섬의 성인 의식이었는데 여기에서 지금처럼 현대화시켜 세계 어디서나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단다. 그러나 세계최초란 유명세와 기막힌 경치 탓에 1회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도 엄청 몰린단다. 특히 신혼부부가 끓어않고 뛰어내리면 그 감격은 평생을 함께한다니 비싼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방송인 이홍열씨가 최초의 영예를 안았고 그 후로 많이들 시도하는데 최고령자는 무려 85세라니 나는 아직 멀었다. 오늘은 늦은 시각(오후4시)이라 이미 점프대를 치웠으니 다음번에는 일찍 와서 시도해볼거나?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행선지인 과일가계로 향했다. 이 나라 과일은 대표적인 키위 이외에도 포도가 유명하고 체리, 자두, 살구가 제철이란다. 사과와 배도 괜찮은데 아직 안 나온단다. 과일가계에 가서 체리와 자두를 샀다. 사과와 배는 작년 생산한 거라서 볼품없었고 크기도 매우 작았다. 역시 사과, 배는 우리나라가 최고다. 신기한 것은 여기는 모든 과일을 깍지 않고 그냥 먹는단다. 무공해이니 그냥 먹어라 이거다.
저녁식사시간 어김없이 한국인 경영 한식집에서 된장찌개, 김치, 밥 한 공기의 저녁을 먹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곧바로 퀸스타운 시내 산책을 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호수가 있었고 주변의 엄청 큰 나무를 보았다. 우리 7명이 달려들어 나무를 둘러쌓아 겨우 성공하고 한 사람이 사진을 찍었다. 이넘이 카우리인가? 그런데 명찰에는 중국원산 메타세콰이아 라고 붙여져 있다. 바로 곁은 큰 나무는 고유종일까? 들여다보니 북미 원산 오리건소나무- 이 나라 고유종은 전멸했는가? 호숫가에 내려가니 버드나무 베어진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크기가 웬만한 테이블 만 했지만 나이테를 세어보니 20년 정도이다. 아무튼 물만 있으면 엄청 빨리 자라는구나. 번화가로 들어오니 불방망이와 곤봉으로 묘기를 하는 젊은이가 있다. 역시 재미있게 구경하고 박수를 쳐준다. 골목을 돌다가 벽에 실례하는 청소년을 보았다. 민망해하며 도망치는 폼이 우리와 다를 게 없다. 간이 술집에 들러 생맥주를 시켜 먹었다. 여기는 물이 좋아 흐르는 물을 그냥 먹고 수돗물도 그대로 먹는단다. 또 좋은 물로 만드는 술 역시 품질을 알아준단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하니 빨리 자야겠다.
<관광3일째>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일찍 버스에 올랐다. 오늘 코스는 기대해도 좋단다. 지금부터는 강수량이 많은 곳이란다. 실로 나무와 풀이 많아진다. 다양한 종류의 우거진 고사리 숲이 나오고 나무 크기도 커진다. 엥그리턴 벨리라 하는데 별로 신비할 것은 없다. 거인이 구부린 채 길게 누운 형상의 호수가 테아나우 호수라 하며 마오리의 아름다운 전설 어쩌고 하는데 역사적 의미는 없는듯해서 별로 듣고 싶은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나는 길은 이 나라 최고의 고속도로인데도 불과 2차선이며 마차 다니던 길을 2차 대전 이전 국제공항시기 노동자의 순수 인력으로 넓히는 공사를 한 것이라 한다. 우리 같으면 금방 해치울 도로공사를 수십 년 걸려 2차선으로 모양만 만들어놓은 것이다. 더 웃기는 건 도로 중간에 터널이 하나 있는데 아예 단선이라 5분씩 오고 가고 하는 거였다. 그래도 이 터널 뚫어야하느냐 찬반이 많았단다. 그리고 이 터널이 없으면 아예 왕래가 안 되니 망치등 기본적인 장비만으로 뚫었단다.
터널을 지나자 경치가 다시 달라진다. 그리고 매우 높은 산에 터널을 뚫은 관계로 터널 전과 후의 바위에 새겨진 빙하에 긁힌 방향이 반대이다.
