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따쓰라(大柵欄)
(딸에게 보낸 문자에서)
북경에 가서 따스라에도
가보지 않았다면 북경에
갔댔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처럼 따스라는 북경의
명소 중의 명소이다.
북경에는 大柵欄이란 거리(胡洞)
가 두 곳이나 있다.
한 곳은 북경의 천안문 광장 남쪽
전문(前門)에 위치 해 있고
다른 한 곳은 서장안가(西長安街)
의 쌍탑(双塔)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 두 거리의 글자는 똑같지만
발음은 전혀 다르다.
前門에 위치한 곳은 <따쓰라>라
하고 쌍탑에 위치한 곳은 글자
그대로 따짜란이라고 한다.
前門에 위치한 <따쓰라>는
북경에서 가장 유구한
상업 거리이다.
그 유명한 동인당(同仁堂)도
바로 이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북경에는 우리와는 친척같이
지내는 장용성(張湧誠)이라는
한족분이 살고 있었다.
너희들은 그분을 예예
(爺爺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북경
나들이를 몇 번 다녀왔었다.
할아버지네는 천안문과 아주
가까운 지안문(地安門)에
살고 있어서 주변에는
명승고적이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이 바로 <따쓰라>이다.
어느 날 우리는 그 할아버지를
따라서 <따쓰라>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 할아버지는 대대로
북경에서 살아왔기에 북경에
한해서만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따쓰라>는 중국어 발음으로
따짜란이라야 맞다.
따짜란은 큰 울타리라는 뜻이다.
<따쓰라>는 자금성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황궁에서는 이곳의 질서에
신경을 많이 썼다.
황궁에서는 이곳의 질서유지를
위해 빙 둘러 울타리를 쳤다.
<따쓰라> 입구에는 大柵欄이란
팻말이 꽂혀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따쓰라>라는
이름이 궁금하여 물었다.
"아저씨, 이 골목은 글자대로라면
따짜란인데 왜 <따쓰라>
라고 합니까?"
나의 질문에 너의 할아버지는
흥미진진한 역사의 에피소드를
얘기하셨다.
청나라의 아무께 황제가 하루는
행차 차 전문(前門)을
지나던 중이었다.
황제는 골목의 시끌벅적이는
소리에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황제는 슬그머니 가마 밖의
세상을 엿보았다.
황제의 첫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大柵欄이란 팻말이었다.
황제는 수행 신하에게 물었다.
"이곳이 <따쓰라>인가?"
황제는 글자를 잘 못 읽은 것이다.
석자 중에 大자만 맞고 뒤에
두 글자는 틀리게 발음한 것이다.
“ 황상 마마,
이곳은 따짜란입니다. “
신하가 민망해하며 얼른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황제가 하는 말이
기상천외했다.
"짐이 <따쓰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아부아첨에 길들여진 신하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말했다.
"황상 마마, 황송하옵니다.
이곳이 바로 <따쓰라>입니다."
그때부터 이 거리는 <따쓰라>
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너의 할아버지는 이런 일화를
마치고 현실을 비꼬는
의미심장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었다.
너의 할아버지께서는 그 황제의
이름도 알고 있었지만
내 기억에서 사라진 게 못내 아쉽다.
나는 <따쓰라>의 기원에 관해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봤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일화는 찾을 수 없었다.
너의 할아버지는 고인이 되신 지
20년이 넘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세월이
많이 그립다.