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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유물론(歷史的唯物論)
historischer Materialismus(영)historical materialism.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역사 이론 또는 사회·역사 철학을 나타내는 용어.
마르크스 자신은 이 표현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이 용어의 개념 규정에 대한 견해가 분분하다. 마르크스는 그의 사상체계와 그 부문분류의 구상에 대해서 명시적인 형태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유물변증법)이라는 전반적 세계관 또는 제일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먼저 있어서, 이것을 자연계에 적용함으로써 자연변증법이 성립하고 인간계(시회·역사)의 영역에 적용함으로써 역사적 유물론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문관과 역사적 유물론의 자리매김에 관해서는 마르크스주의를 당시(黨是)로 삼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적 지도자인 K. J. 카우츠키와 그를 배교자로 단정한 레닌도 동의했으며,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도 동의한 공시적(公示的)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규정하는 단계에 이르면, 논자(論者)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G.V. 플레하노프는 역사적 유물론은 "학문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장래의 모든 사회학에 대한 프롤로그"라고 규정하고, 사회철학 또는 여러 가지 사회과학·역사과학에 대한 인식론적인 기초부문으로 그 성격을 규정했다. 이에 대해 볼셰비키를 대표하는 역사적 유물론자로 알려진 부하린은 "역사적 유물론은 프롤레타리아적 사회학 그 자체"라고 규정하고 철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과학의 차원에 속하는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레닌은 때로는 "역사적 유물론은 비로소 과학적 사회학의 가능성을 창출했다"고 플레하노프에 가까운 규정을 내리고, 또 어느 때는 역사적 유물론을 '과학적 사회학', '유물론적 사회학'이라고 불러 부하린에 가까운 규정을 내렸다. 이러한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문적 성격규정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역사적 유물론의 학문적 성격 규정에 대해서는 이처럼 의견이 다양하지만, 역사적 유물론 내지 유물사관이라고 할 때의 '사'(史)는 좁은 뜻의 통시적 역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사상(事象) 전반을 수용하는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공시적 구조도 주제적 여건으로서 포함된다. 이것을 감안해서 우선 형식적으로 규정한다면, 유물사관 내지 역사적 유물론이란 사회적 구조와 그 역사적 변천에 관한 유물론적인 파악의 원리적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논자들은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의 서문에서 규정한 정식(定式)을 '유물사관의 공식'으로 속칭하고, 이에 의거하여 역사적 유물론의 테두리를 파악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공식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그 삶의 사회적 생산에 있어서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해진 필연적인 여러 관계, 즉 물질적 생산제력(生産諸力)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照應)하는 생산제관계(生産諸關係)에 들어간다. 이 생산제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실제적인 토대를 이루고, 그 위에 법제적·정치적인 상부구조가 조성되며 또 거기에 사회적 의식의 여러 형태가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정신적인 생활과정 전반을 제약한다.
사람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제력은 그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현존하는 여러 생산관계 또는 이들의 법률적 표현에 불과하지만, 그때까지 생산제력이 그 내부에서 운동해온 재산소유 제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여러 관계가 생산제력의 발전형식에서 그 질곡으로 변해 버리며, 그때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경제적 기반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서서히 또는 급격히 전복된다……사회 구성체는 그것이 생산제력에 의해 충분한 여지를 가지므로 생산제력이 완전히 발전하기까지는 결코 몰락하지 않는다……한마디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적 제단계로서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근대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꼽을 수 있다."
이 '공식'에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기초개념으로 삼으면서, 사회구성체를 공시적으로는 토대와 그 위에 구축된 상부구조라는 구도로 파악하고, 통시적으로는 사회구성체의 변증법적 비약에 의한 발전적인 여러 단계적 천이상(遷移相)으로 인류사를 파악하고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마르크스는 "경제적 구조가 실제적 토대를 이룬다", "사람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일의적(一義的)으로 결정한다든가 경제가 사람들의 의식을 일의적으로 결정한다든가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때로 유물사관을 '경제결정론'으로 오해하고 하부구조가 '일방적 원인'인 듯이 오해하는데,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역사에 있어서 궁극적인 규정계기는 현실적인 삶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그 이상은 마르크스도 나도 일찍이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치 경제적 계기가 유일한 결정계기인 것으로 왜곡된다면 앞에서 말한 제재(題材)는 내용없는 공허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경제적 상태는 토대이기는 하지만 상부구조의 여러 가지 계기가 역사적 투쟁의 도상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했으며, 이외에 만년의 엥겔스는 일련의 저작이나 편지에서 상부구조의 하부구조에 대한 '반작용'이나 여러 계기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결정론적 법칙관 그 자체도 비변증법적이라는 점에서 배제했다.