가지가 굵고 짧으며 이끼를 무수히 달고 있는 나무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냐?’고 물어본다. 여기가 바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란다. 걸어 다니던 나무, 기괴한 바위들과 음산한 분위기 - 그래 영화에서 본 경치이다.
우리나라 저수지만한 거울호수에 들렀다. 바닥에 낙옆등 유기물이 많아 햇빛이 강할 때는 잘 비추어 거울호수란다. 우리 사람들은 여기 오면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유치한 장난들을 많이 한단다.
버스를 달리다보니 엄청 높은 산과 밀림 그리고 산꼭대기의 한 만년설 실로 장관이었다. 빙하수가 흐르는 강물에 잠시 머물러 물맛을 보기로 했다. 빈 병에 물을 모두 버리고 얼음처럼 찬 빙하수를 담아 많이도 먹었는데 참 맛이 좋다. 우리나라 어떤 생수 업체가 여기에 공장을 짓고 생수 1병당 얼마를 낼 테니 허가해 달라고 청했으나 당국은 자연 파괴를 이유로 거절했단다. 그냥 버리는 물을 돈 주고 사가겠다 해도 싫어한다니 참 배부른 나라이다. 좀 더 달리니 엄청 많은 크고 작은 폭포들, 왜 이렇게 많이 녹아내리느냐하면 여기 빙하의 이동이 하루 1cm이상으로 빨라 기반암과 얼음에 붙은 빙퇴석의 마찰로 인한 열에 의해 녹는 거란다. 이러다간 며칠 만에 다 녹는 것 아닐까? 폭포와 만년설 그리고 험준한 산마루인 혼 지형을 수없이 사진기로 찍어댔다. 안내원은 이곳의 경치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관광기간은 불과 여름 3달 뿐이란다. 이외에는 눈이 많아 교통은 두절되고 왕래는 엄두를 못 낸단다. 여름철에도 홍수가나면 마찬가지고. 겨울철에 신나는 건 스키광 들이란다. 스키 강사인 어느 넘이 여름 부업은 여기서 한다는 말이 이해가되었다.
드디어 밀포드 사운드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곧바로 기내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어김없이 한국인을 위한 김치등 우리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짧은 시간에 식사를 끝내고는 갑판 위로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였다. 빙하와 밀림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많은 폭포들 이 곳이 세계 유일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오르드- 노르웨이 등의 피오르드가 유명하지만 이곳처럼 나무와 폭포가 함께하는 곳은 없기 때문이란다. 피오르드란 바닷물이 계곡 깊숙이 들어온 험한 빙하 계곡을 말한다. 물에 의해 형성된 V자 계곡에 눈이 계속 쌓이면 무거워져 단단한 얼음으로 변하고 얼음 무게로 서서히 이동하며(빙하) 벽과 바닥을 깎아 내어 가파른 절벽과 편편한 바닥의 U자 계곡을 만든다. 후에 바다 수면이 높아지면 심한 경사의 산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피오르드가 된다. 밀 포드 사운드(피오르드)는 깊이 400m 산의 높이는 해발 2-3000m 길이 15km이다.
심한 경사의 산에도 비가 많으면 밀림이 된다. 우선 많은 비로 이끼가 쌓인다. 많이 쌓인 이끼위에 나무가 자라고 서로 뿌리를 감아 의지하며 함께 자란다. 그러나 눈이 많거나 바람이 심하면 한 번에 우르르 무너지는 나무사태가 나는데 그러면 산에는 손톱자국처럼 생 바위가 드러난다. 자연이 이를 복구하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린다.
유람선은 수십 리에 이르는 수로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사람들은 셔터를 수없이 눌러대고 물은 하염없이 쏟아진다. 높이 160m라는 거대한 보엔폭포를 지날 때는 물안개를 맞으면 젊어진다 하여 잠시 머물렀다. 좀 더 지나서 이곳 고유의 종이라는 물개를 보았다. 큰 뱃소리 에도 그대로 바위에서 잔다. 계곡에서 바다로 이어진 곳, 여기부터는 호주를 바라보는 바다인 테즈만해 란다. 호주까지는 배로 4박5일 걸린다고. 다시 되돌아오는 길 약 100여분동안 이 경치는 아마 못 잊을 것이다.
