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친구들
임덕기
지난해 수필집을 출간해서 주문진 친구에게 보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초등학교 친구들 이야기가 책 속에 있었다. 어릴 적 친구는 다리목 근처에서 살았는데, 학교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 갈 때면 같이 걸어가다가 그곳에서 헤어졌다. 친구 부모님이 근처에서 세탁소를 하셨다.
친구는 어려서 성격이 온순하고 이해심이 많은 아이였다. 학교 졸업 후 파독 간호원으로 갔다가 돌아와 결혼해 살며, 지금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간호봉사를 한다.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은 아직도 어릴 적 그대로다.
“니가 학교에서 고무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친구가 기억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까맣게 잊은 순간이 친구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추억을 공유하면 망각 속에 파묻힌 장면도 다시 찾아낼 수 있다. 회상을 통해 그때 그곳으로 함께 달음박질친다. 어릴 적 단발머리 친구와 내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덕기야, 니가 <하얀 길>이라는 얘기를 순이네 집에서 했을 때, 우리가 감동하며 들었던 일 기억나니?"
친구가 진지하게 말한다. 내가 모르는 단상(斷想)을 하나씩 알려주는게 아닌가. 잊었던 기억의 퍼즐을 찾은 것처럼 반갑다. 그 집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늘 북적거렸다. 넓은 마당에 우물이 있던 집에서 신지식 단편집에 나온<하얀 길>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때 이야기하던 내 모습과 이야기가 인상적이라 잊히지 않는다고 말을 덧붙인다. 그 집에 놀러간 일은 기억나지만 내가 어떤 책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천천히 그날 일을 되짚어본다. 하얀 길이라는 단어가 무의식 저변에서 잠자고 있다가 서서히 깨어난다. 글 내용은 또렷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맑고 순수한 소녀들의 우정이 보랏빛 꽃무리를 배경으로 펼쳐진 느낌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성이 막 발아한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였다.
어릴 적 '신지식' 선생님이 쓰신 감성적인 글을 좋아했다. 단편소설 《하얀 길》은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번역하신 《빨강머리 앤》은 손에서 놓지 않았고, 뒤이어 나온 시리즈 책도 어렵사리 구해서 읽었다.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가 고아원에서 우연히 독신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겪는 성장기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대표소설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하다. 나이에 맞는 사유와 정서적인 책을 읽으면 좋을 텐데, 난폭한 영화와 게임을 즐기다보면 심성이 거칠어지기 쉽다. 어른들의 어두운 단면을 모방한 사건에 연류된 청소년들을 보면 한탄스럽다. 잔인한 사건을 일으키는 여자아이들도 늘고 있다. 그들에게 주변 환경은 중요한 요인이 된다. 마음을 순화하는 글과, 넉넉한 자연의 품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으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 근처에는 드넓은 바다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끝없는 수평선과 갈매기와 하얀 파도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본 바다는 내게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바다로 흘러드는 냇물에는 하얀 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봄이면 버들개지가 하얗게 피어나는 모습이 그리움처럼 떠오른다.
야트막한 산 밑에 살던 주문진 친구가 수업이 끝나고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해서 간 적이 있다. 친구는 어부 아버지가 새벽에 잡은 싱싱한 오징어를 즉석에서 썰어 그릇에 회와 초고추장을 담아왔다. 그때는 무심코 먹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따뜻한 마음 씀씀이였다. 어렵게 살아도 아름다운 자연 풍광 속에 친구들 마음은 순수하고 인정이 넘쳤다.
주문진 항구가 보이는 산중턱에 사는 친구 집에도 간 적이 있다. 반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언니 같은 친구였다. 결석을 해서 담임선생님이 한 번 찾아가보라고 해서 간 것 같다. 언덕에 살던 친구는 내가 집에 도착하자 전복이 푸짐하게 든 국과 생선으로 차린 정성스런 밥상을 내왔다. 생각지 않은 밥상을 받아서 속으로 놀랐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서울에서 육학년 때 전학 온 내게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은 호의를 베풀었다. 오랫동안 그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세월의 뒤안길에서 고마운 마음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중년이 되어 서울에 살 때였다. 한 친구가 느닷없이 전화해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남편 따라 미국에 건너가 자식들 교육을 그곳에서 마치고 돌아와 친구들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서울에 사는 주문진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른 친구는 파독 간호사로 가서 광부 남편을 만나 결혼해 그곳에서 뿌리 내리고 살다가 고국에 잠깐 다니러 온 친구도 있었다. 지난 세월 외국에서 모진 비바람을 경험했으리라. 어른이 되어 나타난 친구들 얼굴에 어릴 적 모습이 겹쳐진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들 성격은 별로 다르지 않다. 유쾌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강원도 작은 어촌인 주문진을 떠나 서울과 독일, 미국까지 삶의 지평을 넓혀 가며 살았던 주문진 친구들이 대견스럽다. 그 당시에는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누구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푸른 바다가 집 가까이 펼쳐져 있고 생선이 넘쳐나던 그곳에서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대한 기억만 아직도 잔상으로 남았다. 자연 속에 파묻혀 지냈던 그때가 그립다. 육십년이 흘렀지만 마음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다.
첫댓글 <한국문학인> 2022년 여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