역사적 유물론은 카우츠키·부하린 등의 몇몇 이론가에 의해서 그 체계적 논술이 시도되었고, 또 소련과 독일의 철학교정(哲學敎程) 형태로도 시도되었는데, 아직도 이론체계로서 완전히 정비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앞에서 본 마르크스의 '공식'에 등장하지 않은 원시계급사회나 공산주의 사회구성체의 자리매김을 둘러싸고, 또는 인류사(사회구성체의 천이)가 단선적이냐 복선적이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마르크스 해석이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대립된 견해를 보이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이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이론에 세계관적 기초와 전망을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
dialectical materialism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사상에서 나온 실재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법 (→ 색인 :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유물론은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질 세계가 마음이나 정신과 독립하여 객관적 실재성을 갖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들은 심적·정신적 과정의 실재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관념은 물질적 조건의 산물 또는 반영으로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물론을 관념론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는데, 그들에 따르면 물질을 마음이나 정신에 의존하는 것으로 다루거나 정신이나 마음이 물질에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다루는 이론은 모두 관념론이다. 그들은 유물론적 견해와 관념론적 견해가 철학의 발달사를 통해 화해할 수 없이 대립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철저한 유물론적 접근법을 채택하여 유물론과 관념론을 결합하거나 융합하려는 모든 노력은 혼란에 빠지고 정합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 개념은 헤겔에게 많이 의존했다. 사물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개별 사물을 따로 떼어서 마치 고정된 속성을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처럼 다루는 '형이상학적' 사유 양식과는 반대로, 헤겔의 변증법은 사물을 운동과 변화, 상호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고찰한다.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과정 속에 있고 이 과정에서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사물은 변하고 결국 지양된다. 모든 사물은 자기 안에 서로 모순되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측면들 사이의 긴장이나 갈등이 변화의 추진력이고 결국 그 사물을 변형하거나 해체한다.
그러나 헤겔이 변화와 발전을 자연과 인간 사회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는 세계정신 또는 이념의 표현으로 생각한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화와 발전을 물질세계의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헤겔처럼 어떤 '변증법 원리'에서 사건의 실제 경로를 연역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 원리를 사건에서 추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인식론은 모든 인식이 감각에서 나온다는 유물론적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주어진 감각 인상만을 인식의 근거로 삼는 기계론적 견해와는 달리, 그들은 실천 활동을 하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얻는 인식의 변증법적 발전을 강조했다. 사람은 사물과 실천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관념을 실천에 알맞게 형성함으로써만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관념과 실재의 일치 즉 진리를 검증하는 기준은 사회적 실천뿐이다. 이러한 인식론은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모습만 인식할 수 있을 뿐 물자체는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다는 주관적 관념론에 반대하고 우리가 초감각적 실재를 감각과 독립된 순수 직관 또는 사유로 인식할 수 있다는 객관적 관념론에도 반대한다.
추론방법의 이론적 기초인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개념을 ' 역사적 유물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유물론은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본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해석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고 주로 논쟁과정에서 그들의 철학적 견해를 밝혔다.→ 유물론
현대 유물론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걸쳐, 물리학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E. 마흐(1838~1916), H. 푸앵카레(1854~1912)를 비롯해 자연과학의 대상은 이론적 개념이라고 하고, 물질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사고가 나타났는데,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러한 사고법을 '물리학적 관념론'이라고 배격했다.
즉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의 발달에 의해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보다 상세하게 밝혀졌는데, 그것은 물질이 인간의 감각이나 사고로부터 독립하여 있는 객관적 실재라는 것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레닌의 주장이 계승된 것이다. 또 '빈 학파'에 의해 전개된 논리실증주의가 존재와 의식이라는 이원론을 경험과 그 표현의 도구로서 기호계(記號系:주로 언어)와의 이원론으로 바꾸어놓은 데 대해서도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것이 존재의 문제를 보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이것은 E. 후설(1859~1938)에서 시작되는 현상학(現象學)이 존재의 문제를 괄호에 넣어 불문에 붙이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변증법적 유물론이 반대한 것과 공통된 점이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유력한 철학이 된 분석철학에서는 예를 들어 "물이 정말 존재하는가?"라는 논의는 하지 않으며, 이 명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뜻이라면 "물은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고, 또다른 뜻이라면, "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으므로, 문제는 어느 쪽의 표현방법을 택하느냐이며, 어느 쪽을 택하든 자유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분석철학적 입장에 비해 변증법적 유물론은 존재란 실천에 의해 확증되는 것이며, '존재한다'는 의미는 일정하다고 주장한다. 그 자체가 물질인 인간의 몸 운동(감성적 실천)에 의해 객관적 실존의 존재가 확증되는 것이며, 그것은 표현방법 문제 같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실천이 중시되었는데, 독일에서는 그 실천이 어떻게 파악되느냐를 둘러싸고 1964년 이래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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