배에서 내려 버스로 돌아오는 길 엄청 허전하다. 이젠 남섬 관광은 거의 끝났다. 다시 되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터널을 지날 때 봐 두었던 빙하가 떨어진 곳에서 버스를 세웠다. 지난겨울 눈사태 때 굴러 떨어진 빙하가 한여름인 지금도 녹지 않고 남아 있다는 거다. 바로 눈앞에 있는 빙하 덩어리, 내려가서 만져 봐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거꾸로 '단것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니 표지판을 가리킨다. ‘Danger’ 그래서 사진만 찍고 버스에 올랐다.
오는 길에서 청소년 캠프 같은 건물이 보였다. 이게 군부대란다. 여기도 군부대가 있느냐고 물으니 웃기는 녀석들이 모두 직업군인으로 6000명쯤 있으며 그래도 육해공군 다 있단다. 얼마 후 나르는 전투기도 보았다. 심심해서 뉴질랜드의 국가명 유래를 물어보았다.
희망봉이 발견되고 나서 네덜란드가 아시아를 주름잡고 잘 나갈 때 테즈만 이란 아저씨가 호주 남부를 지나 남섬에 최초로 발견 아니 불법 입국을 했단다. 이래서 지금도 바다이름이 테즈만 해, 그리고 호주 남부 섬 이름이 ‘테즈메니아’란다. 그 아저씨 고향이 Zealant이고 지들 고향 이름을 따서 New Zealant가 되었는데 그 후 영국넘 들이 빼앗아 그대로 뒤 글자 하나만 고쳐서 New Zealand로 불리게 됐단다. 그러니 새로운 Zea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되돌아오는 지루한 길, 자연을 관찰하며 오기로 맘먹었다. 유심히 보니 산이 깎인 절개지 돌은 편마암과 점판암등 변성암 들 뿐이다. 가파른 산엔 흙이 없어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나 풍화로 서서히 흙이 생기고 있다. 그 증거로 바위가 쪼개져 쌓인 테일러스가 많이 보인다. 바닥은 온통 빙퇴석 투성이다. 역시 흙은 적다. 이끼로 보이는 노란색이 골짜기마다 가득하다. 그러나 물만 충분하면 나무는 잘 자랄 것이다.
어느 듯 저녁 이곳 관광도 막바지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지정 식당에는 전화를 해야 준비한다고 빨리 정하란다. 상의 끝에 뉴질랜드 특산인 바다가재를 먹기로 했다. 식당에 도착하여 먼저 뱃살로 회를 치고 머리로는 매운탕을 끓였다. 포도주도 한잔 걸치면서. 예상외로 많은 살과 다양한 요리로 4마리를 잡아 8명이 훌륭한 식사를 했다. 숙소는 어제 그대로, 오늘도 어김없이 산책을 나갔고 작은 상점에서 쇼핑을 했다. 키위(이곳 백인들은 지들을 이렇게 부른다.)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한인의 과일가계를 갔다. 기념품과 체리와 키위등 과일을 사 가지고 돌아와 2차로 한잔씩하고 잠을 청했다. 오늘도 흐려 별자리 보기는 포기했다.
<4일째>
아침 식사 후 다시 처음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이다. 해설도 시들하여 뉴질랜드 여행 비디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여름철 서부 우림지대 트래킹, 빙하 넘는 산악등반, 경비행기 관람, 급류보트 타기, 말 타고 코스 순환등 볼거리가 엄청 많다. 다음을 기약해 보지만 또 와 질까?
지나온 길을 그냥 돌아가자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빙하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이리도 많은 빙하 녹은 물이 쏟아지는가? 그냥갈 수는 없다며 뭐 다른 볼거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점심때 까지는 그냥 가잖다. 어김없이 지나온 길을 그대로 돌아와(하긴 오직 외길 임) 다시 부카키 식당에서 연어회로 점심을 하고 4팀 중 3팀 6명이 헬기를 타고 빙하를 탐사하기로 하고 1인 182,000원에 사인을 했다. 헬기는 금방 2000m 이상으로 솟아올라 우리를 다시 빙하지대로 데려다주었다. 바닥에서는 넓게만 보이던 목장과 구릉지대가 한눈에 보이고 얼마 후 빙하와 만년설이 덮인 고지대를 바라보니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높은 계곡은 엄청 넓고 빙하와 만년설로 덮인 산하를 숨기고 있었다. 얼음이 갈라진 크레파드도 보인다. 헬기는 우리를 폭신한 만년설이 덮인 약간 낮은 곳에 내려주었다. 조금만 벋어나면 위험하니 깃발 밖으로 가지 말라고 엄포가 대단하다. 헬기 근처에서 마구 떠들며 증명사진을 찍고 다시는 못 볼 눈앞의 엄청난 풍경을 감상하였다. ‘세상에’를 열 번은 반복한 것 같다. 돌아오는 길 이제야 귀가 멍한 것을 느낀다. 그 아픔은 한참 만에 가라 않았다. 한참을 더 달려 저녁때가 되어서야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어김없이 한인 경영 일식집에서 이번에는 이곳 특산인 양과 사슴고기로 철판구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시내 구경- 빅토리아 여왕 아줌마 동상이 있는 광장에서 잠시 머문 후 뉴질랜드 병사들이 전쟁에서 돌아오면 해단식을 한다는 추억의 다리에 들렸다. 이 넘들 자기나라 전쟁은 없었으나 외국 분쟁에는 어디든 개입한단다. 다리에는 현재까지 지들이 다녀온 전쟁터가 모두 써있다. 1차 대전 때 벨기에, 2차 대전 때 필리핀, 한국전쟁, 월남전, 팔레스타인, 콩고 분쟁, 최근 동티모르까지 엄청 많다. 한국 전쟁 때는 군인 전부가 참전했단다.(그래봐야 장난하는 수준) ‘그래 고맙다, 이 귀여운 넘 들아.’
내일은 남 섬을 떠난다. 우리나라 개울 같은 에이본강을 산책했다. 열대우림에 거목 같은 미류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역시 따스하고 기름진 곳에서는 이처럼 잘 자라는구나.
<5일째>
아침 일찍 그 동안 함께 해준 안내원과 기사님께 이별을 하고서 비행기를 타고 북 섬으로 향했다. 무척 행운인 것이 창가에 않게 된 것이었다. 거리는 서울- 제주보다 약간 긴 1시간 30분이 소요된단다. 구름이 적어 비행기에서 아래를 잘 볼 수 있었다. 남섬의 건조함은 더 실감났다. 삭막한 구릉지대와 농장들, 물이 있어 보이는 낮은 골짜기에만 나무가 길게 자라있다. 바닷가, 북 섬이 보이는 곳에 오니 구름이 나타난다. 구름 낀 북섬은 가파른 해안절벽이 이어진다. 아마 비행기가 해안을 따라 나르는 중인 것 같다. 제법 많은 나무와 가늘고 긴 강이 보인다. 강이라기 보단 넓고 구불거리는 사행천이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사행천과 해안선을 그리고 멀리보이는 구름의 바다까지. 비행기는 차 한 잔 마시고나니 금방 오클랜드 공항에 닿았다.
공항에는 40대 아저씨 한분만 나왔다. 기사겸 안내를 함께한단다. 북섬은 화산으로 된 비가 많고 밀림을 이룰 때 쌓인 나뭇잎등 으로 기름진 섬이란 설명- 지금도 화산활동이 계속되고 지진도 많은 곳, 그래서 나무로 지은 집이 많단다. 이 나라 제일의 거대(?) 도시 오클랜드 무려 인구 100만이 산단다. 큰 도시답게 주변에는 물류 창고, 채소밭, 가공 공장 등이 보인다.
첫 마디가 ‘뉴질랜드도 식후경이지요?’ 그리고는 식당으로 간다. 어김없이 한국인 식당이다. 채소와 두부 등으로 깔끔한 아침식사를 했다. 주인아줌마는 우리더러 이민 와서 함께 살잔다. 그런데 현재 이민이 쉬우냐고 물으니 아저씨는 동양인 이민은 규제한다며 쉽지 않음을 예기한다. 이 나라 국민의 주류인 영국, 독일, 화란등 북유럽 여러 나라와는 이민협정을 맺어 더 보내달라고 사정하고, 동양인 이민은 철저히 막아 백인 천하를 계속하려 하는 넘들, 앞으로 오클랜드의 인구가 거의 2배로 늘어날 판이란다. 왜냐하면 남서아프리카에서 살던 백인들이 흑인에게 정권을 빼앗기자 대부분 이곳으로 돈 싸들고 들어온단다. 오는 도중 아파트 같은 주택 건설이 한창인 이유를 알 것 같다.
행선지로 가는 도중 우리로 말하면 벼룩시장이 서는 곳에 잠시 들렸다. 비싼 물건으로는 어린 알파카부터 작은 소품들, 우리들 들국화 같은 흔한 들꽃을 못 쓰게 된 중고품에 액자나 화분으로 꾸며 팔고 산다. 참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여 사진에 담았다.
와이토모란 곳으로 향했다. 오늘 오전에 볼 것은 반딧불동굴- 석회 동굴인데 곤충의 유충이 여기에 살며 거미줄 같은 실을 품어내며 매달려 지내는데 벌레의 몸에서 나온 액체가 실로되며 빛을 내어 이 빛으로 다른 곤충을 유혹하여 잡아먹는단다. 그런데 이 빛이 아름다워 엄청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세계 8대 불가사의중 하나라고 한단다.(지들 말로)
북섬은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밤에만 비가 오는 천혜의 기름진 땅 가는 도중 거대한 고사리가 지천이다. 고생대 석탄기 그림으로만 보아오던 나무 형 고사리는 잎의 길이만도 족히 2m는 되었다. 이 고사리는 잎 뒷면이 흰 색이고 이 흰색 고사리 잎은 뉴질랜드의 상징이란다.
동굴에 도착하여 입구에 고사리 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지나 동굴로 들어섰다. 화산섬에 웬 석회동굴인가- 의문은 금새 풀렸다. 화산섬이나 엄청 발달한 산호초지대를 끼고 있으니 이 산호초가 굳어서 생긴 석회지대와 동굴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석회동굴의 색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완전 흰색의 동굴, 꼭 백인 피부 같다. ‘석회동굴에도 격이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다. 동굴 내부에서 석순 석주, 동굴 진주 등의 모양을 감상하고 배에 올라 나르는 반딧불이 아닌 반디벌레가 내는 불빛을 감상했다. 약간 푸른듯 한 빛이 마치 은하수같이 흐른다. 사진을 못 찍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시 되돌아오는 도중 들판에 있는 키위가 경영한다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뷔페식 이었는데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김치등 우리가 먹는데 지장이 없다.
식사 후 근처 말 타기 농장과 별장 같은 집들을 구경했다. 집마다 어김없이 놓인 물탱크- 빗물을 담는 통이란다. 남섬이 빙하수를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듯 북섬은 빗물을 식수로 쓴단다.
오는 길에서 밀밭, 유채밭, 배추밭, 해바라기밭 등을 보았다. 전형적인 이 나라 농장하나 정도였으나 규모는 우리나라 같으면 유채축제, 해바라기축제를 했음직한 크기였다. 농장의 규모는 적어도 100만평쯤 돼야 양 목장을 할 크기란다. 우리 사람들 여기서 농사지으라면 참 좋으련만.
이제부터는 인구 조밀지대이며 오늘 가는 곳은 마오리의 천국이란다. 마을 이름은 로토투아 역시 마오리 말. ‘폴로네시아 스파’란 야외 욕탕에서 수영복을 입고 목욕(?)을 했다. 유황냄새가 진동하고 끓어오르는 물이 보인다. 이 물을 식혀서 내보내주는 모양이다. 그런데 온도가 모두 다른 욕탕마다 들어가 있는 민족이 다르다. 백인들은 제일 낮은 온도에, 마오리족은 중간, 한국인은 제일 뜨거운 물에서 논다. 역시 화끈한 사람들은 한국인인가? 내가 ‘여긴 한국인만 들어와’하자 모두 웃으며 인사한다. 여기 손님 절반은 한국인 같다. 일행 중 한사람은 동창도 만났다. 80분정도 머물렀는데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물이 더러웠다. 건더기(?)가 가득하여 오래 들어가 있기 어려웠다. 이런 시설이 세계 10대 온천이라니!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지하로 내려갔다. 극장식 식당, 마오리 청년이 능숙한 솜씨로 쇼를 진행하며 식사를 돕는다. 먼저 관광객을 ‘한국인 손들어’ 하고는 ‘안녕하세요.’ 하는 식 으로 국가별로 분류 인사를 나누게 한다. 제법 고급 호텔이라서 인지 일본인이 많았다. 못지않은 수의 한국인들, 그리고 소수의 독일, 영국, 폴란드인까지. 인사 후 테이블 순서에 따라 식사를 배식 받았다. 식사동안 마오리 민요를 불러준다. 예상외로 음악에 깊이가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곡은 매우 귀에 익은 곡이 아닌가? 바로 우리가 자주 부르는 가요 ‘연가’ 이었다. 그러고 보니 들은 것 같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로 시작되는 연가는 바로 마오리 민요로서 한국 전쟁 때 참전한 뉴질랜드의 마오리 병사에 의해 전해졌다고. 그런데 직접 들으니 가벼운 곡이 아니었다. 그 속에 담긴 사연은 절절한 듯 매우 장엄한 노래로 들렸다. 식사가 끝날 무렵 우리가 자주 보던 방문객이 적인지 친구인지를 판단 한다는 마오리의 의식이 진행되는데 직접 보니 실로 엄청난 덩치에 무서운 힘이 느껴졌다. 지들의 시범이 끝난 후 남자들은 위협하는 동작을 여자들은 환영 의식을 함께 해보았다.
쇼핑대신 엄청 큰 규모의 호텔 유락시설을 순회했다. 파칭코등 오락시설- 별로 재미없어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리도 뻔 한 도박판에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6일째>
아침부터 서둘러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본래 깨끗한 나라지만 오늘따라 공기 맛이 새롭다. 높이가 100m가 된다는 엄청난 나무들이 들어찬 밀림- 레드우드 살림욕장 이란다. 여기서 이 나라 나무의 비밀을 알아냈다. 왜 한국과 비슷한 조림을 하는가를. 본래 엄청나던 원시림은 백인에 의해 벌채되어 모두 파괴 되고 현재는 유용한 나무를 골라 조림에 힘쓴단다. 그런데 그 책임자인 산림 연구원장이 한국인이며 뉴질랜드 5대 위인에 속한다고. 아 그랬구나.
살림욕장을 내려와 들른 공원에는 무궁화와 자귀나무가 꽃을 활짝 피고 있다. 유두화와 능소화도 많다. 함께 온 관광객들이 ‘여긴 한국 같애.’라고 한다. 버스로 달리며 붉은색 꽃이 피어있는 나무의 숲을 보았다. 이 나무의 이름은 부투카타르나무라고 일러준다. 남섬의 블루금 만큼 북섬 에서 흔하고 대표적인 나무란다. 그 후 자세히 보니 이 나무가 지천이다.
오전에는 ‘와케레와레’란 마오리마을 온천지대에 가서 간헐천을 보기로 했다. 백인들은 유황냄새를 싫어하여 이런 곳에서 살지 않는가보다. 마을에 내리니 바닥부터 뜨겁다. 마오리족은 이곳에서 다른 보온 장비 없이 지열로 생활하며 음식 익히는 것도 지열을 사용한단다. 얼마를 올라가니 냄새가 진동하고 흰 김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진흙이 죽처럼 끓어오르는가 하면 간헐천에서는 뜨거운 물줄기와 김이 불규칙하게 뿜어져 나온다. 일부는 그냥 바닥에 않아 찜질(?)을 즐겼다. 실로 장관인 풍경들, 만약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면 찜질방, 유황탕, 냉온탕, 우리 집이 원조니 하며 위락시설이 끝없이 지어져 있을 텐데 여기는 제대로 된 탕 하나 없이 물이 흘러가고 마오리 아저씨들은 1달러 받고 안내 해설과 사진 찍어주며 아줌마는 온천수로 익힌 옥수수나 판다. 꼭 우리나라 60년대를 연상케 하는 벌거벗은 꼬마들은 껌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이 땅의 당당한 원주민은 지들 땅을 몽땅 백인에 내주고 현재 삶은 이러하다니 씁쓸하다. 하긴 콜럼버스 때 죽어가는 백인들 살려준 죄로 거의 전멸당한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호주 에버리진 보다는 좀 나은 것인가? 버스를 타고 가까운 타우포 호수를 향했다. 커다란 호수 속에 또 섬이 있고 섬에 들어가면 가운데 또 호수가 있단다. 많은 새들과 요트, 수상스키등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뉴질랜드에만 산다는 흑고니를 보고는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버스를 다시 달려 양털 깍이쇼를 한다는 아그로돔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쇼 장으로 들어갔다. 손님에는 한국, 중국인은 물론 필리핀, 말레이인, 인도인등 아시아인과 체코, 스페인등 유럽인도 있었다. 직접 만져본 양털은 매우 부드러웠고 손으로 벌려본 털의 색은 매우 깨끗하여 겉으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양의 종류도 20여 가지나 되었으며 기르는 밭의 높이, 먹이, 장소마다 다른 종을 키운다. 젖소의 젖을 짜는 시범도 한다. 양털을 깎는 일은 중노동에 속하며 숙련된 사람은 하루 4-500마리를 깎는데 신기록은 850마리라고 한다. 방목에는 양몰이 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양몰이 개에는 노려보는 형과 짓는 형이 있다고 한다. 쇼장을 나오니 진짜로 뉴질랜드 관광은 끝나간다.
버스를 몰아 재빨리 오클랜드로 향했다. 한국인이면 어김없이 들른다는 녹용 연구소(판매장)로 갔다. 녹용은 무공해 뉴질랜드산이 최고라는 설명을 들었으나 비싸서 (적어도 100만원) 사지는 못했다. 이웃한 한국인 경영 모피 코트 상점에 가서 옷과 화장품, 꿀등 특산품을 샀다. 그리고 오클랜드 근방 한국교민회장이란 분이 경영한다는 규모가 큰 모피가공 공장을 구경했다. 주로 수출품을 생산한단다. 그 분은 우리에게 몇 가지 좋은 말씀을 하셨다.
1.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 가면 적어도 한번은 책임자를 불러 한국말 하는 종업원이 있는가를 확인하고 없다면 항의하라. 외국 비행기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항공사는 100명의 한국인과 1명의 일본인이 탔어도 안내 방송은 일본어만 나가더란다. 항의하니 바로 시정되더라고, 그래야 한국인 고용이 하나라도 늘고 당당한 대접 받는다고 한다.
2. 한국의 현안 문제는 빨리 빨리 바르게 시정해 나가야지 조국의 허약함은 곧바로 교민에게 전달된다고- 교육, 부동산들 어정쩡한 문제 해결로 큰 피해를 교포들도 보고 있다고, 제발 도피성 유학은 오지 말란다. 한국에서 공부 안 되면 외국에서 더 안 된다고.
3. 다른 나라 좋아할 짓, 우리끼리 학벌, 지연등 으로 잘난체하는 창피한 짓은 밖에 나와 하지 말란다. 해봐야 외국에서는 안 통한단다. 실력 없으면서 못나게 우리끼리 싸우지 좀 말자고. 구구 절절 옳은 말씀 고마워하며 밖을 나왔다.
오클랜드 중심가 시의 상징인 탑이 서있는 최고급 호텔에 짐을 풀고 이 나라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 나라 쇠고기만 판다는 한국식당에서 불고기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산책을 나갔다. 오클랜드는 항구도시여서 바다로 산책을 갔다. 워낙 큰 타워에 자리한 호텔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어 아주 멀리까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며 바닷바람을 쐬었다. 여러 종류의 배와 유람선, 어선 등이 보였다. 가장 신나는 것은 처음으로 날이 맑아 밤하늘에 별이 잘 보이는 것이었다. 좌우가 뒤바뀐 반달과 오리온 별자리를 보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확인하여 드디어 북반구에선 볼 수 없는 남십자성도 찾아내었다.(아니 이것 같다고 그냥 남십자성이라고 하자며 종료) 돌아오는 길에는 물건도 약간 샀다. 오늘은 잠이 오려나?
<7일째>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마지막 식사라 생각해서인지 많이들도 먹는다. 짐을 꾸리고 간단한 시내 관광을 했다. 기사 아저씨께선 매우 좋은 곳이라며 안내한다. 해변가의 아름다운 풍경과 섬들, 그리고 부자들이 탄다는 요트들, 역시 요트의 도시라 할만 했다.
여기는 ‘미션베이’라 하는 언덕위에 하얀 집 노래를 연상케 하는 주변의 집들은 매우 비싼 집이라 하여 ‘우리나라 복부인 아줌마들 몰려오는 것 아닌가.’하며 웃었다.
우리나라 남산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니 경치가 매우 훌륭했다. 나무와 건물, 그리고 산과 바다등 자연이 어울려진 오클랜드는 어느 도시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엄청난 규모로 발전하고 있다. 한적한 기슭에 자리한 오클랜드 대학은 세계 100대 우수 대학에 속한단다. 전국 우수 인력을 몽땅 가지고서도 겨우500위에 턱걸이중인 S대등 우리나라 주요대학이 부끄럽다.
둥그런 방향표지판에는 각국의 방향과 거리가 새겨져 있었는데 1944년에 세운 거라서 우리나라는 없단다. 그래도 누구인지 뾰족한 송곳으로 서울 *km라고 새겨놓았다.
이젠 관광을 끝내고 다시 집에 가야한다. 30분 거리의 공항에 내려 출국 수속을 했다. 입국 때 보다는 덜 까다롭다. 이젠 어떻게 12시간을 보내서 도착하나 또 걱정이다. 올 때는 밤이어서 잠잘 시간이나 되었지만 지금은 대낮이 아닌가? 더구나 기류의 영향으로 비행기가 연착되어 출발이 지연된단다. 이곳 시간 12시 50분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 50분에 비행기는 이륙했다.
많은 좌석이 비어있다. 그리고 손님에는 중국인이 많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뒷좌석에 않은 중국 아줌마들이 떠드는 소리는 비행기가 내릴 때 까지 그치질 않았다. 옆에 않은 아저씨는 아예 3자리를 차지하고 길게 누워 주무시고 앞에 않은 분들은 포카 놀이에 일어서서 훈수까지 둔다. 안내원 아가씨들이 만류를 해도 막무가내다. 더구나 비행기는 심하게 흔들렸고 책 읽으며 보내려던 계획은 얼마 후 포기했다. 다행히 한국 비행기여서 우리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좁은 객실에서 시간이 되니 점심, 저녁 식사를 해야 했다. 10시간정도가 지났는가? 지도에 위치가 일본 남부를 가리킨다. 태평양과 비교하니 한국 부근의 바다 참 좁다. 일본 남부에서 금방 대마도 상공 그리고 부산 , 청주이다. 어찌 보면 참 신기하게도 한나절에 남태평양을 뛰어넘어 날아오다니, 정확이 11시간 15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무리 외국이 좋다한들 역시 밖에 다녀오면 우리나라, 우리 집이 최고다. 오랜만에 터지는 핸드폰이 신기하다. 여러 곳에 무사도착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머릿속에 남은 기억은 희미해질 것이고 사진으로만 남겠지?
첫댓글 잘 읽었 습니다 정말 다시 눈에 선 하군요 영상보다 글이 새롭고 더 오래가겠죠 글을 남겨줘 고맙군요
물리학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있습니다. 나도 기행문 시도는 해보았으나 중도 하차하고 말았는데 대단합니다. 뉴질랜드를 평생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